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험 지금도 통할까?” 질문보다 중요한 건…
성공적 재취업 위해서 ‘커리어 재설계’ 필요
성과 증명 어떻게? 경험을 새롭게 수치화하라
인생 이모작은 ‘새출발’ 아니라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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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박 씨의 커리어 전환은 구체화됐다. ‘사내 교육 전문가’에서 ‘조직·리더십 코치’로 거듭난 것이다. 그는 오랜 현장 경험을 도구화해 ‘회의 프로토콜 카드’ ‘일대일 코칭 가이드’ ‘12주 조직 전환 프로그램’ 등을 만들었다. 현재 그는 여러 기업과 협업하며 팀 갈등 완화와 의사결정 속도 및 리더십 개선 등의 부문에서 실질적 성과를 내고 있다. 과거 직함이 아니라, ‘사람과 조직의 변화를 설계하는 능력’이 그의 새로운 자산이 된 셈이다.
“내 경험 지금도 통할까?” 질문보다 중요한 건…
재취업을 희망하는 중장년을 상담하다 보면 많은 이들이 박 씨와 유사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내 경험이 지금도 통할까”는 상담 과정에서 나오는 단골 질문이다. 그러나 이 물음에는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다. 핵심은 ‘과거의 경험이 통하느냐’가 아니며, ‘경험을 어떻게 재정의 하느냐’에 가깝다.많은 이들이 직함이나 근속연수 등을 자신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과거를 설명할 뿐, 현재의 경쟁력을 보장하지 않는다. 여전히 “나는 ○○기업에서 부장으로 일했다”는 식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이들이 많지만, 시장이 진정으로 알고 싶은 것은 오직 하나다. 바로 “당신은 우리 조직의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다.
재취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커리어 재설계(Re-Design) 작업이 필요하다. 과거 경력을 단순 나열하기만 해서는 이를 달성할 수 없다. 시장은 설명이 아닌 증명을 원한다. 인생 이모작의 핵심 질문은 “나는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인가”여야 하고, 여기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경력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미래의 자산’이 된다.
이를 위해 경력을 ‘문제(Problem)→ 행동(Action)→ 결과(Result)’ 즉 P–A–R 구조로 재정리할 필요가 있다. 특정 상황에서 어떤 문제를 발견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했으며, 그 결과 어떤 수치적·구체적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명확히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다.
예컨대 “생산관리 20년”이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대신 “납기 준수율 74%에서 91%로 개선, 재작업률 12%에서 6%로 감소”라고 말하면 전문성이 바로 드러난다. “영업 18년” 역시 막연하게 다가온다. 대신 “신규 채널 42개 확대, 재구매율 14%포인트 향상”이라고 설명하면 문제 해결 능력을 갖췄음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다. 이처럼 경력의 힘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성과의 재구조화’에서 나온다.
경력을 재구조화하려면 우선 경험을 재가공 가능한 단위로 해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핵심은 ‘기억의 나열’이 아니라 ‘재배열 및 재구조화’다. 이 과정을 통해서만 비로소 경력을 ‘시장에 제안할 수 있는 상품’으로 설계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좋다.
① 내가 해결했던 문제는 무엇인가
② 어떻게 해결했나
③ 결과를 수치로 설명할 수 있는가
④ 이 방식은 다른 조직에서도 재현 가능한가
⑤ 산업과 직무를 가로지르는 핵심 원리는 무엇인가
⑥ 조직이 아닌 ‘나’ 개인의 기여는 무엇인가
⑦ 타인이 나에게 반복적으로 요청한 도움은 무엇인가
⑧ 한 문장으로 나는 누구인가
‘경험의 재정의’는 경력 재구조화를 돕는 핵심 열쇠다. 품질·안전관리 부문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이모(49) 씨가 대표 사례다. 그의 일은 사업장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커리어 전환을 시도하면서 그는 난관에 부딪혔다. “내 일은 사고를 막는 건데, 막았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지”라는 질문에 막힌 것이다. 예방 중심의 업무는 그 특성상 성과를 증명하기 어려웠다.
성과 증명 어떻게? 경험을 새롭게 수치화하라
필자는 상담 과정에서 그에게 “예방의 결과를 수치화해 보라”고 조언했다. 그는 사고 직전까지 갔지만 성공적으로 해결한 사례를 하나둘 분석했고, 그 결과 ‘사고를 막음으로써 절감된 비용’이라는 개념을 도출해 냈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의 역할을 ‘사고를 막는 관리자’가 아니라 ‘잠재적 손실을 줄이는 리스크 절감 전문가’로 재정의했다. 이렇게 경험을 재정의하자, 그의 커리어는 새로운 시장에서도 통하기 시작했다.이 씨는 그동안의 노하우를 묶어 ‘사전점검 체크리스트’와 ‘공정별 위험 등급표’ 등의 표준 패키지로 만들었다. 기존의 안전 감사가 적발 중심이었다면, 그는 사전 코칭에 집중했다. 덕분에 현장에서 긴장을 최소화하고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를 토대로 ‘초기 진단→ 개선·실행→ 유지·점검’으로 이어지는 3단계 컨설팅 구조를 구축했고, 화학·식품 제조사 세 곳과 연속적으로 계약을 성사시켰다. 덕분에 이 씨는 ‘안전관리자’가 아니라, 리스크를 예방하는 ‘운영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다.
경력을 재구성했다면 이를 매력적으로 전달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플랜트 영업관리 부문에서 오랜 기간 일한 김모(54) 씨의 사례를 살펴보자. 그는 퇴직 후 4개월 동안 “기술은 젊은 사람이 낫다”는 말에 위축돼 있었다. 그러나 상담 과정에서 자신만의 강점을 새롭게 발견하며 상황은 반전됐다. 바로 ‘리스크를 감지하고 손실을 최소화하는 능력’이었다. 그는 과거 설계·조달·시공(EPC) 계약 재협상 과정에서 지체상금(LD) 조항이 손익에 미치는 영향을 계산해 손실을 줄인 경험이 있었다.
이후 김 씨는 자신의 경력을 새로운 언어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전통적 이력서 대신 한 장짜리 제안서를 만들었고, 직접 설계한 ‘공급망 변동 리스크 매트릭스’와 ‘계약조건 민감도 표’를 첨부해 전문성을 구체화했다. 미팅 자리에서도 그는 ‘문제 정의→ 영향 분석→ 대안 제시→ 예상 효과’의 4단계 구조로 발표를 진행했다. 결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한 기업과 계약을 맺고 프로젝트 리스크 관리 자문을 맡게 된 것이다. 현재 김 씨는 분기 성과급 외에도 월 450만 원의 고정 자문료를 받고 있다.
인생 이모작은 ‘새출발’ 아니라 ‘재구성’
사실 자신의 생각을 명료하게 전달하는 능력은 새 일터에 자리 잡은 후에도 중요하다. 많은 중장년 직장인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자기 어필이 지나치다”는 시선을 우려하는 한국 사회 분위기도 한몫한다. 재취업으로 인해 낯선 환경에 들어서게 되면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더욱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인생 이모작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이 아니라 명료한 자기표현이다. 자신의 경험을 ‘겸손하게 숨기는 능력’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더 큰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핵심 자질은 화려한 언변이 아니다. 오히려 조급한 성과 과시는 조직 내에서 신뢰를 잃게 만들 수 있다.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라. 이를 위해서는 여러 준비가 필요하다. 그 핵심 도구가 바로 ‘30·60·90일 투입 플랜’이다. 이 플랜은 ‘관찰→ 실험→ 제도화’의 순서로 진행된다.
첫 30일은 성과보다 신뢰 구축이 우선이다. 특히 새로운 환경에 막 투입됐다면 데이터에 집중하기보다 사람을 만나야 한다. 리더(3명), 실무자(5명), 지원부서(2명) 등 현장에서 최소 10명을 인터뷰하며 조직의 흐름과 암묵적 규칙을 읽는 것이 좋다. 이때 얻은 정보로 프로세스를 시각화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입력과 산출 프로세스, 책임과 리스크 등을 지도로 그리듯 정리하면 문제 지점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30일은 개선을 위한 실험 단계다. 앞서 발견한 문제 가운데 한 가지를 골라 각기 다른 두 가지 대안을 마련하고, 작게나마 개선 방안을 시도해 보자. 이때 반드시 실험 전에 효과 측정 기준을 정해놔야 한다. 정량 지표 2개와 정성 지표 1개 정도면 괜찮다. 실험 결과가 예상과 달라 실패한 부분이 있다면 숨기지 말고 공유하라. 실패의 경험을 공유하면 조직 내 신뢰와 결속은 오히려 단단해진다. 나아가 실패를 감추는 조직보다, 실패를 학습으로 전환하는 조직이 빠르게 성장한다.
마지막 30일은 제도화의 시간이다. 작게 성공한 것을 표준으로 삼아 문서화하고, 교육을 통해 조직에 내재화한다. 교육은 ‘전달’이 아니라 ‘체험’ 중심으로 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5분간 설명→ 10분간 실습→ 5분간 피드백’ 구조로 구성하면 학습효과가 높아진다. 주간 보고는 간결하게 ‘관찰→ 인사이트→ 다음 행동’ 세 줄로 통일한다. 보고의 목적은 정보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흐름을 공유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생 이모작은 ‘새출발’이 아니라 ‘재구성’이다. 경력은 시간이 만든 흔적이 아니라, 다시 쓰일 수 있는 자산이다. 우리는 살아온 시간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선택해야 한다. 당신의 역량은 여전히 유효하며 쓰임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이 바로 두 번째 성공의 장을 펼칠 때다.


●고려대 정치학 석사
●前 대기업 금융회사 인사팀장
●한국인적자원개발연구원 원장
● 공무원·공기업 채용 면접위원 및 승진후보 역량평가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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