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부부는 회사와 친지들 사이에 이름난 불임부부였다. 1996년 가을에 결혼해 2005년 가을 세상에 나온 딸과 대면했으니 딱 9년 만이다. 9년 만에 첫 아이를 가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은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다.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처럼 하룻밤 불장난에 아빠 되고 엄마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많은 이는 이 글에서 내가 어떤 사연을 소개할지 짐작하리라 생각된다. 결혼하는 것과 아이를 낳는 것은 전혀 다른 과업이라는 사실을 많은 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불임이 자랑은 아니다. 그리고 9년 만에 아이를 낳은 부부도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왜 이 글을 쓰기로 작정했는가. 최근 ‘신동아’의 한 기자와 대화를 나누던 중 오래전부터 마음 한구석 잠재의식 속에 간직해온 일종의 사명감이 뚜껑을 열고 나왔다. 아버지가 되겠다며 갖은 고생을 한 지난 9년 동안, 나는 많은 불임부부의 고달프고 애달픈 삶의 스토리를 목도했다. 불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목격했다. 불임의 책임자라는 누명을 쓴 아내에게 남편과 우리 사회가 어떤 구조적 형벌을 가하는지 체험했다. 나는 이와 다르게 불임 문제를 풀어가겠다고 다짐했고, 실제로 그렇게 실천했다. 그래서 아빠가 되면 그 깨달음과 교훈을 세상에 알려주고 싶었다. 아빠가 된 기쁨 속에 3년이 흘렀다. 이제는 말해야 할 때가 왔다.
한 가련한 불임 여성을 엄마로 만들기 위해, 그래서 귀한 생명을 세상에 모시기 위해 남편과 시부모, 그리고 남편의 직장 동료와 친구들은 과연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과학기술 만능주의에 편승해 불임이라는 세기말적 현상을 이용, 명예와 돈을 얻는 언필칭 전문가들이 반성할 점은 없는지…. 내가 이 글을 통해 지적하고 싶은 것들이다.
나는 전문직 종사자다. 처음에 나는 얼굴을 드러내고 실명으로 글을 쓸 작정이었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회사 상사도 “널리 희망을 주는 글이니 마음껏 쓰라”고 격려했고 아내도 흔쾌히 허락했다. 그러나 문득, 이야기의 주인공인 딸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딸은 자신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를 공론화하는 문제에 동의할 핵심 이해관계자다. 그러나 이제 네 살인 그 아이에겐 그럴 능력이 없다. 나는 아이가 성인이 돼 동의할 때까지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주고 싶다. 비록 익명 뒤에 숨게 됐지만 다음의 사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