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값 등록금 촛불집회에 나온 대학생들.
대학 졸업장을 얻는 데 들인 비용보다 취업 같은 현실적 효용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등록금이 비싸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가격에 견줘 상품의 질이나 가치가 떨어지면 소비자가 구매를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대학 졸업장은 학력·학연·학벌이 생산되는 기반이고, 학벌사회에 편입하는 데 필요한 최소 조건이다. 학벌사회에서 이탈한다는 것은 결국 사회의 하층 계급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대학 졸업장이 학벌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상징자본이라는 점, 그리고 학벌에 따른 구별짓기와 계급적 차별이 남아 있는 이상 대학 졸업장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의 기제인 학벌사회가 엄연한데 학벌에 대한 환상이나 대학 졸업장에 대한 수요가 없어질 리는 없다. 대중 매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사회 전체가 과잉 학력을 부추긴다. 과잉 학력은 개인으로 보나 국가로 보나 낭비인데도 말이다.
‘반값 등록금’ 문제는 무엇인가? 등록금이 비싸져서 가계 부담이 커졌다는 건 문제의 표피에 지나지 않는다. 그 핵심적 본질은 다른 데 있다. 비싸니까 반으로 줄여야 한다는 게 소비자의 입장이고, 등록금은 제대로 받아야 한다는 게 공급자의 입장이다. 둘의 입장은 상충한다.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려면 정부가 국립대학을 포함해서 사립대학의 손실 부분까지 보상해줘야 하는데, 그러자면 세금을 써야만 한다. 고등교육이 사회적 공공재가 아닐뿐더러 신분 징표로서의 대학 졸업장 취득에 따른 모든 이익 역시 개인에게 귀속된다. 세금이 공공성과 무관한 대학생의 사익과 사학 재단의 영리를 위해 퍼부어져야 한다는 것은 수익자 부담 원칙에도 벗어난다. 그 세금은 대졸자뿐만 아니라 고졸이나 중졸이 최종 학력인 납세자에게서도 나올 것이다.
반값 등록금은 정당한가
열등한 학력 때문에 차별과 구별짓기를 당하는 계층이 ‘반값 등록금’을 부담한다는 게 이치에 닿는 일인가? 가난한 자가 제 티끌 같은 재산을 모아 부자를 돕고, 피해자가 가해자를 위로하며 돕는 격이다. 단지 납세자라는 이유로 자신과 아무 연관이 없는 반값 등록금을 위해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이런 해법에 흔쾌하게 동의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학교육의 인프라와 교육서비스의 질적인 향상에 연동하지 않고, 다만 대학 등록금만 반값으로 내리겠다는 정치권의 약속은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전형적인 대중 영합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반값 등록금 투쟁은 공공성이 부재할 뿐만 아니라 병든 몸통은 그대로 두고 꼬리만 바꾸자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학벌주의야말로 병든 몸통이다. 그러므로 반값 등록금 투쟁보다 앞서야 할 것이 학벌주의 타파 운동이다.
그렇다면 ‘학벌’이란 무엇이고, 그것이 왜 사회적 문제가 되는가? 어느 특정한 계층에 권력과 돈이 집중하는 현상에서 ‘학벌주의’의 폐단이 파생한다. 학벌은 사회구성원들 사이의 ‘차이’를 낳는다. 아울러 이 차이는 “생활조건의 주요한 집합을 갈라놓는다.”(부르디외, ‘구별짓기’) 계층의 서열화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 중심에 ‘서울대학교’가 있다. 김상봉은 “서울대는 한국의 지배계급이다”(김상봉, ‘학벌사회’)라고 규정한다. 학벌사회의 시발점은 국립대학교의 특권적 지위를 갖고 있는 ‘서울대학교’다. 학벌사회가 일으키는 모든 폐단도 그 책임이 패권적 지위를 갖고 온갖 특혜를 누리는 ‘서울대학교’로 귀속된다. 한국사회의 권력과 재화의 분배에서 ‘서울대학교’ 출신들은 최상위 수혜집단이다. 우리 사회에서 어느 학교 출신이냐에 따른 연고성은 횡적·종적 유대관계를 만드는 기초적 인자다. 김상봉은 학벌주의가 만드는 문제를 이렇게 명료하게 짚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