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소격동에 있는 국제갤러리.
미술계에 대한 검찰 수사는 이건희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리움미술관 관장 등 ‘삼성가(家) 여인’들이 회사 비자금으로 수백억원대의 미술품을 구입했다는 김 변호사의 폭로에서 비롯됐다. 물론 삼성측은 김 변호사의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1982년 개관한 국제갤러리는 가나아트센터, 갤러리현대, 서미갤러리 등과 더불어 국내 대표적 화랑으로 손꼽힌다. 미술계 관계자는 “국제갤러리와 서미갤러리는 역사가 짧은 데 비해 인맥이 좋다”고 평했다. 그에 따르면 ‘큰 손님’은 인사동이 아니라 강북의 평창동과 강남 등 부촌에 많은데, 두 갤러리는 이들 부촌의 ‘큰 손님’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는 것.
서미갤러리 대표 홍모씨는 2004년 해외 미술품 구입과 관련해 관세법과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적이 있다. 이후 삼성이 ‘주 거래처’를 국제갤러리로 바꾼 것 같다는 게 수사기관의 분석이다.
수사기관에 따르면 국제갤러리로 유입된 삼성 비자금은 ‘행복한 눈물’ 소동을 일으킨 서미갤러리로 흘러든 규모보다 클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110억원은 검찰이 국제갤러리의 여러 계좌 중 한 계좌에서만 확인한 것이다. 수사기간이 짧았던 검찰 특본팀은 나머지 계좌들은 열어보지 못한 채 조준웅 특별검사팀에 넘겼다.
100억 넘는 작품도 구입
삼성 계열사 전·현직 임원들의 차명계좌를 수사하고 있는 특검팀은 지난 1월말 1조원 이상의 차명자금을 확인하고 이 자금의 상당액이 비자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 여러 차명계좌에서 출금된 돈이 미술품 구매를 대행한 것으로 보이는 몇몇 갤러리로 흘러간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베일에 가려 있다.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특검팀은 서미갤러리에 이어 삼성 비자금의 미술계 유입 창구로 의심받고 있는 국제갤러리에 대해 본격적으로 계좌 추적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한국화랑협회 회장이기도 한 국제갤러리 대표 이모씨는 지난해 10월말 출국해 귀국하지 않은 상태. 특검팀은 이씨가 입국할 경우 ‘통보’되도록 관계당국에 조치를 취했다.
기자는 관계기관 취재를 통해 국제갤러리로 이동한 삼성 비자금의 실체를 가늠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았다. 관계기관에 따르면 국제갤러리에 삼성 비자금이 처음 흘러들어간 시기는 2006년 6월. 몇몇 삼성 임원 명의 차명계좌에 들어 있던 돈이었다.
국제갤러리는 국내 미술계에서 흔치 않게 외국의 고가 미술품을 사들이고 연중 몇 차례 외국 유명 작가의 전시회를 여는, 말 그대로 ‘국제적인’ 갤러리다. 대부분의 화랑에서는 국내 작가의 작품만 판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