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억 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12월 구속기소된 김광준 전 검사.
부패는 우리 사회의 공정한 룰을 저해하는 암적인 요소로, 부패척결 없이 국가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국제경제적으로도 부패가 하나의 무역장벽으로 인식되고,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안보 능력 못지않게 국가의 투명성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2012년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국가별 부패인식지수를 보면 한국은 100점 만점에 56점으로 176개국 중 45위로 나타났다. 싱가포르(5위)나 홍콩(14위)에 비해 상당히 부끄러운 수준이다.
나라 안팎에서 우리나라의 부패 정도를 심각하게 보는 것이 사실이다. 전문가 그룹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7.5%가 한국 사회가 부패했다고 답했고(2011년 ‘시사저널’과 한국반부패정책학회 공동조사), 국민의 78.7%가 부정부패의 주체로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를 지적했다(2011년 국민권익위 조사).
이제 우리 사회에서 부패를 추방하는 일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가 됐다. 이러한 절실한 요청에 따라 형사법의 대원칙을 일부 유보한 김영란법의 등장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실제로 미국, 캐나다, 프랑스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선진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해충돌방지법을 제정해 공직비리를 엄격히 관리해왔다. 김영란법의 모태가 된 미국의 ‘뇌물 및 이해충돌방지법’(1962년)은 공직자가 금품 등을 수수하는 경우 직무 관련성을 불문하고 형사처벌(1~5년의 징역 또는 벌금)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영란법 제정을 주장하는 논거 중 하나로 이러한 외국의 입법례가 제시된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
그러나 이런 주장은 각 나라의 역사적 전통이나 그 나라 국민의 의식이나 성향에 따라 형성된 반(反)부패 문화의 차이를 간과하는 것이다. 청렴이 사회 풍토로 정착한 대표적 청정 국가인 핀란드의 사례를 보면 부패척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반부패문화의 정착이 급선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핀란드의 어느 경찰관이 시민의 자전거를 찾아주고 2유로(우리 돈으로 3600원)를 받았다. 당사자는 ‘감사의 표시’로 받았다고 주장했으나 상부에서는 부정행위로 간주했다. 핀란드 교육부 장관은 교육부가 어느 골프장 주변을 개발하는 과정에 자신이 그 골프장 회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곧바로 사임했다. 이웃 주민이 갑자기 고가의 차를 구입해 타고 다니는 것을 보고 다른 주민이 자금 출처를 조사하도록 세무당국에 신고한 사례도 있다. 공직자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한 것을 뇌물로 간주해 처벌하기도 했다. 이런 일들은 개방과 원칙을 중시하는 공직 풍토, 정직과 청렴이 습관화한 국민의식을 바탕으로 반부패 문화가 자리 잡고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전통적으로 문화도 다르고 아직 반부패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법이 과연 그 입법 취지대로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구나 형사법의 대원칙을 일부 유보하면서까지 이 법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문제 제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사회 구성원이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행위 규범을 규정한 것이 법이라는 뜻이다. 특히 어떤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문제는 형사정책적 관점에선 더욱 제한적이고 엄격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형사법은 최소한의 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행위책임주의’ ‘과잉처벌 금지’라는 형사법의 대원칙은 그 대상이 공무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비켜갈 수는 없다. 직무관련성을 입증하기 힘드니 이를 법문에서 삭제하자는 주장에 대해 지나치게 수사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