
동아일보 1932년 1월20일자에 실린 사진들. 조선은행 평양지점(위), 범인이 들어간 창(아래 왼쪽), 은행 후문(아래 오른쪽).
오기영은 허겁지겁 평안남도 경찰부를 뛰쳐나와 전차를 집어탔다. 지국에 들러 대강의 사정을 설명한 후 곧장 조선은행으로 달려갔다.
‘아니야. 조선은행으로 가봐야 소용이 없을지도 몰라. 경찰도 비밀에 부치는 일을 그들이라고 곧이곧대로 발설하겠어? 이런 문제는 에둘러서 풀어야 해.’
오기영은 방향을 틀어 조선은행 인근에 있는 동일은행 평양지점으로 들어갔다. 학교 선배인 지배인을 찾아가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형님, 조선은행에 무슨 일 있는 거죠? 그렇죠?”
“아니 이 사람, 조선은행 일을 왜 예서 묻나.”
“그러지 말고 좀 알려주세요. 제가 취재원 보호에 철저한 것 잘 아시잖아요.”
“글쎄 뭘 알아야 알려줄 것 아닌가. 조선은행이 얼마를 도둑맞았는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
“형님 지금 ‘도둑’이라고 하셨어요?”
“그럼 자넨 여태 조선은행 금고가 털린 것도 모르고 나를 찾아온 거야?”
“돈 찍어내는 중앙은행에 도난사고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리예요? 그래 얼마를 잃어버렸답니까.”
“그거야 기자인 자네가 나에게 알려줘야지. 나는 조선은행 지배인이 아니라 동일은행 지배인일세.”
오기영은 조선은행에 도난사건이 발생한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하고 동일은행을 나왔다. 조선은행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면서 도대체 어떻게 정보를 캐내야 할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대동문통 조선은행 앞에는 두 대의 관용차가 나란히 서 있었다. 평양경찰서 서장 차와 경기도 경찰부 보안과장 차였다. 은행 안으로 들어서자 수십 명의 형사가 널따란 청사 곳곳에 흩어져 조사하고 있었다. 평양지방법원 검사국 요코다 검사와 사이토 검사도 보였다. 은행원들은 대부분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벌집 쑤신 듯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영업은 정상적으로 이뤄질 모양이었다.
“얼마를 도난당했답니까?”
창구에 앉아 있는 직원에게 다가가 슬쩍 묻자, 그는 아무 일도 아닌 듯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78만원이요.”
오기영은 입이 쩍 벌어졌다. 78만원이면 신문기자 한 달치 봉급인 50원을 매일 쓴다 해도 40년 넘게 쓸 수 있는 거금이었다. 조선은 물론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대(大)도난 사건이었다. 창구 직원에게 되물었다.
“오늘도 평상시처럼 영업합니까? 지급도 정상적으로 이뤄집니까?”
“금고에 있는 410여만원 중 78만원쯤 없어졌기로 지급에 지장이 있을 리 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