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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첫 항공모함 바랴크

군사적 의미보다 상징적 효과 운용비 조달, 조종사 훈련… 산넘어 산

  • 유동원 | 국방대 교수∙안보문제연구소 안보정책연구센터장 dwyoo21@mnd.go.kr

중국 첫 항공모함 바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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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중국 해군사령관 바뀔 때마다 ‘잠수함파’와 ‘항모파’ 대결
  • ● 에너지 운송 위해 해상교통로 관심 급증…원양작전용 항모 관심
  • ● 미 국방부 보고서 “주로 비행훈련용으로 사용될 것”
  • ● ‘한중국방전략대화’ 통해 군사투명성 요구하고 한미교류 강화해야
중국 첫 항공모함 바랴크

중국의 첫 항공모함인 바랴크함. 내년 8월 정식 취역하면 청나라 제독 이름을 딴 ‘스랑(施琅)’으로 이름이 바뀐다.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이하 항모) 바랴크(Varyag)함이 8월10일 시험 항해에 나섰다. 옛 소련이 건조하다가 중단한 쿠즈네초프급(6만7500t) 항모를 2000만달러에 사들여 10년 동안 개조한 것이다. 갑판 길이 302m, 최대 속력 29노트에 항공기 52대를 탑재할 수 있는 이 항모로 중국은 10번째 항모 보유국이 됐다. 여러 차례의 테스트를 거친 중국 최초의 항모는 2012년 8월1일 건군 기념축제 때 정식으로 출항할 예정이다. 현재로서는 바랴크함은 남해 함대에 배치될 예정인데, 항모가 배치되면 중국은 해양 전투 영역을 확장하고 방어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베트남이나 필리핀으로서는 상당한 위협 대상이란 의미다. 따라서 베트남은 항모를 운용 중인 인도에 기지를 제공하겠다고 밝히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일본을 자극해 동북아의 군비 경쟁을 촉발시킬 수도 있다. 국제사회 역시 항모의 건설과 운용, 그리고 다른 장비들의 구성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됨에도 불구하고 힘의 투사능력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의 이러한 의도에 대해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항모의 함재기인 J-15의 전력화 문제, 항모 갑판 조작과 함재기 조종사 훈련, 항모전투단 편성, 전략·전술 운용 등에서 경험 부족으로 인해 전문가들은 중국이 유의미한 전투력을 갖춘 항모 전단을 꾸리는 데에는 최소한 8~1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따라서 중국의 첫 항모 보유는 군사적 의미보다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입을 모은다. 왜 그럴까.

연해방어→근해방어→원양(遠洋)작전 전략

중국의 본격적인 해양 전략은 덩샤오핑(鄧小平)의 대외 개방정책의 등장과 더불어서 대두됐다. 중국 지도자들은 안보적 측면에서 대만문제와 경제발전을 위한 해양권익 보호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중국의 해양 전략과 현대 해군력 건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류화칭(劉華淸) 전 해군사령관. 류 전 사령관의 재임기간(1982~87)은 중국 해군의 현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해군 발전과 국가전략의 관계, 그리고 해양 권익의 중요성을 재정립해 중국 해군의 발전방향을 제시한 그는 해군력 건설에 “전자화, 자동화, 미사일화”를 강조한 인물이다. 그는 ‘적극적 근해방어 전략’을 수립했는데, 이는 과거 연안 방어를 중점으로 하는 ‘연해방어전략’으로부터 해안에서 보다 멀리 떨어진 수역에 대한 ‘근해방어전략’으로 방어중심을 확대한 것이다. ‘적극적 근해방어전략’의 핵심은 배타적경제수역(EEZ)을 포함한 중국의 주변 수역과 보다 넓은 수역을 대상으로 한 반접근(anti-access) 전략으로, 쿠릴열도-일본본토-류큐열도-대만-필리핀-보르네오를 연결하는 일종의 가상적 해상 방어선인 ‘제1 열도선(first island chain)’을 통제하는 것이다. 대만과의 통일, 남중국해 해상교통로의 확보 및 해양자원의 보호가 핵심 목표다.

중국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는 적극방어전략을 수행하기 위해 해상함대와 잠수함 전력 강화에 집중했는데, 주로 크루즈미사일과 기뢰 및 잠수함 개발을 통해 제1 열도선 접근을 막는 능력 개발에 집중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고도성장에 따른 에너지 수요 급증으로 해상교통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중국은 원양(遠洋)작전 전략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는 ‘제2 열도선’ 지역까지 해군력을 투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2 열도선’은 쿠릴열도-일본본토-보닌제도-마리아나제도-캐럴라인제도-인도네시아 동부를 연결하는 서태평양 해상 라인. 2015년에 석유 소비의 3분의 2, 2030년에는 5분의 4를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중국이 말라카 해협과 남중국해 등 중국 해군의 직접 통제를 벗어난 해양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겠다.

이처럼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해외시장과 해외자원에 대한 의존이 심화되자 해군력 증강이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그 핵심내용은 구형 함정 폐기와 신형 함정 대체, 잠수함 세력의 확장, 항모 도입, 기동함대의 운영 등이다. 특히 중국은 미사일과 잠수함을 통한 경쟁자들의 제2 열도선 접근 거부능력이 제한적이라고 판단하고, 항모 건설을 통해 제2 열도선 지원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잠수함파’와 ‘항모파’간 힘겨루기

중국의 항모 개발은 중국 국내외에서 활발한 논쟁거리다. 중국은 1980년대부터 항모 건설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개발하려고 했으나, 경제적 능력을 이유로 보류됐다. 1996년 대만해협 위기 이후 항모 건설을 주장하는 스윈성(石雲生)이 중국 해군사령관이 되면서 항모 건설론이 다시 대두됐다. 그러나 중국 해군 내부에 존재하는 ‘잠수함파’와 ‘항모파’간의 논쟁이 격렬히 진행됐고, 현재는 잠수함과 항모의 병존을 꾀하는 추세로 발전 중이다.

중국 항모 발전의 아버지는 류화칭으로, 그는 2004년 발간된 회고록에서 “해군사령관으로 재직하던 1980년대 항모 건설 가능성을 검토했지만, 당시 중국 경제역량이 부족해 항모 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경비를 감당하지 못했다”고 썼다. 그는 항모 건조는 차후에 고려하고 먼저 그에 대한 사전연구를 진행한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1985년 이래 외국에서 이미 폐기된 4척의 항모를 들여와 항모의 기본구조를 연구하도록 했다. 이 시기 중국의 항모 수준은 이론적 연구에서 항모 건조와 기술을 논하는 단계로 발전했고, 해군의 전략은 연안 방어에서 근해 방어로 전환되고 있었다. 그러나 항모 필요성에 대한 절박함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류 전 사령관은 항모 제작에 필요한 특수 장비를 연구하기 위해 관련 전문가들을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에 파견해 각국의 항모를 고찰하도록 했다. 그러나 1988년 1월 그가 은퇴한 뒤에는 잠수함파인 장롄중(張連忠)이 1996년 12월까지 9년간 해군사령관을 역임하면서, 중국은 잠수함 개발에 진력해 잠수함의 중흥기를 맞았다. 결국 1980~96년은 항모의 가능성을 타진한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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