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호

승객 싣고 ‘시운전’ 하는 국산 고속철 ‘올스톱’ 검토할 정도로 치명적 결함

위기의 KTX

  • 배수강 기자│bsk@donga.com

    입력2011-09-19 15:5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로템, “제작·시운전 기간 절대 부족했다”
    • “잘못은 로템이 했는데 욕은 코레일이 먹어”
    • 국익 위해 ‘산천’ 밀었지만 결국 기술력 한계
    • 일각에선 입찰 의혹 제기… “윗선에서 ‘푸시’있었다”
    • 코레일 입찰 평가위원, 로템 점수 만점 수준
    • “로템은 조급, 코레일은 감독 소홀, 정부는 재촉”
    승객 싣고 ‘시운전’ 하는 국산 고속철 ‘올스톱’ 검토할 정도로 치명적 결함
    “순수 국내기술로 연구개발해 설계·제작한 한국형 고속열차가 시속 350㎞대의 시험주행에 성공했다… 육상교통로에서 1초당 97.2m를 주행하는 것은 비행기가 초음속을 기록한 것과 비교될 수 있는 기술력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도 프랑스,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 네 번째로 시험열차 최고 속도를 보유하는 국가가 되면서….”

    2004년 12월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는 ‘한국철도기술의 새 지평을 열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고속열차(HSR-350x)가 시속 352.4㎞를 주파하며 시험주행에 성공했다는 소식이었다. 국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이후 한국형 고속열차는 2005년 3월 시속 350㎞ 주행성능 인증을 받고, 그해 11월 누적 주행거리 12만㎞를 달성한다. 같은 달 호남·전라선 KTX 도입 계획에 따른 공개입찰에 참여, 2006년 6월 100량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상용화에 이른다. 이후 90량, 50량 등 3회에 걸쳐 240량 공급 계약도 맺었다. 2010년 3월 운행을 시작한 ‘KTX-산천(山川)’ 얘기다.

    KTX-산천의 태동은 이처럼 국민들에게 큰 자부심을 안겨줬지만, 기쁨은 거기까지였다. 운행 2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잇따른 고장으로 국민들의 우려를 자아내더니, 급기야 코레일로부터 ‘리콜 요청’을 받았다. 최근에는 고장으로 인한 운임 환불과 이미지 훼손 등을 책임지라며 코레일이 낸 송사에 휘말렸고, 감사원은 지난달부터 대대적인 감사를 진행 중이다.

    한때 국민의 자부심이던 KTX-산천이 지금은 ‘KTX-황천(黃泉)’이라며 조소의 대상이 된 이유는 당연히 잦은 고장 때문이다.



    ‘KTX-황천’ 전락

    승객 싣고 ‘시운전’ 하는 국산 고속철 ‘올스톱’ 검토할 정도로 치명적 결함

    지난 2월 광명역 인근 일직터널에서 발생한 탈선 사고 현장 모습. 선로 유지보수 직원의 실수로 발생했다.

    지난해 9월18일 용산발 목포행 KTX-산천 401열차는 충남 논산역 인근에서 갑자기 멈춰 섰다. 열차 내 화면표시기가 이상을 일으켰기 때문. 응급조치 후 17분 만에 출발했고, 운행을 마치고 정식 수리를 받았다. 하지만 이 열차는 18일 뒤인 10월6일에도 출발 전 트리포드(열차 바퀴에 동력을 전달하는 장치) 고장을 일으켰고, 다시 14일 뒤에는 전력변환 소프트웨어 고장으로 지연 운행을 했다. 불과 30일 만에 고장과 수리를 세 차례 반복한 것. 이 열차는 2010년 4월2일 KTX-산천 열차 중 첫 고장을 일으켰는데, 당시 원인도 운전실 화면표시기 고장이었다.

    KTX-산천 차량 위에 설치돼 전차선과 닿는 ‘팬터그래프’(전기공급 장치)는 중련편성(10량의 두 열차를 이음) 시운전을 할 때 문제가 발생해 제품을 모두 교체했다. 10량 편성 차량에 각 2대의 팬터그래프가 설치됐는데, 중련편성을 하면 전차선이 흔들려 정상모드에서는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장에 대해 당시 일부 철도 관계자는 “단순 고장이 아닌 중대 결함”이라며 제작사의 기술력을 의심했지만, 코레일과 제작사인 ㈜현대로템(이하 로템) 측은 “우려할 만한 수준의 사고가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도입 초기 안정화 단계에는 어느 정도 고장이나 장애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난 5월7일 고양차량사업소에서 KTX-산천 2호기 검수작업 중 모터감속기 고정대 두 곳에서 심각한 균열이 발견되면서 분위기는 바뀌었다. 차량 밑바닥에 있는 모터감속기는 모터블록의 동력을 제어하는 장치로 무게만 약 350㎏에 이른다. 시속 300㎞로 달리다 모터감속기가 떨어졌다면 차체와 충돌해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보고를 받은 코레일은 이 차량 제작 결함을 시정해달라며 로템에 ‘리콜’ 조치했고, 나머지 KTX-산천 18편도 정밀 점검했다.

    자연히 ‘제작 결함’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코레일은 정비를 위해 KTX 개통 7년 만에 축소 운행이라는 수모를 감수해야 했다. 승객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모든 고속열차에 대한 집중 정비에 나선 것이다. 8월에는 그동안 KTX-산천의 고장으로 인해 2억8000만원의 영업손실을 입었다며 피해구상 청구소송을 냈다. 로템은 2건(488만원)에 대해선 지연료를 납부했다.

    승객 싣고 ‘시운전’ 하는 국산 고속철 ‘올스톱’ 검토할 정도로 치명적 결함

    2008년 11월 일반에 공개된 KTX-Ⅱ(현재의 ‘산천’) 1호차.

    코레일에 따르면 KTX-산천은 2010년 3월2일 첫 상업운행을 시작한 뒤 지난 8월31일까지 57건의 크고 작은 고장을 일으켰다. 열흘에 한 번 이상 고장이 난 것인데, 문제는 고장이 모터블럭과 제동 장치, 조종 장치, 전력소자 등 주요 장치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반면 경부고속철 개통 때 들여온 KTX-Ⅰ은 지난해부터 올해 8월까지 47건의 고장을 일으켰지만, 원인 대부분은 부품 불량과 노후화에 따른 것이었다. 현재 국내 고속열차 중 KTX-Ⅰ은 46편성(920량, 1편성 20량), KTX-산천은 19편성(190량, 1편성 10량)이다. 100만㎞당 고장률은 2010년 KTX-Ⅰ이 0.058, KTX-산천이 1.376, 2011년 8월 현재는 각각 0.075, 0.726으로 KTX-산천이 훨씬 높다.

    “KTX-산천 차량결함 개선 시급”

    9월7일 철도안전위원회는 안전 100대 실천과제에 대한 3개월간의 타당성 점검 평가 결과를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2004년부터 운행해 온 KTX-Ⅰ은 부품 노후화로 인한 고장, 국내기술로 제작돼 지난해부터 운행 중인 KTX-산천은 차량결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고장에 대한 개선 조치가 시급하다.”

    KTX-산천의 고장은 설계 및 제작결함이어서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물론 제작사의 주장처럼 도입 초기 일정 기간 안정화 문제는 있을 수 있다. KTX-Ⅰ도 그랬다. 하지만 KTX-Ⅰ은 개통 첫해 81건, 2005년과 2006년 각 50건, 2007~10년 연간 20여 건 등 점차 고장 빈도가 줄어들면서 안정화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KTX-산천의 고장 건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왜 반복해서 고장이 일어나고, 주요 장치에서 제작결함이 발생할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KTX-산천의 탄생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형 고속열차사업은 문민정부 때인 1996년 국가 선도기술개발사업협의회에서 G7 과제로 결정되면서 시작된다. 2000년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핵심 기술 중 하나로 선정된 것인데, 한때는 ‘G7 차량’이라고 불렸다. 경부고속철도 건설을 계기로 우리 손으로 고속열차를 만들자는 기치 아래,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가 총괄하고 지식경제부와 교육과학기술부 등이 협조하는 국가 R·D사업으로 진행됐다. 7년간 2700여 억원을 들여 ‘G7 고속철 기술개발사업’이 진행됐고, 2002년에 시제차량 조립을 마쳤다. 한국형 고속열차(HSR-350x)는 이후 2004년 12월에 352.4㎞ 시험주행에 성공한다. KTX-Ⅱ로 이름 붙여진 한국형 고속열차는 이처럼 국가 R·D 사업으로 탄생한 HSR-350x를 바탕으로 제작된 상업열차였다. 제작사인 로템이 2005년 11월 신규 고속차량 입찰에 참여해 프랑스 TGV를 제치고 상용화에 성공한 것이다. 현재의 ‘KTX-산천’이라는 이름은 KTX-Ⅱ 명칭 공모를 통해 채택했는데,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몸체를 토종 물고기인 산천어처럼 유선형으로 제작한 점을 고려한 것이다.

    KTX-산천의 잦은 고장에 대해 코레일 측은 “로템의 기술력 부족으로 제작결함이 드러났는데 욕은 코레일이 먹는다”며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정인수 코레일 기술본부 차량기술단장의 설명이다.

    “입찰 당시 로템은, 국책 연구개발 수행과제로 개발돼 시험운행 중이던 한국형 고속열차의 주요 장치에 대해 신뢰성을 반드시 확보하겠다는 확약서까지 제출했다. 한국형 고속열차 사업은 연구개발사업에 초점을 맞춰서 실질적인 기술 축적이 안 되었고, 상용화를 위한 검증이 미흡했다. 그럼에도 로템은 36개월 만에 설계 제작 및 시운전을 마치고 납품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설계·제작과정에서 부품 변경을 많이 했고, 신규 개발을 하면서 설계 검증기간이 오래 걸렸다. 검증과정에서 보완사항이 발생해 잦은 설계변경을 초래했고, 초도 편성제품 안정화가 늦어지면서 공장 출고가 늦어졌다. 당연히 시운전도 늦어졌고, 약속한 기한보다 8개월 늦게 납품했다.”

    취재 결과 로템은 납기 지연으로 지체상금(지체보상금) 814억여 원을 문 것으로 확인됐다. 지체상금은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75조(지체상금률) 등에 근거해 산정(납품대가×지체일수×0.15%)된다. KTX-산천의 대당(1량) 가격은 33억1000만원이다.

    그동안 ‘안정화 단계’라고 주장하던 로템도 코레일의 ‘리콜’과 ‘소송’ 이후 적극적인 방어를 넘어 공세적으로 나서고 있다. ‘신동아’가 입수한 로템의 ‘KTX-산천 납기 관련 검토’ 문건에는 납품·시운전 지연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납기 늦어 814억원 물어낸 로템

    “국내·해외 고속철 제작일정과 비교해볼 때 KTX-산천의 제작기간은 현저히 짧았다. 신규 개발된 차량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안정화 기간이 절대 부족했다. 이 때문에 부품 내구성이나 예상치 못한 상호간섭 문제가 다수 발생했다. 프랑스 TGV와 독일 ICE, 일본 신칸센의 경우 제작 일정이 최소 60개월 이상인데, 이 중 설계 제작기간은 33~48개월, 시운전 기간이 16개월 이상이다. 일본은 지진에 대비해 시운전과 안정화 기간에만 28개월이 걸린다. KTX-Ⅰ의 경우 초도편성 시운전 완료시점까지 63개월이 걸렸다. 납품 일정이 지연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KTX-산천은 신규 개발 차량임에도 납기는 36개월(설계 및 제작 26개월, 시운전 10개월)에 불과해 문제가 생겼다는 주장이다. 로템은 또 시운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KTX-Ⅰ은 새로운 고속철도 위에서 시운전을 했지만, KTX-산천의 경우 야간에만 시운전을 해 시운전 기간이 부족했다. 주간에는 일반 영업차량과 함께 운행돼 성능시험을 할 수 없었다. 또 코레일 기관사 부족으로 시운전 중이던 차량의 시험을 중단하거나 착수하지 못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시험항목도 시험운전 시작 직전에 선정해 마찰이 많았다.”

    신규 개발 차량임에도 촉박한 납기로 제작을 서둘렀고, 문제점을 잡아내야할 시운전 역시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얘기. 상용화 이후 잦은 고장 이유를 들여다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KTX-산천의 시운전 기간이 짧아 문제가 발생한 데 대해서는 대체로 인정하고 있다. 철도전문가 A씨의 설명이다.

    “시운전은 거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많은 운행을 통해 드러나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 KTX-산천의 모델인 HSR-350x는 연구개발 차량 아닌가. 많은 부분 설계를 바꾼 상업용인만큼 시운전을 많이 하면서 문제점을 고쳐야 했다. 납품 자체가 늦어지니까 시운전까지 급하게 진행됐다. 낮에 하는 주간 주행시험은 영업차량과 함께 운행해 성능시험을 할 수도 없다. 지금도 승객을 태우고 시운전을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걱정이다.”

    시운전은 공장에서 완성차 시험을 한 뒤 예비주행 시험(기존선)과 운행선로 시운전(고속선)을 거쳐 길들이기 시운전까지 하는 것을 통칭한다. 현재 철도안전법 ‘철도차량성능시험지침’에 따르면 예비주행은 초도편성 5000㎞ 이상, 양산차량 1000㎞ 이상 하도록 돼 있다. 운행선로 시운전은 3만5000㎞ 이상 실시해야 한다. 로템이 처음 공급한 100량은 철도안전법이 발효되기 전의 계약이어서 ‘고속차량제작설명서’에 따라 초도차량(형식시험)은 4만㎞, 양산차량(전수시험)은 5000㎞를 시운전했다. 나머지 90량은 철도안전법이 적용됐다. 하지만 시운전 기준은 최소한의 기준일 뿐이다. KTX-Ⅰ의 경우 초도편성은 10만㎞를 달리면서 문제점을 해결했다.

    철도안전위원회가 9월7일 “새로 제작되는 고속차량에 대해서는 충분한 시험·시운전을 시행해 성능을 확인한 후 운영해야 한다”고 발표한 것도, 시운전 부족이 잦은 고장의 원인이었음을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충분한 시험·시운전’이 뭐냐?”는 질문에는 철도안전위원회도 명확한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고속열차는 주문 생산품이기 때문에 제품이 나오면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3만5000㎞ 정도의 시운전은 문제점을 잡아낼 만큼 충분한 거리”라는 게 코레일 측의 설명이다. 결국 로템의 ‘기술력 부족’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잦은 설계변경으로 제작 지연”

    그렇다면 수백억원의 지체상금을 물고 시운전을 지연시킨 원인인 납품 지연의 구체적 이유는 뭘까. 이 문제 역시 코레일과 로템은 평행선을 달린다.

    로템은 △코레일의 지나치게 많은 협의과정과 설계변경 요구 △G7(HSR-350x)의 새로운 디자인 개념 요구로 초기단계 지연 유발 △주전력변환 장치 전력소자 형식 변경과 모터블럭 사양 변경 요구 △감속장치 승인 과정에서 KTX-Ⅰ의 문제점 개선 요구에 따른 차량 설계 근본 변경 등을 지연 이유로 들고 있다.

    이에 대해 코레일 정인수 단장은 적반하장이라고 반박했다.

    “차량 디자인은 자기네(로템)들도 바꾸려고 했었다. 상업차량은 뭔가 승객이 타는 데 뭔가 매력적으로 만들어야지 R·D 차량 디자인을 그대로 쓸 수 있나? 한국형 고속열차 개발 시운전 결과를 보니 고장이 많아 그대로 양산할 수도 없었다. 1년 뒤 어떻게 될지 신뢰성이 담보되지 않았다. 기업 입장에서야 개발 차량 그대로 가면(상업화하면) 돈과 시간이 절약되겠지만, 운용자 입장에선 다르다. 주전력변환 장치와 제동 장치, 보조블록 장치 등 5개 주요 장치는 로템 측에서 바꾸겠다고 한 것이다. 자신들의 기술력 한계에 대한 변명이다.”

    만약 설계변경으로 납기가 늦어지면 제작사는 납기 연장을 문서로 공식 요청하면 된다. 정 단장의 말처럼 로템은 기한 변경을 요청하지 않았다. 여기에 입찰공고문에도 납기를 36개월로 제한하고 있는 만큼 로템의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승객 싣고 ‘시운전’ 하는 국산 고속철 ‘올스톱’ 검토할 정도로 치명적 결함

    KTX를 이용하는 승객들.

    여기에 KTX-산천 4호와 7호에서 각각 발생한 ‘견인중제동’ 원인에 대해선 아직 원인 파악을 못하고 있다. ‘견인중제동’은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데 브레이크가 자동으로 잡히는 것으로, 열차가 갑자기 서게 된다. 철도 관계자 B씨의 말이다.

    “‘견인중제동’ 뿐 아니라 KTX-산천의 몇몇 고장은 자칫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치명적 결함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컴퓨터 재부팅’하듯 전원을 다시 켜 출발하지만 이는 언제든 다시 고장이 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KTX를 모두 세워서라도 완벽하게 수리하고 안정성을 확인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코레일이 적자가 나더라도 국민들에게 사과와 양해를 구하고 제대로 확인해야지. 중국 고속열차 사고가 반드시 남의 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국토해양부가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경기 부천 소사·국토해양위)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KTX-산천의 모터블록 부품과 공기배관, 고압회로 등 6종류의 장치는 설계를 보완해 교체를 끝냈다. 승객들을 태우고 달리다 고장이 발생하자 설계를 보완해 다시 제작했다는 얘기다. C교수는 “이런 문제는 제품 설계와 제작, 시운전 기간에 충분히 끝냈어야할 일이다. 서두르다보니 꼼꼼한 체크가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국산 KTX 도입 서둘렀다”

    이 대목에서 드는 의문 하나. 코레일 측의 주장대로라면 “충분한 기술력이 없는 로템이 왜 수주했을까”하는, 로템의 주장대로라면 “사전에 납기 기한이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36개월 기한의 입찰공고에 왜 응찰했을까”하는 원초적인 의문이다.

    기자는 KTX-산천의 잦은 고장 이유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대학교수, 전현직 코레일·국토해양부 관계자, 제보자 등 관계자 15명과 대면·전화인터뷰를 했다. 직접적인 고장 원인에 대해선 의견이 나뉘었지만, 상당수가 “우리 기술로 만든 고속열차 상용화를 위해 너무 조급하게 서두른 게 가장 큰 이유”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형 고속열차의 기술력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무리하게 사들인데 따른 필연적 결과라는 주장이다.

    전·현직 철도 관계자 2명의 설명이다.

    “2004년 말은 호남·전라선 고속철 기본계획을 구상하고 수립하는 단계였다. 2008년 경부선의 KTX 수요가 많을 거라고 예측해 KTX-Ⅰ을 경부선에 투입하고, 전라·호남선에는 새 고속열차를 구매하기로 했다. 이때 ‘국내 기술이 만든 KTX-Ⅱ(당시는 HSR-350x, 현재의 산천)가 개발 마무리 단계이니 기다려 달라’는 ‘사인’이 왔다. 우리는 KTX 도입 관련 기술용역을 의뢰했고, 이를 바탕으로 2005년 11월 입찰공고를 냈다. 당시 KTX-Ⅱ는 2007년까지 시스템 안정화를 위해 시스템 기능과 성능을 개선 중이었는데, 완벽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KTX-Ⅱ가 낙찰받은 것이다. 우리 기술로 만든 고속철이 상용화된 것은 박수칠 일이지만, 테스트가 끝나기도 전에 구매계약을 체결한 데 대해 말이 많았다. 고속철을 만든 지 40년이 넘은 일본도 3년 전 시속 300㎞를 넘겼는데 우리는 350㎞(KTX-산천 운행 속도)라는 숫자에 집착해 개발을 서두른 면이 있다.”

    “당시에는 전반적으로 국익을 위해 한국형 고속열차를 밀어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윗선으로부터 ‘국가 장래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푸시’도 있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한국형고속열차가 완전히 개발됐느냐는 의구심이 많았다.”

    이 관계자는 누가 ‘푸시’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부 고위관리”라고 짧게 말했다.

    수천억원을 들인 한국형 고속열차가 결실을 맺는 상용화는 분명 국익에 도움이 된다. 국산화율 87%를 자랑하는 KTX-산천의 상용화는 국내 철도산업에게 분명 기회다. 하지만 국익에 치우쳐 충분한 기술력 검증 없이 서둘러 상용화에 나섰다면 얘기가 다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승객과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한국형 고속열차의 응찰 과정을 살펴보면 오비이락(烏飛梨落)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먼저 한국형 고속열차가 2005년 11월 누적주행거리 12만㎞를 달성한 시기에 코레일은 ‘신규 고속차량 100량 입찰 긴급공고’를 냈고, 로템은 12월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다.

    당시 12만㎞를 돌파하며 신뢰성을 확보했다는 점은 입찰에서 하나의 장애물을 치운 격이었다. 이 입찰을 위해 펴낸 ‘신규 고속차량 도입사업 평가용역 최종보고서’(2005년 3월)에도 한국형 고속열차 도입 시 문제점으로 ‘신뢰성 검증시험운행 중’이 꼽혔기 때문이다.

    당시 공고문의 입찰 참가자격을 놓고도 설왕설래가 많았다고 한다. 입찰 공고문에는 ‘300㎞/h 이상의 고속차량 제작 또는 공급사업의 경험을 가진 자로서 입찰참가 신청 시 납품실적증명서 또는 계약서 및 이에 준하는 정부기관에서 발행하는 증명서를 제출하는 자’라고 규정돼 있다. 코레일은 ‘300㎞/h 이상의 고속차량 제작’은 로템을 염두에 둔, ‘공급사업의 경험을 가진 자’는 프랑스 알스톰사(당시 ‘유코레일’이라는 한국 에이전시를 앞세워 입찰 참여)를 염두에 둔 공고문이라고 설명한다. 최소 두 곳 이상이 참여해 경쟁을 해야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로템’ 밀어주는 분위기”

    그렇다면 로템은 당시 300㎞/h 이상의 고속차량을 제작한 경험이 있다고 봐야할까? 철도관계자들끼리도 의견이 나뉜다.

    “KTX-Ⅰ 46편성 중 12편성은 알스톰사에서 조립돼 들어왔고, 34편성은 로템이 부품을 들여와 조립한 것이다. 알스톰사는 원천 기술은 가르쳐주지 않았고, 대부분 조립 기술만 가르쳐줬다. 분해해서 만든 것을 제작 경험으로 볼 수 있을까?”(철도관계자 D씨)

    “100% 조립 경험이 있어도 제작 경험이 있다고 본다. 현대차가 협력사 부품을 받아 조립하지 않나.”(정인수 기술본부 차량기술단장)

    이보다 중요한 것은 입찰 당시 한국형 고속열차는 2007년까지 시스템 기능과 성능을 개선 중이었다는 점이다. 코레일은 “이후 성능 개선일정을 앞당겼다”고 말하지만, 완벽한 성능 개선이 되지 않은 차량을 모델로 양산하면 그만큼 보완작업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신동아’가 단독 입수한 ‘입찰 기술평가 결과’(신규 고속차량도입사업 기술평가 결과 보고) 문건에는 코레일 소속 평가위원들의 로템 평가점수가 전체 평가위원 평균점수보다 높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2005년 11월29일~12월1일 실시된 ‘신규 고속차량 도입사업 입찰제안서 기술평가’에서 평가위원 17명(코레일 소속 6명, 외부인사 11명)의 점수는 로템이 75.3점, 유코레일(알스톰사의 한국 에이전시) 63.8점이었다. 코레일 소속 평가위원 6명 중 5명의 로템 평가점수는 평균점수(75.6점·80점 만점 기준)보다 높았고, 코레일 소속의 한 평가위원은 만점에 가까운 79.3점을 줬다. 최근 잇따른 고장을 감안하면 기술평가의 신뢰성에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 반면 한 교수는 유코레일을 높게 평가해 코레일 소속 위원들과 대조를 이뤘다. 당시 입찰에서 기술평가점수(80점)는 가격평가점수(20점)에 비해 훨씬 높은 결정적인 기준이었다. 기술평가에 참여한 E씨의 말이다.

    “왜 그렇게 (한국형 고속열차 도입을) 서둘렀는지 모르겠다. 충분한 검증을 하지 못했다는 데는 공감한다. KTX-Ⅰ이 잘해줘 국민들 기대치가 높아져 그 기대치에 무리하게 맞추다보니 시운전도 짧아진 거 같다. ”

    이에 대해 당시 건설교통부 고위 관리였던 F씨는 ‘신동아’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알스톰사의 TGV는 기본 20량 편성이어서 호남선처럼 승객이 적은 노선에는 적절치 않았다. 한국형 고속열차는 기본 10량 이하로 편성할 수 있어 우리 실정에 맞았다. 한국형 고속열차가 상용화되기를 바라고 적극적으로 추진한 건 사실이다. 아무리 완벽하게 하더라도 문제점은 있지 않나. 책임 공방을 떠나 완벽하게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 그는 “‘적극 추진’이 ‘입찰 과정의 관여’를 의미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기억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KTX 세운다는 각오로 해결 나서야”

    한 코레일 관계자는 “현재 감사원에서도 KTX-산천 도입과정에 대해 감사 중”이라면서도 “결국 정부는 재촉했고, 로템은 조급했고, 코레일은 감독을 소홀히 한 결과”라고 결론지었다.

    어쨌든, 한국형 고속열차는 현재 KTX-산천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달리고 있다. 정부와 제작사, 운용기관이 지금부터라도 머리를 맞대 이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이유다.

    차명진 의원은 “정부와 코레일, 로템은 남 탓 할 때가 아니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KTX 차량을 모두 세운다는 각오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한다”며 “KTX-산천의 치명적 결함 원인과 도입 과정의 의혹은 국정감사 등을 통해 끝까지 파헤칠 것”이라고 말했다.

    한 가지 더. 만약 정부와 코레일, 로템이 2005년 ‘신규 고속차량 도입사업 평가용역 최종보고서’를 보다 꼼꼼히 읽었더라면 오늘날의 사태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듯하다. 6년 전 용역보고서의 제안은 마치 현재의 KTX-산천 사태를 예견한 듯 한 글자 한 글자가 가슴을 친다.

    “국책사업으로 개발한 한국형 고속열차는 현재 시스템 안정화 사업으로 신뢰성 검증 중에 있다. 상용화에 따른 성능 및 신뢰성 향상을 위한 기술협력이 필요하고, 상업운행 시 예상되는 위험요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시제차량의 충분한 검증절차가 이뤄져야 한다. 우리나라의 고속차량 기술 향상 및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해 국익차원에서 (한국형 고속열차) 도입을 검토할 때는 신뢰성 및 성능검증, 제작기간, 가격 등의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