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계엄 후 권력 전면에 등장한 ‘86세대’
우원식·김민석·정청래…운동권 사상 함께하는 이재명
22대 여당 당선자 171명 중 23명 ‘국보법 위반’
삼권분립·대의제 민주주의는 ‘기만적’이라는 인식
“삼권 사이 서열 있다”는 소비에트형 민주주의 지향
부동산 기저 흐르는 도덕적 선악 관념…李 ‘아킬레스건’
친일 청산 못한 南, 항일투쟁 北…“북한 정통성”
북핵은 대남용 아니라는 인식, 평화 정책 추진 이어져
부동산 주식 자산 확장으로 단군 이래 최대 수혜층
6070세대 압도…비상계엄 충돌 없이 마무리된 이유
‘정년 연장’은 정의 문제… 6070, 2030과 공존해야 하는 과업

1987년 6월 10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인 시민들(왼쪽). 12·3계엄 당시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시민들. 1987년 6월 민주항쟁 주역 86세대가 12·3 계엄 이후 다시 역사의 전면에 섰다. 동아DB·뉴시스

우원식 국회의장, 김민석 국무총리,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위부터)는 학생운동권 출신이란 공통점이 있다. 뉴시스
우원식 국회의장, 김민석 총리, 정청래 민주당 대표 등 범(汎)여권 주요 정치인은 19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학생운동 일선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누구보다 86세대의 사상적 흐름과 궤를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운동권 출신으로 분류하는 것이 맞다.
2024년 4월 총선으로 구성된 국회를 보면 더불어민주당과 위성정당을 포함한 여당이 총 171석을 얻었는데 이 중 국가보안법 위반 관련자만 23명이다. 1980~9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 공권력은 그 나름 합리적 기준으로 국가보안법 실형, 국가보안법 집행유예, 국가보안법이 아닌 단순 학생운동 등으로 구분했는데 국가보안법 위반자만 23명이라는 것은 상당한 숫자다. 2024년 12월 계엄과 6·3대선을 거치며 86세대가 역사의 전면에 섰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한 신념과 사상 공유한 세대
세대는 비슷한 신념과 사상을 공유하고 사회와 역사 앞에 집단적 족적을 남기는 법이다. 지금 우리가 다시금 86세대를 거론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86세대가 갖고 있는 유산 중 이재명 정부와 연관된 3가지 문제를 살펴보자.첫째는 민주주의, 둘째는 부동산, 셋째는 남북 관계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학생운동은 6월항쟁을 민주항쟁이 아니라 사회주의혁명의 1단계쯤으로 생각했다. 6월항쟁을 민주항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시 주체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점에서 역사의 왜곡이라 할 만하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민주주의는 영미형으로 삼권분립, 대의제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한다. 반면 1987년 6월항쟁 당시 학생들은 영미형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러시아 혁명을 모델로 한 소비에트형 민주주의를 모범으로 삼았다. 학생들은 삼권분립, 대의제 민주주의를 민중의 이해를 훼손하는 기만적 제도로 보고 이를 거부했다. 학생운동이 정점으로 치닫던 1985~1986년 학생운동은 직선제를 야당의 정치 놀음 정도로 생각하고 보다 근본적 민주주의, 즉 혁명을 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8년 4월 27일 경기 파주시 판문점 평화의집 앞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공동 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민주주의에 대한 이와 같은 뿌리 깊은 입장 차이가 삼권 사이에 서열이 있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입장과 통하고, 이 대통령과 관련된 5개 재판과 맞물려 있다. 대통령과 범여권은 사법부의 독립적 판결을 지켜보기보다는 선출 권력의 의지가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논리를 앞세워 재판 자체를 중지시키려는 유혹에 직면한 것이다.
결국 차기 정권의 향배가 결정되는 과정에서 5개 재판의 속개 여부와 사법부의 독립 문제가 근본 쟁점이 되고, 이는 86세대가 간직했던 민주주의에 대한 종합 판단의 근거가 될 것이다.
부동산 문제, 이재명 정부 아킬레스건 될 것
두 번째는 부동산정책이다. 부동산 문제에 대한 86세대의 인식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감정적이고 동물적이다. 그들은 부동산 축재는 부도덕한 졸부의 상징이고, 전근대적 경제 행태의 산물로 본다. 집은 거주하는 곳이지 매매나 축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1987년 6월항쟁은 대한민국이 개발도상국 또는 중진국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반면 학생운동은 1987년 당시 한국이 후진국, 저개발국에 머물 것이며 혁명을 통해서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봤다. 혁명에 대한 이런 생각과 함께 사태를 악화시킨 것은 경제적 대안을 목가적 농촌 공동체에 두고 있었다는 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양자 사이의 괴리가 심화했다. 86세대는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부동산, 주식 등 자산 형성의 길에 가담했다. 86세대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감에 따라 자산 축재 과정과 20대 시절의 도덕적 감정이 충돌했다. 20대 청년 시절의 낭만적 경제관을 시대의 흐름에 맞게 받아들이면 될 일이었지만 그들 다수는 20대 청년 시절의 생각을 버리려 하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 들어 3번에 걸친 부동산 규제가 있었다. 나는 부동산 문제를 잘 모른다. 그럼에도 부동산 문제의 기저에 정책적 판단이 아니라 도덕적 선악의 관념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아마 문재인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부동산 문제는 이재명 정부의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다.
세 번째는 남북 관계, 외교안보 문제다. 86세대의 뿌리가 되는 역사 인식은 남한은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반면, 북한은 항일투쟁 리더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북한에 정통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그 유명한 이재명 대통령의 ‘미군 점령군’ 발언 등이 대표적이다. 1980년대를 기반으로 형성된 이러한 인식은 2000년대 새로운 형태로 발전했다. 즉 북한이 갖고 있는 핵이 남한을 상대로 사용되지 않을 것이므로 북한의 핵에 대한 관심을 약화시키더라도 평화통일 정책만 추진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2000년대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포함해 20년 이상을 지탱했던 위와 같은 남북 관계 인식은 완전히 파산했다. 화해와 협력, 적절한 경제 지원 정도로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생각은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이재명 대통령은 페이스메이커를 강조하며 순진한 낙관론을 지속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외교안보팀은 이미 실패한 것으로 판명된 2000년대 낡은 버전을 되풀이하는 올드보이들로 채워졌다.
2026년 무렵에는 어떤 형태로든 북·미, 남북 대화 등이 모색될 것이다. 대화의 최고 주제 중 하나는 북한 핵에 대한 처리다. 중국 전승절 행사에서 중·러는 북한 핵을 묵인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또한 북핵 용인과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아예 북·미 대화를 기본으로 남한은 보조적 역할을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북한 핵에 대한 강한 압박과 정직한 대면이 약화하는 사이 북한 핵이 서서히 공인되고 있는 것이다.
86세대는 단군 이래 최대 수혜 계층
86세대의 특징은 북한에 대한 온건한 입장, ‘대북 화해’였다고 볼 수 있다. 거기에는 핵을 가진 북한은 들어 있지 않았다. 지금 상태라면 머지않은 시간에 핵을 가진 북한과 마주할 가능성이 크다. 40여 년을 이어온 86세대의 대북관이 최종 시험대에 오르게 될 수 있는 것이다.86세대의 업적은 주로 정치적 민주화다. 정치적 민주화는 노조 건설과 임금인상을 통해 소득 증대와 내수 팽창과 결합하면서 사회경제적 영역으로 확장됐다. 이 성과들이 부동산, 주식 자산 확장으로 이어져 86세대는 단군 이래 최대의 수혜 계층으로 떠올랐다.
특히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사망 이후 40~50대 중년 민주화 세대와 60~70대 고령 세대의 경합 과정에서 40~50대 민주화 세대는 질과 양 모두에서 60~70대 고령 세대를 압도했다. 12·3비상계엄이 큰 충돌 없이 마무리된 것도 이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다. 40~50대 민주화 세대와는 결을 달리하는 새로운 세대(MZ세대)가 등장했고, 86 민주화 세대는 새로운 역사적 과제 앞에 서게 됐다. 새로운 시대는 인공지능(AI) 충격, 저출산 고령화,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 지정학의 재편, 기후 위기 문제 등과 연관될 것이다. 특히 2020년대 이후 AI 충격은 본격적 정세 중심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모든 사안이 그렇듯 AI 충격 또한 모든 세대에게 공평하게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AI에 많이 노출된 업종에서 지난 3년간 청년층 일자리가 21만1000개 준 반면 50대 일자리는 20만9000개 늘었는데 그중 14만6000개가 AI 고노출 업종이었다. AI의 영향이 중년층과 청년층에 상이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이슈 중 하나가 정년 연장 문제다. 정부는 중고령층의 소득 보장, 연금의 안정성 등을 이유로 정년을 기존 60세에서 65세로 올리려 하고 있는 반면 청년세대의 고용 위축, 기업의 인건비 부담 증가 등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년 연장 문제가 청년세대의 고용을 압박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고용 문제를 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세대 정의 문제로 발전하고 있다.
1960~1969년생의 규모는 860만 명으로 이들 10명 중 5.5명은 경제활동을 하고 있고, 월 소득은 801만 원(세전)에 이른다(2024년 4월 5~12일 중앙일보·대한상의 남녀 317명 대상 설문조사).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에도 월 286만 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고령 세대와 MZ 세대 중간에서 고용과 자산 규모 등에서 유리한 기회를 선점하고 경제적 부와 사회적 지위를 선취하고 있는 것이다.
6070세대는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자녀 세대인 4050세대에게 양질의 교육 기회를 제공했다. 이것이 86세대의 성장, 한국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똑같은 과업이 현재의 4050세대에게 있다. 86세대는 고용구조, 자산시장 재편 국면에서 6070세대, 2030세대와 공존공영할 수 있어야 한다. 86세대에 대한 시대적 평가가 여기에 달려 있다.

●1965년 출생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
●前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사무처장·진보연대 정책위원회 부위원장
●現 시민단체 ‘길’ 대표
●저서 : ‘새로운 보수의 아이콘’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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