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산업 급성장 뒤엔 ‘개인사업자 체제’ 있어
직원 중심 日, 사업자 중심 韓…산업 운명 갈라
‘운송비↓’→‘물량↑’→‘택배 기사 수입·편의↑’
‘새벽 배송 금지’ 대신 ‘택배비 인하’ 관심 가져야

2023년 8월 13일 서울 시내 한 택배물류센터에 배송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뉴스1
새벽 배송 금지 논란을 둘러싼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택배노조)의 행보를 보면 체리피커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한국의 택배 기사는 사업자등록을 하고 담당 구역을 계약해 개인 차량으로 배송하는 개인사업자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이들을 ‘노동자성’을 지닌 집단이라 규정하며 노조를 조직했다. 2021년 총파업으로 물류대란을 일으킨 데 이어, 최근에는 ‘건강권 보호’를 이유로 새벽(0~5시) 배송 금지를 요구하고 있다. 돈을 벌 때는 성과에 따른 보상을 내세워 사업자처럼 행동하면서도, 권리를 주장할 때는 노동자 지위를 내세운다. 상황에 따라 노동자와 사업자를 오가며 유리한 부분만 취하는 전형적 체리피킹이다.
택배 산업 급성장 뒤엔 ‘개인사업자 체제’ 있어
필자는 2011년 옐로우캡이라는 중소 택배 회사에서 배송 업무를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택배는 힘든 일자리라는 인식이 많았고, 산업 규모 역시 지금처럼 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10여 년 사이 택배 산업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폭발적 성장 배경에는 ‘개인사업자 체제’가 있었다. 한국 택배는 일한 만큼 수익을 얻는 구조이며, 이는 택배 기사의 자율성과 효율을 극대화했다. 배송 속도와 유연성이 압도적으로 향상됐고, 연장선상에서 소비자 필요에 맞춘 새벽 배송 같은 서비스도 등장했다.비슷한 구조를 가진 일본과 비교하면 차이는 더 뚜렷하다. 일본은 택배 기사의 상당수가 급여를 받는 정직원이다. 물량 처리에 한계가 있고 일하는 방식도 상대적으로 경직돼 있다. 반면 한국은 개인사업자 체제이기 때문에 물량 처리에 한계를 두지 않고 있으며 일한 만큼 수익을 얻는 구조다. 덕분에 기사들이 스스로 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발한 방식을 찾아내기도 한다. 양국의 택배 산업은 시작은 비슷했지만 지금은 너무나 달라졌다.
배송 유연성부터 차이가 뚜렷하다. 일본은 정직원 체제인 탓에 택배 기사들이 ‘책잡힐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을 우선시한다. 아직도 수령인의 도장을 받아야 하고, 부재중이면 택배 물품을 들고 돌아간다. 반면 한국은 개인사업자 체제이기 때문에 기사들은 물량을 최대한 처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직접 수령인에게 연락해 “경비실이나 문 앞에 두라”는 요청을 받아낸 것이다. 택배 기사와 고객 사이의 신뢰가 쌓이면서 ‘문 앞 배송’ 문화는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비대면 배송은 뉴노멀이 됐다.
발송 구조에서도 개인사업자 체제가 빛을 발했다. 특히 최저 운임의 달성을 통해 물류 점유율을 높이려는 택배 회사 간 경쟁과 맞물리면서 폭발적 시너지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1800원, 1700원, 심지어 1300원짜리 저가 운임의 택배가 대량으로 생겨났다. 돈을 더 벌고자 하는 택배 기사들은 물량을 빠르게 소화하며 산업 성장에 불을 붙였다. 물량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늘어나자 동승 아르바이트를 두거나 담당 아파트 단지에 사는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배송을 분담하기도 했다. 택배 기사가 아파트 입구까지만 운반하면 나머지 구간은 아르바이트생이 맡는 방식이다. 배송 단가가 낮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량을 더 많이 처리하면 됐기 때문이다.
박리다매 구조 속에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택배 산업은 성장했다. CJ대한통운은 택배 기사들이 가져온 어마어마한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메가 허브’를 지었고, 덕분에 더 많은 물건을 더 빠르게·배송할 수 있었다. 이는 개개인의 사익 추구가 만든 기적으로 정직원 체제에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CJ대한통운이 치고 나가자 경쟁사들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앞다퉈 물류 인프라를 확충했다. 나아가 프로모션을 벌이며 상대 거래처를 빼앗아 오려 경쟁하기도 했다. 택배의 단가는 점점 저렴해졌고, 국민은 더 많은 이익을 봤다.

2.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024년 9월 30일 서울 서대문구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대회의실에서 '쿠팡 택배노동자 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운송비↓→물량↑→택배 기사 수입·편의↑
흥미로운 점은 택배 기사가 산업 급성장의 가장 큰 수혜자라는 사실이다. 2011년 필자가 옐로우캡에서 일하던 시절만 해도 상황은 지금과 전혀 달랐다. 동(洞) 하나를 두세 명이 나눠 맡았고, 필자 역시 아는 형과 또 다른 택배 기사 한 명, 이렇게 셋이서 경기 수원 영통동 일대의 배송 물량을 처리했다. 당시 한 시간에 평균 10~15개, 빠르면 20개 정도의 물량을 소화했다. 건당 단가가 860원 수준이었으니, 시간당 수입은 약 8000~1만7000원 정도였다. 일일 배송량이 150건을 넘기기 어려웠기에 한 달에 200만 원을 겨우 넘는 수준으로 벌었다.CJ대한통운에서 일하는 지금의 상황은 그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지금은 영통동을 담당하는 택배 기사 수만 30명 가까이 된다. 물량 규모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의 경우 한 시간에 80~120개의 택배 물품을 배송하고,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걸리는 상가 지역에서도 한 시간에 50개 정도를 처리한다. 배송이 느리고 힘든 상가 구역에서도 시간당 4만 원 이상을 벌 수 있고, 효율이 높은 아파트 단지의 경우 시간당 수입이 6만 원을 넘어가기도 한다.
왜 이렇게 수입이 극적으로 증가했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택배는 물량이 많아질수록 시간당 처리 건수가 늘어난다. 100곳에 한 개씩 나르는 것보다, 한 아파트에 100개를 한꺼번에 배송하는 게 훨씬 수월한 법이다. 예전엔 3명이 맡았던 한 동을 지금은 30명 가까운 인원이 담당하고 있다. 자연스레 담당 구역도 10분의 1 수준으로 좁아졌다. 덕분에 배송 동선이 효율화됐고, 시간당 처리량도 급격히 늘었다. 특히 화요일처럼 물량이 많은 날에는 하루 600개 가까운 택배를 처리한다. 15년 전과 비교하면 노동강도는 오히려 낮아졌고, 수입은 크게 늘었다. 모두 물류 집적도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덕분이다.
새벽 배송 금지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각계의 시선은 엇갈린다. 진보진영은 “택배 기사의 건강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새벽 배송 금지를 주장하고, 보수진영은 “야간 노동에는 합당한 보상이 뒤따르면 된다”는 입장이다. 전자는 ‘노동환경 개선’을, 후자는 ‘추가 보상’을 강조하지만, 둘 모두 핵심을 놓치고 있다. 택배 기사가 ‘더 편하게’ ‘더 많이’ 벌 수 있도록 하고 싶다면 초점을 다른 곳에 맞춰야 한다. 바로 택배비를 낮추는 것이다. 단가가 내려가야 택배 물량이 늘어나고, 물량이 늘어야 기사들이 더 수월하게, 더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새벽 배송을 중단하자”는 주장의 핵심 논리는 “택배 기사의 과로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택배 기사의 과로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택배비를 낮춰야 한다. 그래야 물량이 늘고 배송 동선이 효율화돼 일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택배노조가 참여하는 각종 기구는 정반대의 행보를 밟아왔다. 이들은 사회적 합의 기금이라는 명목으로 택배 회사에 추가 부담을 요구했고, 그 결과는 직간접적 택배비 인상을 초래했다. 택배 산업이 다른 산업을 집어삼키며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저렴한 가격이었다는 점을 간과한 행보다.

3. 9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에서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 세 번째) 주재로 ‘택배 사회적 대화기구’ 출범식이 열리고 있다. 동아DB
‘새벽 배송 금지’ 대신 ‘택배비 인하’에 관심 가져야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택배노조는 과거에도 택배 회사에 분류작업비,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을 부담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분류 인력은 원래 각 택배 기사가 필요에 따라 직접 고용해 왔고, 산재보험 역시 ‘1인사업장’으로 가입이 가능했다. 그럼에도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택배 기사를 ‘몸으로 일하는 노동자’라고 규정하며 노동자 대우를 요구했다. 아이러니한 건 월급은 여전히 ‘사업자 방식’으로 가져간다는 점이다. 이런 식으로 각종 비용을 택배 회사에 떠넘기면 결과는 뻔하다. 부담은 고스란히 택배비 인상으로 이어진다. 나아가 ‘저비용 고효율’ 구조에 힘입어 다른 산업을 흡수했던 택배 산업의 논리가 완전히 뒤집힐 수도 있다. 오히려 다른 산업이 택배 물류를 잡아먹는 식으로 경제가 재편될 수 있는 것이다.대다수 택배 기사의 목소리가 정작 논의 과정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쿠팡 위탁 택배 기사 1만 명이 소속된 쿠팡파트너스연합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새벽배송의 핵심 주체인 쿠팡 기사 가운데 93%가 새벽 배송 금지에 반대했다. 택배노조가 참여하는 각종 기구나 관련 기금 운영 또한 마찬가지다. 2021년 첫 사회적 합의를 맺은 지 4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합의 전문은 공개되지 않았고, 일부 내용만 공개된 채 강제되고 있다. 기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명확히 아는 사람이 있을지 의심될 정도다.
CJ대한통운에서 일하면서 여러 차례 “개인사업자에서 정직원으로 전환할 의사가 있는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한번은 “정직원 전환을 희망하는 택배 기사는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봤더니 “열 명 중 여덟, 아홉은 개인사업자로 남기를 원한다”는 답을 들었다. 노조 구성원만 따로 조사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의 권리’를 원하는 거지 ‘노동자의 월급’을 원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새벽 배송 금지 논란을 둘러싼 이번 상황 역시 그런 체리피킹의 연장선처럼 보여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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