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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두 번 죽이는 文 정부 ‘유감’

“소재 국산화 정답 아냐” “글로벌 밸류체인 참여해야”

  •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choj@sogang.ac.kr

대기업 두 번 죽이는 文 정부 ‘유감’

  • ● “한국 대기업, 수입품 더 신뢰” 홍장표 발언의 무지함
    ● 국내 소재산업 육성, 글로벌 경제 흐름 역행
    ● 교역으로 살아가야 하는 韓, 절체절명 위기!
    ● 구로다 “日 덕분에 韓 경제 발전” 언사는 망언
    ● 文 정부 무대응 일관하다 즉흥적, 감정적, 당파적 대응
    ● 국민감정 자극해 당파적 이익 챙기겠다는 발상
대기업 두 번 죽이는 文 정부 ‘유감’
일본은 그 어느 나라, 어느 민족보다 우리나라와 애증의 골이 깊다. 일찍부터 일본을 왜(倭)라고 무시하는 듯한 명칭으로 부른 것이나, 일본 해적을 왜구(倭寇)라고 부른 것 등을 보더라도 우리 선조들이 일본을 얼마나 ‘한 수 아래’로 봤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정서의 바탕에는 성리학이 존재한다. 

이씨 조선이 성리학을 국시로 정한 것은 고려 불교의 타락을 경험한 지식인들의 반동에 기인한다. 그러나 성리학이 조선의 번영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깊이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 멸시한 나라에 끝내 주권을 빼앗긴 조선이 어떻게 망해갔는지를 살펴보면 국시로서 하나의 학문적 사조가 끝내 얼마나 타락하고 사유화됐는지 알 수 있다.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이유

우리 조상들이 문화적 우월감에 취해 터무니없는 세도정치와 인치(人治)에 몰입해 있을 때 일본은 명치유신(明治維新)을 통해 권력을 중앙에 집중하고 서구식 민주정치를 도입하는 제도 개혁을 실시했다. 동시에 도쿠가와 막부의 쇄국주의에서 벗어나 개방을 통해 서구의 문물과 기술을 과감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많은 학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명치유신 자체가 지금과 같은 일본의 번영을 초래한 것은 아니다. 좀 더 논리적 언어로 표현하면 명치유신은 경제적 성공의 필요조건이었을 뿐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명치유신과 개방이 없었다면 일본이 현재 누리는 번영은 불가능했을 터이지만 그것이 곧 일본의 성공을 담보한 것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대기업 두 번 죽이는 文 정부 ‘유감’
이를 보여주는 가장 단적인 데이터가 있다. 미국과 대비한 일본의 1인당 실질소득 비율이다(그래프 참조). 두 나라의 이 비율은 명치유신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평균적으로 25% 정도에서 유지됐다. 1930년대부터 1944년까지 30%를 넘은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에 따른 전시 재정지출 증가 때문으로 일본인의 생활수준과는 무관한 일시적 증가였다. 다시 말해 경제 발전의 척도 가운데 하나인 ‘선진국 따라잡기’ 측면에서 본다면 명치유신이 일어난 1867년부터 종전 이후인 1950년까지, 일본에서 일어난 경제 발전은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 같지 않다.

일본의 선진국 따라잡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경부터 일어났다. 20세기 후반 일본의 도약(take off)은 대체로 세 가지 이유로 가능했다. 첫째, 미국의 경제개혁을 들 수 있다. 일본의 제도는 승전국인 미국에 의해 강제적으로 철저하게 개혁됐다. 그때까지 일본의 제도는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 비해 진일보하긴 했으나, 현대적인 의미에서 경제성장이 가능한 유형의 것은 아니었다. 일본을 점령한 미군은 먼저 토지 소유제를 실제 농업에 종사하는 소작인 위주로 개혁했다. 토지개혁에 이어서 미군은 교육, 노동, 시장, 재벌을 개혁하고 방만한 재정, 금융정책의 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선민교육이 아닌 보편교육, 착취가 아닌 계약에 의한 노동, 가격 기능이 작동하는 자유 시장, 재벌에 의한 카르텔의 해체는 현대적 경제성장의 초석이 됐다.



둘째는 자유무역주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자유무역을 위한 국제적인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1930년대 대공황으로 인해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세계적 분위기는 보호무역이었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정부가 나서 무역을 규제함으로써 국제수지의 불균형을 피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보호무역주의는 대공황의 극복을 더디게 만들었고 모든 나라의 경제적 후생 수준을 후퇴시켰다. 각국의 대외 균형과 금융 안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국제 협력이 이루어진다면 대내적인 정책목표를 희생하지 않고서도 보다 자유로운 무역이 가능해지고 세계의 모든 나라는 더 높은 후생 수준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식하에 형성된 것이 ‘브레튼우즈 협정(Bretton Woods agreement)’이다. 미국의 달러를 기축통화(국가 간의 결제나 금융거래의 기본이 되는 통화)로 한 고정환율제도와 자유무역을 위한 국제 질서가 형성된 것이다. 이와 같은 국제 분위기에서 일본은 수출주도형 경제성장 전략을 통해 경제를 부흥시킬 수 있었다. 

셋째, 전쟁을 통한 군수물자 생산을 들 수 있다. 미군에 의한 제도 개혁과 긴축재정, 금융정책에 따라 심각한 불황이 예견되던 시점에 6·25전쟁이 발발했다. 이에 후방기지가 필요했던 미국은 일본의 군수물자 생산을 용인했다. 전쟁특수까지, 운 또한 일본 편이었던 것이다.


‘한일청구권협정’ 위반을 바라보는 시각

결론적으로 일본은 강제적인 제도 개혁과 자유무역의 흐름, 그리고 시대적인 운을 통해 경제부흥을 일궈냈다. 자유무역과 국제적인 분업이 없었다면 일본의 현재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일본은 한국과의 분업을 깨려 하고 있다. 물론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가 국제분업을 완전히 차단하려는 것이라 보기는 힘들지만, 반면 언제라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 황당하기 그지없다. 

지금까지 일본이 누려온 자유무역의 혜택을 부정하고, 다른 나라에는 수출 제한을 둔다는 것 자체가 매우 모순적이다. 특히 일본 소재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의 첨단산업을 타깃으로 한 것 자체가 충격적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일본과의 분업이 항구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조치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이처럼 과격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청구 소송에서 우리 대법원이 우호적으로 판결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 판결을 1965년에 체결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소위 ‘한일청구권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제2조의 해석에 관한 갈등 때문이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그 제2조는 다음과 같다. 


1.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런시스코우시에서 서명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2. 본조의 규정은 다음의 것(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각기 체약국이 취한 특별조치의 대상이 된 것을 제외한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a) 일방체약국의 국민으로서 1947년 8월 15일부터 본 협정의 서명일까지 사이에 타방체약국에 거주한 일이 있는 사람의 재산, 권리 및 이익 


(b)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1945년 8월 15일 이후에 있어서의 통상의 접촉의 과정에 있어 취득되었고 또는 타방체약국의 관할하에 들어오게 된 것 


3. 2의 규정에 따르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으로서 본 협정의 서명일에 타방체약국의 관할하에 있는 것에 대한 조치와 일방체약국 및 그 국민의 타방체약국 및 그 국민에 대한 모든 청구권으로서 동일자 이전에 발생한 사유에 기인하는 것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

위의 제2조 1과 3항이 문제의 조항인데 포괄적으로 개인 및 국가의 청구권이 해결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너무나 분명하게 규정돼 존중하지 않기가 어려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일본은 이를 근거로 ‘해결된 문제’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우리 대법원은 국가 간의 조약이 개인의 민사적 보상까지 해결해준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것이 한일 갈등의 핵심으로 보인다.


日 자금, 경제발전 전기 마련 사실이지만…

7월 31일 국회에서 ‘제1차 일본수출규제대책 민·관·정 협의회’가 열렸다.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7월 31일 국회에서 ‘제1차 일본수출규제대책 민·관·정 협의회’가 열렸다. [장승윤 동아일보 기자]

이뿐만 아니다. 지금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진정 어린 사과의 문제 또한 존재한다. 지금까지 일본이 사과 표현을 한 것은 네 번 정도라고 한다. 총리나 외무상이 한 기존의 발표는 지극히 형식적인 사과였다. 우리가 당한 것에 비하면 도무지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게 국민 정서인 듯하다. 일본을 제외한 해외 언론의 시각도 이와 비슷하다. 이제 조약의 공식적인 해석에 의해 문제가 해결되기에는 너무 감정적이 돼버렸다. 다만,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청구권협정에서 얻은 자금으로 우리 경제 발전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청구권협정을 맺으면서 무상으로 미화 3억 달러 그리고 장기저리 차관 2억 달러를 제공했다. 당시 우리의 수출규모가 1억~2억 달러 미만이고 일본의 외환보유고가 14억 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5억 달러는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었다. 더구나 당시 상황은 경제를 개발하기 위해 외화가 필요한데 누구도 빌려주려고 하지 않던 시기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우리의 신용도를 낮게 봤기 때문이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서독 파견 광부들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후 외국으로부터 외환 차입이 원활하게 이뤄지기까지 우리는 두 번의 전기를 맞았다. 먼저 ‘한일청구권협정’에 의거해 외환이 유입되면서다. 그다음으로는 월남 파병에 따라 미 달러로 지급된 장병들의 급여가 국내로 유입돼 파병 장병들을 위한 군수물자를 우리가 직접 생산하고 그 대가를 미국으로부터 달러로 받으면서부터다. 다시 말해 일본으로부터 보상받은 외화가 우리 경제 발전에 중요한 기틀을 마련해줬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러나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특파원을 지낸 구로다 가쓰히로 씨처럼 “일본 덕분에 한국 경제가 발전했다”는 주장은 견강부회(牽强附會)나 다름없다. 청구권으로 보상받은 나라 가운데 과연 몇 나라가 대한민국만큼 성장했나? 자본이 경제 발전의 중요한 수단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외환만 있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구로다의 언사는 잘 살아보려 피땀 흘려 노력한 대한민국 노동자를 무시하는 발언으로, 경제 발전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 천박한 실언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국민이 과거사를 왜 과거의 문제로 보지 못하는지 깨닫게 해주는 일종의 망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대응은 어떠한가. 현재 한국은 이념의 과잉과 실정법적 혼란 가운데에 있다. 대내적으로는 경제정책의 실정과 북한 편향적 좌파 이념의 과잉으로 나라가 흔들거리고 있다. 과거의 모든 제도와 관행 그리고 대기업은 적폐로 취급받고 있으며 새로이 도입되는 제도와 정책은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맞는 것이 그다지 없다. 이런 와중에 일본의 수출 규제라니, 도대체 이 나라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앞에서 정리했듯, 청구권협정에 비추어볼 때 대법원의 판결은 일본으로서는 충분히 문제 삼을 만한 사안이다. 일본의 반발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한데 문재인 정부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일본과의 갈등이 가져올 파장마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막상 수출 규제라는 조치가 시행되니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며 당파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


위기를 향해 진격 중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 일본의 조치에 대응해 8월 2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긴급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한 일본의 조치에 대응해 8월 2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긴급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대통령의 강한 언사에 지지율이 급등하는 현상은 우리 국민이 얼마나 성숙한지 보여주는 좋은 지표라고 생각된다. 외국때문에 불거진 우환에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쳐 해결해보자는 태도는 지극히 바람직하다. 문제는 이런 여론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정치에 이용하려 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민주당 소속 민주연구원은 ‘수출 규제 조치에 따른 일본과의 갈등이 내년 총선에서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취지의 보고서를 작성해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보냈다고 한다. 

심각한 경제위기에다 일본의 무역 보복까지 겹친 상황에서 집권당이 일본과의 갈등을 선거와 연결 짓다니, 민주당에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국민과 기업, 그리고 국가의 안위는 도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다. 내우외환을 스스로 만들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정치집단이 국민감정을 자극해 총선에서 승리하고 당파적 이익을 챙기겠다는 발상을 하는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다. 

정부의 처신 또한 정상적이지 않아 보인다.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홍장표 위원장은 한발 더 나아가 “한국 대기업은 속도를 추구해왔고 중소기업이 자체 기술을 개발해도 수입품을 더 신뢰하다가 이런 문제가 발생했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지하기 이를 데 없는 발상이다. 일본 수출 규제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기업들에 지금의 난관을 자초했다고 하니, 대기업을 두 번 죽이는 꼴이다. 

지금 이 나라는 위기를 향해 진격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 문제를 국내 소재산업 육성으로 극복하겠다고 하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소재산업의 규제를 과연 몇이나 풀었는지 궁금하다. 소재산업을 일으켜 상황을 타개하겠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타당할지는 모르겠지만, 케인스의 말마따나 ‘장기(長期)에는 우리(또는 우리의 기업) 모두 죽고 없다.’


소재 국산화는 ‘분업의 비용절감’ 포기

또한 소재의 국산화는 국제분업의 비용 절감 효과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자고로 국제분업은 비교우위와 비용 절감이 가능하기에 존재한다. 소재를 직접 만들어 쓰는 것보다 글로벌 밸류체인을 통해 각국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막겠다니, 세계화의 흐름에 역행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 문제 해결의 가장 좋은 방법은 외교적인 해법이다. 염려되는 것은 분명 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북한과 중국, 러시아에 경도된 외교정책으로 우방과의 외교에는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루빨리 우방 외교를 복원하고 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비용을 절약하는 길이다. 교역으로 살아야 하는 이 나라에서 현재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있자면, 위기가 가까이에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만 하다. 위기의 폐해는 힘없고 가진 것 없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적 위기야말로 적폐 중의 적폐다.




신동아 2019년 9월호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choj@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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