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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콧 재팬’에 달궈진 기업 국적 논란

무차별 불매운동 우리 상처만 키울 수도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보이콧 재팬’에 달궈진 기업 국적 논란

  • ● 쿠팡 “사업 99% 한국서 운영”
    ● 다이소, 동아오츠카, 롯데 두고도 갑론을박
    ● 식품업체, 일본산 재료 사용해 뭇매
    ● 불매 범위 무한정 늘리면 실효성 불분명
‘보이콧 재팬’에 달궈진 기업 국적 논란
“쿠팡은 자랑스러운 한국 기업입니다. 쿠팡은 우리나라에서 설립돼 성장했고, 사업의 99% 이상을 한국 내에서 운영합니다.” 

‘일본 불매운동’이 한창 달아오르던 지난 7월 13일, 쿠팡은 이런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네티즌 사이에서 쿠팡이 사실상 일본 기업이라며 불매 리스트에 올리는 분위기가 일자 대응에 나선 것. 일부 네티즌은 쿠팡 모회사인 쿠팡LLC의 최대주주가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라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이에 대해 쿠팡은 자신들이 ‘한국 기업’인 이유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한국에서 설립됐으며 일자리를 만들고 있고, 한국에 세금을 납부하며, 한국의 인재를 길러내고 있다”는 게 골자다. 

쿠팡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있지만, 이에 조목조목 반박하는 목소리도 있다. 쿠팡의 논리대로라면 다른 일본계 기업 역시 한국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을 납부하며, 인재를 길러내고 있지 않으냐는 주장이다. 이들은 “쿠팡이 ‘잘나가면’ 일본계 자금, 혹은 일본 기업에 도움을 주는 꼴”이라고 주장한다.


“배당금 일본으로 가지 않느냐”

누구 말이 맞을까? 쿠팡 설립자는 김범석 대표로, 쿠팡은 한국에서만 영업해 성장한 기업이다. 또 쿠팡 직원 대부분이 한국인이며 본사와 물류센터 등 쿠팡의 자산 역시 우리나라 영토에 있다. 

이 정도면 한국 기업인 것 같지만 더 들여다보면 얘기가 조금 복잡해진다. 쿠팡의 모회사는 쿠팡LLC로 미국 법인이다. 이와 함께 김범석 대표의 국적도 미국이다. 쿠팡LLC의 최대주주는 일본인인 손정의 회장이 주도해 만든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맞다. 다만 이 펀드는 아랍계 자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인 공공투자펀드가 48.4%를 투자했고, 소프트뱅크가 30.1%, 아랍에미리트 무바달라개발공사가 16.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즉, 쿠팡은 한국계 미국인(김범석)이 만들어 미국에 지주회사를 두고 한국에서만 영업하는 기업이다. 최대주주는 한국계 일본인(손정의)이 아랍계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만든 펀드다. 이를 두고 한국 기업이냐 일본 기업이냐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불매운동 국면에서 ‘정체성’을 두고 논란이 있었던 다른 기업들을 보자. 다이소의 최대주주는 한국 기업인 아성HMP로 지분을 50.1% 보유하고 있다. 다이소 측은 “일본 다이소산업이 지분 34%를 가지고 있지만 경영엔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소는 불매운동 리스트에 단골손님으로 오르고 있다. “다이소가 돈을 벌면, 지분에 따른 배당금이 일본 기업으로 가지 않느냐”는 게 네티즌들의 지적이다. 

정체성이 반반인 경우도 있다. 동아오츠카는 우리나라 동아쏘시오홀딩스가 49.99%, 일본 오츠카제약이 50%의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합작회사다. 대표이사도 한국인과 일본인이 공동으로 맡고 있다. 

롯데의 경우 지분 구조상 일본 롯데홀딩스가 그룹 정점에 있다. 롯데는 일본에선 오너가 한국인이라며 한국 제품 불매운동 리스트에 오른 바 있는데, 한국에선 사실상 일본 법인이 지배하고 있다며 일본 제품 불매운동 리스트에 올려놓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일본 관련 기업’의 범위는 더욱 디테일한 기준으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식품업계는 원료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즉석밥 햇반에 들어가는 미강(쌀겨) 추출물이 일본산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홍역을 치렀다. 이에 대해 CJ제일제당 측은 미강 추출물 국산화 작업에 고심하고 있다.


확대되는 ‘일본 관련 기업’ 범위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국가 목록에서 제외한 8월 2일 서울 도봉구 농협하나로클럽 창동점 입구에 일본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국가 목록에서 제외한 8월 2일 서울 도봉구 농협하나로클럽 창동점 입구에 일본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이 밖에도 일부 네티즌 사이에서는 ‘국내 대형 식품사 일본산 재료 현황’이라는 리스트가 돌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을 비롯해 오리온, 해태제과, 오뚜기, 농심, 대상, 롯데그룹 식품사들이 일부 제품에 일본산 재료를 쓰고 있다. 국내 대표 식품 기업이 전부 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일본계 자금이 조금이라도 들어간 기업은 물론 일본산 재료나 부품을 쓰는 국내 제조사들까지 보이콧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내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일본 선술집에 가지 않는 이들도 있다. 정치권에서조차 여당 대표가 일본 음식점에서 사케를 마셨느니 안 마셨느니를 두고 정쟁을 벌일 정도니 분위기가 살얼음판이다. 

불매운동 움직임을 두고 옳고 그른지 따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군가는 기업의 국적을 논리적으로 정확하게 따져 ‘일본 기업’이라는 확신이 들 경우에만 불매운동 리스트에 올릴 테고, 누군가는 일본과 관련만 있으면 전부 보이콧하겠다고 주장할 수 있으니 말이다. 불매운동 자체가 통상적인 경제활동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행위이니만큼 정답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업계의 우려에도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무차별적 불매운동이 자칫 일본에 타격은 별로 주지 못하면서 우리 내부 상처만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쿠팡에서 탈퇴하고 한국 다이소에 가지 않는다고 해서 일본 경제가 휘청거리거나 일본 정부가 긴장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이런 기업들의 국적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불매운동의 효과 역시 불분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지금 같은 ‘전쟁’ 국면에서는 상대방에 타격을 가하면서도 스스로의 희생은 최소화해야 한다. 일부 브랜드를 보이콧하거나 일본 맥주를 마시지 않는 것은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들에 타격을 준다는 점에서 분명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이런 움직임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국내 경제에 직접적 타격을 초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 여행을 가지 않는 움직임 역시 일본의 지역 경제를 흔들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 수단일 수 있다.


불필요한 갈등과 치밀한 전략 사이

반면, 일본 자금이 투자됐거나 일부 제품에 일본산 재료를 쓴다고 해서 공격하고 일본 선술집에 가지 않는 움직임은 불필요한 내부 갈등만 키울 수 있다. 글로벌 시대에 다양한 국적의 자본을 유치하고, 그보다 더 다양한 국적의 재료와 소재를 가져다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경우까지 세세하게 따지면 불매할 기업이 너무 많다. 

실제 쿠팡은 해명 자료에서 이런 지적을 했다. KB금융의 외국인 지분율은 70%에 육박하고 삼성전자와 네이버의 외국인 지분율도 60%에 가까운데, 이 기업들의 경우 한국 기업으로 여기지 않느냐는 논리 말이다. 즉 뭘 보느냐 혹은 누가 보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전선을 확대하기보다는 치밀하게 전략을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기준선을 명확히 하지 않고 ‘묻지마’ 식으로 범위를 늘리다 보면 도리어 한국 경제의 상처만 커질 수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특정 브랜드를 보이콧하는 경우 다른 브랜드 소비가 활발하게 이뤄질 것 같지만, 사실은 소비 자체를 유보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되레 국내 소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신동아 2019년 9월호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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