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호

86세대는 왜 젊은 시절엔 반대했던 임의적·자의적 ‘행정 행위’에 지금은 침묵하는가

‘헌법존중 TF’가 흔드는 마그나카르타 적법절차 원리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jeongtaeroh@ries.or.kr

    입력2025-11-29 09: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75만 공무원 휴대전화 들여다보려는 TF

    • 이재명, 수사 받을 때도 휴대전화 비밀번호 풀지 않아

    • “오늘날 민주주의 붕괴는 투표장에서 일어난다”

    • 헌정 사상 최대 규모 사생활 및 인권 침해

    • 헌법상 적법절차 원리 무시, 민주화 탈을 쓴 독재의 부활

    “‘헌법존중 정부혁신 TF’는 신속한 헌정질서 회복과 공직사회 통합을 위한 불가피한 국정안정 조치입니다. 각종 조사는 헌법과 적법 절차에 따라서, 꼭 필요한 범위에서,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신속히 진행되고 마무리될 것입니다.”

    11월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50차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김민석 국무총리가 한 말이다.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공직자의 불법행위 가담 여부를 조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자체 TF를 총리실의 주도 하에 발족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11월 24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헌법존중 정부혁신 TF’ 간담회에서 모두 발언 후 회의장을 나가고 있다. 동아DB

    김민석 국무총리가 11월 24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헌법존중 정부혁신 TF’ 간담회에서 모두 발언 후 회의장을 나가고 있다. 동아DB

    헌법존중 TF는 2024년 12월 3일을 기점으로 직전 6개월부터 직후 4개월까지 총 10개월간 비상계엄을 모의·실행·정당화·은폐한 행위를 조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49개 행정기관 전체가 대상이며 그 중에서도 군, 검찰, 경찰, 국무총리실, 기획재정부, 외교부, 법무부, 국방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소방청, 해경청 등 12개 부처를 집중점검할 예정이다. 중앙행정기관 공무원 75만 명의 휴대전화와 업무용 PC를 모두 들여다보겠다는 소리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측근들이 벌인 12·3 불법 비상계엄이라면 이미 특검을 통한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미 사건의 전모가 대부분 밝혀진 상태다. 요컨대 밝혀야 할 내용은 이미 다 수사되었거나 곧 드러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 총리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공권력을 동원하는 ‘수사’만으로는 “신속한 헌정질서 회복과 공직사회 통합”이 되지 않는다며, 일단 내부 제보를 받은 후 대상자를 개인적으로 면담하고, 업무용 PC 및 휴대전화 등을 조사하여, 행정조사를 통해 ‘내란 가담자’를 밝히고 인사 처분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반발이 빗발친 것은 당연하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의 공무원은 업무용 휴대전화를 따로 두고 있지 않다. 누군가 경쟁자나 평소 미워하던 사람을 ‘찌르면’, 고발당한 사람은 꼼짝 없이 면담, 즉 심문을 당하게 된다. 게다가 휴대전화를 ‘털린다’.

    이재명 수사 받을 때도 휴대전화 비밀번호 풀지 않아

    이것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부터가 2018년 11월 경 친형 강제입원 등 의혹에 관한 수사를 받을 때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풀어주지 않는 ‘꿀팁’을 전 국민 앞에 보여준 바 있지 않은가. 휴대전화, 특히 스마트폰에는 사용자의 인생 전부가 담겨 있다. 그걸 내놓으라는 건 고발당한 공무원의 인생 전부를 들여다보겠다는 협박이다.

    민주당 및 정부 지지자 중 일부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어차피 떳떳하다면 휴대전화를 제출해도 무방하지 않나?” 본인들이 그 처지라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소리를 너무도 쉽게 내뱉고 있다. ‘헌법존중 TF’는 우리 헌정 역사상 가장 대규모로 벌어진 무자비한 사생활과 인권 침해로 기록될 공산이 크다.

    인권 침해의 피해자는 공무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민 전체, 더 나아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까지 전부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문제를 해결하는 취지를 한참 넘었다. 김민석 총리가 지휘하는 이 대규모 사정 정국은 ‘헌법존중’과 정반대다.

    헌법은 모든 법의 기준이 된다. 물론 헌법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니 결함이 있을 수 있다. 시대에 뒤떨어져 바꾸어야 할 점이 발생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어떤 국가가 민주적인 헌법을 지니고 있다면 그 헌법에는 반드시 있어야 할,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존중되어야 할 원칙이 있다. 적법절차의 원리가 바로 그것이다.

    근대 형법의 역사를 되짚어 보자. 이미 이 지면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듯, 근대 헌법의 효시는 1215년 영국의 귀족들이 존 왕의 서명을 받아낸 ‘마그나카르타’다. 귀족을 체포하거나 재산을 침해하려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왕이 지니고 있던 절대적인 권리에 제약을 가한 것이다. 마그나카르타 제39조를 읽어 보자.

    1215년 제작된 이래 79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보존되고 있는 ‘마그나카르타(대헌장)’ 사본. 양피지에 거위깃펜으로 썼다. 동아DB

    1215년 제작된 이래 79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보존되고 있는 ‘마그나카르타(대헌장)’ 사본. 양피지에 거위깃펜으로 썼다. 동아DB

    “자유민은 같은 신분의 사람들에 의한 적법한 판결이나 법의 정당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서는 체포되거나 구금되지 아니하며, 재산과 법익을 박탈당하지 아니하고, 추방되지 아니하며, 또한 기타 방법으로 침해당하지 아니한다. 왕은 이에 뜻을 두지 아니하며, 이를 명하지도 아니한다.”

    이렇게 일단 귀족을 보호하는 적법절차의 원리가 확립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권리는 재산을 지닌 평민에게로 확대되었다. 판사이자 정치가인 에드워드 코크가 마그나카르타의 적용 범위를 귀족에 제한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역사는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불문법 국가인 영국에서는 개별적인 법률과 관례로, 성문법 국가인 독일과 대한민국 등에서는 헌법의 형식으로, 시민의 권리가 조금씩 커졌다.

    이 역사적인 전개 과정이 함의하는 바는 분명하다. 헌법을 단 한 줄로 요약하자면 적법절차의 원리다. 적법절차의 원리에 따라 국가가 국민의 생명, 재산, 사생활 등을 침해하고자 할 때는 반드시 이미 정해진 법의 절차에 따라야만 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1200년대의 상식 수준에서 보더라도 그렇다. ‘법대로 해’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법과 권력의 행사는 절차에 따라야 한다. 그 법이 시시때때로 바뀐다면, 특히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손바닥처럼 뒤집힌다면, 그런 법을 믿고 살 수는 없다. 법은 명령을 내리는 자와 명령을 받는 자 모두가 동의할 때에만 정상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나라의 모든 헌법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이자 헌법정신은 다름 아닌 적법절차의 원리다.

    “오늘날 민주주의 붕괴는 투표장에서 일어난다”

    헌법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는 주권재민이라는 주장도 있다. 대한민국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규정한다.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한다. 민의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임을 명시하는 것,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밝히는 건 물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이상’에 가깝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핵심적인 원리가 규정되어 있지 않거나 지켜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민주주의를 힘주어 외치거나 종이에 써놓는다 해도 소용이 없다.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모든 절차와 작용이 법에 의해야만 한다는 적법절차의 원리가 없다면 민주주의는 쉽게 독재의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

    스티븐 레비츠키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와 미국의 정치학자 대니얼 지블랫이 쓴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바로 그 역설적 현상이 벌어진 다양한 사례를 제공한다. 책의 한 대목을 인용해 보자.

    “민주주의가 죽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한 가지 중요한 아이러니는 민주주의 수호가 때로 민주주의 전복의 명분으로 활용된다는 사실이다. 잠재적 독재자는 자신의 반민주적 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경제 위기나 자연재해, 특히 전쟁과 폭동, 테러와 같은 안보 위기를 구실로 삼는다.”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이 쓴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동아DB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이 쓴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동아DB

    군사정변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사례는 20세기 이후 세계사에서 너무도 흔하다. “냉전이 끝나고 민주주의 붕괴는 대부분은 군인이 아니라 선출된 지도자의 손에서 이뤄졌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는 물론 조지아, 헝가리, 니카라과, 페루, 필리핀, 폴란드, 러시아, 스리랑카, 터키, 우크라이나에서도 선거로 추대된 지도자들이 민주주의 제도를 전복했다. 오늘날 민주주의 붕괴는 다름 아닌 투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가까운 예를 들어보자. 튀르키예의 대통령 에르도안에 맞서 군부는 2016년 쿠데타를 감행했지만 그 어설픈 시도는 곧 실패로 끝났다. 에르도안은 그것을 기회로 삼아, 입법, 사법, 행정 기관 뿐 아니라 언론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숙청을 감행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민주주의 수호’를 명분으로 삼고 있었지만, 그 결과 튀르키예는 사실상 형식적인 민주주의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독재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과연 그와 얼마나 다를까? 협조하지 않으면 인사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은은한 협박을 깔아놓은 채 공무원들의 개인 휴대전화를 ‘자발적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김 총리는 헌법 정신의 핵심인 적법절차의 원리를 송두리째 무시하고 있다.

    이 숙청 작업이 행정부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집중 감사 대상에는 군과 검찰, 경찰이 포함되어 있다. 모든 권력 기관을 다 ‘털어본다’는 소리다. 김 총리는 이렇게 솔직하게 이 TF의 취지를 밝힌 바 있다. “헌법존중 정부혁신 TF는 입법, 사법, 행정 등 모든 분야에서 신속하고 확고하게 내란을 정리하고 민생에 집중하라는 국민의 뜻에 부합하도록 행정부의 안정적 혁신을 위한 집중과 절제의 지혜를 발휘할 것입니다.”

    ‘조사’를 통해 행정부와 군, 검찰, 경찰을 ‘정리’해 칼자루를 손에 쥐고 나면 다시 편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입법부’와 ‘사법부’도 숙청한다. 적법절차의 원리 따위 무시한 채, ‘자발적 협조’를 받아 “그냥 휴대전화 좀 들여다보는” 식으로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현 정부가 이런 행보를 취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근거 또한 사실상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권력 장악 의도가 없다면 감히 떠올릴 수조차 없는 막대한 인권 침해이자 헌법 가치의 파괴이기 때문이다.

    자칭 민주화 세력인 86세대가 젊은 시절 맞서 싸운 것도 바로 그런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행정 행위’였다. 군사 독재 시절 경찰이 하던 짓이 바로 그랬다. 길거리에서 장발 단속을 하고 미니스커트를 입었다며 여성을 괴롭혔다. 대학생의 가방을 자기들 마음대로 뒤지면서 ‘네가 떳떳하면 뭘 감추냐’고 되레 윽박질렀다. 김 총리가 만든 헌법존중TF는 바로 그런 짓을 하기 위한 조직이다.

    1970년대 경찰이 미니스커트를 단속하는 모습. 동아DB

    1970년대 경찰이 미니스커트를 단속하는 모습. 동아DB

    이것은 민주화의 탈을 쓴 독재의 부활 아닌가? 진짜 의문은 따로 있다. 이미 권력의 맛을 보고 중독된 사람들이 저런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그 수많은 진보 재야 민주 세력들은 왜 침묵하는가. 헌법을 존중한다면,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한다면, 이제는 맞서야 할 때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