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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의 ‘北-美 게임’ 분석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의 ‘北-美 게임’ 분석

  • ●‘없어도 되는’ 영변 핵시설로 트럼프 유인
    ●잃을 게 없는 北, ‘아니면 말고’ 식 합리적 베팅
    ●韓, 남북경협에 정신 팔려 정확한 판단 못 해
    ●‘대충 비핵화派’가 공격하는 볼턴은 ‘완전 비핵화’ 핵심
    ●美와 ‘전략적 교감’ 살리고, 北엔 ‘先비핵화, 後경협’ 요구해야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의 ‘北-美 게임’ 분석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영변 핵시설 폐쇄 카드로 대북제재 해제를 이끌어내려 했으나 트럼프는 미끼를 물지 않았다”며 “판돈을 잃을 위험이 없는 상황에서 북한은 나름대로 이성적 베팅을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천 이사장은 1977년 11회 외무고시 출신으로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노무현 정부), 외교안보수석(이명박 정부)을 지낸 외교·안보 전문가다. 외교안보수석 시절엔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된 석해균 선장 등 삼호주얼리호 선원들을 구출한 ‘아덴만의 여명’ 작전과 미사일 사거리를 800km로 늘인 ‘한미 미사일 개정협정’을 이끌어 큰 박수를 받았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2차 회담은 ‘빈손 회담’이 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회담장 입장 전부터 결렬을 예상했을까, 아니면 즉흥적 판단이었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실무 협상에서 내놓은 제안 이상을 내놓지 않으면 판을 깨겠다는 전략으로 회담에 임했을 거다. 미국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쇄를 (협상용으로) 내놓고 제재 해제를 요구할 거란 걸 알고 있었고, 북한도 미국이 자신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걸 염두에 두고 협상에 임했을 거다.”


영변 핵시설은 북핵 10% 불과

- 그렇다면 하노이 회담은 일말의 기대였을까. 

“북한 체제 특성상 모든 결정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하니까. 미국은 ‘직접 만나 얘기하면 달라질 수 있다’고 기대했고, 북한도 미국 국내 문제(민주당의 하원 장악, 국내 경제지표 악화, 마이클 코언 변호사의 폭로) 등으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설득하면 ‘기적’을 기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영변 핵시설 폐쇄 카드로는 북한 내 미국 연락사무소 설치와 종전선언 정도 요구했다면 타결될 수도 있었을 거다. 결국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약점을 이용해 제재 해제를 이끌어내려는 과욕을 부렸고, 트럼프 대통령은 미끼를 물지 않았다.” 

- 왜 그렇게 생각하나. 

“북한은 이미 20~60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핵물질과 함께 이들 핵무기는 전체 ‘북 핵능력’의 50% 정도 된다고 본다. 그리고 핵무기 운반 수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관련한 인프라 기술이 20% 정도, 기타 핵물질 생산시설과 영변과 영변 외부에서 핵물질을 생산하는 대규모 농축시설, 재처리 시설과 원자로 등을 30%로 정도로 봐야 한다. 이미 충분히 핵무기와 핵물질을 보유하고 있는 북한으로선 핵능력의 10%에 불과한 영변 핵시설을 폐쇄해도 대수롭지 않다. 반면 미국의 북한에 대한 ‘협상 자산’ 중 대북제재가 대략 70% 정도 된다. 생각해보라. 1:7이다. 등가성에 있어 북한과 미국 카드 크기는 너무 차이가 난다. 미국으로선 받을 수 없다.” 

- 미국은 핵무기 프로그램과 탄도미사일은 물론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폐기를 담은 ‘빅딜 문서’를 전달했다는데. 




“북·미 간 실질적 협상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북한은 핵폐기에 대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 없었고, 미국은 이번에 ‘우리가 생각하는 비핵화는 이거다’ 하고 문서를 건넨 거다.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 개념을 정리해서 준 건데, 나는 서로가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본다. 제대로 된 협상을 하려면 협상 목표와 대상이 분명해야 한다. 이번 회담이 성공이다 실패다 단정하기보다는 비핵화에 약인지, 독인지 살펴야 한다. 북한이 제재 해제에 매달리는 걸 본 미국으로서도 실패한 회담이라고 할 수 없다.”


‘맥시멀리스트 어프로치’

- 북한의 전략은 어떻게 보나. ‘영변 핵시설 폐쇄로는 성에 안 찬다’는 미국의 뜻을 확인했는데. 

“나름대로 충분히 할 만한 게임을 했다고 본다. 대박을 노리고 큰 베팅을 해서 돈을 따지 못한 것뿐이지 밑천을 잃은 건 아니다. 대북제재나 한미연합훈련이 강화된 것도 아니다. ‘갬블러’가 판돈을 잃을 수 있다면 승산이 50% 이상일 경우 베팅하는 게 현실적이지만 판돈을 잃을 가능성이 없다면 최대한의 베팅을 하는 거다. 북한으로선 영변 핵시설로 ‘사기 대박’을 노렸지만 미국 앞에서 ‘아, 연속 사기는 어렵겠구나’ 하고 생각했을 거다. 그렇다면 다음 판(회담)에는 손도 안 댄 판돈을 고스란히 가지고 가 2차 회담 때보다 조금 큰 거를 내놓고 조금 작은 걸 원한다면 뭔가를 얻을 수 있다는 감을 잡았을 거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질렀는데, 미국이 ‘바가지’를 쓰지 않았다.” 

-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회담 결렬 직후 “영변 핵시설은 만만찮은 것이다. 아직까지 (영변) 핵시설 전체를 폐기 대상으로 내놔본 역사가 없다. 김 위원장이 미국식 계산법에 의아해한다”고 했는데. 북한으로서는 만만찮은 것을 내놓은 거 아닌가. 

“과연 그럴까. 핵을 만드는 시설은 원자로와 재처리시설, (핵무기 제조 핵심 물질인) 삼중수소 또는 리튬-6 농축시설 공장이 핵심이고, 이들 시설만 해체하면 된다. 영변 핵시설 중에서 사용 안 하는 시설까지 가치를 부여해 엄청나게 양보한다고 하고, 나중에 전체 시설을 해체한다고 시간 끌기를 할 수도 있다. 김 위원장 생각이 바뀐다고 한 것은 향후 협상력을 높이려는 전략일 뿐이다.”


‘완전한 비핵화’ vs ‘대충 비핵화’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의 ‘北-美 게임’ 분석
- 존 볼턴 미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영변 핵시설 플러스알파’, 즉 핵과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폐기까지 뜻하는 ‘빅딜 수용’을 압박하는데. 

“일종의 ‘맥시멀리스트 어프로치(maximalist approach·최대한 요구하는 접근)’를 한 거다. 협상 초기에 최대한 요구하고, 협상 과정에서 서로 요구치를 낮추고 협상을 매듭짓는다. 처음부터 핵무기만 말하고 생화학무기는 가져도 된다고 한다면 미국 의회의 질타와 반발을 불러왔을 거다. 일단 모든 걸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시작하는 거다.” 

- 협상 결렬을 두고 ‘대북 강경론자’ 볼턴 보좌관 탓을 하는 이들도 있다. 

“북한이 하노이에서 거둔 또 다른 성과다.” 

- 북한의 성과? 

“문재인 정부를 대변하는 논객들은 회담 결렬에 대해 미국을 원망하고, ‘대북 강경파’ 볼턴 보좌관을 공격한다. 그러나 스티브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미국 자산 7을 주고 북한 자산 1을 받는다면 이들 협상파도 분명 반대했을 거다. 볼턴 보좌관이 찬성해도 말렸을 거다.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하는 볼턴 보좌관은 ‘대충 비핵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눈엣가시일 수밖에. 그러나 볼턴 보좌관은 ‘엉터리 비핵화’를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이 흔들리지 않게 비핵화 프로세스의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다. 볼턴은 동맹국 한국은 희생하더라도 미국에 대한 핵 위협만 제거하겠다는 ‘비겁한 비핵화’에 반대하는데 그를 공격해서야…. 중요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 참모의 건의를 그대로 수용했다는 점이다. 회담장을 박차고 나온 걸 두고 미국 민주·공화 양당이 처음으로 함께 박수를 쳤다(웃음).” 

- 북한 동창리 미사일(로켓) 발사장 복구 소식과 산음동 미사일 종합연구단지에서 미사일 발사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움직임이 관측되는 건 어떻게 봐야 하나. 

“협상력을 키우기 위한 전략이다. 제재 속 북한 생존 문제는 미국과의 협상 외에는 방법이 없고, 그래야 김 위원장이 원하는 경제개발도 할 수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불법 유류환적 선박 제재를 강화할 것이고, 대북제재도 철저히 이행할 거다. 시간은 미국 편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유엔 대북제재위원회가 3월 12일 공개한 연례보고서에는 북한의 우라늄 채광과 핵 연료봉 인출 정황이 포착됐고, 지난해 148차례 선박 불법 해상 유류환적에 나서고 해외 무기 판매로 안보리 결의를 위반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 청와대는 왜 회담 30분 전까지 ‘스몰 딜(부분합의)’을 할 거라고 확신했을까(청와대는 하노이 회담 결렬 30분 전까지 문 대통령의 합의문 서명식 TV 시청 예정을 알렸다). 

“나는 그 대목이 한미관계의 현주소라고 생각한다. 미국과 전략적 교감이 제대로 안 되니 그런 일이 생기는 거다. 미국은 전략적 교감을 할 만큼 우리를 신뢰하지 않는 거 같다. 물론 자신들의 회담 전략을 동맹국(한국)에 사전에 알려주지 않기로 했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사전에 충분히 교감했다면 ‘아 미국이 이런 옵션(회담 결렬)도 검토하고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된다. 그랬다면 이런 해프닝은 일어나지 않았다.”


韓美, 전략적 교감이 안 되는 이유

- 전략적 교감이 안 되는 이유는 뭘까. 

“우리 스스로 너무 ‘스몰 딜’에 집착했다. 실질적인 북한 비핵화보다는 남북경협에 정신이 팔려서 무엇이 비핵화를 위해 옳은 협상인지 판단을 못 한 거 같다. 딜이 안 될 거라는 판단을 못 하고, 어떤 수준의 합의라도 빨리 됐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보니…. 골프장에서도 평소보다 스윙이 빠르면 종종 ‘오비’(out of bounds·플레이가 허용되지 않는 장외 지역)가 난다. 마음이 급할수록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스윙해야 하는데, 연습 스윙도 하지 않고 티 박스에 올라 빠른 스윙을 하다 보니 공이 장외로 날아간 거다. 마음이 급하다고 협상이 빨리 되는 게 아니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처럼 북한과의 경협만 급하다고 하다 보면 미국으로선 동문서답(東問西答)으로 들릴 거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한국 국익을 대변해야 하는데 북한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우리는 국제적으로 발언권이 제한되고 무시당한다. 그리고 다른 나라 정상들이 우리 대통령 발언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유럽 방문길에도 문 대통령은 각국 정상들에게 대북제재 완화를 타진했지만 정상들은 ‘비핵화가 먼저’라고 하지 않았나. 

지금부터라도 미국에는 북한이 쳐놓은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비핵화에 도움이 안 되는 제안은 걷어차고 나와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미국은 본심을 드러낼 거다. 북한에는 ‘핵무기를 생산, 실험, 사용, 확산하지 않겠다’는 김 위원장 신년사 약속을 지켜야 도와줄 수 있다고 바른 소리를 해야 한다. 북한에 환상을 심어주는 얘기는 오히려 비핵화의 걸림돌이다.” 

- 한미연합훈련이 중단되거나 축소됐다. 


“대북 억지력을 약화시킨 것은 당연하다. 군(軍) 인사는 보통 1년 근무하고 옮기는데, 훈련하는 핵심 위치에 있는 사람은 훈련 못 하고 다른 보직으로 간다. 유사시 훈련 경험이 없는 군 지휘부가 생기는 거고, 유사시 전쟁 수행 능력이 약화되는 것은 틀림없다.” 

- 3차 북·미 정상회담은 언제쯤 열릴까. 

“시기는 큰 의미가 없다. 회담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데, 이는 북한이 얼마나 빨리 비핵화를 결심하느냐에 달렸다. 앞으로 2차 회담처럼 정상들이 만나 담판 짓는 회담은 없을 거다. 실무 회담에서 충분히 합의 내용이 조율돼야 3차 회담이 열릴 수 있다.”




신동아 2019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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