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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태영호 전 공사가 내다본 南北美 운명

“김정은 1억 달러도 없어… 핵 안고 붕괴할 것”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인터뷰] 태영호 전 공사가 내다본 南北美 운명

  • ● “남북·북미 정상회담 상당 기간 없어”
    ● “빈손 귀국…金 위상 타격”
    ● “평양 간부들 ‘金 아직 멀었다’”
    ● “군부 자급 무너질 조짐”
    ● “버티다 미국 요구 일부 수용할 수도”
    ● “트럼프, ‘중재자 문재인’ 불신”
    ●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불가능”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노동신문’은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조미관계의 새 력사를 개척한 세기적 만남”이라 대서특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66시간 기차여행 끝에 베트남 하노이에 왔다. 그러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 ‘세기의 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앉혀둔 채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회담 결렬. ‘최고존엄’은 체면을 구겼다. 그는 빈손으로 쓸쓸히 평양행 열차에 올랐다. 

‘신동아’ 3월호에 실린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의 2차 북·미 정상회담 예측은 날카롭고 정확했다. 하노이 회담이 한반도에 두고두고 지대한 영향을 주는 만큼, 태 전 공사를 다시 만나 회담 이후의 전망을 들어봤다. 태 전 공사는 김 위원장을 직함 없이 호칭했다.


“너무 많은 사람 데려갔다”

- 회담 결렬 소식이 평양 내부의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퍼질까요? 

“다음 날인 3월 1일부터 북한 매체는 의견을 교환했고 ‘잘됐다’는 식으로 애매하게 보도했죠. 1시간 18분짜리 TV 다큐멘터리는 ‘조미수뇌회담’이 아니라 ‘웬남(베트남) 순방’을 주로 다뤘죠. 북한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느꼈을 겁니다. 그러더니 노동신문은 3월 8일 책임을 일본에 돌리면서 조미수뇌회담이 합의 없이 끝났다고 마침내 보도했어요. 결렬이라는 단어를 쓰진 않았지만 현실을 인정한 거죠.” 

- 사실 보도를 한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게 됐어요. 거의 10만 명의 북한 사람이 해외에 체류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스마트폰 가지고 있죠. 한국 언론 보도를 찾아보면서 하노이 회담 결과를 알게 되는 거죠. 북한 매체가 합의 불발을 감추고 ‘회담이 성과적이었다’고 계속 거짓말할 수 없어요. 북한 당국에 대한 신뢰가 더 떨어질 테니까요. 3월 5일 김정은이 북한에 도착한 후 ‘사실 보도를 하라’는 조치가 내려왔을 겁니다.” 



- 아무 결실이 없었고 제재가 계속된다는 얘기가 북한 내부에 퍼지겠네요. 

“시간문제죠. 김정은은 북한 주민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 것인지 많이 의식할 겁니다.” 

- 북한 매체들이 조미수뇌회담을 대대적으로 선전해 지도층과 주민들이 한껏 기대했을 텐데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지 않을까요? 


“이번에 김정은이 잘못한 것은 열차에 너무 많은 사람을 데려갔다는 점입니다.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16명 중 7명이나 데려갔고요. 회담 성공을 과신한 것이죠. 결국 회담이 결렬됐기 때문에 당연히 김정은의 위상은 대단히 큰 타격을 입었을 겁니다.”


“金 대단히 화가 났다”

- 김 위원장도 적잖이 신경을 쓰겠죠? 

“간부들부터 신문에 앞다퉈 글을 발표합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2만 리 대장정을 갔다 오셨다. 정말 고생하셨고 수고하셨고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해…’ 이렇게요. 말하자면, 회담 결렬이 미칠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과잉반응을 하는 것이죠.” 

- 김 위원장은 화가 나 있나요? 

“제가 보건대 회담이 결렬될 당시에 김정은은 대단히 화가 나 있었을 것이고.” 

- 누구한테 화를 내는 거죠? 

“본인한테 화낼 순 없고 밑에 있는 사람들한테 화를 냈겠죠. ‘왜 미국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하고 내가 그 회담장에서 이렇게 당하게 만들었느냐’ 하는 것이죠. 최고존엄이 참가한 회담이 결렬된 건 북한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 김 위원장은 어떤 걱정을 할까요? 

“우선, ‘이 먼 길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왔으니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겠는가. 측근들이 나를 어떻게 보겠는가’ 이런 걱정을 하겠죠. 이번 회담 전까지 김정은은 자신의 능력을 크게 과신했습니다. 이번에 톱다운 방식으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 이은 두 번째 성과물을 만들려다 실패를 맛봤죠. 이젠 뒤로 물러서서 신중하게 움직일 것 같아요.” 

태 전 공사는 “하노이 회담 실패로 통일이 10년은 더 앞당겨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보는 배경에 대해 “한 번도 깨진 적 없는 최고존엄의 무오류성이 깨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김정은은 주민들과 측근들에게 백전백승하는 무오류의 신과 같은 존재로 자신을 인정할 것을 요구해왔어요. 평양에서 외국 정상을 만날 때에도 배석하는 간부의 숫자를 최소화합니다. 대화가 뜻대로 진행되지 않거나 자신이 민첩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모습을 간부들이 보는 것을 대단히 싫어하기 때문이죠. 이 정도로 자기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것을 두려워해요. 그런데 이번에 같이 수행한 많은 사람이 회담 결렬을 현장에서 보게 된 거죠. 그것에 대해 김정은은 화가 나는 거죠.”


“우습게 여기기 시작”

- 북한 간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말은 하지 않겠지만 속으로는 ‘저 젊은 김정은이 자기 아버지만큼 그렇게 치밀하지 못하구나. 성숙하려면 아직 멀었구나’ 하면서 좀 우습게 여긴다고 할까요? 지난 시기 김일성과 김정일은 밑에서 합의해놓으면 사인만 하는 식으로 했죠. 이번에 김정은이 직접 나서서 담판하다 결국 당했거든요. 전지전능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김정은이 오히려 좌절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태 전 공사는 이것이 김정은 체제의 수명이 짧아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중단을 치적으로 홍보하고 있으므로 현상 유지를 위해 대북제재 수위를 더 높이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시간은 김정은 편이 아니다? 

“제재가 지속되면 김정은의 타임 테이블에 차질이 생깁니다. 우선, 김정은은 3년 전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내놨어요. 이 계획은 중국으로 광물을 수출하고 중국 물자를 들여올 때 가능해요. 원산 갈마관광특구도 올해 10월 10일까지 완성하자고 해놨어요. 지금 건물 170개 동 골조만 해놨죠. 제재가 계속되면 언제 완공해 관광객을 끌어모으겠습니까? 김정은은 최근에도 당 초급 선전일꾼들 앞에서 ‘대북제재가 파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목적했던 바대로 돼가고 있다’고 장담했어요. 그러나 이제 북한 사람들이 ‘매일같이 제재가 풀린다고 이야기하는데 도대체 언제 풀리는 거냐?’라고 생각하는 상황으로 갑니다. 김정은은 시간에 쫓기고 있어요.”


“자신 있게 연도까지 찍었는데”

- 2020년 기한 내 5개년 전략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김정은으로서는 집권해 처음 내놓은 계획입니다. 자신 있게 5개년이라고 연도까지 찍었거든요. 만약 기한 내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김정은의 위상과 신뢰도는 많이 떨어질 겁니다.” 

- 대북제재로 인해 북한 경제는 2017년, 2018년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북한은 이런 고통을 얼마나 견딜까요? 

“한동안 버틸 수 있겠죠. 중국이라는 버팀목이 있으니까요. 중국은 북한이 붕괴될 정도가 되면 산소통을 달아주죠. 그러나 북한 내부에서 상당한 문제가 일어날 겁니다. 북한의 무역은 석탄, 철광석, 해산물 같은 극소수 항목에 치우쳐 있습니다. 유엔 제재는 이런 항목의 국제 거래를 금하죠. 이 제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선 광산업이 타격을 받고, 두 번째로 군부가 타격을 받습니다. 군대는 지난 10년 동안 자체적으로 피복이나 신발 같은 물자를 조달했어요. 군인들이 직접 광석을 캐서 중국에 팔죠. 그 돈으로 부대가 운영됐습니다. 대북제재로 이것이 안 되면 군대가 상당히 힘든 고비를 겪게 됩니다.” 

- 앞으로 대북제재가 5년, 10년 지속된다면 김정은 정권은 어떻게 될까요? 


“상당히 영향을 받을 겁니다. 김정은은 2017년 11월 핵무기를 완성했다고 북한 주민들에게 선포했어요. 혁명의 승리가 문 앞에 왔다고 했죠. 핵무기로 잘 협상하면 제재도 풀고 경제도 활성화할 수 있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겁니다. 실제로 2018년 들어 4·27 남북정상회담선언, 평양 남북정상회담선언,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선언이 나왔죠. 경이적인 성과물을 김정은이 계속 가져왔죠. 그래서 북한 사람들은 ‘핵무기가 대단하구나. 이것이 있으니 성과가 나타나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하노이 회담을 계기로, 김정은 본인과 북한 고위층은 핵무기로 생존하는 것이 대단히 힘들다는 걸 느꼈을 겁니다. 현 제재 상황이 10년 지속된다면 우리가 생각지 못한 엄청난 일이 북한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핵무기 때문에 결국 망할 것”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태 전 공사는 “좀 지켜봐야겠지만 김정은은 핵을 놓지 못할 것이다. 이 핵을 안고 자체 붕괴, 말하자면 무너지는 상황까지 가지 않겠느냐. 핵무기 때문에 결국은 망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 김정은 위원장에게 자금을 댄다는 39호실의 돈줄이 말라간다는 말이 맞습니까? 

“그 39호실은 큼직큼직한 물자를 다뤄 당 자금을 마련하죠. 중요한 원천이 해산물과 송이버섯, 외화 상점입니다. 이들과 연결된 무역망이 대북제재로 인해 하나둘 잘려나가고 있어요. 39호실 산하에 선박회사도 있는데, 배가 못 나가지 않습니까? 39호실 돈도 바닥나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 김 위원장은 하노이와 평양을 오갈 때 전용기인 참매 1호를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낡아서 그렇다는데, 새 전용기를 구입할 수 없나요? 

“현재 국제 제재를 받고 있기 때문에 새 비행기든 중고 비행기든 살 수 없습니다. 지난 시기에 북한은 몇 번 시도했어요. 파키스탄이 쓰던 보잉737을 가져오려고 했어요. 그러나 이 중고 비행기 거래도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에어버스를 구입하려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죠. 유일하게 살 수 있는 곳이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입니다. 가격이 만만치 않아요. 1억 달러 이상을 줘야 새 비행기를 가져올 수 있거든요. 아무리 최고 지도자라 해도 그 큰돈을 한 번에 내기란 힘듭니다.”


돈 없어 현지지도 대폭 줄였다?

- 1억 달러면 1128억 원 정도인데요. 

“김정은으로선 ‘1억 달러를 써야 할 정도로 비행기 구입이 중요한가’를 생각하죠. 북한 내부에선 작은 비행기로 30~45분이면 가고 싶은 데 다 갑니다. 해외순방이 잦은 것도 아니어서 그런 크고 비싼 비행기를 가져올 필요가 없거든요.” 

- 김 위원장이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요? 비자금이 됐든 무엇이 됐든 본인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어느 정도 될 것 같습니까? 

“딱 얼마라고 말하긴 힘든데, 김정은은 2018년 현지지도를 대폭 줄였어요. 현지지도는 현지의 잘 안 되고 있는 부분을 지적하면서 도움을 주는 식으로 진행되죠. 돈이 있어야 할 수 있어요. 현지지도를 대폭 줄였다는 건 김정은이 돈이 없다는 방증입니다. 김정은이 쓸 수 있는 돈은 1억 달러도 안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1000억 원 미만이다? 


“네. 한 1000억 원만 있어도 현지지도를 자주 다닐 겁니다. 북한은 경제 규모가 작은 데다 공장도 자그마해요. 현지지도 하면서 한 100만 달러만 풀어도 공장이 때를 벗고 멋있게 바뀌죠. 해외에 나와 있는 북한의 무역업자는 한 해에 국가에 3만 달러를 바쳐야 해요. 한국 돈으로 3000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인데 이 액수를 채우는 사람도 요즘 드뭅니다.” 

- 올해 김 위원장의 돈줄이 더 고갈될 것 같나요? 

“지난해 많이 말랐고 올해도 계속 말라가는 과정의 연장이죠.” 

- 북한 지도층을 토닥이면서 부드럽게 통치하는 데 지장을 받겠네요? 

“김정은의 지시로 10월 10일까지 갈마특구 내부 인테리어를 꾸며야 하는데, 많은 돈이 들죠. 북한 내 대부분의 기관과 기업소는 갈마특구를 끝내는 일에 돈을 말끔히 털어낼 겁니다. 따라서 갈마특구를 어느 정도 빨리 진척시키느냐를 보면 북한 내부 자금 사정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회담 결렬, 한국과 미국에 매우 유익”

김정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을 통해 대북제재의 상당 부분을 풀려고 했다. 그는 결렬을 예상하지 못했고 충격을 받았다. 반면, 태 전 공사는 “결렬이 매우 유익했다”고 설명한다. 

“하노이 회담에서 스몰 딜이든 빅딜이든 합의가 나왔다면 한국과 미국은 계속 오리무중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지난해 남·북·미 간 많은 합의가 있었지만 비핵화는 끝이 보이지 않았고 모든 것이 뿌연 상태였죠. 이번에 회담이 결렬되면서 모든 것이 명백해졌어요.” 

-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의지가 없다는 것이 완전히 확인됐죠.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합의가 결국 하노이 회담을 결렬시켰어요. 싱가포르에서 미국과 북한은 선(先) 신뢰 구축, 후(後) 비핵화 도식을 만들었죠. 트럼프 대통령이 생각한 신뢰는 김정은이 비핵화하는 것을 믿어주는 신뢰죠. 반면, 김정은은 대북제재를 풀어주는 과정에서 신뢰가 구축된다고 생각했죠. 이렇게 신뢰에 대한 해석에서 양측이 완전히 갈렸습니다.” 

- 싱가포르 합의 이후 북한 비핵화에 진전이 없었죠. 

“지난해 7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 같은 비핵화 로드맵을 토의하러 평양에 갔어요. 북한은 ‘우리가 생각하는 신뢰 구축은 그것이 아니다’라면서 폼페이오 장관을 ‘강도’라고 했어요. 싱가포르 합의 한 달 만에 감정싸움이 난 겁니다. 폼페이오는 트럼프에게 ‘우리가 속았다’고 말했을 것이고 이때부터 김정은에 대한 트럼프의 신뢰는 금이 간 겁니다.” 

-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계속 김정은 위원장을 신뢰한다고 했죠.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것이죠. 트럼프는 김정은을 하노이까지 데려와 그를 검증하려 한 것이죠.” 

-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은 영변핵시설 폐기 외에 플러스알파를 북한에 요구했죠. 

“우라늄고농축시설 은폐 의혹을 꺼냈죠. 이때 김정은이 ‘그건 다음에 논의하자. 지금 내가 준비해 온 것은 영변밖에 없으니 영변을 놓고 딜을 하자’고 했다면 트럼프는 ‘그래도 김정은이 인정할 건 인정하는구나’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김정은을 신뢰했겠죠. 그러나 김정은은 은폐 의혹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않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저 놀라기만 했어요.” 

- 그냥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있었죠.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회담 결렬 후 ‘미국이 영변 외에 추가로 하나를 더 달라고 끝까지 고집했다’고 말했어요. ‘끝까지 고집했다’는 것은 북한이 ‘있다, 없다’는 말을 안 했다는 뜻이죠. 결국 여기에서 김정은에 대한 트럼프의 신뢰가 무너졌어요. 빅딜이든 스몰 딜이든 나올 수 없었죠.”


“부동산 전문가의 거래 기술”

-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하노이로 오게 해 빈손으로 돌려보낼 의도를 처음부터 갖고 있었을까요? 

“그렇게까지 고약한 마음을 먹은 것 같진 않아요. 다만, 미국 정보기관이 의회에 내놓은 북한의 추가 핵 은폐 의혹이 명백했어요. 미국 대통령으로선 이러한 의혹을 김정은에게 당연히 제기할 수 있죠.” 

- 미국은 비건-김혁철 실무협상에서 ‘영변 플러스알파’를 꺼내놓을 수도 있었는데요.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트럼프는 싱가포르에서 자신이 외교적 실책을 범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어요. 그래서 김정은을 무조건 다시 만나 이를 만회하려 한 것입니다. 김정은을 하노이로 불러내기 위해 ‘김정은을 신뢰한다’는 말을 여러 번 했고 플러스알파를 실무협상에선 감춰둔 것이죠. 실무협상에서 꺼냈다면 김정은이 하노이로 안 왔겠죠.” 

- 트럼프 대통령만의 거래 기술이었네요? 

“트럼프는 부동산 전문가인데요. 부동산을 사려는 사람은 팔려는 사람에게 먼저 계약금을 줍니다. 북한은 여태 계약금만 받아먹고 건물을 한 번도 안 팔았죠. 그래서 트럼프는 하노이에서 김정은에게 ‘정말 건물을 팔 의향이 있느냐’를 물어본 겁니다. 팔 의향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계약금을 회수한 것이고요. 한국 정부는 ‘김정은이 건물을 팔 의향이 있다’고 이야기해온 것이고.” 

- 한국 정부는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해왔죠. 

“핵 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렸다고 했죠. 정부가 김정은에게 기대감을 너무 많이 심어줬어요.” 

- 어떤 기대감이죠? 

“정부는 북한의 핵 포기 의사를 정확히 확인하지 못했어요. 이런 상태에서 스몰 딜이니 빅딜이니 했는데, 이 자체는 상당한 비약이죠. 그러자 김정은도 ‘아, 영변을 가지고 미국으로부터 뭘 받아낼 수 있겠구나’ 하는 환상을 갖고 나온 겁니다.” 

- 하노이에서 미국은 생화학무기 폐기까지 요구했는데요. 

“미국이 이번에 비핵화 개념을 대단히 크게 정리했습니다. 실제 미국이 해결하고자 한 것은 핵 은폐 의혹이죠. 영변 외에 감춰둔 우라늄고농축시설이 더 있느냐가 가장 큰 관심이었어요. 강선이나 평안북도, 황해도 어디쯤에 있다는 시설 말입니다. 외교 협상할 때는 먼저 크게 조건을 제시하고 각자 한 발씩 물러서는 방향으로 타협점을 찾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북한이 핵 은폐 의혹을 해소해준다면 미국도 생화학무기 문제는 걷어내고 현실적 타협을 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 실제로 북한은 영변 이외 시설에서 무기급 핵물질을 생산하고 있을까요? 

“단정하긴 힘들지만, 그런 시설이 없다면 북한은 ‘없다’고 말했을 겁니다. 그러나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어요. 결국, 생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 김정은 위원장의 무대응이 오히려 핵시설 은폐를 인정하는 효과를 냈고, 북한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하노이 회담 결렬을 이끈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영변 하나로 미국이 북한과 딜을 해선 안 된다. 영변 외에 더 많은 추가 핵시설이 있다’고 주장해왔지만 어느 것 하나 입증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번 회담에서 김정은이 머뭇거리면서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볼턴의 말이 사실로 인정됐습니다.”


“文과 전략 공유 안 해”

문재인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 결렬을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회담에 앞서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영변 플러스알파 같은 회담 전략을 문 대통령 측과 공유하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태 전 공사도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외교력과 정보력이 부족했음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핵 포기 결단을 내렸다’는 문 대통령의 말을 신뢰하지 않게 됐고 이에 따라 신뢰하지 않는 대상과 정보와 전략과 전술을 공유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트럼프 대통령 측은 김정은 위원장 측에게 핵물질 리스트를 신고해달라고도 요구했는데요. 이것은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 단계죠? 

“그렇습니다. 미국은 북한에 모든 핵물질과 핵시설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것만 해결해주면 제재도 완화해준다는 건데 이 첫 단계를 지금까지 넘지 못했죠.” 

- 트럼프 대통령의 말로는, 김 위원장은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는 대가로 대부분의 유엔제재를 해제해달라고 요구했다는데요. 사실이라면 김 위원장이 과욕을 부린 것이 아닐까요? 

“김정은은 영변 하나만 포기하면 적어도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러나 볼턴이 제일 관심을 가지는 영변 플러스알파에 대해 북한이 뚜껑을 열지 않으니 금강산과 개성도 얻지 못한 거죠.” 

- 미국이 요구한 영변 플러스알파는 얼마나 중요하다고 보나요? 


“영변 핵시설은 이미 낡았습니다. 1993년부터 영변이 거론됐습니다.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 은폐 증거를 제시하면 얼마 후 북한은 그 시설을 보여주면서 거래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시설을 만들죠. 이렇게 북한은 영변을 포기하면서도 여전히 핵물질 생산성을 가지고 갑니다. 이 모퉁이에서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제동을 건 것이죠.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봐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를 복구했다. 이제 온건파인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조차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미국은 점진적으로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트럼프 행정부는 스몰 딜을 접고 북한에 완전한 비핵화 빅딜을 완연히 요구하는 모양새다. 태 전 공사는 미사일 발사대 복구와 관련해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압박 전술”이라면서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을 낮게 봤다. 

“미사일을 쏘면 북한이 지난해부터 해오던 모든 평화 공세가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북한은 협상판을 깨지 않으면서 미국과 타협의 여지가 없는지 한 번 더 타진해보겠죠.” 

- 트럼프 대통령은 ‘시간이 충분하다’고 말했는데요. 

“김정은이 시간에 쫒기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죠.”


“한미연합훈련 폐지는 과속”

-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 한국과 미국이 키리졸브 연습, 독수리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 같은 한미연합훈련을 폐지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한미연합훈련은 동맹국 간의 가장 질 높은 현대적 훈련으로 평가돼왔어요. 제가 영국 주재 북한공사로 있을 때 영국이 한미연합훈련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 영국 국방성에 계속 항의했어요. 그때마다 영국 국방성 관계자들은 ‘방어훈련이다. 영국군이 참가하는 것을 도발로 생각하지 마라. 영국군이 한미연합훈련에 동참해 많은 것을 배운다’고 설명했어요.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면 좀 이해가 가겠어요. 김정은이 아직 핵 포기 결단도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가 과속하는 것 아니냐 하는 판단이 듭니다.” 

- 김정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 결렬을 어떤 식으로 수습하려고 할까요? 

“김정은은 미국이 요구하는 핵물질 생산시설들을 열고 폐기하느냐, 아니면 끝까지 이 은폐 의혹을 안고 가겠느냐 하는 갈림길에 놓여 있어요. 김정은은 제재를 풀기 위해 이 핵시설들을 열 수 있다고 봅니다. 미국이 의혹을 제기한 것에 대해 나중에라도 북한이 인정해왔으니까요. 핵시설을 추가로 내놓으면 미국으로부터 어느 정도까지 제재 해제를 받아낼 수 있는지 검토하겠죠. 이제부터 본격적 딜이 시작될 겁니다. 김정은은 자신이 직접 나서기보다는 자제하고 절제할 겁니다.” 

- 김 위원장은 누군가에게 회담 실패의 책임을 물을까요? 

“숙청은 하지 않을 것 같아요. 대미특사로 하노이 회담을 이끈 김영철 조선노동당 부위원장은 회담 결렬 후 눈이 좀 풀려 있었고 얼떨떨한 표정이었어요. 결과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거죠. 김영철이 받은 충격이 제일 컸을 것 같아요. 그는 상당히 위축돼 이제부터 발을 뺄 것 같습니다.” 

- 그러면 누가 대신하나요? 

“리용호 외무상, 최선희 부상, 김혁철 대표 라인이 나설 수밖에 없어요.”


“그 차에 승객이 다 내려”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 문 대통령은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다시 중재자 역할을 할까요? 

“우리 정부는 자신을 북한 비핵화의 운전자라고 했죠. 지금 상황을 보면 그 차에 승객이 다 내렸어요. 차를 몰 수 없죠. 이젠 현실성 있는 정책을 내놓을 때가 됐어요. 지금까지 우리 정부의 입장은 선 남북관계 개선, 후 비핵화입니다.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북한 도로를 닦아주면 비핵화를 견인할 수 있겠죠. 그런데 그걸 할 수 있나요? 못 하거든요. 우리 정부는 이 점을 인정하고 남북관계 개선과 비핵화를 병행적으로 동시적으로 추진하는 현실적 접근법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봐요. 김정은에게 ‘비핵화가 안 되면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선언의 이행도 힘들다고 이야기하고 진짜 비핵화를 견인해야겠죠.”


“김정은이 지금 서울에 오겠습니까?”

- 남북 정상회담, 김정은의 서울 답방이 성사될까요? 

“우리 정부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처럼 김정은에게 자꾸 이야기해선 안 됩니다. 김정은한테 쓴소리를 할 건 해야죠. 남북 정상회담 장소도 서울로 특정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김정은이 지금 서울에 오겠습니까? 자기가 트럼프한테 한 방 뒤통수 맞았다는 걸 전 세계가 다 아는데, 웃으면서 서울에 와서 가져갈 게 무엇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 문 대통령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에 남북경협이나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추진해보라고 지시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난감한 처지에 있다고 봅니다. 문 대통령이 통일부 장관을 교체한 뒤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미국과의 합의 없이 열어줄 수 있을까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 왜 불가능하죠? 


“미국이 안 된다고 했는데 열어주면 미국이 가만히 있습니까?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이지 않는 한 북한에 어떤 현금도 유입돼선 안 된다고 말해왔죠. 우리가 철도 공동 조사를 할 때도 미국은 싣고 가는 경유 차량까지 샅샅이 들여다봤어요. 한국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때문에 미국과 갈등을 빚고 미국이 한국의 은행이나 기업을 제재한다면 한국이 감당할 수가 있을까요? 한국 경제는 수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과 날을 세워 독자적으로 나아갈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봐요.”


“그 정도까지 이성 잃지 않을 것”

- 한국 정부가 한두 개 기업이 제재를 받더라도 금강산 관광 재개를 밀어붙이겠다고 하면? 

“현 정부의 관심은 정권 재창출에 있다고 봐요. 정권 재창출은 경제 상황에 달려 있죠. 경제 상황이 나빠지는 것을 감수하면서 그런 무리수를 둘까요? 그 정도까지 이성을 잃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과 계속 토의하면서 미국의 동의를 얻어서 하겠다는 뜻이겠죠.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고 ‘마이 웨이’로 가는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만들지 않을 겁니다. 한국 국회 대표단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은 ‘당신들이 지금 북한에 속고 있는 거 아니냐? 북한은 지금 한국을 무장해제하려는 것’이라고 일갈했어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열면 안 된다는 것은 미국 정부, 의회, 전문가의 공통된 인식입니다.” 

- 문 대통령이 ‘노력했지만 미국의 반대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가 어렵게 됐다’고 북한에 말하면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까요? 

“최근 북한 신문은 ‘왜 한국 정부가 미국 눈치를 보면서 남북 간 합의를 이행하지 않느냐’고 압박을 가합니다. 북한이 지금 바라는 것은 ‘실질적 해제’입니다. 노력만 하는 것으로는 별로 고맙게 여기지 않죠.” 

- 김정은 위원장은 추가적인 남북 정상회담에 매력을 못 느낄 수도 있겠네요. 


“당장 북한은 아무런 매력도 느끼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까지만 해도 김정은은 문 대통령이 한 말을 많이 믿었어요. 그 이후 남북관계를 보면 북한은 9월 합의대로 빨리 하자고 한국 정부에 요구합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 끼여서 미국 정부에 ‘이걸 우리가 하려고 하는데 동의해달라’고 요구하고요. 그러나 미국 정부로부터 동의를 받지 못하죠. 평양합의에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공동으로 기념하는 내용도 있어요. 그러나 3월 1일 남북한 공동 행사가 없었죠. 북한은 ‘이런 이벤트나 해서 뭘 하느냐’ 하는 거죠.” 

- 추가적인 남북 정상회담은 없을 수도 있겠네요?

“당분간은 대단히 힘듭니다.” 

- 3차 북·미 정상회담은 가능하리라고 보나요? 

“적어도 올해 중으로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은, 조만간 시진핑에 도움 요청”

- 왜 그럴까요? 

“북한은 체면을 중시하는 나라인데요. 2월 하노이에서 추가 핵 은폐 의혹을 받은 것 아닙니까. 미국이 이렇게 의혹을 제기했다고 해서 북한이 돌아가서 조금 있다가 ‘내놓겠다’고 하긴 어려울 겁니다. 냉각기를 두겠죠.” 

- 중국은 하노이 회담 결렬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큰 부담을 느꼈을 겁니다. 올해 1월 김정은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성공해 조그마한 제재라도 풀겠다’고 했겠죠.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정도만 풀어도 중국에 큰 힘이 됩니다. 그러나 김정은은 열지 못했어요. 중국으로서도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어요. 북한을 도와주고 싶어도 미국과 무역전쟁을 치르는 처지라 함부로 못 해요. 중국이 원래 계획한 대로 상황이 나아가지 않고 있어요.” 

-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이 다시 만날까요? 

“아마 김정은은 시진핑을 찾아갈 겁니다. 경제적 지원을 받아낼 필요성이 있을 때 만나죠. 조만간 시진핑에게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한 번 더 도와달라’고 중국에 도움을 요청하겠죠.”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이 기댈 데는 이제 중국밖에 없다. 중국은 국제제재의 뒷구멍으로라도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아 2019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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