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호

12·3비상계엄 1년, ‘자멸의 역사’ 되풀이한 국민의힘

[특집 | 비상계엄 1년, 대한민국이 달라졌다] 변화·혁신 주도할 중도 인물 전진 배치…民心으로 지방선거 승부수 띄워야

  • 김성곤 이데일리 기자 skzero@edaily.co.kr

    입력2025-12-0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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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객관적 정세 판단 잃으며 ‘尹 어게인’ 선택

    • 6·3대선에서 이준석·중도층 포기하며 패배

    • 정부·여당 실책 이어져… 지선 분위기 반전 분수령

    • 정당 경쟁력은 여당, 인물 경쟁력은 국힘 우위

    • 민심 앞세운 공천해야 가능성↑

    2024년 12월 3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대통령실

    2024년 12월 3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대통령실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7분. 그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은 1년 내내 자멸의 역사를 되풀이했다. 돌이켜 보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황당 그 자체였다. 시민들은 맨몸으로 친위 쿠데타를 막았다. 이해할 수 없는 건 국민의힘의 태도였다. “비상계엄은 경고성 계몽령이기 때문에 탄핵을 반대한다”라는 논리가 등장했다. 보수정당 몰락의 서곡이었다.

    꼬여버린 실타래는 수습 불가였다. 찬탄·반탄으로 갈려 좌충우돌을 이어갔다. 6·3대선 과정은 목불인견이었다. 당원들이 선택한 김문수 후보 대신 한덕수 전 총리를 내세우려 한 국민의힘 지도부의 ‘심야 강제 후보 교체’는 그야말로 코미디였다. 대선 패배 이후에는 극우 성향의 지도부가 전면에 등장했다. 국민의힘은 여전히 비상계엄의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다. 보수의 전화위복은 불가능한 것일까.

    국민의힘 고쳐 쓰기도 힘든 상황

    노무현 정부 시절 이야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증오했던 아스팔트 우파는 최후의 수단으로 군(軍)의 궐기를 촉구했다. 5·16이나 12·12처럼 군이 군사반란에 나서라는 것이었다. 2000년대 이후 대한민국은 쿠데타 불가능 사회였다. ‘월간중앙’ 2004년 9월 ‘현역 장군이 말하는, 쿠데타가 불가능한 5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는 쿠데타 5대 불가론을 요약했다. △휴대전화와 인터넷 △교통체증 △국민 설득 불가 △군(軍)의 후진성 등을 꼽으면서 “너무도 명백한 앞의 4가지 사실을, 군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쿠데타는 이제 없다”고 못 박았다.

    불가론을 뒤엎은 12·3비상계엄은 군사정권 시절의 계엄에 비해 조악했다. 계엄 선포와 동시에 ‘결코 있을 수 없는 위헌적 행위’라는 국민적 판단이 내려졌다. 문제는 국민의힘이었다. ‘윤석열 손절’이라는 민심을 외면했다. 비상계엄 이후 1년간의 행보도 낙제점이다. 전문가 평가도 비슷하다. △“민주당도 마찬가지지만 국민의힘은 계엄·탄핵 이후 강성 보수 유튜브에 의존했다”(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 △“국민의힘은 고쳐 쓰기도 힘든 상황이다. 극우화된 영남 자민련이다”(박상병 시사평론가) △“박근혜 탄핵 이후보다 더 어려운 보수 최악의 위기다”(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9월 28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 세종대로에서 국민의힘 사법파괴 입법독재 국민 규탄대회 중 ‘윤 어게인’ 문구를 들고 있는 집회 참가자들의 모습. 동아DB

    9월 28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 세종대로에서 국민의힘 사법파괴 입법독재 국민 규탄대회 중 ‘윤 어게인’ 문구를 들고 있는 집회 참가자들의 모습. 동아DB

    비상계엄 이후 국민의힘은 두 쪽으로 쪼개졌다. 탄핵 찬반의 분열이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안 국회 표결은 친한계의 동참으로 천신만고 끝에 통과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 표결 당시 새누리당 의원 다수의 찬성표로 통과된 것과 대비된다. 탄핵안 통과는 배신자 응징으로 이어졌다. 의리 없는 정치인 ‘한동훈·안철수·이준석’은 배신자 프레임에 완전히 포위됐다. 이후 찬탄파와 반탄파는 사사건건 갈등과 대립을 이어왔다. 

    정세 판단도 ‘우물 안 개구리’였다.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탄핵 인용은 기정사실이었다. 국민의힘의 전망은 달랐다. 홍형식 소장은 “보수 싱크탱크로 유명한 여의도연구원(이하 여연)은 정국 주요 고비 때마다 객관적 정세 판단 보고서로 주목을 받았다”며 “당의 권력에서 벗어나 공정하고 자율적인 조사가 가능했던 여연의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국민의힘은 결정적 판단 미스를 범하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중도 목소리 사라진 국민의힘

    6·3대선 과정에서도 이해 못 할 행보의 연속이었다.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의 사법리스크에 따른 대중의 비토론이 상당했기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탄핵이라는 핸디캡에도 사실 해볼 만한 대선이었다. 그러나 대선 경선 과정부터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 

    김문수 후보는 국회에서 비상계엄 사과를 거부하면서부터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김 후보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의 무조건적 단일화를 강조하며 보수진영 대선주자가 됐다. 압권은 대선후보 등록 직전 심야에 벌어진 희대의 ‘후보 교체’ 시도였다. 단일화를 약속했던 김 후보가 물러나지 않자 친윤 지도부는 당 대선후보를 한 전 총리로 강제 교체했다. 우여곡절 끝에 원상복구됐지만 민주주의 정당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2024년 12월 11일 국회에서 계엄 사태와 관련해 국무위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국민들에게 허리 숙여 사과하는 가운데 김문수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뉴스1

    2024년 12월 11일 국회에서 계엄 사태와 관련해 국무위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국민들에게 허리 숙여 사과하는 가운데 김문수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뉴스1

    대선 본선 과정도 엉망진창이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탄핵·부정선거 프레임에 오락가락했다. 선거전략은 오직 반(反)이재명과 개혁신당 후보로 나선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의 단일화였다. 쫓아낼 땐 언제고 단일화 러브콜이 대선 내내 이어졌다. 

    주목할 점은 국민의힘이 대통령 탄핵·파면이라는 초대형 악재에도 나쁘지 않은 성적표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과반 득표에 실패했다. 이 대통령의 득표율은 49.24%였다. 이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41.15%,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8.34%였다. 보수 양당 후보의 득표율을 단순 합산하면 49.49%였다. 

    차재원 교수는 “지난 대선 국면에서 이재명 비토론도 상당히 강했기 때문에 윤 어게인이 아닌 차별화를 선택하면서 이준석과 합쳤다면 보수 입장에서는 해볼 만했다”며 “김문수·한덕수 단일화 소동은 말도 안 되는 패착이었다. 윤 전 대통령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내고 중도 통합의 목소리를 내세워 전화위복에 나섰어야 했다”고 짚었다.  

    대선 패배 이후에도 국민의힘의 실책이 이어졌다. 당 지도부마저 보수 강성 팬덤의 여파로 극우 성향을 띠기 시작했다. 박상병 평론가는 이와 관련, “국민의힘 의석 분포를 보면 비례대표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영남과 강남 3구다. TK 정서에 호소하면서 이 대통령과 싸워야 하는 구조”라면서 “한동훈·유승민·안철수로 상징되는 온건보수와 중도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완벽하게 밀려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11월 12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대장동 일당 7400억 국고 환수 촉구 및 검찰 항소 포기 외압 규탄대회’에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한 의원 및 전국에서 모인 당원들이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동아DB

    11월 12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대장동 일당 7400억 국고 환수 촉구 및 검찰 항소 포기 외압 규탄대회’에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한 의원 및 전국에서 모인 당원들이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동아DB

    국민의힘 쇄신의 변곡점은 8월 22일 전당대회였다. 최악의 위기 상황에도 유력 중진들은 대거 불출마를 선택했다. 강성 당원의 선택을 받아야 지도부 진입이 가능한 구조였기 때문이다. 실제 결과도 그러했다. 극우 성향의 한국사 강사인 전한길 씨는 국민의힘 입당과 등장으로 전대 전반을 뒤흔들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전한길 씨의 지원사격과 강성 팬덤의 몰표로 당대표에 올랐다. 

    장동혁 대표 체제는 적극적 대정부투쟁을 선택했다. 이재명 정부와 여당의 약점은 한둘이 아니었다. △김현지 대통령실 부속실장의 국회 운영위 국감 불참 △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자녀의 결혼식 논란 △10·15부동산대책 후폭풍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비상계엄 옹호, 탄핵 반대의 원죄, 내란 정당이라는 범여권 무차별 공세 속에 국민의힘의 목소리는 힘을 잃었다. 아울러 윤석열 전 대통령 면회 논란이나 부정선거 프레임을 옹호하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의 정치적 연대 선언도 국민의힘 이미지 쇄신의 걸림돌이었다.

    돌이켜 보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 이후 3번 정도의 기사회생 기회를 놓쳤다. 첫째, 비상계엄·탄핵 이후 한동훈 전 대표 체제 붕괴다. 둘째, 6·3대선 패배 직후 30대 초선인 김용태 비대위원장 체제도 오래가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8·22전대 역시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의 결과였다. 

    현재로선 보수정당 부활은 시기상조다.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전의 분수령으로 삼아야 할 내년 지방선거 전망마저 불투명하다. 게다가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국민의힘과 지방선거 연대는 없다”고 천명했다. 이대로 가면 싹쓸이 대참패를 기록했던 ‘어게인 2018’이 될 공산이 크다. 

    차 교수는 “결국은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 중도통합 인사를 전진 배치해야 한다”며 “오세훈 서울시장, 박형준 부산시장 재선 구도에 배신자 프레임의 유승민 전 의원도 경기지사 출마를 고려해야 한다. 국민의힘 외곽의 이준석 대표 역시 끌어안아야 한다. 한동훈 전 대표의 경우 보선 출마를 통한 원내 진입을 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남·서울 사수하면 기사회생 발판

    지방선거 전망은 엇갈린다. 엄 소장은 “민주당의 전반적 우세가 예상되지만 국민의힘이 영남 및 서울·강원을 사수하면서 대전·충남·충북 중 한 곳만 더 승리하면서 민주 9 vs 국힘 8의 구도가 된다”며 “국민의힘이 기사회생의 발판을 마련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홍 소장은 “핵심은 수도권과 부산”이라면서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의 경우 정당표는 민주당이 우세지만 인물표의 경쟁력은 국민의힘이 우위다. 수도권에서 실패해 부산을 날리게 되면 울산, 경남까지 위험해지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힘 부활의 전제는 지방선거 후보 선출 과정에서 민심 반영 비율을 확대하는 것이다. 홍 소장은 “대선 패배 이후에는 주류의 사과와 2선 후퇴 및 새로운 리더의 등장이 공식처럼 나타난다”며 “선거에서 이긴 정당은 당원 비중을 늘리고 패한 정당은 국민 참여 비율을 늘리는데 국민의힘은 정반대로 갔다”라고 꼬집었다. 

    차 교수 역시 “정치사를 돌아보면 대의원 주도의 당심 100% 선거는 2002년 대선 이후 노무현 드라마를 잉태한 국민 참여 경선 이후 민심을 넓혀왔다”며 “국민의힘은 대선후보 선출과 전대 과정에서 당심이 아닌 민심을 더 반영했어야 했다. 현행 룰대로라면 2021년 전대 당시 ‘30대 0선’의 기적이라는 이준석 당선도 불가능했다”고 지적했다. 

    박상병 평론가 역시 “지나치게 당심에 치우친 게임의 룰을 바꿔야 한다”며 “민심과 당심의 비율은 최소한 5대 5가 돼야 한다. 수도권의 경우 민심 비중을 최소한 7대 3으로 높여야 보수의 변화와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인물을 배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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