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저지른 뒤 속죄 위해 노력했던, 장 발장
유명세 얻은 뒤에도 폭행, 음주운전 일삼았던 조진웅
장 발장은 죄 가리기 위해 권력 사용 않았으나
정치권과 가까워진 조진웅 변호 나선 여권 인사들
지난 12월 9일, 유튜버 김어준 씨가 ‘뉴스공장 겸손은 힘들다’를 시작하며 한 말이다. 배우 조진웅이 학창 시절 소년범으로 처벌받은 전적이 있으며, 그 후로도 폭행 등 여러 물의를 빚었다는 폭로가 불거지자, 그를 옹호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최근 청소년 시절 범죄사실이 드러나 은퇴한 배우 조진웅. 뉴스1
소년범은 형사처벌 대신 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보호처분을 받는다. 총 1호부터 10호까지 나누어진 처분 중 8호부터 10호는 소년원 송치에 해당한다. 단순 절도나 폭행으로는 그런 처분을 받을 수 없다. 형사처벌을 해야 하지만 소년범이기에 할 수 없을 때 나오는 높은 수위의 처분이다.
조원준은 소년원에서 나와 연기를 배웠다. 영화배우로 데뷔한 후로 아버지의 이름 ‘조진웅’을 자신의 예명으로 삼았다. 그리고 몇 편의 작품을 거치며 온 국민이 다 아는 배우가 됐다. 그야말로 인생 역전이다. 2025년 12월 4일까지의 일이었다. 12월 5일 ‘디스패치’에서 조진웅의 과거에 대한 폭로 기사를 내보내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보자. ‘조진웅 논란’은 흔한 연예인 스캔들일까. 그렇지 않다. 소년범의 교화와 갱생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사건일까. 교화와 갱생을 다룬 고전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 발장과 비교해 보자.
은촛대 도난 이후에도 범죄 저지른 장 발장
과부가 된 누나와 함께 살며 7명의 조카를 부양하는 장 발장은 선한 마음과 괴력을 지녔다. 하지만 신분이 낮고 배우지 못해 가난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어느 날 그는 굶주린 조카들을 위해 빵 한 덩이를 훔치고 붙잡혀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았다. 모범수로 살면서 만기 출소를 기다리는 게 가장 빨랐을 테지만, 어리석게도 연이어 탈옥을 시도했다. 그럴 때마다 형량이 늘었다.결국 19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사회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를 반겨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의 마음은 세상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그를 미리엘 주교가 받아줬다. 은촛대를 훔치려던 장 발장이 자베르 경감에게 적발되자 오히려 그를 두둔하며 은촛대를 선물해 줘 장 발장이 회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여기까지가 흔히 알려진 장 발장의 이야기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된다. 출소한 장 발장을 자베르 경감은 대체 왜 추적할까. 장 발장이 출소 후에도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레 미제라블’에 대한 각색에서 흔히 생략되고 있는, 하지만 어쩌면 소설 전체에서 가장 충격적인 그 대목을 함께 되짚어 보자.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 펭귄클래식코리아 제
“그는 무척 지쳤다. 불행한 운명으로 단련되어 온 자신의 차가운 마음의 벽이 점차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차라리 감옥에 가는 게 속 편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이런 감정의 변화도 없었을 것을. 이런 고뇌에 사로잡혀 있던 장 발장의 앞에 열 살쯤 된 소년 프티 제르베가 나타났다. 소년은 40수(2프랑) 은화를 허공에 던지고 받으며 놀고 있었다. 그러다가 동전을 흘렸고, 은화가 떨어지면서 장 발장이 있는 곳까지 굴러갔다. 장 발장은 동전 위에 발을 올렸다.”
장 발장의 내면을 섬세하게 기술하던 위고의 펜은 갑자기 사건 현장을 묘사하기 시작한다.
“얼마나 한적한 곳이었는지, 들판에는 그들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장 발장은 돈을 밟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되레 소년에게 고함을 쳐서 쫓아내 버렸다. 소년은 놀라서 장 발장을 바라보더니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멍하니 서 있다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레 미제라블’을 직접 읽어보지 않았거나, 읽었더라도 이 대목을 눈여겨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위 내용은 큰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의 내면 상태가 어찌 되었든 장 발장은 명백히, 미리엘 주교의 은촛대 사건 ‘직후’에, 소년의 돈을 빼앗았다.
왜였을까. 아직 떨쳐내지 못한 악에 사로잡힌 탓이었을까.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서술했다.
“(미리엘 주교의 포용으로 인해) 혼란에 빠졌을 때 프티 제르베가 찾아왔고, 그 아이의 은화를 훔치고 만 것이다. 왜 그랬을까? 자기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감옥에서 품었던 나쁜 영혼의 마지막 행동, 최후의 저항, 억제하지 못한 충동, 관성이라고 부르는 것들 때문이었을까? 그렇다. 어쩌면 그보다 더 미미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그는 훔치지 않았다. 그가 그런 것이 아니다. 갖은 혼돈과 상념에 휩싸여서 본능이 뚫고 들어온 것을 막지 못하고 돈 위에 발을 올린 것이다. 장 발장은 자신이 저지른 일을 보고서 고통에 떨며 뒷걸음치지 않았는가.”
속죄하던 장 발장 vs 폭행, 음주 운전 벌인 조진웅
장 발장은 뒤늦게 은화를 소년에게 돌려주기 위해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닌다. 하지만 소년의 종적은 찾을 수 없었다. 장 발장은 그 죄를 갚기 위해서라도, 일단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가난한 사람들, 특히 소년 소녀들을 돕겠다고 다짐한다.프랑스 북부의 항구 도시 몽트뢰유쉬르메르에 정착한 장 발장은 ‘마들렌’이라는 가명을 쓰며 장신구 사업에 뛰어들어 선량한 사업가가 됐다. 큰 부를 쌓고 명성을 얻어 시장으로 임명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소년의 돈을 훔친 전과자라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았다. 자베르 경감은 장 발장을 끝까지 추적한다.
21세기에 활동한 한국 배우 이야기를 하다가 19세기 프랑스 소설의 줄거리를 길게 설명한 이유가 있다. 장 발장과 조진웅에게 내려진 처벌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해 따져 보기 위해서다. 하나하나 비교해 보자.
먼저 두 사람에게 내려진 처벌이 가혹했는가. 장 발장은 죄에 비해 너무 큰 벌을 받았다. 반면 소년 조원준이 받은 보호 처분은, 설령 그것이 소년원에 최대 2년간 구금되는 10호 처분이었다 해도, 성인 범죄자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가볍다.
새로운 삶을 살 기회가 있었을까. 장 발장에게는 미리엘 주교의 선행이, 조진웅에게는 연기를 배울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에서 두 사람 새 삶의 기회를 받았다. 새로 얻은 영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하지만 공통점은 거기까지다. 배우로서 큰 성공을 거둔 조진웅과 마들렌 시장이 된 장 발장은 자신의 과거 앞에서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장 발장은 시장이 된 후 가난한 소년, 특히 굴뚝 청소부 소년을 만날 때마다 ‘프띠 제르베’인지 물었다. ‘프띠 제르베’가 아니라 해도 넉넉한 돈을 챙겨 주면서 보살폈다. 피해자에게 직접 사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그것이 여의치 않자 사회봉사와 기부 등으로 대체했다.
조진웅의 경우는 어떨까. 20대에는 극단 동료를 폭행했다. 영화배우로 유명해진 2010년 이후에도 동료 배우나 감독이 폭행당했다는 증언이 나온다. 2007년에는 음주 운전으로 적발됐다. 장 발장과 조진웅의 행보가 같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더 큰 차이가 있다. ‘죄’와 ‘정치’의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부유한 사업가이자 명망 있는 시장으로서 살아가던 장 발장은 정치의 힘으로 자신의 죄를 덮으려 하지 않았다. 자베르를 돈과 권력으로 찍어 누르지 않고 법 앞에 스스로를 온전히 내놓았다.
반면 조진웅은 2015년 8월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홍보대사로 위촉되면서 정치권 밀착 행보를 보였다. 박근혜 정부 탄핵에 앞장서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3.1 독립선언서 내레이션,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기념일 강연, 2021년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특별사절단 ‘국민 특사’ 참여 및 홍범도 장군 안장식 사회 등을 도맡았다.
조국 지키던 사람들이 조진웅 지키는 모양새
1994년의 사건에 대한 본격적 취재가 시작된 것은 이재명 대통령 취임식인 ‘국민임명식’에 참석했던 조진웅이 8월 광복 80주년 기념행사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낭독한 후의 일이었다. 이 타이밍이 과연 우연일까. 단지 배우로서 성공적 경력을 쌓은 것을 넘어, 권력과 가까워지는 가해자를 보며, 피해자들이 새삼 공포를 느꼈기 때문은 아닐까.조진웅에 대한 대중적 반감 모두가 정치에서 비롯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죄를 애써 축소하려는 목소리는 대부분 뚜렷한 정치적 동기를 담고 있다. 이 글을 시작하며 인용한 김어준 씨를 필두로, 한인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찬운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장, 류근 시인 등이 그를 두둔했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하나같이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감찰 무마 사건과 문서 위조 등을 옹호한 바 있다.

한인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2월 7일 배우 조진웅의 과거 범죄 이력에 대해 “어두운 과거에 함몰되지 않고, 수십년간 노력하여 사회적 인정을 받는 수준까지 이른 것은 상찬받을 일”이라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겼다. 동아DB
하지만 본인의 의지로 정치적 아이콘이 된 조진웅을 정치권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옹호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정치적으로 ‘우리 편’이라는 이유로 심각한 성범죄 전력마저 옹호와 두둔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 대한민국 정치는 어디까지 추락할 셈인가. 소년범에게 기회를 주자는 말도, 가혹한 형벌이 범죄인의 교화와 갱생을 막는다는 비판도 노골적인 정치적 편향성 앞에서는 그 진심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삼한 시대에는 제사장이 살던 소도(蘇塗)에 범죄자가 숨어들어도 잡아갈 수 없었다고 한다. 국회와 정치권은 소도가 되어버린 걸까. '조진웅 논란'은 연예인 스캔들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의 도덕과 윤리의 타락을 묻는 사건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