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호

007의 첫 연인 베스퍼, 그리고 마티니

  • 김원곤│서울대 흉부외과 교수│

    입력2009-10-07 14: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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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밤 007과 베스퍼의 사랑을 떠올리면서 바텐더에게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라고 외쳐보는 건 어떨까? ‘베스퍼 마티니’엔 한 남자의 열정, 사랑이 오롯이 담겨 있다.
    007의 첫 연인 베스퍼,        그리고 마티니
    영화 ‘007’은 1962년 첫 편인 ‘살인번호’가 개봉된 이래 50년 가까이 이어진 전설적 첩보 스릴러다. 007시리즈는 작품에 따라 흥행에 기복이 있었지만 세계적으로 많은 고정 팬을 확보한 블록버스터 중 하나다. 007시리즈는 2009년 현재 공식적으로 22편이 나왔는데, 이런 기록은 앞으로 영화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영국 정보국의 M국(해외특수공작 담당)에서 일하는 007을 창조해낸 이는 이안 플레밍(1908~1964). 해군정보대 중령을 비롯해 기자 은행가 증권브로커로 일한 그는 1953년 제임스 본드를 주인공으로 한 ‘카지노 로얄’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발표한다. 생전에 12편의 작품을 내놓았는데 사후에 공개된 작품 1편과 미완성 작품 1편을 포함하면 모두 14편의 007시리즈를 썼다. 그의 추종자들은 지금도 제임스 본드를 주인공으로 한 007소설을 발표한다.

    첫 작품은 1962년작 ‘살인번호’

    플레밍의 소설에 근거해 지금까지 제작된 007시리즈를 살펴보자. 우선 007의 대명사로 불리는 숀 코너리가 주연한 ‘살인번호’(1편, 1962), ‘위기일발’(2편, 1963), ‘골드핑거’(3편, 1964), ‘썬더볼’(4편, 1965), ‘두번 산다’(5편, 196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7편, 1971)가 있다. 1969년 개봉한 6편 ‘여왕폐하 대작전’에선 조지 레전비가 007역을 맡았다. 코너리는 1983년 다른 제작자가 만든 ‘네버세이 네버어게인’이라는 비공식 007물에 출연해 공식 007시리즈인 ‘옥토퍼시’(13편, 1983)와 흥행 대결을 벌였다.

    007의 첫 연인 베스퍼,        그리고 마티니

    007시리즈 ‘카지노 로얄’

    레전비 다음으로 007을 품에 안은 배우는 로저 무어다. 무어는 ‘죽느냐 사느냐’(8편, 1973)를 시작으로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9편, 1974), ‘나를 사랑한 스파이’(10편, 1977), ‘문레이커’(11편, 1979), ‘포 유어 아이즈 온리’(12편, 1981), ‘옥토퍼시’, ‘뷰 투 어 킬’(14편, 1985) 등 7편에서 본드 역을 맡았다. 무어에 이어 티모시 달턴이 ‘리빙 데이라이트’(15편, 1987), ‘살인면허’(16편, 1989)에서 주연을 맡았지만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달턴의 뒤를 이은 피어스 브로스넌은 007로서 비교적 선전했다. 그는 ‘골든아이’(17편, 1995)를 시작으로 ‘네버다이’(18편, 1997), ‘언리미티드’(19편, 1999), ‘어나더데이’(20편, 2000) 등 4편에서 활약했다. 최근엔 본드의 전통적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대니얼 크레이그가 007의 옷을 입었다. 그는 ‘카지노 로얄’(21편, 2006), ‘퀀텀 오브 솔라스’(22편, 2008)를 통해 ‘새로운 본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007시리즈가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첩보원의 모습을 그린 만큼 세계 각국을 배경으로 한 술자리가 영화에 등장한다. 본드는 영화 속 대사를 통해 술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한다. 그런데 007시리즈가 소품으로 활용한 갖가지 술 가운데 007시리즈에 등장하는 술이라고 누구나 쉽게 떠올리는 유명한 칵테일이 있다. 칵테일의 황제라고도 불리는 마티니가 그것이다

    헤밍웨이의 마티니

    마티니는 얼음에 진과 드라이 버무스(dry Vermouth)를 섞은 뒤 올리브로 장식한 칵테일. 이 술은 그 유명세만큼이나 탄생과 관련해 많은 설이 존재한다. 몇 가지를 소개하면 1911년 미국 뉴욕의 한 호텔 바에서 수석바텐더로 근무하던 마티니(Martini di Arma Taggia)가 처음 만들었다는 얘기가 술과 사람 이름의 연관성을 들어 회자된다. 이 설에 따르면 올리브를 얹는 것은 그가 마티니를 개발한 뒤 단골손님들이 올리브를 칵테일에 넣어서 마신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다른 설로는 마티니를 만들 때 진과 함께 넣는 드라이 버무스로 이탈리아 회사인 마티니 앤드 로시(Martini & Rossi)의 제품을 사용한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마티네스(Martinez)라는 도시 이름에서 비롯했다는 설과 영국군이 쓰던 소총 마티니-헨리(Martini & Henry)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마티니를 만들 때 사용하는 버무스는 식물을 첨가한 강화와인이다. 알코올 농도만 높인 강화와인이 아니라 각종 식물을 첨가해 특유의 향을 강조한 것. 그래서 버무스를 방향성 와인(aromatic wine)이라고도 한다. 버무스는 백포도주를 기본으로 해서 제품에 따라 허브, 꽃, 식물뿌리, 향신료를 넣고 설탕으로 단맛을 낸다. 브랜디로 알코올 함유량을 높이기 때문에 도수가 18~19%까지 올라간다. 버무스는 드라이 버무스와 스위트 버무스로 나뉘는데, 맑은 색깔의 드라이 버무스는 19세기 초 프랑스가 처음 개발했다.

    마티니를 만들 때 진과 버무스의 비율은 보통 3대 1인데, 취향에 따라 버무스의 양을 줄일 수 있다. 최근엔 버무스의 양을 최대한 줄여 만든 드라이한 마티니를 마시는 게 일종의 유행으로 떠올랐다. 이는 버무스를 첨가해 복합미를 느끼면서도 되도록 진의 순수한 맛을 즐기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너무 드라이한 마티니는 칵테일이라고 부르기에 뭣한 단독제품이 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초드라이 마티니 애호가는 술맛의 단순성에 방점을 찍는다.

    초드라이 마티니에 대한 여러 에피소드가 애주가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헤밍웨이의 소설 ‘강을 건너서 숲 속으로’엔 주인공이 드라이 마티니를 주문하면서 진과 버무스의 비율을 15대 1로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헤밍웨이도 쓴맛의 드라이 마티니를 좋아했던 것 같다.

    어떤 애주가는 진만을 글라스에 넣고 저은 뒤 옆에 버무스병을 놓고 쳐다보면서 마셨다고 한다. 뉴욕의 한 애주가는 바에서 마티니를 주문하면서 진을 넣은 글라스 위로 버무스병을 지나가게 하는 방식으로 향기만 옮겨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바텐더가 주문대로 내놓은 마티니를 한 모금 들이켠 뒤 그 애주가는 술이 충분히 드라이하지 않다고 평하면서 두 번째 칵테일을 만들 때는 진 글라스에 입술을 대고 ‘버무스’라고 속삭여달라고 부탁했다. 바텐더가 다시 내놓은 마티니를 맛본 애주가는 한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 목소리가 너무 컸던 모양이네요. 버무스향이 여전히 강해요.”

    007의 첫 연인 베스퍼,        그리고 마티니
    베스퍼의 이름을 따다

    그런데 007시리즈에 등장하는 마티니는 지금까지 설명한 진과 버무스를 섞은 정통 마티니가 아니라 ‘베스퍼 마티니’와 ‘보드카 마티니’다. 먼저 007과 그의 첫사랑 베스퍼의 추억이 스며든 유명한 칵테일 베스퍼 마티니를 알아보자.

    베스퍼 마티니가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건 영화 ‘카지노 로얄’을 통해서다. ‘카지노 로얄’은 마틴 캠벨 감독이 2006년 007시리즈 21번째 작품으로 만든 영화. 대니얼 크레이그가 처음으로 본드 역할을 맡은 이 작품은 1953년 발표된 플레밍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시점만 놓고 보면 지금까지의 007시리즈 중 맨 처음에 해당한다. 즉 본드가 007로서 경력을 쌓기 시작하는 시기를 다룬 것으로 이른바 살인면허를 얻어가는 과정을 묘사한다. 물론 영화의 배경은 현대의 첨단 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 삼고 있다. 이 영화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새로운 007시리즈를 시작하는 재부팅이었다.

    영화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시작된다. 그곳에서 부패한 M16(영국 해외정보국) 책임자와 그의 정보원을 성공적으로 제거한 뒤 본드는 살인면허를 얻어 007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이윽고 무대는 아프리카 우간다로 바뀐다. 세계적 범죄 조직인 퀀텀의 핵심 멤버인 화이트는 불법 자금을 세탁하려는 보바노와 금융인 르쉬프의 만남을 주선한다. 르쉬프는 알바니아 출신으로 체스 챔피언이자 포커에 미친 수학천재이면서 테러리스트다.

    007의 첫 연인 베스퍼,        그리고 마티니

    제임스 본드는 포커 게임 중 ‘베스퍼 마티니’를 창작한다.

    한편 제임스 본드는 007이 된 뒤 첫 임무로 마다가스카라에서 테러용 폭탄 제조범을 타국의 대사관까지 따라 들어가 제거하는데, 그 와중에 대사관까지 폭파돼 큰 물의를 일으킨다. 본드는 죽은 범인의 휴대전화에서 바하마에 거주하는 디미트리오스라는 사람에게서 받은 메일을 발견한다. 디미트리오스는 르쉬프와 연결된 사람으로 르쉬프에게 사람과 무기를 공급하고 있었다. 그는 르쉬프가 주가조작에 나선 한 항공사의 새 항공기를 폭파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바하마로 날아간 본드는 디미트리오스의 부인을 유혹해 그가 마이애미 공항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를 추적한다. 본드는 결국 디미트리오스와 그의 하수인을 제거함으로써 르쉬프의 계획을 무산시킨다.

    본드 때문에 테러 계획이 실패로 끝나면서 1억달러가 넘는 자금을 날리게 된 르쉬프는 자금주들의 보복을 두려워한다. 그는 돈을 구하기 위해 또 다른 범죄를 구상한다. 몬테네그로의 카지노 로열에서 1억5000만달러를 조달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만큼 그는 포커에 자신이 있었다. 이러한 정보를 입수한 정보국의 책임자 M(주디 덴치 분)은 본드에게 정부의 돈으로 포커 게임에 참여하라고 지시한다. 그의 구상은 포커 게임에서 본드가 르쉬프를 빈털터리로 만든 뒤 그에게 신변보호를 제공하면서 테러조직과 관련한 정보를 획득하겠다는 것이었다.

    본드는 몬테네그로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한 여인을 만난다. 도박 자금을 가져온 영국 재무부 소속의 베스퍼(에바 그린 분). 본드는 첫눈에 이 미녀에게 호감을 갖는다. 베스퍼는 본드가 007로서 처음 사랑한 여자다. 본드는 몬테네그로에 도착해서 정보국의 현지 요원인 마티스에게 현지 정보를 얻는다. 마침내 포커 게임이 시작된다. 그러나 본드는 르쉬프의 계략에 말려 베스퍼에게서 넘겨받은 1000만달러를 잃는다. 게임 결과에 실망한 베스퍼가 추가 500만달러는 주지 않겠다고 말하자 화를 참지 못한 본드는 르쉬프를 제거하려고 한다.

    그때 게임 참가자 중 한 사람이 본드에게 자기가 실은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으로 이름은 라이터라고 소개하면서 “이길 가능성이 높은 당신에게 내 자금을 넘길 테니 이겨보라”고 권유한다. 물론 그는 “포커에서 승리한 뒤 르쉬프를 CIA에 넘겨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본드가 이 조건에 동의하면서 게임이 재개된다. 그런데 이번엔 르쉬프가 애인을 시켜 본드가 마시는 칵테일에 독을 탄다. 베스퍼의 도움으로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긴 본드는 마침내 게임에서 승리한다.

    본드와 베스퍼는 승리를 자축하는 저녁식사를 한다. 그런데 식사 후 베스퍼가 괴한들에게 납치되고 이를 추격하던 본드마저 르쉬프 일당에게 사로잡힌다. 혹독한 고문에 시달리던 중 갑자기 화이트가 나타나 돈을 멋대로 써 조직의 신뢰를 떨어뜨린 사람은 살려둘 수 없다면서 르쉬프를 총으로 쏘아 죽인다. 혼란의 와중에서 본드와 베스퍼는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병원에서 깨어난 본드는 르쉬프가 이중첩자라고 지목한 마티스를 체포해달라고 부탁한다.

    본드는 베스퍼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M에게 사직서를 제출한 뒤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베스퍼와의 평범한 행복을 꿈꾼다. 그런데 그가 도박에서 딴 자금이 정부 계좌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베스퍼가 그의 옛 애인을 납치한 범죄조직의 협박에 굴복해 돈을 빼돌린 것이다. 협박범들은 본드에 의해 모두 죽임을 당하고 베스퍼는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이 범죄 조직의 막후 조종자는 화이트. 그는 베스퍼가 빼돌린 돈을 갖고 유유히 사라진다.

    본드는 베스퍼의 배신에 치를 떤다. 본드는 르쉬프 일당에게 잡혀 있던 자신을 살려주는 조건으로 베스퍼가 협박범들의 제안에 응했다는 사실을 M에게서 듣는다. 오해가 풀린 뒤 본드는 베스퍼가 휴대전화에 화이트의 전화번호를 남겨놓은 것을 발견한다. 호숫가 대저택에서 은신 중이던 화이트는 본드의 총에 다리를 맞고 쓰러진다. 그러곤 본드가 특유의 어투로 이렇게 말하면서 영화가 끝난다.

    “The name is Bond. James Bond.”(이름은 본드, 제임스 본드)

    전설적 칵테일은, 본드가 포커 게임에 합류한 뒤 분위기가 고조될 무렵 등장한다. 본드는 바텐더에게 드라이 마니티를 주문했다가 취소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Three measure′s Gordon′s, one of Vodka, half of Kina Lillet, Shake it over ice, Then add a thin slice of lemon peel(고든즈와 보드카 그리고 키나 릴레이를 얼음에 띄워서 흔든 뒤 얇은 레몬 한 조각을 얹어달라).

    르쉬프를 뺀 다른 사람들도 본드의 주문에 흥미를 느끼고 같은 칵테일을 만들어달라고 말한다. 본드의 주문에서 고든즈(Gordon′s)는 진(gin)의 상품명. 보드카는 독자 여러분도 잘 아는 술이니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이 칵테일의 백미는 키나 릴레이(Kina Lillet)다. 이 술은 19세기 말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서 개발된 것으로 와인에 오렌지 리큐르를 혼합한 후 당시 강장제로 인기이던 키니네를 섞은 것. 키니네는 맛이 쓰다. 그래서 요즘엔 키니네의 양을 대폭 줄인 블론드 릴레이(Blonde Lillet)라는 제품을 대체제로 사용한다.

    포커 판에서 자신이 창작한 칵테일이 맘에 든 본드는 이 술에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야겠다고 여긴다. 본드는 포커 게임에서의 승리를 자축하면서 베스퍼에게 칵테일의 이름을 ‘베스퍼’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한다. 베스퍼는 짐짓 당황하며 그 칵테일의 쓴맛을 떠올리면서 조심스럽게 말한다.

    “Because of the bitter aftertaste?”(씁쓸한 뒷맛 때문인가요?)

    본드는 “No, because you′ve once tasted it, that′s all you want to drink.”(아니오. 한번 맛을 보면 그것만을 갈망하게 될 것이오)라고 답한다. 이 말을 듣고 베스퍼는 환한 미소를 짓는다.

    지금까지 베스퍼 칵테일의 탄생 설화를 길게 설명했다. 이 칵테일은 지금도 베스퍼 마티니라는 이름으로 애주가의 사랑을 받고 있다. 술꾼들은 이 술을 마시면서 007과 베스퍼의 추억을 되새긴다.

    젓지 말고 흔들어서

    베스퍼 칵테일은 ‘카지노 로얄’의 속편인 ‘퀀텀 오브 솔라스’에도 등장한다. 22번째 007시리즈로 제작된 이 영화는 전편에서 베스퍼의 비극적 죽음을 경험한 본드가 복수심에 사로잡힌 채 배후를 추적하는 스토리다. 본드는 볼리비아의 군부 독재자 메드라노 장군에게 가족을 희생당하고 복수를 노리는 카밀을 만난다. 본드의 목표는 냉혈한 사업가이자 베스퍼를 죽음으로 이끈 거대 범죄조직의 실질적 보스인 도미닉 그린. 그린은 망명 중인 메드라노 장군이 다시 권력을 잡는 것을 도와주는 대신 볼리비아의 물 공급원을 장악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그린과 메드라노는 각각 본드와 카밀에게 제거당한다. 이후 본드는 러시아로 날아가 상습적으로 고급관료들에게 접근해 고급 정보와 돈을 빼내던 베스퍼의 옛 애인을 체포한다.

    베스퍼 마티니는 본드가 마티스와 함께 올라탄 볼리비아행 비행기에서 등장한다. 마티스는 ‘카지노 로얄’에서 르쉬프의 모함으로 인해 이중첩자라는 오해를 받았으나 수사 결과 결백이 드러났다. 그는 은퇴해 이탈리아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정보국과의 갈등으로 자금줄이 끊어진 본드를 도와줬고 함께 볼리비아에 가게 된다.

    비행기 안의 바에서 술을 마시던 본드에게 마티스는 무엇을 마시느냐고 묻는다. 본드는 짐짓 모르는 체하면서 바텐더에게 자기가 마시는 술이 뭐냐고 묻는다. 본드는 속으로 베스퍼와의 추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바텐더는 앞서 언급한 베스퍼 마티니의 레시피를 읊으면서 본드가 벌써 여섯 잔을 마셨다고 말한다. 그만큼 본드는 베스퍼를 사랑했으며 또 잊지 못했던 것이다.

    007의 첫 연인 베스퍼,        그리고 마티니
    김원곤

    1954년 출생

    서울대 의대 졸업, 의학박사(흉부외과학)

    우표, 종(鐘), 술 수집가

    現 서울대 흉부외과 교수


    007의 술을 얘기하면서 그 유명한 대사-젓지 말고 흔들어서-로 상징되는 보드카 마티니를 떠올리는 이가 많다. 이 대사는 007시리즈 3탄 ‘골드핑거’에서 처음 ‘직접적으로’ 등장한 이후 007시리즈뿐만 아니라 수많은 영화에서 패러디되며 영화사의 명대사로 손꼽히고 있다. 그런데 ‘젓지 말고 흔드는’ 보드카 칵테일은 본드의 입을 빌리지 않았다뿐이지 007시리즈 첫 작품 ‘살인번호’에도 등장한다. 본드가 이 영화의 무대인 자메이카에 도착해 호텔에 여장을 풀었을 때 룸서비스를 가져온 바텐더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본드에게 술을 따라준다.

    “One medium-dry vodka martini, mixed like you said, sir, not stirred.”(미디엄 드라이 보드카 마티니, 당신이 말한 것처럼 젓지 말고 흔들어서)

    본드가 칵테일을 주문하는 장면은 영화에 묘사되지 않지만 007시리즈 1탄의 이 대사가 ‘젓지 말고 흔들어서’의 효시다. 오늘밤 007과 베스퍼의 사랑을 떠올리면서 바텐더에게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라고 외쳐보는 건 어떨까? 베스퍼의 테마음악이 흐른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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