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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노무현 그 후

노무현 서거와 이상득 2선 후퇴, 여권에 후폭풍

당·정·청 요직의 이상득계는 지금 좌불안석

  • 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노무현 서거와 이상득 2선 후퇴, 여권에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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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상득, 내부 암투에 맥없이 당했다
  • ● 다음 타깃은 ‘3인방’ 박영준, 장다사로, 김주성?
  • ● ‘보이지 않는 손(이상득)’ 대신 ‘빤히 보이는 손(이재오)’ 득세
  • ● 이재오계, 8월쯤 여권 접수설
노무현 서거와 이상득 2선 후퇴, 여권에 후폭풍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한나라당이 5년 동안 지켰던 정당 지지율 1위는 민주당 차지가 됐다. 그러잖아도 4·29재보궐선거 참패로 쇄신운동이 일고 있던 한나라당에서는 주류인 ‘친(親)이명박’ 진영 내부의 주도권을 쥐는 이너서클이 바뀌고 있다. 민주당에선 ‘자성(自省)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노무현당’ 창당설도 나돌고 있다.

6월4일 한나라당 국회의원 연찬회장에서 당 쇄신특위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당 지지율 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민주당 23%, 한나라당 21.1%.’ 한나라당 자체 조사에서 1위를 지키지 못한 건 2005년 이후 처음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전까지 민주당의 지지율은 10%대 초반에 불과했다.

정당 지지율은 언제든 다시 역전될 수 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 정국의 후폭풍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내부 역학구도에 이미 상당한 영향을 미쳤거나, 앞으로 미칠 전망이다. 심지어 한참 흘러간 ‘양김(兩金)시대’의 주역인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목소리를 높이게 했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에 어떤 격랑을 추가로 몰고 올지 알 수 없다. 쇄신운동에 따른 조기 전당대회론, 10월 재보선, 내년 6·2 지방선거 같은 정치일정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MB와 상의 안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은 ‘2선 후퇴’를 선언했다. 이 의원은 6월3일 당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 나와 “지금까지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철저히 노력해왔지만 앞으로는 당과 정무, 정치 현안에 관여하지 않고 지금보다 더욱 엄격하게 처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솔직히 말하자면 고통의 나날이었다. 정말 고통스럽다”고 했다.

이 의원 본인과 측근은 2선 후퇴 이유에 대해 “대통령 친인척으로서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 관리를 철저히 하며, 오로지 당의 단합과 화합만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왔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치권 내의 역풍과 쇄신 논의 과정에서 고심해왔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과 상의하지 않았다고도 덧붙였다.

이 의원이 정계를 떠난 것은 아니다. 포항 지역구의원,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한일의원연맹회장 역할은 계속한다. 본인도 “당 화합에 동참하되 저 자신은 지역구 일과 경제·자원·안보·외교 문제에만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선 후퇴 선언 다음날인 6월4일 일본으로 갔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격론이 벌어진 날이다. 이 의원은 연찬회에 참석하지 않고 2박3일 동안 일본에 머물며 정·재계 인사들과 두루 만났다. 일본기업의 포항부품소재산업단지 진출을 요청했다. 귀국 후 되도록 포항에 머물며 개항을 준비 중인 영일만 신항과 배후산업단지 현장을 둘러보고, 장애인 자활회사를 방문하는 등 지역구 순회에 전념하고 있다고 한다.

이 의원이 포항 읍·면·동을 돌며 민심탐방을 하고 있던 6월10일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태백산 새벽산행과 막장체험에 나섰다. 6·10 민주항쟁 주역으로서 의미를 되새긴다는 취지였다. 그의 산행에는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은평을 당협위원회 관계자 20여 명이 동행했다. 천제단에 오른 그는 동행한 측근들에게 “정상에 오를 때는 정상이 보이지 않지만 올라야 한다. 일단 정상에 오르면 다른 사람을 위해 내려가야 한다. 권력도 마찬가지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전 최고위원은 그날 밤엔 자신의 팬 카페 ‘재오사랑’에 올린 글에서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서울광장 집회에 대해 “이제 서울광장에는 거짓과 허위의 깃발을 내리고 민주주의 성숙의 깃발을 올리자”고 썼다. 이명박 정권 창출에 일조한 중진 정치인으로서 야당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셈이다. 두 사람의 이 같은 엇갈린 행보를 보면 ‘이상득의 실각과 이재오의 득세’를 한눈에 읽을 수 있다.

“형님으로 모시겠다” 했는데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황은 정반대였다. 이 전 최고위원은 지난해 총선 패배 후 미국에 머물다 3월말에 귀국했지만 당시 귀국에 반대하는 이상득 의원 측 견제로 꽤 애를 먹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오죽하면 미국으로 자신을 찾아온 박창달 한국자유총연맹 총재에게 “이상득 의원과의 오해는 모두 풀었다. 돌아가면 이상득 의원을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했을까. 박 총재는 이 의원의 포항인맥이다.

그러나 이 전 최고위원은 귀국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이 의원에게서 친이 진영의 주도권을 빼앗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명박 정부 주류의 권력 이동은 여권 내부 사정과 4·29 재보선 결과, 노 전 대통령 서거 정국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에 가능했다.

여기에 여러 사정을 감안한 이 대통령의 의중도 실린 것으로 봐야 한다. 이 대통령은 연초 국정운영 2년차에 접어들면서 이상득 의원에게 “너무 여러 가지 일을 하려고 하지 말고 여의도 정치권에서만 나를 도와주시라”고 간곡하게 권유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이 의원은 주로 ‘친이명박’ 내부 결속과 ‘친박근혜’ 끌어안기에 주력해왔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면서 그나마 정치에서도 2선 후퇴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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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국건│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 s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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