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호

자주 시청하면 성격 버리는 불량품

방송 3사 TV토론 품질

  • 김동률│서강대 MOT대학원 교수·매체경영학 yule21@empas.com

    입력2011-09-21 10: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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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상급식과 같은 중요한 사회이슈가 나올 때마다 공중파 방송의 TV토론은 오세훈 전 시장이나 곽노현 교육감 같은 당사자를 불러내 화제를 만들어낸다.
    • TV토론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공론장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거의 평가받지 않았다. TV토론에 불려나온 일부 당사자 사이에서는 “OO방송 TV토론에 괜히 나갔어” 등의 불만이 나오기도 한다.
    • KBS MBC SBS의 TV토론 품질을 평가해봤다.
    자주 시청하면 성격 버리는 불량품

    SBS-TV토론에 출연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왼쪽)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미디어 민주주의(media democracy)는 종종 미디어 파시즘(media fascism)이 된다. TV토론의 경우 특히 그러하다.

    시민의 이성적 판단을 위한 숙의 공간인 TV토론이 일차원적 이미지 게임이나 권력의 확장 수단으로 사용될 때 미디어 민주주의는 미디어 파시즘으로 전락한다. 서양 속담에 ‘혀는 강철이 아니나 사람을 벨 수 있다(The tongue is not steel, yet cuts it)’라는 말이 있다. 말이 가지는 가공할 위력을 나타내는 메타포(metaphor·은유)다.

    필자가 KBS, MBC, SBS의 TV토론 프로그램을 분석해본 결과 “이들 공중파 방송 3사의 TV 토론은 미디어 파시즘의 경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미디어 민주주의를 구현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 도출되었다.

    방송 3사의 TV토론을 본 시청자 중 상당수는 이러한 결론에 동의할 것이다. 확실히 방송 3사의 TV토론은 “볼 것 없는 토론” “알맹이 없는 말장난” “질문의 본질을 회피하는 말의 성찬” “말재주꾼들의 경연장”에 그치는 양상을 드러낸다.

    기계적 중립에 매몰된 토론 시늉



    그래서 횟수를 거듭할수록 TV토론 무용론이 커진다. 시청률도 제자리걸음이거나 떨어지는 상황이다. TV토론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후진성을 드러내는 극명한 사례라는 평가가 나올 법하다. 특히 사회자가 기계적인 중립성과 공정성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토론 시늉에 그치는 토론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TV토론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것이다. 참여 민주주의에서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에 관한 논쟁에 일반 공중이 참가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보면 볼수록 짜증나지만 그래도 TV토론이 현대 사회에 필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실제 TV토론은 공인에게는 사회적 책임을 인식시키고 시청자에게는 알 권리를 증진시키는 기능을 일정 부분 하고 있다.

    이러한 TV토론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기대는 토론이 이른바 사상의 공론장(public sphere)을 구현할 수 있는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하버머스에 의하면 공론장은 사적 개인이 모여 공적 문제를 토의하는 공간, 비판적 합의를 형성해내고 국가로 하여금 시민에 대해 책임지게 함으로써 권력에 잠재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간으로 설명된다.

    환상과 속임수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오늘날 TV토론이 일방적 홍보의 장으로 전락함으로써 공중의 관심을 정치적 행위에서 오히려 멀어지게 하는 유사 공론장(pseudo-public sphere)이 되고 있다고 본다. 하버머스는 미디어가 공중을 수동적 방관자로 전락시키고 합리적 의견을 형성할 수 없는 사적이고 파편화된 개인을 만들어냄으로써 여론을 조작한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지금의 TV토론에 적용될 수 있다. TV토론은 시청자에게 공적 문제에 대한 논의에 자신이 참여하고 있다는 ‘환상’만을 심어주고 있다. 수동적인 대중 시청자를 사로잡는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좀 더 심하게 말한다면 토론 프로그램의 일반 참여자들은 정보 전달자의 역할이 아니라 피(被)전달자로서 설득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래서 비판자들은 TV토론 프로그램이 방송사에서 구성해놓은 포맷에 의해 진행될 뿐이라고 말한다. 미디어 파시즘의 연장이라고 보면 된다.

    이 같은 관점에서 공중파 방송 3사의 TV토론 프로그램이 사회적 이슈에 대한 공중토론의 기회를 얼마나, 어떻게 제공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하겠다. 이를 사회자, 패널, 진행방식과 토론이슈 영역별로 살펴봤다.

    1. 사회자

    방송 3사의 토론 프로그램에서 사회자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사회자는 프로그램의 인상에 큰 영향을 주고 토론의 시작부터 끝까지 요점을 잡아가는 권위자로서 원 샷 프레임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자는 패널의 토론이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면서 대립되는 견해로 인한 갈등과 인신공격, 말싸움 등을 중재하고 결론을 유도하는 게이트 키퍼(gate-keeper) 기능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한 정치적 중립성,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SBS 시사토론은 김형민 앵커, MBC 100분토론은 황헌 진행자, KBS 심야토론은 왕상한 교수가 사회를 맡고 있다. 이들은 노련한 경험을 바탕으로 비교적 무난하게 토론을 이끌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토론이 과열되거나 발언권 다툼이 심한 경우 그 한계를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예를 들어 SBS ‘시사토론’ 290회의 무상급식 토론이나 MBC ‘100분토론’ 522회의 교육감 선거비리의혹 토론, KBS ‘심야토론’ 9월3일자 방송분의 한미 FTA 국회 비준 토론의 경우 이들 사회자는 한마디로 감정적인 난상 토론에 들어간 패널들을 컨트롤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지켜보는 시청자가 불쾌할 정도로 패널 간에 고성과 원색적인 말들이 오고 갔지만 사회자는 한풀 꺾인 뒤, 뒤늦게 끼어드는 형국이었다. 물론 토론 프로그램의 경우 패널 간에 열띤 토론이 벌어질 때 시청자의 몰입도가 껑충 뛰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패널이 지나친 말다툼, 말꼬리 잡기에 급급하다면 이를 정리해줄 사회자의 싸늘하고도 엄격한 권위가 필요하다 하겠다.

    단지 이 같은 관점에서만 평가한다면 과거 손석희 아나운서의 냉정한 진행이 돋보일 수 있다. 현 방송 3사의 경우 과도하게 흥분하는 패널에 대한 사회자의 장악력이 현저히 떨어져 시청자의 조바심을 자아내고 있다.

    특히 방송 3사 TV토론의 사회자는 공통적으로 최소 개입 원칙에 따르고 있다. ‘공정한 중재자’ 역할에만 그친다. 편파성의 시비에서는 비록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논의의 깊이를 더하고 토론을 활성화하는 데에서는 한계를 보인다. 사회자는 욕을 먹더라도 한층 적극적으로 토론에 개입해 날카롭게 질문하고 문제점을 제기함으로써 토론에 불을 지르는 역할(firebrand in the first row)을 할 필요가 있다.

    덧붙여 방송 3사가 예외 없이 남성에게 진행을 맡기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공중파 방송 3사의 TV토론이 ‘남성 엘리트 중심주의’라는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지배 코드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는 상징적인 증거다.



    2. 패널

    패널은 시청자의 관심을 붙잡는 결정적 인물이다. 많은 시청자는 토론 주제보다는 패널로 누가 나오느냐에 상대적으로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SBS 시사토론의 경우 시청률이 대개 1~2% 전후에 그치고 있지만 오세훈 전 시장과 곽노현 교육감이 출연한 290회와, 김문수 경기지사와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격돌한 234회에선 시청률이 서너 배 급등했다. 이는 패널의 중요성을 웅변하는 증거다. 대중은 무엇을 토론하느냐보다 누가 토론하느냐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고 보면 된다. 이 같은 시청자의 기대를 채워주기 위해서는 패널 선정에 적잖이 공을 들여야 하고 이는 결국 토론 성공의 열쇠가 된다.

    대다수 방송사는 기존의 방송 노출로 검증된 무난한 패널을 섭외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모험을 싫어하는, 달리 말하면 실패를 두려워하는 텔레비전의 한계, 특히 생방송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공중파 방송의 토론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패널 중엔 눈에 익은 단골손님이 많다.

    남성, 전문가, 엘리트 위주로 짜이는 패널 구성에도 반성의 여지가 있다. 한마디로 기득권 세력의 공론장일 뿐 일반인의 공론장은 아니라는 인상을 준다. 실제로 방청석의 일반인 참여자는 부차적이고 종속적으로 그려진다. 소수 기득권자 중심의 토론은 대중의 민주적인 참여와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관점을 드러내는 데에는 치명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패널과 관련한 또 다른 문제는, 쟁점에 대해 이해 당사자들이 패널로 출연하는 경우 자신이 속한 이해집단이나 정당의 주장만을 억지 강변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결론 도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잦다. 토론이 있으되 아무런 소득이 없는 토론이 된다. 갈등 해소가 아닌 갈등의 존재를 재삼 확인하는 것에 그친다. 그래서 현명한 시청자는 출연하는 패널만 봐도 토론 결과를 예측할 수 있으며 이 예측은 거의 빗나가지 않는다.



    3. 진행 방식과 토론 이슈

    일반적으로 TV토론은 주제 선정, 진행 방법, 방송 시간대, 방송 분량, 토론 참여자의 성격, 사회자의 퍼스낼리티, 일반 시청자의 구성과 참여 정도에 따라 형식과 내용에 많은 차이를 드러낸다. 그러나 방송 3사 TV토론의 경우 대부분 시사적인 주제, 심야시간대 편성, 생중계, 찬반토론 양식 등 천편일률적 포맷을 지니고 있다. 스튜디오 패널 토론 위주로 진행하면서 시청자와 방청객의 의견을 중간에 삽입하는 것까지 똑같다. 특히 미리 짜놓은 순서에 맞춰서 발언하는 형식으로 토론을 진행함으로써 자유로운 논쟁으로 전개되기 어려운 구조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덧붙여 방송 3사 TV토론의 두드러진 특징은 정책토론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정책의 문제인식과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정책토론이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논하는 가치토론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정책토론과 가치토론의 가장 큰 차이는 해결방안의 존재여부인데 정책토론은 정책으로 집행할 수 있는 해결방안이 반드시 내재되어야 한다. 이에 비해 가치토론은 논제의 성격상 해결방안의 제시가 불가능하다. 방송 3사 TV토론은 정책토론에 지나치게 치중하면서도 해결방안에 대한 공감대가 도출되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방송 3사 TV토론은 정책토론의 주제 대부분을 정치 현안으로부터 끌어온다. 자연히 정치인 또는 정치 관련 인사들이 단골로 참여한다. 따라서 토론 프로그램이 그들만의 리그로 꾸려진다. 패널의 토론 내용에서도,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주제의 핵심에 대해 주장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작은 모순을 이용해 되레 공격하는 극히 지엽말단적인 논박이 주를 이루고 있다.

    긍정과 부정으로 대립되는 양측이 주어진 주제에 대해 논거에 의한 주장, 이에 대한 검증, 논쟁을 되풀이함으로써 이성적인 판단을 도출하고자 하는 토론의 원래 기능과는 애시당초 거리가 멀다.

    이러한 이유로 방송 3사 TV토론은 지나치게 정치적인 논쟁에 경도되어 있고 기계적 중립의 미명하에 시시비비를 가려주는 합리적 이성을 발휘하지 못함으로써 이러한 논쟁에 매몰되고 마는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정치인, 정당 관계자, 이념단체 당사자 등 편향된 출연진이 서로 싸우면서 편 가르기 식 흑백논리만을 시청자에게 주입하는 양상이 되풀이된다. 같은 이치로 방청석이나 시청자 참여 코너도 비슷한 편 가르기에 그치게 됨은 물론이다.

    미국 TV토론의 경우

    자주 시청하면 성격 버리는 불량품

    2009년 9월24일 미국 뉴욕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에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 허리케인 피해주민 디어드라 테일러(왼쪽부터)씨가 토론하고 있다.

    그렇다면 외국의 TV토론 프로그램은 국내 방송3사 TV토론과 어떻게 다를까. 국내 방송3사 TV토론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의 TV토론 프로그램은 대개 일요일 오전 시간대에 편성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 토론 프로그램이라고는 하지만 성격이나 타이틀은 시사토크쇼에 가깝다. 그리고 진행자의 지명도가 토론 시청률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오프라 윈프리 쇼나 래리 킹 라이브처럼 진행자가 토크쇼를 좌지우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정통 시사토론 프로그램은 진행자의 후광에서 벗어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대표적인 TV토론 프로그램으로는 NBC의 ‘언론과의 만남(Meet the Press)’, ABC의 ‘이번 주(This Week)’, CBS의 ‘페이스 더 네이션(Face the Nation)’이 꼽힌다. 이외 폭스뉴스(Fox News)나 CNN의 프로그램이 뒤를 잇는다. 일요일 오전 TV토론 프로그램을 안 보면 워싱턴DC의 월요일 아침 커피 브레이크에서 따돌림을 당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이 정도로 미국 TV토론 프로그램은 미국 지식인 집단에서는 신뢰와 인기를 얻고 있다. 이 때문에 대통령을 위시한 거물이 TV토론에 서로 출연하려고 경쟁하는가 하면 반대로 출연 요청을 거절하기 위해 온갖 핑계를 대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NBC의 언론과의 만남은 1947년 11월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다. KBS의 ‘일요진단’은 한국판 언론과의 만남이나 다름없다. 시간대뿐만 아니라 포맷까지 그대로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언론과의 만남의 진행자이던 팀 루서트(Tim Russert)는 2008년 12일 방송녹화 도중 과로로 쓰러져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는 생존 시 최고의 정치 전문기자이자 명(名)사회자로 이름을 날렸다. 가장 부드러운 질문법으로 가장 날카롭게 출연자를 궁지로 내모는 테크닉으로 유명했다.

    ‘편안한 도살장’으로 불리는 언론과의 만남은 국내 TV토론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정 이슈에 대한 심층 분석과 해설이 중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저널리스트, 정치인, 전문가 그룹을 게스트로 초청해 진행된다. 국내 방송처럼 상반되는 의견을 지닌 사람들을 출연시켜 주제에 대한 찬반토론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게스트와의 인터뷰 형식을 고집하고 있다. 미국 TV토론은 미국의 중요한 이슈에 대해, 찬반양론의 기계적 균형 맞추기 대신, 그 이슈의 본질적 핵심이 무엇인지, 그 해답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통찰력 있게, 설득력 있게, 시청자에게 제시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특징적이다.

    시청자에 미치는 해악

    미국 TV토론과의 비교에서도 국내 방송 3사 TV토론이 사회 공론장 구실을 하는 데 미흡하다는 점이 나타난다. 민감한 사회 이슈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진행상 여러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가장 두드러진 문제점은 대립적인 두 집단의 갈등과 의견 차이만 부각하고 해결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MBC 100분토론 522회에 패널로 나온 최재천 전 민주당 국회의원은 곽노현 교육감의 비리의혹 사건에 대해 오세훈 시장 사퇴로 궁지에 몰린 한나라당, 정치검찰, 보수세력이 반격에 나선 것에 불과하다고 단 한마디로 정리해버린다. 자연히 이후의 토론은 보혁 간 분쟁, 정당 간 말싸움에 그치고 만다. 따라서 정형화되고 도식화된 지금의 찬반토론 형식에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토론 주제는 보수, 진보가 부딪칠 수밖에 없는 정치 경제 현안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 따라서 시청자도 덩달아 전투에 임하는 자세로 토론을 지켜보게 된다. 이렇게 긴장되고 불편한 토론이 주를 이룬다. 공중의 다양한 관심 분야나 실생활에 밀접한 주제를 반영하는 데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토론 주제를 선정할 때부터 합의 도출이 거의 불가능한 주제를 잡아 서로간의 말싸움으로 끝을 맺으려 작정하는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공중파 방송 3사의 TV토론을 지속적으로 시청하는 경우 시청자의 성격이 냉소적으로 바뀌는 상황이 나타나게 된다. 시청자는 토론 시청을 통해 통쾌함이나 후련함을 느끼기보다는 마음이 불편해지고 무거워지는 것이다. 방송은 현실보다 더 생생한 리얼리티, 이른바 슈퍼 리얼리티(super reality)를 준다. 냉장고에 있는 사과보다도 TV에서 육감적인 미인이 한입 베어 먹는 사과가 훨씬 맛있어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토론 프로그램이 소모적인 논쟁에 그칠 때 시청자는, 나아가 국민은 사회에 대한 냉소나 부정적 감정을 더 키우게 된다. 심할 경우에는 ‘우리는 안 돼’와 같은 허무주의에 빠지고 만다.

    자주 시청하면 성격 버리는 불량품
    김동률

    1960년 생

    고려대 문과대 졸업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저널리즘 박사

    前 경향신문 기자

    前 KDI 연구위원

    現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지금의 방송 3사 TV토론은 파당적 암투와 문제해결의 부재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시청자를 시사 이슈나 토론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만든다. 시청자가 차라리 오락 프로그램이나 스포츠를 더 탐닉하는 이반(離反) 현상이 나타난다. TV토론은 두 얼굴을 가진 괴물이고 우리에게는 그 괴물을 새겨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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