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호

노무현 신드롬의 겉과 속

“여당은 바닥민심 존중하고, 야당은 감성정치 편승 말라”

  • 강원택│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kangwt@ssu.ac.kr│

    입력2009-07-08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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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는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봉하마을을 찾았고, 수백만명이 전국 곳곳의 분향소에 들러 분향했다. 그의 죽음이 너무도 극적인 형태라 충격이 컸다 하더라도 이는 신드롬이라고 할 만큼 강렬했다. 왜 그랬을까?
    노무현 신드롬의 겉과 속
    재임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업무 수행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대단히 차가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가 떠난 뒤 보여준 국민들의 뜨거운 반응은 의외였다. 2007년 대통령선거 때 노무현은 유권자들에게 정책적 실패와 무능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당시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혼란은 다 ‘노무현 때문’이라고 할 만큼 그는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랬던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동정과 연민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가히 신드롬이라고 할 만큼 사회적으로 폭넓고 강렬한 추모 현상의 원인은 ‘과거’가 아니라 바로 ‘오늘날’ 우리 사회에 내재하는 여러 문제점에서 비롯했다 할 수 있다. 즉, 죽은 자를 통해 산 자들의 문제가 극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실패한’ 정치인처럼 보였던 그가 그리움의 대상이 된 것은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정치적 가치가 요즘 들어 너무도 절실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정책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균형 있는 발전을 이루기 위해 애썼다는 점을 시민들이 새삼스럽게 기억해냈다. 이렇게 노무현의 가치가 다시 부각된 것은 무엇보다 현 정부가 그러한 사안들을 관심 있게 다루고 있거나 해결하고 있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주지 못한 때문이다.

    김수환 추기경 추모 열기의 원인

    사실 노 전 대통령 서거를 둘러싼 ‘신드롬’ 이전에도 유사한 사회적 현상이 있었다. 바로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을 때다. 당시에도 수십만의 시민이 명동성당 등을 찾아 조문했다. 성당을 찾아 조문한 이들 가운데는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이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종교적인 이유보다는 정치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국민의 요구를 대변해주었고 민주화 이후에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찾아 보살폈던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그리움이 많은 시민을 그 자리로 이끌었다. 이제 떠나고 없는 김 추기경의 위로가 그리웠던 것이다.

    이런 일련의 현상은 오늘날 대다수 시민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마음을 기댈 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 전 대통령이나 김 추기경처럼 힘없고 소외된 이들을 대변하고 상징했던 이의 죽음은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를 되돌아보면서 그들로부터 받던 위로를 떠올리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사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선 많은 이가 힘들고 어려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10대는 경쟁만이 강조되는 처절한 입시전쟁에 내몰려 있고, 20대는 취업의 어려움 속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지 못한다. 30대는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한 자리에 놓여 있거나, 집값이나 교육비 등으로 인해 결혼을 미루거나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조차 힘들다. 40~50대는 언제 직장에서 해고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지내야 하며 자녀의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고 있다. 60대 이상은 노령화 사회라고 하지만 은퇴 이후의 노후 대책에 암담함을 느낀다. 이처럼 모든 세대가 힘들어하지만 앞날의 희망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몰아닥친 전세계적인 경제 불황은 미래를 암담한 잿빛으로 만들고 있다. 어디서도 위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 같고, 어려움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새로운 변화나 가치를 제시해주지도 못하고 있다. 살아 있는 권력이 애정을 갖고 국민을 돌보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떠난 정치적, 사회적 지도자를 통해 위로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소통부재’ 리더십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의 추모 신드롬은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 방식과 정책 방향에 대해 그간 국민이 마음에 담아두었던 불만을 극적으로 부각시켰다. 그러한 불만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소외감이 될 것이다. 노무현 추모 정국 속에서 가장 자주 제기된 이명박 정부의 문제점이 ‘소통의 부재’다. 이는 국민의 불만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 권력은 일반 국민의 처지에서는 너무 먼 곳에 동떨어져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너무도 손쉬운 승리를 거두었다. 사실상의 본선이었던 한나라당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이후에는 여론조사에서 항상 부동의 1위였고 2위와의 격차 역시 매우 컸다. 상대 후보 측에서 제기한 각종 네거티브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은 요동치지 않았다. 그리고 대선 결과 압도적인 차이로 완승을 거두었다. 이런 손쉬운 승리가 권력의 오만을 가져왔다.

    선거 압승에 도취한 나머지 과거에 대한 부정을 곧 현 정부의 정당성의 근거처럼 간주하기도 했다. 지난 10년에 대해 그저 잃어버린 10년일 뿐이라고 폄하하며 그간에 이뤄진 우리 사회의 발전과 국민 인식의 변화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한 오만으로 국민의 목소리에 겸허히 귀 기울이면서 사회적 통합을 위해 애쓰기보다 ‘나는 옳다. 나를 따르라’는 식의 독선과 교만의 국정 운영을 했다. 그런 국정 운영 방식이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국민으로부터 떨어져 고립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실 이명박 후보가 대선에서 압도적 차이로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유권자가 힘들고 괴로운 현실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그에게 표를 주었기 때문이다. 경제 하나만큼은 확실히 살려놓겠다는 이명박 후보의 공약에 큰 기대감을 갖게 된 것도 그만큼 삶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선거운동 기간 중 허름한 시장터에서 국밥집 주인 할머니에게 경제 살리라는 욕을 먹으면서 묵묵히 국밥을 먹고 있는 이명박 후보의 TV 광고가 유권자에게 어필했던 것은 그 주인 할머니가 바로 자신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즉 경제 회생에 대한 요구는 어렵고 힘든 소시민들이 앞날의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취임 이후 이명박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첫 조각 과정부터 이른바 ‘고·소·영’‘강부자’ 논란에 휩싸였고 이후의 정책기조 역시 친(親)기업, 부자 정권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과거 정부의 정책이 모두 부정되면서 사회적 안전망과 관련된 정책도 위축됐다. 국정 운영 역시 듣고 설득하려고 하기보다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힘으로만 끌고 가려고 하면서 정치적 소통의 문은 단단히 닫혀버렸다.

    대통령과 정부는 경제 회생을 위해 애쓴다고들 하는데 도대체 그 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을 위한 발전인지 서민이 공감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일방향의 독주만이 계속됐다. 이명박 정부하에서 위로를 찾을 수 없는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노무현 조문정국 이후에 나타난 한나라당 내분 역시 또 다른 소외감의 표출이었다. 국민의 의견과 정서를 정치적으로 전달하고 정책 결정에 이를 반영하는 것은 집권세력 내에서 여당의 핵심적 기능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돼왔다. 한나라당이 제 구실을 하지 못했고 당내의 목소리가 제도적인 창구를 통해 정책 결정이나 집행 과정에 반영되지 못했다. 당은 왜소해지고 청와대의 ‘심부름센터’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경선 과정의 경쟁자였던 소위 ‘친박 그룹’을 철저히 배제했을 뿐만 아니라, 친박계가 아니더라도 이명박 측근세력을 제외한 당내 구성원들은 모두 국정운영에서 소외됐다.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개인적이고 비제도적인 창구에 의존하면서 정치는 실종됐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국에서 집권세력이 수세에 몰린 것은 바로 이 같은 소통 부재와 소외의 정치로 그들이 국민들로부터 고립을 자초한 때문이다.

    ‘감성 정치’에 편승한 민주당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국의 전개는 민주당의 정치적 입지를 크게 바꿔놓았다. 지난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총선에서 참패했고 그 뒤에도 계속 정치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민주당은 이번 사건을 통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 여론 속에 민주당은 그의 자살이 정치적 타살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명박 정부를 압박하고 있고, 이번 사건을 당 지지율 회복과 지지층 결속의 기회로 삼으려고 하고 있다. 실제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적지 않게 상승했고 일부 조사결과에서는 몇 해 만에 처음으로 한나라당을 앞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때문에 국회를 외면한다는 일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장외투쟁에 나서면서 정부 여당에 강공을 퍼붓고 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드러난 민심의 본질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은 민주당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당이 바라보는 노 전 대통령 서거의 핵심은 ‘정치적 타살’이라는 데 집중돼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현 정부의 전임 정부에 대한 정치보복 때문이며 반대세력을 억압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것이다. 사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는 미네르바 사건이나 서울광장 봉쇄 등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시민적 자유에 대한 힘을 앞세운 억압적 정책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즉, 민주당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일정하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없지 않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노 전 대통령 서거 정국을 바라보는 민주당의 시각은 현실적으로 명백한 한계를 갖는다. 추모 열기에는 노 전 대통령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하게 만든 검찰 수사에 대한 분노가 표출되기도 했지만 이것이 시민들의 바닥 정서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즉, 민주당의 상황 인식은 ‘정치적인’ 측면에 집중돼 있지만 사실 분향소나 영결식장을 찾은, 혹은 TV를 시청하면서 눈시울을 붉힌 다수 국민의 마음속에는 정치적 요인보다 자신들의 고된 삶에 대한 답답함과 서러움이 담겨 있었다. 즉 현실의 문제가 담겨 있다.

    그런데 현재 민주당은 국민장 기간과 영결식 과정에서 극적으로 표출됐던 감성의 정치에 편승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국가 최고지도자의 비극적 죽음을 바라보면서 강렬한 정서적인 반응이 터져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감성적 요인은 오래 지속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근원적 문제 해결에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민주당 역시 노무현 신드롬 속에 내재하는 국민적 요구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일시적으로 상승한 민주당 지지율 역시 이런 전략을 유지한다면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노무현 신드롬의 겉과 속

    올해 3월 국회 본회의장.

    노무현 신드롬에서 드러난 민심을 수용하고 이를 당의 지지율 제고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장외집회나 이념적 투쟁보다는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이명박 정부의 ‘정말 아픈 곳’을 제대로 부각시키고 이에 대한 공세를 높이는 전략이 오히려 적절할지도 모른다. 사실 이전과 비교할 때 정치적 자유가 침해받고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조짐이 나타난다는 주장에 적지 않은 국민이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정치적 반발이 예상보다 강하지 않은 것은 국민이 이명박 정부에 기대하는 부분이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등장 배경에는 경제성장, 고용의 증대와 내수경기의 진작과 같은 경제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민주당이 국민의 마음을 파고들기 위해서는 현상적으로 드러난 불만에 편승하려는 태도를 지양하고 민심 이반의 원인을 보다 근본적으로 따져보는 노력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명박 정부에 대한 효과적인 공세는 정치적 측면을 지나치게 부각시키기보다는 민생과 관련된 이명박 정부의 실패에 초점을 맞추는 게 보다 적절하다고 본다. 민주당이 국회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노무현 신드롬의 겉과 속

    6월10일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마친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한 광경.

    ‘노무현 이후’, 우려되는 이념 갈등 격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나타난 또 다른 문제점은 이념 갈등의 격화와 사회적 대립과 분열이다. 사실 이런 강경파들의 대립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서거 정국은 또 다른 이념적 갈등의 불씨를 키웠다. 정작 노 전 대통령은 떠나면서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당부했지만, 남은 자들은 서로를 원망하고 비난하면서 갈등을 격화시켜가고 있다. 이는 보수, 진보 어느 한쪽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본다면 이러한 강경한 이념 노선을 취하면서 사회를 대립 국면으로 몰고 가는 보수나 진보 진영 시민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문제는 이러한 이념적 대결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이러한 갈등을 조정하고 완화하는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언론 역시 소수의 강경한 목소리가 마치 사회 전체를 대표하는 듯이 보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소수 강경파의 목소리가 마치 전체 정국을 이끌고 가는 듯이 보이고, 이로 인해 사회 전체적으로는 이념적 갈등이나 분열이 더욱 격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작년 쇠고기 관련 촛불집회에 혼쭐이 난 집권세력은 이번 추모 정국에서 표출된 민심을 좌파 진영의 선동에 의한 또 다른 반정부 시위로 바라보면서 강경일변도의 전략을 취했다. 한나라당 지도부 역시 ‘영결식이 소요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발언에서 보듯이 유사한 이념적 시각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이념적으로 편향된 시각은 문제의 근본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고, 오히려 다수의 침묵하고 있는 중도적 시민을 소외시키면서 소수 강경 보수파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게 하는 상황을 만들었을 뿐이다.

    민주당 역시 다수의 중도 성향 시민의 마음을 읽지 못한 채 이념적으로 강한 편향성을 보이는 소수의 격앙된 감정에 편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회에 등원하기보다 장외 집회에 집중하는 태도가 바로 당내에서 강경파가 당 전략을 주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여야 주요 정당 모두가 이념적으로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소수에 ‘휘둘리고 있는’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다. 원론적으로 말한다면, 국회는 사회적으로 상이한 요구나 이해관계의 갈등을 제도적으로 해결해내는 기구다. 그리고 정당은 이러한 갈등 해소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제도적 행위자다. 그러나 작금의 정국에선 주요 정당들이 이념적 갈등을 해소하려 애쓰기보다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그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지금의 정치적 상황이 혼란스럽게 보이는 것은 바로 갈등을 중재하고 완화해주는 제도적 장치가 작동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그 자체만으로 매우 비극적이고 슬픈 사건이다. 그러나 이후 일어난 여러 가지 정치적, 사회적 현상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순과 정치의 취약성을 숨김없이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것은 떠난 자가 살아남은 자들에게 남긴 무겁고 힘겨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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