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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병대는 현장 사진 보여주지 않았다”

타살로 밝혀진 허원근 일병 사건 당시 부검의 증언

  • 황일도 shamora@donga.com

“헌병대는 현장 사진 보여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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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찾아 온 셈이 됐습니다.

“허일병 사건으로 논란이 불거지고 나서 정신이 없어요. 아마 기자들이겠지만 정체를 안 밝히는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와서 사람을 속이니까 거부감이 심해졌어요. 의문사위라면서 이것저것 묻는데 얘기를 하다보니까 영 아닌 거야, 이름도 안 밝히고. 그런 일이 두어 번 계속되니 마음이 불안해지더군요. 발표 나기 전부터 논란이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당시 상황을 듣고 싶습니다. 검시보고서에 자타살 여부에 대한 판단을 기록하는 것은 아니지만, 합리적인 지휘관이나 부검의라면 가슴에 두 발을 쏘고도 죽지 않아서 결국 머리를 쏴 자살했다는 게 쉽게 납득이 됐을까 궁금하네요.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은 어떤 명시적인 압력이나 위협, 부탁도 없었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하도 그걸 물어보니까 이제는 나도 그런 게 좀 있었다면 좋았겠다 싶어요. 그러면 제가 위원회나 언론에 나가서 논란을 간단하게 끝낼 수 있었겠죠. 그렇지만 그건 분명히 아닙니다.

그럼 뭐냐, 부검에 대해 좀 아는 사람들은 가장 민감한 것이 ‘선입견’이라고 합니다. 본인이 스스로 의식하지 않아도, 그게 꼭 강압적이지 않아도, 검시에 임할 때 누군가 정보를 주면 자기도 모르게 끌려가는 경향이 있다는 거죠. 그걸 얼마나 잘 이겨내는가가 검시관의 능력을 판단하는 한 기준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니까요.



특히 군대는 상당히 통제된 사회입니다. 검시관은 헌병대에서 사건의뢰서가 오면 지시에 따라 부검만 하면 끝이죠. 어차피 군 검찰관이든 헌병대장이든 수사를 책임지는 사람은 따로 있다 보니 검시관에게는 재량권이 거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젊은 군 검시관들은 대개 ‘세월만 가라’고 생각하며 복무 기간만 세는 경우가 많아 수동적입니다. 사건의뢰서를 검토하다 거기 들어있는 정보나 방향에 자기도 모르는 새 경도되는 거예요. 허일병 사건 당시 나는 군생활 만 2년 무렵이었는데, 한창 타성이 생길 때죠. 그동안 많은 검시를 문제 없이 넘겼으니까 조심성이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요즘은 변사사건 처리는 단기 군의관이 할 게 아니라 경력도 있고 계급도 높은 사람이 맡아야 하지 않을까, 검시할 때만이라도 일정정도 수사지휘나 재수사 요구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미국의 경우가 그렇거든요.”

현장에 가보지도 못해

-당시 사건의뢰서에 ‘자살자’라는 표현이 있었다는 건가요.

“‘자살 추정’이라고 기록돼 있었죠. 아주 드물긴 하지만 두 발 이상 총을 쏴 자살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요소들이 종합되면 찜찜하지만 그냥 넘어가게 되는 겁니다. 다음 일은 계속 쏟아져 들어오고, 감정서는 얼른 써줘야 하고. 결국 적극적으로 살펴봐야 할 곳을 미처 감지하지 못하는 거죠.

검시를 수십년 한 대가라면 ‘이건 이상하다’ 하는 감이 있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학교를 갓 졸업한 풋내기였죠. 나는 그런 의학적인 소견만 제공하면 나머지 사건처리는 담당부서에서 알아서 하겠거니 생각했던 겁니다. 지금까지 조사한 것이 이상하니까 다시 조사하라고 지시할 권한도 없고요. 검시관은 피동적입니다. 결론은 이미 내려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많은 경우 검시관들은 그 결과를 확인해주는 역할밖에 못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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