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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상락의 이 사람의 삶|무용가 정명자

일본무대에 뿌리내린 한국춤 전수자

  • 소설가 이상락

일본무대에 뿌리내린 한국춤 전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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읊는 이의 간절함이나 진실성만을 문학의 으뜸 요소라 친다면 ‘…으시’라는 독특한 조사를 붙여 읊은 이 망부가(亡父歌)야말로 가장 훌륭한 시 작품일 것이다.

‘귀천지’는 일본에서 초연된 이래 서울 정동극장의 ‘오늘의 무용가 시리즈’로 발표되었고, 이어서 광주 목포 진도 등지의 무대로 이어졌다. 이 새로운 형식의 춤 작품에 일본에서는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관객의 호응은 뜨거웠다. 유례없이 한국의 전통무용가에게 일반인의 갈채가 쏟아진 것은 정명자가 드물게 자기 춤을 내보인 까닭이다.

지난 2월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글자 그대로 고금동서를 한 데 버무린 이색공연이 펼쳐졌다. 서양오케스트라와 국악오케스트라가 한 무대에서 섞이고, 안숙선 이생강 정명자 등의 한국 전통예술인이 등장하는가 하면, 장사익 안치환 유진박 등이 등장하고 어린이합창단까지 어우러진 대형공연을 펼쳤다. ‘퓨전’이나 ‘크로스오버’도 이쯤 되면 대책없는 ‘비빔밥’이었을 것 같은데, 정명자는 그 무대에서 서양오케스트라의 헝가리 음악에 맞춰 ‘가무보살’을 엮어냈다.

“일본의 전통 북소리에 맞춰 우리 살풀이를 춘 적이 있고, 재즈음악과도 궁합을 맞춰 본 적이 있습니다. 정신이 맞으면 음악과 춤이 어울려 돌아가게 돼 있어요.”

그녀가 얘기하는 ‘정신’이란 어떤 것일까. 음악의 메시지를 춤꾼이 읽어내는 능력이 아닐까.



─창작춤을 죽 발표해 왔는데 ‘정명자 춤’은 한국 전통무용의 틀을 깨는 것입니까, 새로 쓰는 것입니까.

“나는 전통무용에서 출발한 사람입니다. 일본에서도 공연 때마다 제1부는 반드시 살풀이나 북춤, 승무, 검무 등 우리 전통춤을 보여줍니다. 일본 사람들에게 한국무용의 원형을 내보이는 거지요. 제2부에서 보여주는 춤이 ‘정명자의 춤’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한국 전통무용의 맥을 잇는 기반 위에서 창작하는 것입니다. 전통춤을 고스란히 그대로 추어서는 전통춤의 ‘재현자’는 존재하지만 ‘나’는 없는 것 아니겠어요.”

─하지만 원형을 원형대로 이어가려는 노력 또한 중요하지 않습니까.

“물론이지요. 우리나라는 전통무용의 원형을 유지해 나가려는 층이 아주 두텁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럴 필요는 없어요. 능력이나 환경이 허락되는 사람은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나가야 돼요. 빠르게 변화하는 새로운 세대에게 가까이 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이것도 춤꾼의 의무 중 하나입니다.”

“최승희는 시대를 앞서간 무용가”

─한국의 여류 무용가로서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며 활동한다는 점, 한국의 전통정서를 바탕에 깔고 끊임없이 새로운 춤을 만들어 실험한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전설적인 무용가였던 최승희와 궤적이 엇비슷한 것 같은데, 모르는 사이에 어린시절 아버지가 들려 주었던 최승희를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것 아닙니까?

“최승희야말로 시대를 앞서간 천재적인 무용가였지요. 지금이야 그런 시도를 하는 게 파격적일 수 없겠지만, 여인네들이 얼굴도 제대로 못 내놓고 다니던 시절에 ‘보살춤’ 같은 걸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일 아닙니까.”

그녀는 실제로 일본에서 최승희의 영상자료를 찾아내어 한국에 소개했다고 얘기한다.

지난 3월28일부터 이틀간 정동극장 초청공연으로 무대에 올려진 ‘정명자 창작춤 창(窓)’은, 지칠 줄 모르고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그녀의 면모와 춤세계가 어느 만큼 확장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제1부에 승무와 한량무, 입춤 등을 배치한 것은 앞서 그녀가 말한 대로 한국 전통무용의 본모습을 보여주려는 배려다. 이어질 그녀의 창작무가 기본적으로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를 미리 알리는 셈이다.

제2부가 본공연이자 진짜 정명자의 춤이다. 그런데 그녀의 살풀이춤 배경에 군인과 굶주린 아이의 모습이라니… 보는 이의 그릇에 따라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아마 그것들은 우리가 살아온 지난 한 세기의 자화상 아닐까. 그녀의 살풀이는 지난 시대의 액을 쫓는 의식일 것이다. 이어서 창에 투영되는 다분히 환유적이고 추상적인 풍경들을 통해 그녀가 얘기하려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글쎄요, 창이란 안과 밖을 가르는 장치 아닌가요. 안쪽이 나라면 바깥풍경이 타인일 수 있을 것이고, 이쪽이 현재라면 저쪽은 미래일 수도 있겠지요. 나를 타인과 연결해 주는 것도 창이고, 현재의 우리로 하여금 과거와 미래의 시간과 소통해 주는 게 또 창 아닌가요? 인간 개개인의 내면과 외면의 경계일 수도 있겠고요.”

전쟁을 상징하는 군인과 문명 저 편의 굶주린 아이를 등장시켜 우리가 버리고 갈 시대를 나타내 보인 풍경이 사실화 쪽이라면, 다양한 상징들을 내보이는 제2장은 다분히 추상화라 할 만하다. 우리 춤사위로 이토록 간단치 않은 이미지를 나타내 보이려고 시도한 춤꾼이 그녀말고 또 있었을까.

─작품의 성격상 음악도 그렇고 춤을 추어내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나름으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한국적인 전통 음악으로는 그런 이미지를 풀어내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창’을 위해 음악을 별도로 작곡했습니다. 춤 역시 관객들은 기존의 전통무용과는 많이 다른 것으로 보았을 거예요. 그러나 우리의 정서가 내 몸에 너무나 강하게 박혀 있기에 우리 고유의 몸짓이 어디 가지 않습니다.”

─까다로운 시도였던 셈인데, 공연에 만족하십니까?

“만족이라니요, 늘 부족하지요. 막을 내리고 보니까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보충할 부분은 보충해서 금년 내로 한 번 더 공연하고 싶습니다.”

“춤은 정신과 정신을 잇는 대화”

─한국 전통문화를 일본에 보급하고 있기 때문에 하는 질문인데, 최근 들어 한·일간 문화교류의 물꼬가 트여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문화정책이나 양국 국민이 상대의 문화를 수용하는 자세에 문제점은 없습니까?

“문화란 흘러가고 흘러와야 합니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거의 프리패스로 일본에 진출한 반면 일본문화는 빗장에 걸려 이 쪽으로 흘러오지 못했습니다. 그 와중에 바람직하지 못한 저질문화만 음성적으로 유입되었고, 그것이 일본문화의 본모습인 양 취급되지 않았습니까. 제 경우 일본열도의 구석구석까지 다니면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전파해 왔습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어떤 분야의 문화를 개방한다고 할 수는 있지요. 그러나 문화란 장관의 한 마디로 교류되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일본문화의 좋은 측면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소화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제가 돌아다녀 보니까 우리가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아주 많습니다.”

─그런 바람직한 교류가 활발하게 전개되는 과정에 정선생의 역할이 또 있겠네요.

“우리가 전해주는 것만큼 바람직한 일본문화가 한국으로 들어오도록 가교역할을 했으면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정명자는 한국의 전통문화에 관한 한 재일(在日) 한국 대표선수다. 일본에서 수시로 개최되는 크고 작은, 국내 혹은 국제행사에 한국의 문화사절로 참석하여 우리 전통춤을 자랑하고 가르친다. 그녀가 한국에서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바다 건너 일본으로 간 것은 어찌 보면 다행인지 모른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그만한 출중한 춤꾼이 또 누가 있어 일본의 한복판에서 우리 몸짓을 그토록 혼신을 다해 풀어놓았겠는가.

“춤은 정신과 정신을 잇는 대화입니다. 말은 전달은 빠르지만 생명력이 짧아요. 춤이라는 몸짓 언어는 어렵게 전해지지만 깊이 스며듭니다.”

정명자가 춤을 추는 이유다.

그녀와의 얘기를 마치고 찻집을 나왔을 때 종로 거리엔 불빛이 휘황했다. 그녀가 아주 많은 한국사람들 사이로 종종걸음으로 멀어졌다. 한국에 사는 한국사람보다 훨씬 더 한국사람다운 마흔 중반의 한 여인이….

신동아 200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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