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슬로건 중 하나는 서울시가 내건 ‘맑고 매력 있는 세계도시 서울’이다. ‘맑고’는 ‘친환경적이며 부패가 없는’을 뜻하고, ‘매력 있는’ 속에는 ‘디자인 서울, 문화의 서울’ 개념이 담겨 있다.
가끔 SK그룹 CEO와 함께 골프를 해보면 기업문화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고객이 행복해질 때까지!’ 이런 슬로건처럼 동반자들이 행복해질 때까지 기분 좋게 대한다. 경기 시흥에서 사업을 하는 L회장은 골프장에서 “동반자는 왕이다”라고 말한다. ‘고객은 왕이다’라는 표현을 살짝 바꾼 것인데, 골프도 잘하고 매너도 좋아서 인기가 있다. 평소 성격이 괄괄한 P회장은 L회장과 라운드할 때마다 심리전을 펼친다. L회장이 “동반자는 왕이다”라고 할 때마다 “동반자는 봉이다”고 맞받아치는 것이다. 이 광경에 주위 사람들이 배꼽을 잡는다. 내기에선 대부분 L회장이 이긴다. 18홀을 다 돌고 나서 우리는 P회장에게 딴 돈을 돌려주는 대신 가수 최희준씨가 노래하듯이 “나는 봉이다”를 세 번 외치라고 시킨다. P회장, 사업이고 골프고 사랑받을 짓을 해야 축복이 따르는 법이야!
만지면 커지고, 안으면 풀린다
‘아침 키스가 연봉을 올려준다.’ 남편이 출근할 때 아내가 기분 좋게 키스를 하면 남편의 사기가 올라서 하루 종일 일이 잘 풀리고 대인관계도 좋아지니 성공의 길로 간다는 얘기다. 대학 선배인 두상달 한국가정연구소 소장이 요즘 강조하는 말이다. 이분은 부부가 함께 전국을 누비며 행복한 가정 만드는 방법을 강의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부간에도 애정표현을 잘 하지 않고 무뚝뚝하다. 이는 건강만 해치는 게 아니라 사회성까지 약화시키는 고질병이다.”
대학 후배인 명지대 김정운 교수의 강의도 같은 맥락이다. 몇 년 전 스킨십을 강조한 책을 냈다. 부부간에 수시로 포옹하고 손을 잡아주면 심리적 안정감이 생기고, 사기가 높아져 건강지수가 높아지며 행복감이 커진다는 내용이다. 김 교수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독일에서 여가경영학을 공부한 사람이다. 유럽인 중에 무뚝뚝한 편인 독일인보다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부간에 애정표현을 더 안 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본래 이 책의 제목은 ‘만지면 커진다’였는데, 출판사에서 너무 야하다는 이유로 점잖게 바꿔놓았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이 점을 아쉬워하고 있다. 부부간에 포옹을 하고 반가운 사람끼리 만나 껴안는 행위가 사회성과 건강을 높인다는 것은 심리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 검증된 이야기인데 이에 대한 많은 논문이 나와 있다. 기와 운을 좋게 해주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려면 ‘포옹의 기술’ 못지않게 ‘포용의 기술’이 필요하다. 포옹은 좋아하는 사람끼리 끌어안는 것이고 포용은 나와 다른 사람을 끌어안는 것이다. 나와 다른 생각, 나와 다른 문화, 나와 다른 인종, 나와 다른 종교를 끌어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다양성의 사회, 다문화 사회에 살고 있다. 사회가 민주화, 글로벌화하면 다양성은 필연적이다. 이런 다양성의 사회를 살아가는 데 최고의 지혜와 덕목은 ‘포용의 기술’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금까지 가장 잘한 일은 라이벌인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임명한 것이라는 평도 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함께 존재하던 미국 사회를 순식간에 통합시킨 것이 바로 오바마의 포용의 기술이다. ‘미셸 오바마와는 포옹하고 힐러리 클린턴은 포용한다.’ 이것이 미국 대통령이 성공하는 비결이다.
지난주 P회장과 골프를 함께했다. 이분은 골프장에 다녀오면 “사인회에 다녀왔다”고 표현한다. 처음 듣는 사람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무슨 좋은 일 있었어요?” “글쎄 젊은 여자들이 사인을 해달라고 매달리는데 어떡합니까? 사인을 안 해주면 안 보내주겠다는 겁니다. 제가 요즘 이렇게 삽니다!” 골프 끝나고 캐디가 확인 사인을 해달라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날 내가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포옹의 기술과 포용의 기술이다”라고 주장했더니 P회장이 또 엉뚱한 얘기로 받아쳤다. “정말 일리가 있는 말이군. 오늘부터 라운드 후에 캐디에게 사인만 하지 말고 포옹을 하면 안될까?”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캐디가 한마디했다. “손님들끼리 포옹하시고, 저는 그냥 포용이나 해주세요!”
독불장군 한 명에 카멜레온 서넛
소신이 뚜렷하고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며 할 말은 반드시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대개 ‘독불장군’ ‘뚝심형’ ‘옹고집’ ‘소신파’ 같은 별명을 갖고 있다. 반면에 자기주장을 밀어붙이기보다 주위 분위기를 살리고 다른 사람들의 기분에 맞춰 언행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예스맨’ ‘카멜레온’ 소리를 듣기 쉽다. 골프를 하다보면 독불장군형도 만나고, 카멜레온형도 만난다. 어떤 유형과 라운드하는 것이 더 행복할까?
독불장군형은 다른 사람의 말은 잘 듣지 않고 눈치를 살피는 법도 별로 없다. 대개 골프 실력이 좋다. 누군가 그날의 내기 룰을 얘기하면, 자기주장을 펴서 끝내 그 룰을 뜯어고친다. 각종 골프 룰을 외우고 있으면서 상대방의 의견을 무력화하고, 레스토랑에서는 자기 입맛에 맞게 음식을 주문하자고 주장한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동반자들이 피곤해진다. “어이, 자네는 왜 그렇게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는 거야?” “무슨 소리야, 이건 철학과 원칙에 관한 문제라고.” “너 학교 다닐 때 철학과목 펑크 난 거 내가 다 안다.” “어쨌든 지금 이 문제는 원칙대로 하자고.”
카멜레온형 인간은 이와 반대로 행동하는데, 대체로 이런 경향을 보인다. 다른 환경에서는 다른 사람처럼 행동한다. 즉흥연기에 강하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잘 흉내 낸다. 싫은 사람에게도 친절하게 대한다.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말만 골라 한다. 환경과 상황변화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쉽게 바꾼다. 이런 사람들은 변덕스럽고 소신이 없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환경적응력이 뛰어나고 전체 분위기를 북돋우는 장점이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경영대학 연구팀이 조사한 결과, 직장에서 독불장군형보다 카멜레온형이 더 빨리 승진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독불장군형은 능력이 뛰어나지만 다른 사람과 마찰을 빚기 쉽고 지지를 얻어내지 못하는 약점 때문에 승진이나 출세에 지장이 있다는 것이다. 크라이슬러의 리 아이아코카, 휴렛패커드의 피오리나 등은 뛰어난 역량을 지녔지만 독불장군형 태도 때문에 모두 조직을 떠나야 했다.
재미있는 것은 연구자들의 결론이다. 카멜레온형 인간만 모여 있으면 분위기는 좋을지 모르나 너무 분위기를 타는 나머지 성과가 안 난다는 것이다. 반면 독불장군들만 모여 있으면 화끈하게 싸우다가 곧바로 무너져 내린다고 했다. 그러니까 가장 바람직한 조직은 카멜레온형 인재와 독불장군형 인재가 적절히 섞여 있는 조직이다.
지난주에 라운드를 하다 두 명의 독불장군이 논쟁을 화끈하게 벌였다. 처음엔 내기 룰을 갖고 입씨름하더니, 벙커 안에서 신발자국에 놓인 공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를 놓고 격론을 벌이고, 레스토랑에서는 맥주냐 포도주냐를 놓고 또 한바탕 소란을 일으켰다. “야, 이거 고래 두 마리 때문에 새우 두 마리 죽잖아. 제발 그만 좀 해라.” “윤형, 이거 해결하는 컨설팅 좀 해봐.” 어쨌든 그날의 결론은 이랬다. 가장 좋은 동반자 조합은 독불장군 한 명에 카멜레온 세 명이고, 그 다음은 카멜레온 네 명. 그러니까 어떤 경우든 독불장군형은 두 명이상 모이면 안 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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