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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 바퀴벌레 나왔다고 전화해도 달려갑니다”

잔심부름 대행업 천태만상

  • 박은경│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주방에 바퀴벌레 나왔다고 전화해도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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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고객은 젊은 여성

“주방에 바퀴벌레 나왔다고 전화해도 달려갑니다”

한 잔심부름 대행업체 서비스맨이 고객이 주문한 가위와 칼 등 학용품을 고르고 있다.

간혹 죄를 짓고 잠적 중인 범죄자들이 대행업체를 이용하는 사례도 있다. 이 때문에 종종 범죄자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추적한 경찰이 업체를 방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통은 ‘의뢰인이 정말 하기 귀찮은 일’ 혹은 ‘정말 다급한 일’을 대신해야 한다. 얼마 전 혼자 사는 30대 전문직 여성으로부터 집안 청소를 의뢰받고 방문한 최민혁씨는 ‘원룸 크기의 집 청소를 혼자 못해 돈 주고 시키나’ 생각하며 현장에 도착했다가 입이 떡 벌어졌다고 했다.

“집주인이 술이 떡이 된 채 문을 열어주더군요. 전날 친구들과 파티를 벌였답니다. ‘아저씨가 알아서 치워주세요’ 하며 그대로 뻗어버리는데, 보니까 식탁과 바닥에 술병과 먹다 남은 음식 그릇, 온갖 책까지 엉망으로 섞여 널브러져 있는 거예요. 그걸 다 치우고 설거지까지 마치는 데 3시간이 걸렸습니다. 9만원을 받아들고 나오면서 세상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아버지가 면세점에서 사온 외제 담배를 놀러온 친구가 무심코 뜯는 바람에 혼비백산한 며느리가 50만원을 지불하며 “지금 당장 비행기 타고 제주도 면세점에 가서 담배 한 보루만 사다달라”고 주문한 경우도 있다. 집에 혼자 있던 터라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자신이 담배를 피우는 걸로 오해할까봐 화들짝 놀란 것이다. 해외에서 의류수선 대행을 부탁해오는 사람도 많다. 잔심부름 경력 5년차 홍철우(37)씨는 “미주와 동남아시아에 사는 해외 교민과 유학생들이 ‘치맛단을 고쳐달라’는 등의 주문을 한다. 선진국은 수선비가 비싸고 후진국은 수선 기술이 맘에 들지 않아 왕복 택배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물건을 보내온다”고 했다. 홍씨는 “지인 생일 선물로 뭐가 좋을지 리스트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받은 적도 있다. 리스트를 만들어준 것 중에 손님이 찍은 물건의 재고가 없으면 직접 제조사를 찾아가 주문·제작해 보내주기도 한다”고 했다.

잔심부름 대행업체를 이용하는 사람은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지만 20~30대가 가장 많다. 성별로 보면 여성이 많은 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돈을 쉽게 많이 벌고 부담 없이 쓰는 부류가 강남에 많다보니 이 지역에서 의뢰가 가장 많이 들어온다. 대행서비스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 중에는 하루에 2~3번씩 일을 맡기는 이도 있다”고 했다. 반면 큰 부자들은 이 서비스에 냉담한 게 특징이다. 심부름 경력 2년차인 전모씨는 “집값이 수십억원대에 달하는 서울 강남 한 아파트에 전단지를 돌린 적이 있다. 몇 달이 지나도 주문이 거의 없더라. 어쩌다 음식 배달 해달라는 정도가 전부라 보통 부자들과는 또 다르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양보 없는 경쟁

최근 1~2년 사이 잔심부름 대행업은 업체마다 평균 20~30%씩 매출이 늘었을 만큼 급성장했다. 이에 따라 잔심부름 대행업체 수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그 결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업계에는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직원 서너 명이 현장을 뛰며 콜센터 역할까지 하는 영세업체가 늘어나고, 혼자 명함을 돌리며 뛰는 1인 사업자도 수두룩하다. 이 과정에서 멋모르고 시작했다가 손해를 보는 이들도 생겼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고객이 가장 많고 시장이 활성화된 서울 강남권을 무대로 운영 중인 업체만 10여 군데에 달한다. 이 때문에 20~30대가 많이 거주하는 원룸촌과 주부 고객이 많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 직장인이 밀집한 오피스 타운 등에서 광고 전단지 돌리기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 업체들은 소문난 맛집 가운데 배달을 하지 않는 곳이 많은 점에 착안해 음식점과 제휴를 맺고 배달 대행을 해주는 등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하면서 고객 확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최민혁씨는 “음식이 만들어지는 시간은 계산 안하고 사달라고 주문한 뒤 10분 만에 전화해 험한 욕을 하는 사람도 있다. 서울 강남은 심부름 시킨 뒤 30분만 지나면 독촉전화가 장난 아니다. 주문이 밀리면 일이 늦어지기 때문에 업체 입장에서 현장 직원을 계속 충원하다보니 최근 서비스비용이 많이 올랐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서울 강남의 경우 잔심부름 대행 초창기에는 4900원으로 시작했던 기본 서비스료가 지금은 7000원 안팎이다.

서울 다른 지역의 기본료는 이보다 다소 저렴하지만, 심부름 소요시간과 작업의 강도, 움직이는 거리 등에 따라 보통 몇 만원 선으로 올라간다. 넓은 지역을 관할하는 업체의 경우 서비스 비용이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고객을 많이 끌어들이고 서비스 건수를 올리기 위해 권역을 좁혀 서비스 비용을 낮추는 방식으로 영업하는 업체가 많다고 한다. 현재 관리 직원과 콜센터 직원, 현장 직원을 따로 두는 등 시스템을 갖추고 운영 중인 업체는 전국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다. 이 중에는 전국적인 지점망을 갖춘 곳도 있다. 하지만 보통은 지역을 한정하고 더 많은 서비스를 빠르게 처리하는 데 사활을 건다. 음식점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업데이트하면서 고객이 주문하는 음식 값을 식당 대신 상세히 알려주는 곳이 있는가 하면, 현장 직원에게 친절 서비스 교육을 하는 곳도 있다. 현장 직원이 반드시 회사 유니폼과 헬멧을 갖추도록 하는 곳도 적지 않다. 방배동과 한남동, 성북동 등 길이 미로처럼 복잡한 곳에는 초보 직원 대신 경력자를 보내는 등 세심한 서비스로 차별화를 꾀하는 곳도 많아지고 있다.

능력별 성과급제

수십 명의 직원을 둔 제법 알려진 규모의 업체 현장 직원 1명이 하루에 처리하는 심부름 건수는 평균 20~30건. 많은 경우 40건을 하는 이들도 있다. 영세업체 회사의 하루 전체 처리 건수와 맞먹는 수치다. 이만큼 일하는 직원들의 월수입은 200만~300만원 수준이다. 기본급이나 월급이 따로 없고 심부름 건당 서비스 요금을 회사와 통상 5대 5로 나누기 때문에 일한 만큼 벌 수 있다. 이 때문에 24시간 주야간 교대로 하루 12시간 거리를 누비며 일하는 현장 직원들 사이의 경쟁도 치열하다. 목숨 걸고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객 집을 방문할 때 쓰레기를 대신 버려주는 등 친절로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잔심부름 경력 2년차 이모씨는 “단골 고객 가운데 기사를 지명해 보내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기사들끼리 서비스 경쟁이 치열하다”고 했다. 그는 “무한대 서비스를 해야 하기 때문에 드릴 같은 공구 사용법을 익히는 건 필수적이고 에어컨 청소 등을 짧은 시간에 말끔하게 끝낼 수 있는 노하우도 습득해야 한다. 제대로 된 기사가 되려면 최소한 1년 정도는 업무를 익혀야 한다”고 했다.

30대 중반의 싱글 남성 직장인인 이재훈씨는 “퇴근하면 피곤하고 혼자 밥 해먹는 것도 귀찮아서 거의 매일 심부름 대행업체를 이용해 음식을 주문한다. 편리함에 중독되다보니 서류 심부름 등 갈수록 부탁하는 일이 늘고 있다”고 고백했다. 업계는 시간이 갈수록 이씨처럼 잔심부름 대행업체를 찾는 사람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다보면 지금보다 시장이 훨씬 더 커지고, 틈새산업을 넘어선 하나의 산업 분야로 일반화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신동아 201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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