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약분업 시행 후 한산해진 서울 종로 약국거리.
그해 엄마가 된 이들은 지금도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면 분노를 금치 못한다. 국민의 건강을 외면한 의사들의 단체행동이 적잖은 고통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이처럼 말 많고 탈 많던 의약분업이 시행된 지도 어느덧 11년째. 그 사이 의약분업에 대한 국민의식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의약분업을 제대로 이해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진료는 의사가, 조제는 약사가 하는 거요.”
의약분업이 뭔지 아느냐고 물으면 열명 중 절반 이상은 이렇게 답한다. 나머지는 모른다고 말하거나 불만을 터뜨린다.
“한참 기다려서 의사를 만나도 성의 없이 진료해요. 처음 본 환자에게 서너 가지 물어보고 처방전을 써주니 허준도 감탄할 신기(神技) 아닌가요.”
아쉽게도 이들은 모두 핵심을 놓치고 있다. 의약분업의 주인공은 의사와 약사가 아니라 국민이라는 사실 말이다. 의약분업을 통해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려고 ‘의사의 처방전 2매 발행’과 ‘약사의 복약지도(服藥指導)’가 법으로 의무화돼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처방전 2매 발행과 복약지도는 국민의 건강권과 알 권리를 위해 의·약·정이 합의한 사항이다. 이는 2000년 7월 의약분업을 시행한 지 넉 달 만에 거둔 성과였다. 당시 합의안에는 이외에도 약사의 임의조제 근절, 의사의 지역처방의약품목록 발행 등 많은 내용이 담겼다.
처방전 2매 발행, 유명무실
7월1일은 의약분업을 시행한 지 꼭 11년이 되는 날이었다.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를 재원으로 국민의 건강 증진을 위해 실시한 의약분업. 과연 당초 취지와 기본원칙에 어긋남 없이 달려왔을까
의료법 시행규칙 제12조, 제2항은 처방전 2매 발행을 의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사항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의사나 치과의사는 환자에게 처방전 2부를 발급해야 한다. 다만 환자가 그 처방전을 추가로 발급해줄 것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환자가 원하는 약국으로 팩스·컴퓨터통신 등을 이용해 송부할 수 있다.
처방전 2매 중 1매는 약국조제용으로 제출된다. 다른 1매는 환자보관용이다. 그러나 처방전을 2매 발행하는 의료기관은 많지 않다. 200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처방전 2매를 받은 소비자는 36.2%에 불과했다.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17.1%만이 처방전을 2매 발급한다고 답했다.
이 규정을 그마나 잘 지키는 곳은 병원급 의료기관이다. 대부분의 의원에서는 처방전 1매 발행이 일상화돼 있다. 약국조제용 처방전만 내주는 것이다. 의사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1매 발행 사실을 시인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의 한 소아과 원장은 “처방전을 2매 발행한 건 의약분업 시행 후 처음 한두 달뿐”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환자들이 처방전 2매가 필요없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
“의약분업 시행 초기에는 처방전이 두 장씩 나오는 루울렛 프린터가 있었어요. 근데 필요 없어서 한 장 나오는 프린터로 바꿨어요. 지금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2매를 떼줘요. 근데 그런 사람이 전체의 5%밖에 되지 않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