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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다큐 | 잃어버린 근대를 찾아서

3·1만세 전야에 마주 앉은 민족대표와 일본 군사령관

1920년대 서울

  • 박윤석│unomonoo@gmail.com

3·1만세 전야에 마주 앉은 민족대표와 일본 군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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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같으면 조선청년도 선배의 창작과 번역을 통하여 소설과 시 등 문예적 교양을 쉽사리 얻어 가질 수 있지마는 그때에는 한 조각의 소설, 한 편의 시가를 얻어 보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겨우 간행물로는 매일신보가 있었고 잡지도 육당(六堂)의 ‘청춘’과 ‘소년’과 ‘아이들보이’들이 있었을 뿐. 선배로 맞을 사람이 오직 한 분이 있었으니 그는 ‘귀의 성’ ‘혈의 누’를 쓰던 이인직 씨일 뿐.

조중환과 이상협이 1·2면의 딱딱한 정치 외신 경제 기사와 3·4면의 부드러운 사회 문화 기사를 나란히 나누어 맡아 신문을 제작하던 1915년에 동경의 후소샤(扶桑社)가 ‘아, 무정’을 단행본으로 간행했다. 그 서문에 구로이와는 이렇게 썼다.

‘레미제라블’이란(…) 사회로부터 핍박받는 괴로움을 당하여 마치 상갓집 개처럼 되는 상태와 잘 들어맞는다. 일본의 문학자가 대개 ‘애사(哀史)’로 일컫는 것은 어떤 의미를 선택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되(…) 사회의 무정함으로부터 한 개인이 어떻게 고통을 받는지를 알리는 것이 원작자의 뜻인 줄 믿기 때문에 (…) ‘아, 무정’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역술(譯述)의 체계는 (…) 원작을 읽고 스스로 느낀바 그대로 나의 뜻에 따라 서술해 나아간 것이다. 그러므로 번역이라 하기보다는 남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내가 아는 이야기로 남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은 것이다. 만약 이를 읽고 원작과 대조하면서 독해력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실망할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나는 사우(社友) 야마가타 이소(山縣五十雄)의 ‘영문 연구 시리즈’를 간절히 추천하는 바이다.(영미 유명작가의 시가와 이야기들을 친절하게 번역하고 주석을 단 책이다.)

야마가타 이소는 경성일보 매일신보와 더불어 조선총독부의 3대 기관지인 영자신문 ‘서울프레스(Seoul Press)’의 사장이다. 구로이와의 만조보에 기자로 있다가 1909년 서울프레스의 2대 사장으로 부임했는데, 셰익스피어에 정통한 저명한 영문학자이기도 하다.

일찍이 레미제라블에 주목한 최남선(崔南善)은 일본어 번역에서 한 장을 발췌해 1910년 그의 잡지 ‘소년’에 전재했다. 또 1914년에 창간한 ‘청춘’ 첫 호의 부록에 ‘세계문학 개관’이라 하여 그 줄거리를 실었는데, 거기서 최남선은 제목을 ‘너 참 불쌍타’로 번역해 달았다.



1895 乙未 타임머신

민태원의 ‘애사’는 2월 8일자에 마지막 회가 나갔는데, 주인공 장발장이 코제트와 마리우스 앞에서 운명하는 장면으로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동경의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 유학생들이 모여 이광수가 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조선의 독립 노선을 밝힌 날이었다. 종로로 돌아가느냐 황금정으로 곧장 가느냐 논란이 분분하던 고종의 장례행렬 노선이 황금정으로 결정 난 날이기도 했다.

불이 꺼지려고 할 때에 반짝하는 모양으로, 사람이 죽으려 할 때 잠시 동안 정신이 나는 것인가. 장팔찬은 그때가 돌아온 모양이다. 별안간 벌떡 일어서며 고설도의 어깨에 의지하여(…) 홍만서를 쳐다보고(…) “빈민과 같이 장사 지내어라. 삼등 묘지 한켠에다가 비석 같은 것도 세우지 말고(…) 지금 너의 팔자가 좋은 것만큼 너의 모친은 고생을 하셨느니라. 네가 지금 호강하는 것도 너의 모친이 고생을 하신 값이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공평한 것이라 고생 끝에는 낙이 돌아오나니”. (…) 장팔찬은 두 사람의 머리에다가 한 손씩을 얹고 어루만지면서 이 세상을 떠났다. 살아서는 웃음이 없던 사람이지만 죽어서는 얼굴에 광채가 났다.

우보 민태원은 문장이 유려하다. 번안소설이라면 경력이나 작품 양에서 이상협이 한참 앞서지만 소설적 필체는 우보를 따르지 못한다. 관립 한성법어학교에서 프랑스어를 배운 이상협은 하몽(何夢)이라는 이국적 느낌의 호를 필명으로 삼아 우보 입사 한 해 전부터 내리 5년간 5편의 번안소설을 연재했다. 그 네 번째 작품이자 13개월 최장기 연재물이었던 ‘해왕성’은 알렉상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번안이다. 원작을 번안한 것은 아니고, 구로이와 루이코가 ‘아, 무정’보다 한 해 앞서 ‘암굴왕(巖窟王)’으로 번안해 자기 신문에 연재한 것을 저본으로 삼아 재번안한 것이다.

‘해왕성’에 이어 이상협의 마지막 연재소설이라 할 ‘무궁화’가 1918년 7월에 끝나자 바로 다음 날 우보의 데뷔작 연재가 시작되었다. 우보를 신문사로 데려온 것도 하몽이었고, 우보에게 소설 연재를 물려준 것도 하몽이었다. 구로이와 루이코라는 보물단지도 그가 물려주었는지 모른다. 구로이와는 쥘 베른의 공상과학 소설 ‘달세계 여행’을 1883년에 번안한 이래 당대 유럽의 주요 작품을 100편 이상 번안해냈다. 조중환이 일본작을 번안한 ‘장한몽’이 매일신보에 연재되던 1913년에 구로이와는 H.G. 웰스의 1895년 대작 S.F. ‘타임머신’을 그만의 스타일로 번안해 만조보에 연재했다. 새 제목은 ‘80만 년 후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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