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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주도권 행사 부시, 평화연출 김정일, 체면유지 김대중

2002년 남·북·미 3각 게임

  • 정낙근 < 국제전략정보연구소 통일전략실장 >

주도권 행사 부시, 평화연출 김정일, 체면유지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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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중 대통령은 2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금강산사업을 제외한 다른 ‘어젠더’는 다음 정권과의 협상카드로 남겨놓을 가능성이 크다. 남북관계는 상반기까지는 평화분위기가 고조되고, 대선이 가까워 오면서 북미의 이해관계에 따라 경색국면이 될 가능성이 크다.
9 ·11테러 이후 5개월이 지난 지금, 한반도를 중심으로 남·북·미 관계는 어떻게 전개돼 왔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유화와 강경 국면이 반복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한반도 정세가 대화 국면으로 들어섰다고 본다.

반테러전쟁이라는 예기치 못한 악재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잠시 대결국면이 조성됐지만, 일단 미국을 비롯한 반테러 동맹이 아프간전쟁을 어느 정도 성공리에 마무리지음으로써 그간 유보됐던 한반도 대화와 협상의 시나리오가 다시 가동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될 것이다.

물론 아프간전쟁이 지속되었더라도 미국으로서는 대(對)한반도 정책 재검토와 결정을 무한정 연기할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반테러전쟁과 별개로 금년 봄쯤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정책을 확정하게 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다. 다만 반테러전쟁 이전과 달리 구체적 협상 아이템의 실효성과 협상주체들의 명분에 따른 역학관계 등에서 나타날 변화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월29일 부시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발표한 ‘악의 축’ 발언은, 미국이 그동안의 테러전쟁 성과를 정리하고 국익을 위한 미래의 세계전략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사용한 중요한 레토릭(수사)이라 할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과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했고 전세계가 이를 둘러싸고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북한이 악의 범주에 들어갔기 때문에 김대중 정부의 대북 햇볕정책의 성과와 전도를 둘러싸고 우리 내부에서 격렬한 논쟁이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이 발언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는 반미-친미, 반DJ-친DJ, 여-야, 보수-진보 등의 중첩된 갈등이 첨예하게 나타났다. 정작 직접 당사자인 미국과 북한은 우리의 ‘냄비체질적’ 갈등상을 그들의 국익과 관련지어 주의깊게 저울질하고 있는 것 같다.



‘한반도 게임’의 기본 전제


9·11테러사태는 모든 면에서 많은 변화를 초래했다. ‘만약 9·11테러가 없었다면’이란 가정은 우리를 참으로 안타깝게 하는 대목이다. 물론 문명세계에서 자행된 야만적 행위를 응징하는 것이 절박한 과업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한반도 정세와 관련지어 볼 때, 9·11이 없었더라면 작년 10월16~18일의 제4차 이산가족 상봉과 10월18일 부시 대통령의 방한이 예정대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특히 부시 대통령의 방한은 한반도가 대화를 통해 평화의 큰 흐름을 타는 데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은 금년 12월 대통령 선거라는 중요한 정치일정이 놓여 있다. 때문에 자칫 한반도 관련 ‘외교게임’에 대단히 취약해질 소지가 있다. 따라서 2002년 한반도를 둘러싸고 북한과 미국 사이에 치열하게 전개될 외교전의 의미를 제대로 읽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한국은 국가적 차원의 대응책보다는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본의 아니게 북·미 게임의 대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비록 상식 수준이긴 하지만 2002년 남·북·미 사이의 한반도 게임을 읽을 때 우리가 망각하기 쉬운 몇 가지 전제들을 우선 상기시켜 보자.

첫째, 9·11테러가 미국의 세계전략을 근본적으로 바꿔놓는 계기가 됐음을 인정해야 한다. 9·11테러는 그 잔혹성과 과감성 면에서 지금까지 상상속에서나 존재했던 테러방법을 머리 밖으로 끌어냄으로써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악의 한계’를 무한대로 확장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는 상식과 합리성에 바탕을 둔 판단들이 틀릴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는 의미와도 통한다.

둘째, 2002년 북·미의 대 한반도정책 목표는 2003년으로 예정된 핵과 미사일 협상에서 자국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 김정일은 지난해 5월 스웨덴 페르손 총리와의 회담을 통해 미사일 발사를 2003년까지 잠정 유예하기로 한 바 있다. 또 1994년의 제네바합의도 일단 2003년이면 1차 시한이 마무리된다. 경수로 건설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아 2008년경에나 완공될 수 있을 것이란 보도도 있지만, 어쨌든 경수로 건설 지연에 따른 보상 문제와 경수로의 핵심부품 인도 이전에 특별 핵사찰 수용 여부 등을 중심으로 새로운 협상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문제는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펀드’가 어느 수준에서 합의되고, 또 어떻게 그 펀드를 만들어내느냐가 기본 관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은 미국의 비용 제공 규모를 대폭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돈으로 ‘악’과 협상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고, 또 북한도 벼랑끝 전술로만 대처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미국과 북한 등 외세가 한국의 대선을 ‘숨죽여’ 지켜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는 그 승패가 각국의 대미정책 수립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각국은 1년여에 걸쳐 미국에 ‘액션’을 거의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대선을 주변 국가들이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것이라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대한반도 정책의 실행을 유보할 나라는 없다.

특히 김정일은 남한 대선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2002년 한 해를 마냥 손놓고 있을 수는 없다. 내년에 필요한 것을 금년 중 남한으로부터 미리 확보하려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남한의 대선 게임을 적극 활용할 수밖에 없다.

요컨대 한국과 이해관계가 있는 나라들은 대선 결과에 개의치 않고 한국의 대선을 자국의 국익 확보를 위한 절호의 기회로 활용할 거란 얘기다. 각국이 특정 후보에게 베팅을 하지는 않겠지만, 설사 후보 선택에 차질이 생겼다 하더라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 충분히 만회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다.

넷째, 김대중 대통령이 이미 레임덕에 빠져 있기 때문에 국내정치의 변화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김대통령이 집권당 총재직을 버리고 국내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중요한 점은 여전히 그는 현직 대통령이면서 단임제 대통령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한편으론 김대통령의 정책 결정력을 약화시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김대통령이 국내 정치권과 여론으로부터 심지어 미국으로부터도 구속받지 않고 정책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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