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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적 1인자의 고독과 두려움 즐겨라

갑(甲)의 정치학

사방이 적 1인자의 고독과 두려움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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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갑인가? 그렇다면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갑 중의 갑인 대통령과 국회의원, 대기업 오너, 이보다는 못하지만 기관장과 전문경영인, 기타 자잘한 갑까지 갑의 숫자는 한정적이다. 갑의 최대 고민은 ‘갑의 지위를 유지하기 힘겹다’는 점에 있다.
사방이  적 1인자의 고독과 두려움 즐겨라

대통령 집무실로 올라가는 청와대 내 계단.

희소성이 높은 만큼, ‘갑질’을 잘해야 한다. 하지만 의외로 잘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 많은 리더십 프로그램이 왜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앞으로는 갑이 될 만한 사람에게는 갑의 도량을 함양케 하는 지옥훈련이라도 시켜야 할 듯싶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사회지도층에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 같은 고상한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본인에게도 이롭고 따르는 자들에게도 이로운 갑의 정치학을 말하고자 한다.

갑은 위대하다

갑은 이미 위대하다. 선택받은 사람답게, 허술한 ‘보통 갑’이라도 ‘슈퍼 을’보다 낫다. 보통 갑과 슈퍼 을의 차이는 슈퍼 을과 보통 을의 차이를 훌쩍 넘어선다. 프로페셔널 야구와 아마추어 야구의 격차를 연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정치력도 상당한 수준이라고 봐야 한다. 갑이 되는 과정은 단언컨대 정치력 없이는 돌파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정치력이 뛰어난 갑에게 더 필요한 정치적 역량이 있을까? 있다. 갑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치력이 그것이다. 정치력을 편의상 타인에 대한 영향력과 자신에 대한 영향력으로 나눌 때, 갑의 자리에서는 후자가 한층 더 중요해진다. 갑은 지위에 비춰 외부로부터 견제받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그렇다보니 독주할 개연성이 높은데, 이 과정에서 판단을 잘못 내리면 단번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한방에 훅 가버릴 수 있는 것이 갑의 지위다.

내(耐)고독력과 광기정치



그렇다면 자신과의 싸움에 잘 대처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갑을 위험에 빠지게 하는 내부의 적은 무엇일까?

갑은 외롭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내릴 결정에 대해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잠시 남에게 미룰 수 있지만 결국은 미룰 수 없는 그 책임 말이다. 거의 매일 무한 책임이 따르는 결정을 수없이 내려야 한다. 아무도 도와주지 못한다. 어찌 외롭지 않겠는가? 그래서 갑에게는 고독에 대한 내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것을 ‘내고독력(耐孤獨力·loneliness endurance power)’이라 부르기로 한다.

내고독력이 부족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신경쇠약을 지나 신경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 상태가 심각해지면 미치게 된다. 갑이 미치면 ‘광기정치’를 한다.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북한 김정은의 통치방식이 광기정치다. 이 또한 김정은의 내고독력 부족 때문으로 봐야 할 것이다.

몰락의 지름길

갑은 외로움을 이기려고 측근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기도 한다. 측근 중에는 가족도 있고 부하도 있다. 독재자가 가족이나 측근을 중용하면 친족정치와 측근정치가 된다. 회사의 사주가 가족이나 측근을 중용하면 친족경영과 측근경영이 된다. 이로써 고독을 조금 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다. 그래도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리하곤 하는데, 오히려 이것이 재앙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가족이나 측근이 갑의 몰락을 부르는 역설은 익히 보아온 바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측근 때문에 유명을 달리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도 소통령이라 불린 아들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노무현 전 대통령도 가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게 모두 대통령이 외롭다보니 생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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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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