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호

공기업 개혁의 방향과 전략

“경쟁과 시장에 의한 통제가 해법”

  • 정리·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9-10-08 1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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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 시 :2009년 9월8일

    ■ 장 소 :미래전략연구원

    ■ 사 회 :박 진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패 널 :곽채기 동국대 행정학과 교수

    김준기 서울대 행정대학원 부원장 / 미래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김현석 국가경영연구원 원장

    조성봉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미래전략연구원 연구위원

    공기업 개혁의 방향과 전략

    왼쪽부터 조성봉, 곽채기, 박진, 김현석, 김준기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개혁

    박진 미래전략토론이 10회째를 맞았습니다. ‘신동아’와 함께 진행하는 이 토론 자료가 청와대에 보고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오늘 주제는 ‘공기업 개혁의 방향과 전략’입니다. 먼저 역대 정부가 공기업을 관리하면서 각각 어떤 특징을 나타냈는지를 비교해주십시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공기업 관리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김준기 김대중 정부는 하드웨어적 개혁을 추구했습니다. 그에 반해 노무현 정부는 소프트웨어적 개혁에 나섰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하드웨어적 개혁과 소프트웨어적 개혁을 병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공공개혁의 일환으로 공기업 민영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김영삼 정부가 추진했으나 집행하지 못한 하드웨어적 개혁에 나선 것이죠. 노무현 정부는 성과지향적 경영, 대(對)국민 서비스 제고, 경쟁 촉진을 추구해 소프트웨어를 바꾸려고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초기엔 하드웨어를 개혁하려고 하다가 여의치 않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혁을 병행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토지공사와 주택공사의 통합이 하드웨어적인 부분입니다. 소프트웨어 쪽으로는 노조관계, 경영시스템 개선과 선진화 과제를 제기해놓았습니다.

    박진 이명박 정부가 초기에 하드웨어를 손보려고 했으나 여건이 여의치 않았다는 것은 지난해 촛불시위 등을 말씀하는 건가요?

    김준기 예. 그렇습니다.

    곽채기 제가 부연해 설명하면 김대중 정부는 민영화 정책에 포커스를 맞춰 접근했고, 노무현 정부는 민영화 정책을 거의 중단하고 지배구조 선진화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민영화를 추진하되, 민영화의 타깃이 모(母)기업이 아닌 자(子)회사에 맞춰진 것 같습니다. 기관 통폐합 같은 하드웨어 중심의 개혁에선 기능중복을 조정하는 데 역점을 둔 것으로 여겨집니다.

    김현석 두 분이 상당히 조심스럽게 평가했는데, 조금 직설적으로 장단점을 들여다봤으면 좋겠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과거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다소 혼선을 빚었지만 전체적으로 상당히 많은 일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집권 후반기엔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문제와 관련해 시민단체와 함께 개혁 작업을 추진하는 새로운 시도도 했습니다. 물론 단점도 있었지요. 경험이 부족하다보니 공기업 개혁 시스템을 초기에 정비하지 못했고 청사진이 명확하지 못해 혼선을 빚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이런 단점의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개혁에 청사진이 없었다는 비판을 의식해 로드맵, 그러니까 청사진을 만드는 데 역점을 뒀습니다. 그런데 로드맵 작성에 치중하다 중요한 시기를 놓쳤습니다.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고 2년까지가 공공부문 개혁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시기인데, 그 중요한 시간에 로드맵을 그리는 데 치중함으로써 민영화 과제를 추진하지 못했습니다. 기능조정도 과감하게 추진해야 했는데 그런 일도 못했습니다. 로드맵 그리다가 아까운 시간을 다 보낸 셈이죠. 또한 집권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일자리 문제가 이슈로 부각되자 공공부문에서 일자리를 만들게끔 했습니다. 제가 볼 때 이건 상당히 큰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공공부문 비대화에 원인을 제공했다고 봅니다. 이명박 정부 임기가 1년7개월 지났습니다. 가장 큰 장점은 공공기관 평가를 기관장 인사와 연계한 부분입니다. 단점은 청사진이 없다는 겁니다. 공공부문 개혁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아요. 민영화와 구조조정 중심인지, 시스템 개혁인지, 정부의 정책 방향을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정부가 바뀌면서 과거의 경험이 쌓여 진화하는 게 아니라 시행착오가 반복되는 모습입니다.

    박진 조성봉 박사는 어떤 의견을 갖고 있습니까?

    조성봉 김대중 정부가 하드웨어 개혁을 했다는 데 공감합니다. 그런데 그때는 외환위기로 인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정부투자기관 8곳을 민영화했고, 부분 민영화도 3곳에서 이뤄졌습니다. 정부투자기관 산하의 자회사 21곳을 민영화했고 6곳을 폐지했으며 16곳을 통폐합했습니다. 공기업의 61개 자회사 중 20곳을 민영화하거나 통폐합했고 나머지 41곳 중 36곳에 대해서도 민영화를 추진했죠. 결과적으로 김대중 정부는 상당히 큰 성과를 거뒀습니다. 민영화 재정수입이 7조2600억원에 달했고, 공기업 매각수입도 14조3500억원을 상회했습니다. 반면 노무현 정부는 이 같은 개혁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김현석 원장 말씀대로 공공부문이 굉장히 비대해졌습니다. 195조원이던 공기업 부채가 100조원 넘게 증가했고, 정부지원금도 34조원에서 48조8000억원으로 늘었습니다. 인력도 4년간 2만6000명가량 증가했습니다. 공공부문의 비효율이 굉장히 커진 셈이죠. 노무현 정부 때의 또 다른 특징은 공기업마다 공익사업을 들고 나왔다는 점입니다. 소프트웨어 쪽에서 혁신했다고 그러는데, 그게 사실 내용 없이 포장에만 신경을 쓴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가장 큰 특징은 실용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정부 추진 사업에 수자원공사를 동원하고 서민을 배려하는 정책에 공기업을 참여시키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지난해 촛불시위를 거치면서 공기업 개혁 추진 여건이 나빠졌습니다. 경제 상황도 좋지 않습니다. 민영화를 할 때는 주식시장이 좋아야 합니다. 공기업을 싼값에 내다팔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민영화 추진이 주춤거리는 것 같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공기업 개혁과 관련해 청사진이 없다고 말씀했는데, 저는 철학이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공기업 개혁이 왜 필요한지,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 없이 정부의 지지도를 높이는 하나의 도구로서 공기업 개혁에 접근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만큼 실용성에만 치중하는 것 같습니다.

    청와대, 정부의 문제점은?

    김준기 세 정부별로 각기 다른 특징을 살펴봤는데 공통점도 들여다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역대 정부의 공통점은 ‘시작은 원대했으나 끝은 미미했다’는 겁니다.

    곽채기 한마디로 용두사미(龍頭蛇尾)였죠.

    박진 공기업 개혁을 중요한 목표로 삼기보다는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행태가 문제였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공기업과 관련해서 청와대나 정부가 가진 근본적 문제점으론 어떤 게 있을까요?

    곽채기 정부가 가진 문제점은 공기업 개혁이나 공기업 관리를 정권 단위의 시점으로만 본다는 것입니다. 김대중 정부도 그랬고, 노무현 정부도 그랬습니다. 5년 동안 뭘 할 것인지만 고민한 겁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만들어놓은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도 임기 내에 뭘 하겠다는 것만 밝히고 있지 중장기적 관점의 비전과 전략이 없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5년 단위의 계획을 발안해서 추진하다가 정권이 바뀌면 또다시 새로 시작하니 만날 준비만 하다가 시간을 허비하는 겁니다. 김대중 정부 때는 슬림화 정책으로 일관하더니 노무현 정부는 거꾸로 팽창시키고, 이명박 정부는 아직 물음표인 상황입니다. 정권에 따라서 기조 자체가 뒤집히니 공기업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기 어렵습니다.

    박진 청와대나 정권이 재임 기간 무엇을 해보겠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청와대를 보완하는 행정부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요? 청와대더러 너희는 시야가 왜 5년밖에 안 되느냐고 지적만 하기는 어렵습니다. 헌법을 탓해야 할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정권마다 특성이 있는데, 왜 너희는 그렇게 가느냐고 꼬집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정권은 국민이 선택한 것입니다. 결국 화살은 행정부를 향해 날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행정부도 한계가 있습니다. 패널들은 행정부가 어떤 구실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김현석 공직이라는 게 원래 그렇습니다. 영혼이 없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대통령을 중심으로 몇몇 사람이 인사권을 행사하는데 행정부가 과연 소신껏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까요? 그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전제로 두고 행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보면, 가장 시급한 것은 공감대를 구축하는 겁니다. 공기업 개혁에서 진보·보수의 차이가 있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현상을 객관적으로 진단한 뒤 그것을 토대로 공감대를 이뤄내야 합니다.

    곽채기 노하우가 전수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공기업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던 김대중 정부의 노하우가 단절돼버렸어요.

    김현석 단절됐지요, 맞습니다.

    곽채기 정부 차원에서 축적된 것이 없고, 그렇다고 정부 외곽기관에서 지식과 정보를 쌓아둔 것도 아닙니다. 공기업 정책이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도 그래서죠.

    조성봉 일본 민주당이 총선에서 압승한 이유 중 하나가 관료 문제입니다. 한국에서 민영화가 용두사미 꼴이 된 것도 관료의 문제입니다. 규제개혁이 지지부진한 것도 같은 이유라고 볼 수 있고요. 한국은 관료조직이 너무나 큽니다. 공무원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크게 하는 쪽으로 움직이면서 공기업이 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기업 몇 개를 민영화하더라도 다른 곳이 또 비대해집니다. 관료와 정면대결을 펼치지 않는 한 공기업 개혁은 쉽지 않을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박진 공기업 개혁을 위해선 정부개혁이 요구된다는 거군요.

    조성봉 그렇습니다. 공공기관, 공기업을 개혁해봤자 그것은 작은 틀이에요. 정부개혁이 큰 틀입니다.

    박진 공감합니다. 행정부의 문제가 공기업의 문제라는 점에 다른 분들도 공감하는지 궁금합니다.

    김준기 그렇습니다.

    곽채기 공감합니다.

    박진 정치권과 청와대의 문제로 되돌아가겠습니다. 공기업 정책에 정치적 판단이 개입되고 있다는 데에도 패널들이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인사 문제는 어떤가요? 공기업의 자리가 정권 공신들의 자리배분용으로 활용되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구조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을 것 같습니다. 공기업을 망치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 임명돼서는 안 되겠죠.

    곽채기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노무현 정부가 임명한 공공기관장의 잔여 임기가 논란이 됐습니다. 임기가 남았는데도 교체할 때는 객관적 기준에 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고요. 공공기관장이 교체되면서 마찰도 많았습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공기업의 수장은 매우 짧은 기간에 성과를 창출해야만 합니다. 다음번에 정권이 교체된다면 현 정권 임기 후반부에 임명된 사장들도 임기를 보장받기 어렵겠죠. 이런 구조라면 능력 있는 사람들이 정권 말엔 공기업 사장 자리를 피할 수도 있습니다. 임기를 보장받지 않은 상황에서 경영에 열심히 임할지도 의문이고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어떤 합의를 도출해 투명한 기준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민간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의 유능한 사람을 공기업 사장으로 영입하더라도 자율경영 여건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선 성공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조성봉 지금 말씀 중 두 번째 포인트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포스코는 출발 당시 완벽한 공기업이었습니다. 그러나 포스코의 운영방식은 전혀 공기업답지 않았어요. 박태준 사장이 가진 재량권이 막강했기 때문에 어떤 공무원도 포스코를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사장이 임기로부터 자유로웠고, 완벽하게 자율권을 행사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포스코가 있는 겁니다. 박태준 사장이 잘했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잘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는 겁니다. 지금의 공기업 구조를 보면 정말 뛰어난 사람이 사장으로 발탁되더라도 결국은 정부 부처가 그 사람을 길들입니다.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어버리죠. 대통령과 관계가 깊은 분들도 공기업 사장에 오른 뒤엔 해당 부처의 장관, 차관, 심지어 담당과장한테도 꼼짝 못하는 게 현재의 구조거든요. 그런 구조에서 어떻게 자율적으로 경영할 수 있겠습니까.

    박진 임기보장과 자율경영이 중요하다는 지적이군요.

    김준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3년마다 기관장이 바뀌는 조직이 잘된다면 그게 이상한 일입니다. 상임이사들의 경우 임기 3년을 보장해주다가 2+1년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2년으로 굳었습니다. 주요 경영진이 2년, 3년마다 그것도 성과가 좋아야 그 정도고 그렇지 않으면 더 일찍 교체되는 시스템에서 공기업의 성공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입니다.

    박진 3년 임기를 중임하는 관행이 필요하다는 거군요.

    김준기 잘하는 경우엔 그렇게 해야죠.

    김현석 저도 공감합니다. 이전 정권과 마찬가지로 공기업 인사에 정치권 개입, 즉 낙하산 인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선이 유력했기 때문에 선거 전에 많은 사람이 이명박 후보에게 줄을 섰습니다. 이명박 정부도 공신을 배려하는 수단으로 공기업의 자리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기관장이나 상임이사 교체가 더욱 빈번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공공기관의 장이나 상임이사에 공신을 배치하는 행태를 근절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박진 강하게 비판하는군요.

    김현석 참 이 문제에 대해서는….

    조성봉 제가 보기엔 내각제 개헌밖에 해법이 없을 것 같은데요.

    김현석 공신 중에서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죠. 그런 사람을 뽑는다면 문제될 게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검증 절차 없이 대선 때 도왔기 때문에 자리를 갖는다는 게 문제라고 봅니다.

    박진 세 번째 챕터는 공기업 자체의 문제점입니다. 정부와 관료도 문제가 많지만 공기업 내부의 요인도 무시할 수 없겠지요. 비리를 비롯한 투명성 문제, 내부 감사의 부실, 과다한 복리 후생 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만.

    공기업 내부 문제점은?

    조성봉 성격이 고약한 사람들만 공기업에 모였다고 말한다면 그건 터무니없는 얘기겠죠. 경제학자로서 저는 모두가 한국 경제를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오랜 기간 이상한 체제가 지속되다보니 내부 시스템이 왜곡됐다고 판단합니다. 사회는 기업을 길들이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습니다. 먼저 소비자가 길들입니다. 두 번째는 은행이죠. 제대로 안 하면 꿔준 돈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거든요. 세 번째는 주주입니다. 경영을 잘못하면 주식을 팔아버립니다. 한국의 공기업에는 이 세 가지 메커니즘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먼저 소비자가 특정기업을 선택할 자유가 없습니다. 전기 시장을 보십시오. 독점 아닌가요. 그러니 소비자를 두려워할 까닭이 없습니다. 은행도 공기업이라면 무조건 돈을 꿔주게 돼 있어요. 망하지 않는 회사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김현석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일반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나 다 똑같은 사람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움직입니다. 공기업에 계신 분들의 문제가 아니라 공기업의 구조가 문제라는 얘기입니다. 공기업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면 자신들에게 플러스가 될까요? 열심히 일해서 문제가 생기면 안팎에서 시달립니다. 일을 열심히 할 이유가 없어요. 소신껏 일하는 것보다 상사 말을 잘 듣는 게 승진에 훨씬 유리하죠. 이러한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당근하고 채찍밖에 없습니다. 신상필벌을 명확하게 하고 인센티브 제도를 개선해야 해요.

    박진 공기업의 성과 관리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는데, 그것은 공공부문 전체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조성봉 경제성장기엔 공기업들이 경제개발에 상당한 참여를 했어요.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이 시급했기 때문입니다. 도로, 철도, 발전소, 송전선, 댐이 그렇죠. SOC기업은 대부분 공기업이고, 공기업 인력의 상당수가 건설 인력입니다. 그런데 SOC 건설이 포화 상태입니다. 수요가 조금씩은 늘겠지만 경제개발 단계만큼 늘지는 않습니다. 건설이 아니라 운영이 중요한데, 공기업이 건설인력을 처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건설인력을 다른 쪽으로 흡수하고자 경쟁력 없는 비핵심사업을 진행합니다. 민간 건설회사에 건설부문을 넘기는 등의 방식으로 오래전에 구조변화를 단행했어야 합니다.

    박진 고용 및 사업전환에서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어떤 문제가 또 있을까요?

    곽채기 사업다각화를 통해 비(非)관련 분야에 진출하거나 자회사를 세우는 것은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이면엔 고용의 경직성이 있습니다. 한번 고용하면 강도 높게 신분 보장을 해주기 때문에 공기업들이 기능이 쇠퇴하는 분야를 적절하게 구조조정하지 못하는 겁니다. 기존인력을 투입할 사업을 찾는 노력을 꾸준히 할 수밖에 없는 건 구조적 경직성 때문입니다.

    박진 사실 그 부분은 공기업이 고용시장에서 가진 경쟁력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안정된 직장으로 꼽히죠.

    김현석 중앙정부 소속의 공기업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소속의 공기업도 인력구성과 인력운영에서 난맥상이 심각합니다. 큰집에서 내려온, 그러니까 중앙부처에서 낙하산을 타고 온 인력,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기업이라면 지방자치단체에서 내려온 낙하산 인력, 그리고 여러 가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채용된 인력, 공개채용을 통해 들어온 사람 등으로 인력 구조가 나뉘다보니 일체감을 갖고 일을 추진하기가 어렵습니다. 각각의 그룹이 집단이익을 지향하는 쪽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거의 모든 공기업에서 파벌싸움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선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기가 어렵습니다. 기획실장직을 수행할 소양을 가진 사람이 기획실장에 오르는 게 아니라 파워게임을 통해 임명이 이뤄지는 겁니다. 이러한 문제를 어떤 형태로든 풀어야 합니다.

    조성봉 한국 공기업은 내부화(internalization)돼 있습니다. 건설도 자기들끼리 하고, 예전엔 감리도 자기들끼리 하고 그랬죠. 시장에 아웃소싱하는 식으로 문을 터야 합니다. 경직된 구조에서 제 식구들만 감싸는 내부화는 일소돼야 합니다.

    김준기 내부 구성원의 유착, 담합 문제도 거론하고 싶습니다. 노동조합은 낙하산 사장을 더 좋아합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네들이 얻어낼 부분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관장과 노조가 담합해서 자기네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일을 추진하는 거죠.

    공기업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박진 결국은 공기업에 대한 외부의 압력, 즉 소비자, 채권자, 주주의 압력이 없다는 점이 공기업 경영진과 노조를 방만하게 만드는 요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구조를 바꾸려면 민영화나 경쟁체제를 도입해 문제점을 해소해나가는 동시에 공기업에 대한 적절한 관리가 이뤄져야 할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주제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공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으로서 공기업 관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공기업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곽채기 공기업은 시장에 의한 관리가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특수법인 형태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공기업은 상법상 주식회사 같은 민간기업 모델이 아니라 특별법에 의해서 특수법인으로 꾸려집니다. 이런 제약이 있기에 민영화 과정을 거친 일부 공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공기업엔 시장 메커니즘이나 시장통제 기제가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공기업의 법적 형태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진 시장에 의한 관리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점엔 다들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민영화와 경쟁도입, 기능조정이 필요하다는 부분에도 의견이 일치한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시장을 통한 압력이 하나의 원칙이라면 공기업에 대한 정부의 관리는 또 다른 이슈입니다.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조성봉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을 보면 앞부분에 자율적 운영을 목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코미디입니다. 그렇게 적어놓고는 그 뒤로 규제 사항이 세세하게 적혀 있습니다. 헌법의 경제조항도 그렇고요. 경제의 자유로운 번영을 목표로 한다고 해놓고서는 중소기업 보호, 경자유전 등 국가가 간섭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을 없애야 한다고 저는 봅니다. 자율성을 먼저 보장해야 해요. 공기업에 완벽한 자율성을 주고 그 대신 경영성과에 대해 책임지게 해야 합니다. 공기업의 가장 큰 문제는 무슨 짓을 해도 안 망한다는 인식을 노조와 경영진이 가졌다는 겁니다. 공기업도 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자율성을 주되 시장에서 책임을 갖게 하자’는 게 대원칙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진 아주 강하고 분명한 의견인데, 시장에서 책임을 갖게 한다는 건 경쟁도입, 민영화가 가능한 기업에만 국한되는 게 아닐까요?

    조성봉 민영화하지 않더라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스웨덴의 경우 정부가 공기업을 소유만 할 뿐 터치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왜 그렇게 못하는지….

    박진 논리적으로는 맞습니다만 예를 들어 한국전력공사가 망한다면….

    조성봉 한전이 망하겠습니까? 사라지지 않고 누군가 사겠지요. 한전이 망하는 순간 발전소가 무너지는 건 아니잖아요.

    박진 상법상 파산절차를 거쳐 경영주체를 바꾸면 된다는 말씀이군요.

    조성봉 누군가 나서서 구조조정하고 알아서 잘 해결하겠지요.

    박진 망한다는 게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죠.

    조성봉 그렇습니다. 자산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박진 그렇기는 합니다만….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을 폐지하면 공기업들이 상당히 좋아하겠습니다.

    곽채기 김대중 정부 이후 한국의 공기업 관리제도의 변천과정을 들여다보면 정부가 공기업을 개혁, 혁신한다고 말하면서 더욱 디테일하게 간섭, 개입해왔습니다. 공기업 경영의 자율성 부분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어요.

    김준기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정부가 지엽적인 부분까지 관리하고 통제했음에도 정부의 목표가 실현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정부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인건비인데, 아무리 통제해도 잘 안 됐습니다. 조세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02~2007년 35개 공공기관의 일인당 인건비 증가율은 연 6.6%에 달하는 반면 일인당 부가가치 증가는 연 1.8%에 그쳤습니다. 정부뿐 아니라 감사원, 국회도 공기업을 감독했습니다. 그런데도 별 효과가 없었어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통제 위주의 관리정책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공기업 관리를 성과에 따라 책임을 묻는 쪽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김현석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의 일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습니다. 1~2년이면 정부의 정책 담당자가 바뀝니다. 이런 인사시스템에서 담당자가 큰 틀의 개선을 추진할 수 있겠습니까?

    박진 시장에 의한 관리가 가능한 공기업은 시장에서 평가가 내려집니다. 그런데 시장이 없는 공기업이 많습니다. 그런 공기업에 자율성을 부여하면 정부가 통제력을 상실하지 않을까요?

    조성봉 자연 독점 공기업은 독립규제기관을 세워 관리하는 게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박진 시장의 평가를 대신하는 게 공기업 평가제도입니다. 자율성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데 패널들이 공감했습니다. 사전적으로 규제하지 말고 사후적으로 평가만 하자, 그리고 책임을 묻자는 건데요. 그렇다면 한국의 공기업 평가제도는 어떻다고 보나요?

    곽채기 이명박 정부 들어서 기관장 평가를 강화한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기관장 평가와 기관평가를 따로 하고 선진화 및 효율화 계획에 대한 실적평가까지 덧붙이는 것은 성과 관리 전략으로는 효과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가 시스템을 일원화해서 인사에 연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성봉 지금의 평가제도는 ‘뷰티 콘테스트’ 같아요. 시장의 평가가 아니라 ‘몇 명 잘랐느냐’ 같은 정황적 증거를 토대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순위에 따라 줄을 세우는 상대평가로 설계된 것도 문제고요.

    김준기 경영평가 시스템에만 의존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공기업 관리의 근간이 돼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경영평가에 포착되지 않는 요소가 많습니다. 국민경제에 대한 기여는 평가지표상으로는 잡을 수 없습니다. 현재의 시스템은 제한적 부분에서만 성과를 들여다보는 제도입니다. 공기업이라는 이슈는 복잡한 정치·경제적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공기업을 단순한 행정적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좀 더 큰 틀에서 봐야 합니다.

    김현석 현재의 평가제도는 기여한 바도 많지만 상대적으로 문제점도 많습니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모든 것을 평가하려고 들지 말고 공기업 관련 정보를 외부에 공개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게 옳다고 봅니다. 이해관계자들이 공개된 데이터를 평가하는 방식이 좋다는 겁니다.

    박진 평가와 관련한 얘기는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끝으로 공기업 개혁과 관련한 제언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제 뉴스를 보다가 낙담했습니다. 4대강 사업을 시작하는데 재원이 부족하니까 수자원공사에 부담을 안긴다는 겁니다. 제발 이런 짓 좀 하지 맙시다. 결국은 국민이 갚아야 할 빚입니다. 수자원공사는 어제 만세를 불렀을 겁니다. 정부가 못하는 일을 떠맡음으로써 아주 강력한 공기업으로 남게 됐다는 얘기거든요. 공기업을 통해서 서민을 배려하겠다는 식의 정책도 문제예요. 서민들이 일시적으로 득을 보겠죠. 그런데 결국은 서민들이 그 부담을 다 지는 겁니다.

    소유하되 경영하지 말라

    곽채기 공기업 경영의 탈정치화를 위한 의도적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어렵다면 과감하게 민영화에 나서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지적한 문제는 현재와 같은 시스템으로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고쳐질 수 없는 것입니다. 공기업 경영의 탈정치화를 위한 어떤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담보되지 못한다면 민영화말고는 해답이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현석 전문가들에게 공공기관 선진화에 대한 국민의 기대 대비 만족도가 100점 만점에 몇 점이라고 보느냐고 물었더니 평균점수가 60점도 되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평가하느냐고 물었더니 ‘선진화 계획이 근본적으로 잘못 만들어졌다’‘대통령의 의지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공기업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법률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대통령 직속의 별도 조직 형태로 공기업 개혁 업무만을 담당하는 기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곽채기 정책의 기반을 이루는 철학적 기초가 있어야 합니다. 뉴질랜드는 ‘정부는 공기업을 소유하지만 경영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세웠습니다.

    박진 ‘소유하지만 경영하지 않는다’는 말이 오늘의 논의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경쟁과 시장에 의한 통제가 중요하다’ ‘자율경영을 확대해야 한다’ ‘정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공기업 경영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도 있었습니다. 공기업의 방만함을 탓하지만 사실은 정부에 더 큰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기업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 시민단체, 전문가를 아우르는 사회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장시간 토론해준 네 분의 패널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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