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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 바퀴벌레 나왔다고 전화해도 달려갑니다”

잔심부름 대행업 천태만상

  • 박은경│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주방에 바퀴벌레 나왔다고 전화해도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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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시콜콜한 일상의 불편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이가 많아지면서 ‘생활밀착형 편의대행 서비스’ 일명 ‘잔심부름 대행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 기존 심부름센터나 택배 전문업체와 달리 ‘생활 편의’라는 틈새시장을 공략해 비약적으로 성장 중인 신종 산업의 실태를 들여다봤다.
“주방에 바퀴벌레 나왔다고 전화해도 달려갑니다”

귀차니스트의 불편함을 해결해주는 잔심부름 대행업체의 서비스 범위는 청소, 장보기부터 공과금 납부, 벌레 잡아주기 등까지 한없이 넓다.

△ 원룸 2층에 사는데 싱글 침대를 버려야 한다. 1층 현관 앞까지 내려달라.

△ 거실에 액자를 걸어야 한다. 드릴 가져와서 못 좀 박아달라.

△ 비즈니스 미팅이 있어 카페에 갔는데 휴대전화를 놓고 왔다. 지금 당장 갖다달라.

△ 우리 개를 단골 애견숍에 데려가 손질해달라. 올 때 개 기저귀도 한 팩 사와라.

△ 로또 복권 5장을 구입해달라.

△ 주방에 바퀴벌레가 돌아다닌다. 지금 당장 빨리 좀 와라.

한 잔심부름 대행업체에 접수된 심부름 사례들이다. 잔심부름 대행업체가 생겨난 건 2000년대 중반부터. 잔심부름 경력 5년차인 김성도(32)씨는 “유흥업소가 밀집한 강남 지역에서 업소 여성들을 대상으로 일상의 자잘한 부탁이나 심부름을 대신해준 것이 시초”라며 “초기에는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10여 개에 불과하던 업체가 3~4년 전부터 전국적으로 확산돼 지금은 20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잔심부름 대행업은 최근 2~3년 사이 가장 빠르게 성장한 분야일 것”이라며 “갈수록 시장은 더 커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관련 업체의 온라인 사이트 게시판에는 “광주에 지점을 내고 싶다” “부산에 대리점을 내려면 비용이 얼마나 드나”와 같은 문의가 수십 건씩 올라와 있다.

잔심부름 범위에 대한 문의도 많다. “우리 아파트 경비실에 누군가 착오로 물건을 잘못 맡겨놓았다. 지방에 있어 며칠 동안 못 올라가는데 생선이라고 한다. 누가 좀 대신 버려줬으면 좋겠는데 이런 서비스도 가능한가?” “근무하던 숍에 사표를 던지고 무단결근했다. 다시 가고 싶지 않으니 내 책상 짐 좀 챙겨줬으면 좋겠는데 가능한가” 등이다. 물론 가능하다. 티켓 구입을 위한 줄서기, 처방전으로 약국에서 약 사오기, 경조사 돈봉투 전달하기, 쓰레기 분리수거, 민원서류 발급, 은행 계좌이체, 공과금 내주기 등 불법만 아니라면 웬만한 심부름은 다 하는 것이 잔심부름 대행업체의 특징이다. 출근 전 아침이면 업체마다 하루 한두 건씩 다급하게 걸려오는 전화가 있다. “술 마시고 눈을 떴는데 차가 없다. 여기 와서 열쇠를 받아다가 술집에 세워둔 차를 가져다달라. 술집 위치는 정확히 모르겠고 대충 ○○역 주변에서 찾아봐라.” 그러면 서비스맨이 출동한다.

“나는야 만능맨”

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워킹맘’이나 유아를 키우는 주부, 미혼 직장인들을 위한 장보기 대행 서비스다. 이 때문에 업체 게시판에는 ‘장보기 대행’ 일자리를 구하려는 주부들의 글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도곡동에 거주하는 45세 주부다. 장보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은데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월 소득은 얼마쯤 되나?” “34세 여자로 장보기 부업을 하고 싶다. 차량도 있는데 일을 줄 수 있나?”

최근에는 애완동물 관련 심부름도 늘고 있다. 애견 미용 대행부터 병원 진료까지 부탁하는 이가 많아져 아예 회사에 애완동물 캐리어를 여러 개 비치하는 업체가 생겼다. 성형과 다이어트 등 미용 관련 병원이 밀집한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다이어트 처방전을 받아 약을 사다달라는 주문도 많아지는 추세다.

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잔심부름 대행 서비스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로 늘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의 바쁜 생활, 독립해 혼자 사는 미혼 여성의 증가, 그리고 힘들고 귀찮은 일을 꺼리는 ‘귀차니즘’을 꼽는다. 심부름 경력 2년차 직원인 전모(27)씨는 “큰 규모의 아파트 단지에 사는 주부들은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식당에 가려면 단지를 빠져나가기 위해 한참을 걸어야 한다. 그게 귀찮아서 돈가스 같은 아이 간식을 배달시키거나 장보기를 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경력 4년차 최민혁(36)씨는 “고3 학생이 대입 원서 접수를 주문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원서접수 마지막 날 마감 30분을 남겨놓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집에 와서 원서를 받아 신촌 모 대학에 가서 접수해달라, 요금은 두 배로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최씨는 “서울 강남 회사에서 출발해 분당 집을 거쳐 신촌까지 가려면 시간이 촉박한데 하필 그때 분당 일대에 교통이 통제됐다. 회사에서 ‘번개라이더’로 소문난 친구를 불러 대신 부탁했는데 10분 늦었지만 무사히 접수를 마쳤다. 자신의 인생이 걸린 문젠데 어린 친구가 그 시간까지 어떻게 느긋하게 집에 있는지 놀라웠다”고 했다.

고객의 연령층과 직업군이 다양하고 원하는 서비스가 제각각이다보니 업체 직원들은 ‘머슴’과 ‘만능맨’을 자처하며 “시키면 뭐든 한다”는 자세를 취한다. 그러다보니 각양각색의 별난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업계 관계자들이 털어놓은 이색 심부름 의뢰 내용은 이런 것들이다.

△ ○○모텔인데 지금 당장 편의점 가서 가장 얇은 일제 콘돔을 좀 사달라. 돈은 얼마든 주겠다.

△ 가슴 성형수술을 했는데 의사가 근육을 움직이면 안 된다고 했다. 지금 집에 얼른 와서 한 번만 일으켜달라.

△ 깜박 잊고 집 대문을 안 잠그고 나왔다. 가서 대신 좀 잠가달라.

△ 법원에 가야 하는데 혼자 가려니 떨린다. 동행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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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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