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호

“의대를 나왔는데 왜 주식만 하면 망할까”

[머니&마인드 | 정신과전문의 박종석의 ‘멘털 투자법’] 수학 문제는 ‘척척’, 주식투자는 ‘탈탈’

  • 박종석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의원 대표원장

    입력2025-12-13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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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학 문제 풀 때와 주식 투자할 때 뇌 다르게 반응

    • 투자 잘하는 사람은 감정 억제력·자기 객관화↑

    • 장·단기 투자자, 뇌기능과 활동 영역 차이 有

    • 투자 지능=감정 지능(EQ)+자기통제력+확률적 사고능력

    필자는 어린 시절 ‘수재’ 소리를 들으며 의대에 입학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식 투자만 하면 늘 실패했다. AI생성 이미지

    필자는 어린 시절 ‘수재’ 소리를 들으며 의대에 입학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식 투자만 하면 늘 실패했다. AI생성 이미지

    고등학교 시절 전국 100등 안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뭐든 한번 보면 금세 외우고 익혀 ‘수재’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정신과 전문의가 돼 서울대병원에서 일할 때 역시 머리가 나쁘다거나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식투자만 하면 늘 실패했다. “연세대 의대를 나왔는데 왜 주식만 하면 망할까.” 그 질문이 늘 머릿속을 맴돌았다.

    참 이상했다. 단순히 몇 번의 실수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수백 번의 매매를 반복할 때마다 판단이 엇나갔고, 인지 오류에 빠졌다. 공부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벤저민 그레이엄과 피터 린치 같은 대가들의 책을 읽었고, 이른바 인터넷 주식 고수들의 조언까지 달달 외웠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역사적 고점에 사서 바닥에서 매도했고, 정치 테마주에 물렸으며, K-뷰티와 같이 실적이 탄탄한 우량주를 매수한 뒤 일주일 만에 팔아버리기도 했다. 

    수학 문제 풀 때와 주식 투자할 때 뇌 다르게 반응

    위안이 된 건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의대 동창과 변호사 친구는 물론 심지어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친구도 주식만 하면 큰 손해를 봤다. 알고 보니 천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이작 뉴턴은 남해회사 버블 당시 주식투자로 큰 손실을 봤고, 현대 거시경제학의 기초를 세운 경제학자 어빙 피셔 역시 대공황 때 전 재산을 잃었다고 한다. 어쩌면 당연한 사실일 수 있다. 주식매매를 할 때 뇌의 사고 처리 과정은 수학 문제를 풀 때와 다르기 때문이다. 주식투자를 잘하는 뇌는 따로 있다.

    흔히 수능에서 고득점을 맞거나, IQ가 높은 사람을 두고 “지능이 높다”고 한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척척 풀거나 낯선 단어 등을 암기할 때는 왼쪽 두정엽과 전두엽 일부가 사용된다. 논리적 사고와 계산 등을 담당하는 부위다. 어린 시절 마주하는 수학 문제는 정답이 존재하고 규칙성을 띠기에 논리적으로 접근하면 충분히 답을 찾을 수 있다.

    주식투자는 다르다. 무엇보다 예상치 못한 위험을 빠르게 감지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목표 수익과 허용 가능한 손실의 범위를 설정할 줄 아는 것 역시 필요하다. 수학적 사고에 감정 조절 및 위험 인식 능력 등이 더해지는, 고차원적 사고를 요구하는 셈이다. 



    수학 문제를 풀 때와 주식투자를 할 때 뇌가 달리 작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차이는 ‘즉각적 보상 및 손실 유무’다. 수학 문제를 틀린다고 해서 당장 삶이 불행해지거나 가난해지지 않는다. 수능처럼 특별한 시험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한 번의 실수로 끝난다. 주식투자는 그렇지 않다.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즉각적으로 계좌의 돈이 줄어든다. 부정적 감정은 물론 미래의 특정 상황을 떠올릴 때 불안감을 느끼는 ‘예기 불안’과 ‘회피 반응’도 생기게 된다. 자연히 긴장과 압박감, 기회비용에 대한 자책이 동반된다.

    ‘정답이 존재하느냐’ 역시 중요한 차이다. 수학, 물리학 문제는 정답이 있다. 논리적 추론을 통해 답에 도달할 수 있으며,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주식시장에는 정답이 없다. 수많은 종목 가운데 어느 것을 언제 사고팔지, 현금 비중과 포트폴리오 배분은 어떻게 할지를 두고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진다. 결국 ‘감정’과 ‘확률’을 끊임없이 조율해 가야 한다. 지식에 경험을 더하며 자신만의 인사이트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자연스레 주식투자를 할 때는 다양한 뇌 영역이 동시에 활성화된다. 먼저 ‘전전두엽’은 계획 수립과 실행 능력에 관여한다. 판단력과 자기통제 능력을 담당하는 만큼 충동 매매를 억제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편도체’는 공포, 불안, 분노 같은 감정을 담당하는 곳이다. 시장이 급락하거나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기면 이 부위가 과하게 활성화돼 비이성적 행동을 유발한다. ‘측좌핵’은 보상 예측과 쾌감에 관여하는 영역이다. 수익을 기대하거나 실현할 때 도파민을 분비해 쾌감을 주지만, 지나치게 작동하면 리스크를 무시한 채 초고위험 투자에 집착하게 된다. ‘섬엽’은 위험을 감지하는 영역이다. 손해 가능성을 직관적으로 감지해 회피하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후두엽과 두정엽 네트워크’는 수리·공간적 계산을 담당한다. 차트를 읽고 재무제표를 해석할 때 필요한 영역이다. 

    신경경제학 분야에서 나온 논문에 따르면, 단기 투자자와 장기 투자자의 뇌 기능과 활동 영역에서 차이가 있었다. Gettyimage

    신경경제학 분야에서 나온 논문에 따르면, 단기 투자자와 장기 투자자의 뇌 기능과 활동 영역에서 차이가 있었다. Gettyimage

    장·단기 투자자, 뇌 기능과 활동 영역 차이 有

    개인의 성향이나 투자 유형에 따라 뇌의 활성 양상도 차이를 보일까. 가령 단기 투자를 주로 하는 사람과 장기 투자를 추구하는 사람의 뇌는 다를까. 최근 신경경제학 분야에서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단기 투자자와 장기 투자자는 뇌 기능과 활동 영역에서 차이가 있었다.

    큰 수익이 났을 때는 측좌핵이 과도하게 활성화된다. 이때 로또에 당첨되거나 슬롯머신에서 잭팟을 맞았을 때와 비슷한 수준의 도파민이 분비된다. 반대로 큰 손실에 직면하면 편도체가 지나치게 자극돼 공포에 마비된 채 의사결정을 내리게 된다. 관련해 단기 투자자는 즉각적 수익과 손실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와 도파민을 분비하는 측좌핵을 많이 사용하는 패턴이 관측됐으며, 이로 인해 이성적 판단보다 직관과 본능에 기반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편이었다. 다만 시장 상황에 따라 감정형 투자자가 큰 수익을 내는 경우도 많은 만큼 이를 열등 전략이라고 단순화하기는 어렵다.

    장기 투자자의 뇌 구조는 사뭇 달랐다. 이들은 도파민이 주는 쾌감보다 일정한 보상을 오랜 기간 유지할 수 있는지를 중요시한다. 실제로도 이성과 논리를 담당하는 뇌 영역이 감정적 반응을 일으키는 영역을 강하게 억제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전전두엽 피질이 두껍고, 편도체의 활성도는 낮은 경향이 관찰된 것이다. 덕분에 이들은 높은 자기통제력을 기반으로 시장의 출렁임 속에서도 수월하게 일관성을 지킬 수 있었다. 불확실성과 욕망의 유혹 속에서도 비이성적 공포와 과열을 경계하며 계획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식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첫째는 감정 조절 능력이다. “투자를 잘하는 사람일수록 감정 억제력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연구진이 투자자들의 뇌 활동을 관찰한 결과 손실 발생 직전에는 편도체가, 수익이 기대될 때는 측좌핵이 과도하게 활성화됐다고 한다. 또한 꾸준히 높은 성과를 낸 투자자일수록 전전두엽이 강하게 기능해 편도체와 측좌핵이 유발하는 감정적 반응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경향이 관찰됐다. 탐욕과 공포를 잘 제어하는 뇌를 가진 사람이 투자에 강한 셈이다.

    둘째는 자기 객관화와 메타인지 능력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는 자기 성찰 능력이 높은 사람은 전전두엽의 회백질 두께가 두껍고,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오른쪽 측두피질의 두께가 두꺼울수록 금융 의사결정 능력이 높다는 결과도 있다. 이 부위는 분별과 성찰, 반성을 담당하는 영역이다. 자기 객관화가 잘되는 사람이 투자도 더 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셋째는 위험 민감도다. 주식시장은 예측 불가능한 변수로 가득하다. 지정학적 충돌과 갑작스러운 정책 변화는 물론 최근에는 변수의 양상도 다양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쓴 글 한 줄이 시장을 요동치게 만든다. 리스크를 완벽히 예측하고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기다. ‘위험을 대비하는 습관과 루틴’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3월 2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전광판에 코스피가 1480.92를 나타내고 있다. 뉴스1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3월 2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전광판에 코스피가 1480.92를 나타내고 있다. 뉴스1

    투자 지능=감정 지능(EQ)+자기통제력+확률적 사고능력

    지금까지의 내용을 종합하면 ‘투자 지능’이란 전두엽, 두정엽, 편도체, 측좌핵 등 뇌의 여러 영역을 균형 있게 활용하는 능력을 뜻한다. 단순히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욕망과 불안을 솔직히 인식하면서도 충동에 휩쓸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힘이다. 즉 ‘투자 지능=감정 지능(EQ)+자기통제력+확률적 사고능력’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 줄로 정리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투자는 수학 문제처럼 한번 풀어봤다고 해서 다음에도 정답을 맞힐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시장은 생명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고 때때로 예측 불가능한 변덕을 부리기 때문이다. 

    결국 선물·옵션 등 과도한 레버리지 투자를 피하고, 다양한 섹터에 걸쳐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승장에도 하락에 대비하고 일정 수준의 현금 비중을 유지해 변동성에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빚을 내 투자하는 것 역시 피해야 한다. 다소 보수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초보 투자자에겐 1순위로 중요한 습관이다. 투자 경험이 부족한 이들일수록 실패에 대한 회복탄력성이 낮아 한두 번의 실패로 시장에서 완전히 이탈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리스크를 피하기만 해서는 큰 수익을 내기 어렵다” “기회가 왔을 때는 과감하게 레버리지를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코스피가 1400 중반까지 폭락했을 때를 돌이켜보자. 당시는 어마어마한 기회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해당 순간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다가오진 않았다. 불안 수준이 지나치게 높거나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패닉셀을 하는 등 최악의 실수를 저질렀을 수 있다. 개개인의 성향이 각기 다른 만큼, 동일한 상황도 다르게 체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험을 피하느냐 감수하느냐’라는 이분법적 접근은 한계가 있는 만큼, 기질을 비롯해 여러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적의 투자 전략을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

    경제적 자유나 성공은 한순간의 행운이나 ‘한 방’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끝없는 숙고와 경험이 축적되면서 서서히 나아가는 여정에 가깝다. 10년 뒤 더 단단해진 자신을 목표로 꾸준함을 지키며 현재에 집중하자. 진정한 투자 능력은 자신을 이해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한 걸음씩 성장하려는 끈기와 인내, 겸손함에서 비롯된다. 

    박종석
    ●1981년생
    ● 연세대 의학과 학사, 동 대학원 정신과 석사
    ●저서: ‘구로동 주식 클럽’ ‘살려주식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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