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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史實)은 해석과 논쟁의 토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주는 교훈

사실(史實)은 해석과 논쟁의 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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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은 여러 차원의 역사를 만든다. 가족은 누구도 피할 수 없지만, 국사는 가족사에 대해 봉건적이라는 굴레를 씌워 봉쇄한다.
  • 그러나 족보는 여러 역사의 일부이지, 타도 대상이 아니다. 학교나 사회단체, 지역 곳곳에서 만들어지는 역사도 ‘역사교육’의 대상이 아니다.
사실(史實)은 해석과 논쟁의 토대

교학사에서 펴낸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표지.

그동안 우리는 역사 탐구와 서술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오류와 왜곡에 대해 꽤 오랫동안 살펴봤다. 이제 역사 논쟁에서 나타나는 오류와 왜곡을 살펴보려고 한다. 논쟁이나 해석의 차이는 사실(史實)에 대한 탐구와 서술을 기초로 발생하는 것이기에 사실 두 영역을 나눠 설명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한계랄까, 조건을 염두에 두고 조심스럽게 역사 논쟁에서의 오류를 검토해보자. 마침 최근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한국사 교과서가 있다. 그 교과서를 둘러싼 논의와 논쟁은 우리의 역사 공부에 매우 좋은 자료가 된다.

역사학의 위기(?)

역사학도 처지에서 볼 때 현재 역사학과의 위기는 예견돼 있었다. 현대의 오만이긴 하지만, 역사학 역시 ‘진보사관’과 ‘근대주의’의 오만 속에서 협애(狹隘)해졌다. 고대-중세-근대라고 부르는 순간 작동하기 시작하는 진보사관과 근대주의는 사실 역사학의 무덤을 파는 일이었다. 사실과 가치 두 측면에서 모두 현대의 삶이 지고(至高)의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 누가 지난 경험을 진지하게 현실로 끌어오겠는가. 과거 또는 경험은 기껏해야 호고(好古) 취미일 뿐이다. 마치 사극(史劇)이나 유사 역사평론이 역사학을 대신하듯.

그런데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역사학이 비실거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 현재 대학에서 이뤄지는 역사교육은 국민국가사로 한정돼 있다. 전국 모든 대학의 역사학과(국사학과)는 고대사, 고려사, 조선사, 식민지 및 현대사로 교과가 분류돼 있다. 그렇다. 국사(國史)다. 서양사와 동양사 역시 국민국가사 또는 국민국가사를 모아놓은 지역사(예컨대 유럽사, 남미사)를 커리큘럼으로 한다. 대학이 위치한 지역이나 규모의 차이, 이런 건 반영되지 않는다. 스테레오 타입의 교과가 국민국가답게 전국적으로 운영된다. 당연히 해당 전공 교수가 퇴임하면 그 자리엔 그 전공자만 뽑는다. ‘자리’니까. 이렇게 해서 이 국사교육 체제는 온존, 강화된다.



익히 알다시피 19세기 국민국가의 완성에 충실한 시녀 노릇을 했던 역사는 국민국가 탄생과 유지에 기여했지만, 한편으론 국민국가의 아이덴티티에 방해가 되는 기억은 지워버렸다. 예를 들어, 탐라나 제주에 대한 기억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고, 빨리 지워버리고 국사가 보여주는 기억으로 대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웃기는 것은, 현대사는 가능한 한 지워버리려는 게 국사였다. 폴 벤느 같은 역사학자는 아예 역사학은 현대사를 사회학과 인류학에 넘겨줬다고 단언했다.

사람은 여러 차원의 역사를 만들며 살아간다. 가족은 누구도 피할 수 없고, 학교에 다니면 학교의 역사를 구성한다.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은 교회나 절의 역사를, 또 자연스럽게 자기 고장의 역사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국사는 가족사에 대해 봉건적이라는 굴레를 씌워 봉쇄한다. 하지만 족보는 여러 역사의 일부이지, 타도 대상이 아니다. 그 외에 학교나 사회단체, 지역 등 사람들이 곳곳에서 만들어가는 역사는 ‘역사교육’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일곱 색깔 무지개로 구성돼 있는 나를 굳이 빨간색이나 파란색으로 물들이려고 하면 받아들여지겠는가. 수능 시험, 공무원 시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할 뿐이다. 그나마 공무원 시험도, 경상도나 충청도 공무원을 뽑는 데 국사 시험을 치는 건 타당성이 없다. 그 지역 공무원으로 근무해야 하니 경상도사(史)나 충청도사를 보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역사 왜곡의 준비

20세기 ‘근대’ 역사교육이 들어선 이래 지금까지, 역사학은 근대주의에 입각한 진보사관을 통해 역사학의 바탕인 과거의 경험을 부정했고, 국민국가사로 자신의 정체성을 제한하면서 역사학의 문채(文彩)를 지웠다. 게다가 역사학이 해줄 수 있는 풍부한 일, 즉 자료 발굴과 정리, 번역과 해설의 책무는 한갓 허드렛일로 버려두고 계속 논문만 요구했다. 재미없는 논문은 또 얼마나 많은가. 시간의 문제일 뿐, 현재의 역사학을 반성하지 않으면 역사학과는 차례차례 망할 것이다. 왜 망하는지도 모른 채.

여기에 위험요소가 하나 더 늘었다. 한국현대사학회라는 단체를 중심으로 역사교과서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 학회는 몇 년 전부터 교과서 개정을 건의했고, 당시 역사교육과정 개발추진위원회(위원장 이배용),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태진),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이주호)가 주체가 되어 한국사 교과서 개정을 추진했다.

그 결과 교과부가 2009년 8월 9일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사회과 교육과정’을 고시했는데, 그 고시 내용에 당초 교육과정심의회를 통과한 초중고 역사교육과정안(한국사 부분)의 원안이 바뀌었다. 그중 하나를 예로 들면 ‘민주주의’ 개념이 모두 ‘자유민주주의’로 바뀐 것이었다.

바뀐 과정부터 이상하다. 당초 과정안 원안은 전문역사학자들의 자문과 시민들도 참여한 공청회, 역사교육과정 개발추진위원회라는 교과부 자체 검토를 거친 것이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개념에 대해선 논의된 바 없었다. 불쑥 들어간 것이다. 대개 그렇듯, 이렇게 슬쩍 또는 불쑥 들이밀 땐 사심이 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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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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