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을 기준으로 보면 네가 나이고, 내가 너이다. 말하자면 ‘너=나’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이 등식은 한국인의 마음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다. 네가 나이고, 내가 너이기 때문에 나도 너도 아닌 우리로 바뀐다. 한국인이 ‘우리집’‘우리 아버지’ 등의 말을 쓰는 것이 이 때문이다. 한국인은 나누기를 잘 할 줄 모른다. 여럿이 식사를 하고 밥값을 계산할 때도 자기가 먹은 밥값을 각자 나누지 않고 혼자서 다 내곤 한다. 식당이나 술집에 갈 때도 혼자서 가는 경우가 드물다.
한국인은 이런 정서 때문에 본질적으로 경쟁하는 것을 싫어하고 다투는 것을 싫어한다. 길에서 싸우는 사람을 보면 뜯어말린다. 때리는 사람이 나쁘고, 맞는 사람이 옳다고 판단하기에 대개는 맞는 사람 편에 서서 때리는 사람을 저지한다. 한국인은 남에게 맞으면 “왜 때려!”하고 큰소리를 지른다. 그래야 지나가는 사람이 알고 도와줄 것이기 때문이다.
한단의 걸음걸이
그러나 서구인이나 일본인은 다르다. 그들은 싸우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이기는 사람을 돕는다. 그렇기 때문에 약한 자는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니라 무릎을 꿇는다. 강자가 약자에게 사과하는 법이 없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한국은 끊임없이 일본에 사과하라고 한다. 한국인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사과할 줄 모르는 파렴치한 일본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일본인은 약자이면서도 무릎을 꿇지 않고 계속 큰소리치는 한국인을 역시 이해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의 고유한 정서를 무시하고 맹목적으로 서구와 일본의 방식을 받아들이기에 바빴다. 여기에 큰 착각이 있었다. 보리밭에 물을 댄다고 보리가 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보리는 벼가 되지 못할뿐더러 보리로서의 생명도 잃고 만다. 이른바 한단의 걸음걸이를 배우러 간 연나라 청년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중국 춘추시대 때의 일이다. 한단은 조나라의 수도로 유행의 첨단을 걷던 도시다. 한단의 사람들은 걸음걸이도 세련됐다. 이를 안 연나라의 시골청년이 한단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배우러 한단에 갔다. 그러나 한단 사람의 걸음걸이는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채 오히려 자기 걸음걸이를 잊어버리고 기어서 돌아갔다고 한다. 우리는 한단학보(邯鄲學步)의 가르침을 새기는 데 소홀했다.
우리는 서구의 정치나 교육제도를 따르고 있다. 법도 서구의 법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정치가 혼란한 것도, 교육에 문제가 있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 측면이 많다. 특히 어린이들의 교육문제는 심각할 정도다. 서구인의 삶의 원리는 경쟁이고 투쟁이다. 우리가 이런 방식을 어린이들에게 강요한 결과 많은 아이가 열을 받았다. 그 열이 밖으로 터져 나오면 폭력이 되고, 안으로 들어가면 우울증이 된다. 학교 폭력이 심각한 이유도 여기에 있고, 우울증에 빠져 자살하는 학생이 속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너=나’라는 한국인의 기본 정서는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단점으로 발휘될 수도 있다. 한국인의 정서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장점 중에 제일 큰 것은 따뜻한 마음이다. 네가 나이기 때문에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고, 네가 슬프면 나도 슬프며, 네가 울면 나도 운다. 그런 한국인의 마음은 따뜻하다. 흔히들 한국인은 정이 많다고 하고 정이 깊다고도 한다. ‘끈끈한 정 때문에’ 또는 ‘못 말리는 정 때문에’라는 말로 한국인의 심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마음이 따뜻한 한국인은 남의 의견을 내 의견처럼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모인다. 사람들은 자기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자기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은 자기를 인정해주는 사람이다. 남에게 인정받는 사람은 생기가 나고 활기가 넘친다. 활기가 넘치면 신바람이 난다. 한국인은 신바람이 나면 기적을 일으킨다. 배 12척으로 수백 척을 거느린 적군을 무찌르기도 하고, 세계에서 가장 좋은 글자를 단숨에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너=나’라는 등식이 ‘네 것=내 것’이라는 등식으로 확대되면 매우 부정적인 형태로 변질된다. ‘네 것’은 ‘내 것’이고 ‘내 것’은 ‘내 것’이라는 식으로 변질되면 심각한 의타심이 생겨난다. 한국인에겐, 밥은 내가 먹었지만 밥값은 남이 지불하기를 바라는 심리가 있다. 이러한 심리에는 네 돈이 내 돈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네 것은 내 것이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네 것은 네 것으로만 굳어지는 것은 참기 어렵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고,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것도 이런 심리에서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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