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호

“주방에 바퀴벌레 나왔다고 전화해도 달려갑니다”

잔심부름 대행업 천태만상

  • 박은경│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입력2011-09-21 10: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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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시콜콜한 일상의 불편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이가 많아지면서 ‘생활밀착형 편의대행 서비스’ 일명 ‘잔심부름 대행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 기존 심부름센터나 택배 전문업체와 달리 ‘생활 편의’라는 틈새시장을 공략해 비약적으로 성장 중인 신종 산업의 실태를 들여다봤다.
    “주방에 바퀴벌레 나왔다고 전화해도 달려갑니다”

    귀차니스트의 불편함을 해결해주는 잔심부름 대행업체의 서비스 범위는 청소, 장보기부터 공과금 납부, 벌레 잡아주기 등까지 한없이 넓다.

    △ 원룸 2층에 사는데 싱글 침대를 버려야 한다. 1층 현관 앞까지 내려달라.

    △ 거실에 액자를 걸어야 한다. 드릴 가져와서 못 좀 박아달라.

    △ 비즈니스 미팅이 있어 카페에 갔는데 휴대전화를 놓고 왔다. 지금 당장 갖다달라.

    △ 우리 개를 단골 애견숍에 데려가 손질해달라. 올 때 개 기저귀도 한 팩 사와라.

    △ 로또 복권 5장을 구입해달라.



    △ 주방에 바퀴벌레가 돌아다닌다. 지금 당장 빨리 좀 와라.

    한 잔심부름 대행업체에 접수된 심부름 사례들이다. 잔심부름 대행업체가 생겨난 건 2000년대 중반부터. 잔심부름 경력 5년차인 김성도(32)씨는 “유흥업소가 밀집한 강남 지역에서 업소 여성들을 대상으로 일상의 자잘한 부탁이나 심부름을 대신해준 것이 시초”라며 “초기에는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10여 개에 불과하던 업체가 3~4년 전부터 전국적으로 확산돼 지금은 20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잔심부름 대행업은 최근 2~3년 사이 가장 빠르게 성장한 분야일 것”이라며 “갈수록 시장은 더 커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관련 업체의 온라인 사이트 게시판에는 “광주에 지점을 내고 싶다” “부산에 대리점을 내려면 비용이 얼마나 드나”와 같은 문의가 수십 건씩 올라와 있다.

    잔심부름 범위에 대한 문의도 많다. “우리 아파트 경비실에 누군가 착오로 물건을 잘못 맡겨놓았다. 지방에 있어 며칠 동안 못 올라가는데 생선이라고 한다. 누가 좀 대신 버려줬으면 좋겠는데 이런 서비스도 가능한가?” “근무하던 숍에 사표를 던지고 무단결근했다. 다시 가고 싶지 않으니 내 책상 짐 좀 챙겨줬으면 좋겠는데 가능한가” 등이다. 물론 가능하다. 티켓 구입을 위한 줄서기, 처방전으로 약국에서 약 사오기, 경조사 돈봉투 전달하기, 쓰레기 분리수거, 민원서류 발급, 은행 계좌이체, 공과금 내주기 등 불법만 아니라면 웬만한 심부름은 다 하는 것이 잔심부름 대행업체의 특징이다. 출근 전 아침이면 업체마다 하루 한두 건씩 다급하게 걸려오는 전화가 있다. “술 마시고 눈을 떴는데 차가 없다. 여기 와서 열쇠를 받아다가 술집에 세워둔 차를 가져다달라. 술집 위치는 정확히 모르겠고 대충 ○○역 주변에서 찾아봐라.” 그러면 서비스맨이 출동한다.

    “나는야 만능맨”

    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워킹맘’이나 유아를 키우는 주부, 미혼 직장인들을 위한 장보기 대행 서비스다. 이 때문에 업체 게시판에는 ‘장보기 대행’ 일자리를 구하려는 주부들의 글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도곡동에 거주하는 45세 주부다. 장보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은데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월 소득은 얼마쯤 되나?” “34세 여자로 장보기 부업을 하고 싶다. 차량도 있는데 일을 줄 수 있나?”

    최근에는 애완동물 관련 심부름도 늘고 있다. 애견 미용 대행부터 병원 진료까지 부탁하는 이가 많아져 아예 회사에 애완동물 캐리어를 여러 개 비치하는 업체가 생겼다. 성형과 다이어트 등 미용 관련 병원이 밀집한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다이어트 처방전을 받아 약을 사다달라는 주문도 많아지는 추세다.

    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잔심부름 대행 서비스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로 늘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의 바쁜 생활, 독립해 혼자 사는 미혼 여성의 증가, 그리고 힘들고 귀찮은 일을 꺼리는 ‘귀차니즘’을 꼽는다. 심부름 경력 2년차 직원인 전모(27)씨는 “큰 규모의 아파트 단지에 사는 주부들은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식당에 가려면 단지를 빠져나가기 위해 한참을 걸어야 한다. 그게 귀찮아서 돈가스 같은 아이 간식을 배달시키거나 장보기를 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경력 4년차 최민혁(36)씨는 “고3 학생이 대입 원서 접수를 주문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원서접수 마지막 날 마감 30분을 남겨놓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집에 와서 원서를 받아 신촌 모 대학에 가서 접수해달라, 요금은 두 배로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최씨는 “서울 강남 회사에서 출발해 분당 집을 거쳐 신촌까지 가려면 시간이 촉박한데 하필 그때 분당 일대에 교통이 통제됐다. 회사에서 ‘번개라이더’로 소문난 친구를 불러 대신 부탁했는데 10분 늦었지만 무사히 접수를 마쳤다. 자신의 인생이 걸린 문젠데 어린 친구가 그 시간까지 어떻게 느긋하게 집에 있는지 놀라웠다”고 했다.

    고객의 연령층과 직업군이 다양하고 원하는 서비스가 제각각이다보니 업체 직원들은 ‘머슴’과 ‘만능맨’을 자처하며 “시키면 뭐든 한다”는 자세를 취한다. 그러다보니 각양각색의 별난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업계 관계자들이 털어놓은 이색 심부름 의뢰 내용은 이런 것들이다.

    △ ○○모텔인데 지금 당장 편의점 가서 가장 얇은 일제 콘돔을 좀 사달라. 돈은 얼마든 주겠다.

    △ 가슴 성형수술을 했는데 의사가 근육을 움직이면 안 된다고 했다. 지금 집에 얼른 와서 한 번만 일으켜달라.

    △ 깜박 잊고 집 대문을 안 잠그고 나왔다. 가서 대신 좀 잠가달라.

    △ 법원에 가야 하는데 혼자 가려니 떨린다. 동행해달라.

    1등 고객은 젊은 여성

    “주방에 바퀴벌레 나왔다고 전화해도 달려갑니다”

    한 잔심부름 대행업체 서비스맨이 고객이 주문한 가위와 칼 등 학용품을 고르고 있다.

    간혹 죄를 짓고 잠적 중인 범죄자들이 대행업체를 이용하는 사례도 있다. 이 때문에 종종 범죄자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추적한 경찰이 업체를 방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통은 ‘의뢰인이 정말 하기 귀찮은 일’ 혹은 ‘정말 다급한 일’을 대신해야 한다. 얼마 전 혼자 사는 30대 전문직 여성으로부터 집안 청소를 의뢰받고 방문한 최민혁씨는 ‘원룸 크기의 집 청소를 혼자 못해 돈 주고 시키나’ 생각하며 현장에 도착했다가 입이 떡 벌어졌다고 했다.

    “집주인이 술이 떡이 된 채 문을 열어주더군요. 전날 친구들과 파티를 벌였답니다. ‘아저씨가 알아서 치워주세요’ 하며 그대로 뻗어버리는데, 보니까 식탁과 바닥에 술병과 먹다 남은 음식 그릇, 온갖 책까지 엉망으로 섞여 널브러져 있는 거예요. 그걸 다 치우고 설거지까지 마치는 데 3시간이 걸렸습니다. 9만원을 받아들고 나오면서 세상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아버지가 면세점에서 사온 외제 담배를 놀러온 친구가 무심코 뜯는 바람에 혼비백산한 며느리가 50만원을 지불하며 “지금 당장 비행기 타고 제주도 면세점에 가서 담배 한 보루만 사다달라”고 주문한 경우도 있다. 집에 혼자 있던 터라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자신이 담배를 피우는 걸로 오해할까봐 화들짝 놀란 것이다. 해외에서 의류수선 대행을 부탁해오는 사람도 많다. 잔심부름 경력 5년차 홍철우(37)씨는 “미주와 동남아시아에 사는 해외 교민과 유학생들이 ‘치맛단을 고쳐달라’는 등의 주문을 한다. 선진국은 수선비가 비싸고 후진국은 수선 기술이 맘에 들지 않아 왕복 택배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물건을 보내온다”고 했다. 홍씨는 “지인 생일 선물로 뭐가 좋을지 리스트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받은 적도 있다. 리스트를 만들어준 것 중에 손님이 찍은 물건의 재고가 없으면 직접 제조사를 찾아가 주문·제작해 보내주기도 한다”고 했다.

    잔심부름 대행업체를 이용하는 사람은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지만 20~30대가 가장 많다. 성별로 보면 여성이 많은 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돈을 쉽게 많이 벌고 부담 없이 쓰는 부류가 강남에 많다보니 이 지역에서 의뢰가 가장 많이 들어온다. 대행서비스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 중에는 하루에 2~3번씩 일을 맡기는 이도 있다”고 했다. 반면 큰 부자들은 이 서비스에 냉담한 게 특징이다. 심부름 경력 2년차인 전모씨는 “집값이 수십억원대에 달하는 서울 강남 한 아파트에 전단지를 돌린 적이 있다. 몇 달이 지나도 주문이 거의 없더라. 어쩌다 음식 배달 해달라는 정도가 전부라 보통 부자들과는 또 다르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양보 없는 경쟁

    최근 1~2년 사이 잔심부름 대행업은 업체마다 평균 20~30%씩 매출이 늘었을 만큼 급성장했다. 이에 따라 잔심부름 대행업체 수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그 결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업계에는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직원 서너 명이 현장을 뛰며 콜센터 역할까지 하는 영세업체가 늘어나고, 혼자 명함을 돌리며 뛰는 1인 사업자도 수두룩하다. 이 과정에서 멋모르고 시작했다가 손해를 보는 이들도 생겼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고객이 가장 많고 시장이 활성화된 서울 강남권을 무대로 운영 중인 업체만 10여 군데에 달한다. 이 때문에 20~30대가 많이 거주하는 원룸촌과 주부 고객이 많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 직장인이 밀집한 오피스 타운 등에서 광고 전단지 돌리기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 업체들은 소문난 맛집 가운데 배달을 하지 않는 곳이 많은 점에 착안해 음식점과 제휴를 맺고 배달 대행을 해주는 등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하면서 고객 확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최민혁씨는 “음식이 만들어지는 시간은 계산 안하고 사달라고 주문한 뒤 10분 만에 전화해 험한 욕을 하는 사람도 있다. 서울 강남은 심부름 시킨 뒤 30분만 지나면 독촉전화가 장난 아니다. 주문이 밀리면 일이 늦어지기 때문에 업체 입장에서 현장 직원을 계속 충원하다보니 최근 서비스비용이 많이 올랐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서울 강남의 경우 잔심부름 대행 초창기에는 4900원으로 시작했던 기본 서비스료가 지금은 7000원 안팎이다.

    서울 다른 지역의 기본료는 이보다 다소 저렴하지만, 심부름 소요시간과 작업의 강도, 움직이는 거리 등에 따라 보통 몇 만원 선으로 올라간다. 넓은 지역을 관할하는 업체의 경우 서비스 비용이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고객을 많이 끌어들이고 서비스 건수를 올리기 위해 권역을 좁혀 서비스 비용을 낮추는 방식으로 영업하는 업체가 많다고 한다. 현재 관리 직원과 콜센터 직원, 현장 직원을 따로 두는 등 시스템을 갖추고 운영 중인 업체는 전국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다. 이 중에는 전국적인 지점망을 갖춘 곳도 있다. 하지만 보통은 지역을 한정하고 더 많은 서비스를 빠르게 처리하는 데 사활을 건다. 음식점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업데이트하면서 고객이 주문하는 음식 값을 식당 대신 상세히 알려주는 곳이 있는가 하면, 현장 직원에게 친절 서비스 교육을 하는 곳도 있다. 현장 직원이 반드시 회사 유니폼과 헬멧을 갖추도록 하는 곳도 적지 않다. 방배동과 한남동, 성북동 등 길이 미로처럼 복잡한 곳에는 초보 직원 대신 경력자를 보내는 등 세심한 서비스로 차별화를 꾀하는 곳도 많아지고 있다.

    능력별 성과급제

    수십 명의 직원을 둔 제법 알려진 규모의 업체 현장 직원 1명이 하루에 처리하는 심부름 건수는 평균 20~30건. 많은 경우 40건을 하는 이들도 있다. 영세업체 회사의 하루 전체 처리 건수와 맞먹는 수치다. 이만큼 일하는 직원들의 월수입은 200만~300만원 수준이다. 기본급이나 월급이 따로 없고 심부름 건당 서비스 요금을 회사와 통상 5대 5로 나누기 때문에 일한 만큼 벌 수 있다. 이 때문에 24시간 주야간 교대로 하루 12시간 거리를 누비며 일하는 현장 직원들 사이의 경쟁도 치열하다. 목숨 걸고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객 집을 방문할 때 쓰레기를 대신 버려주는 등 친절로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잔심부름 경력 2년차 이모씨는 “단골 고객 가운데 기사를 지명해 보내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기사들끼리 서비스 경쟁이 치열하다”고 했다. 그는 “무한대 서비스를 해야 하기 때문에 드릴 같은 공구 사용법을 익히는 건 필수적이고 에어컨 청소 등을 짧은 시간에 말끔하게 끝낼 수 있는 노하우도 습득해야 한다. 제대로 된 기사가 되려면 최소한 1년 정도는 업무를 익혀야 한다”고 했다.

    30대 중반의 싱글 남성 직장인인 이재훈씨는 “퇴근하면 피곤하고 혼자 밥 해먹는 것도 귀찮아서 거의 매일 심부름 대행업체를 이용해 음식을 주문한다. 편리함에 중독되다보니 서류 심부름 등 갈수록 부탁하는 일이 늘고 있다”고 고백했다. 업계는 시간이 갈수록 이씨처럼 잔심부름 대행업체를 찾는 사람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다보면 지금보다 시장이 훨씬 더 커지고, 틈새산업을 넘어선 하나의 산업 분야로 일반화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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