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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요리솜씨|코미디언 이주일의 북어김치

푹 삭혀 쫄깃쫄깃한 북어김치 일단 한번 맛보라니까요

  • 글·최영재 기자 사진·김용해 기자

푹 삭혀 쫄깃쫄깃한 북어김치 일단 한번 맛보라니까요

  • 강원도가 고향인 이주일씨는 명태로 김치를 담가 먹는다. 여기 쓰는 명태는 뼈와 내장을 빼고 반쯤 건조시켜 꾸들꾸들해진 것이다. 한겨울 김장김치를 담글 때 이 명태 속에 김장 양념을 채우고, 김장배추 사이에 한 마리씩 넣어, 삭히면 된다. 이 북어김치는 4월 무렵까지 푹 익혀 먹는데, 쫄깃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푹 삭혀 쫄깃쫄깃한 북어김치  일단 한번 맛보라니까요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전’을 보면 시간을 이르는 말로 ‘보리밥 한 솥 할 무렵이 지난 뒤’라는 구절이 나온다. 땔감을 때서 밥을 하던 농경 문화를 경험한 사람만이 쓰는 언어이고 가늠할 수 있는 시간 단위다. 그것도 쌀과 달리 두 번 삶는 보리밥 하는 과정을 아는 서민이라야 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 이런 문화를 경험한 이들은 무쇠솥이 걸려 있던 그 부뚜막 풍경을 잊지 못한다. 탁탁 소리를 내며 이글이글 타는 솔가지, 그르릉 솥뚜껑을 열면 무럭무럭 피어나는 수증기와 구수한 밥냄새는 영원한 추억이다. 심호택 시인은 ‘그 아궁이의 불빛’이란 시에서 이런 풍경에 대한 향수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짚검불이 숨죽이며 타오르는 부엌

불길의 혀에 가쁜 부뚜막에서는

세상 돌아가는 것 까마득히 모르는

멸치들이 시래기를 뒤집어쓰고 끓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주택에 갇혀 쫓기듯 살아가는 대도시의 현대인들이 이런 요리방식과 풍경을 유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럴 만한 공간도 없거니와, 시간과 정성도 없다. 하지만 코미디언 이주일씨(60·본명 정주일)는 이런 전통 요리 방식을 꿋꿋이 지키며 사는 보기 드문 사람이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그의 농장에는 가마솥과 부뚜막, 김장독과 장독대가 집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집 앞 남새밭에는 배추와 쑥갓, 상추, 미나리, 시금치를 키운다. 호박도 있다. 호박 이파리는 쌈을 싸먹고, 열매는 나물이나 죽을 쑤어먹는다. 그는 계절별로 이 푸성귀들을 겉절이로 양념해먹고, 삶거나 데쳐서 나물로 무쳐먹는다. 겨울이 되면 남새밭 한구석에 굴을 파고 팔뚝만한 무를 묻어 놓는다. 무는 겨우내 먹을 소중한 양식이다. 술을 즐기는 그는 술 먹은 다음날 속이 볶일 때, 이 무를 하나 꺼내 씹어먹는다. 시원한 생무를 깎아 먹으면 신기하게도 속이 풀린다는 것이다.

아는 사람만 아는 이주일씨의 요리솜씨는 요리학원 같은 데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 여인들이 무쇠솥에 불을 때서 밥을 하고, 메주로 된장과 간장, 고추장을 담그고, 김치와 젓갈을 만들던 손맛 그 자체다. 특별히 요리라고 내세울 것도 없다. 그는 그저 한국인이 먹는 밥과 국, 찌개, 나물, 김치, 젓갈, 생선구이 같은 음식을 맛있게 척척 해낸다. 물론 그 음식맛이 하루아침에 쌓인 것은 아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요리와 음식에 관심이 많아, 어머니가 요리하는 부엌을 자주 기웃거렸다. 사내놈이 부엌을 드나든다고 야단도 많이 들었지만 아무도 그의 관심을 막지 못했다. 가난했던 젊은 시절, 단칸방을 전전할 때도 그는 추운 방 안에 김장김칫독만은 담요로 싸서 애지중지했다고 한다. 김치가 얼지 않고 익기 좋게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이주일씨가 내는 음식맛의 비결은, 그가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 젓갈 같은 저장음식 제조에 능한 데 있다. 이주일씨는 연례행사로 메주를 쑤어 간장, 고추장, 된장을 직접 담근다. 많이 만들기 때문에 여러 해 묵은 된장과 고추장도 있다. 한 5년 정도 묵은 된장은 버릴 것 같은데 다 쓸 데가 있다. 된장이 5년 정도 묵으면 색깔이 검게 변하고 딱딱해진다. 이 된장을 조금만 물에 풀고 배추를 넣고 소금간을 해 끓이면 기막힌 된장국이 된다.

된장, 고추장, 간장이 든 장독대 관리는 소나무 가꾸기, 분재와 함께 이주일씨의 취미 중 하나다. 볕이 좋은 날에 그는 이 장독 뚜껑을 열어 볕과 바람을 쏘이고, 해가 지기 전에 닫는다. 이 장독대는 그의 손길이 조금만 소홀해지면 탈이 난다. 지난해 이주일씨는 아내와 함께 제주도에 두 달 정도 가 있었다. 그 동안 그는 두고 온 장독대 걱정에 하루가 멀다 하고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일하는 아주머니가 장독대를 잘 관리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장독대로 달려가 된장독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구더기가 하얗게 슬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루는 날씨가 맑다가 비가 내렸는데, 일하는 아주머니가 된장독 뚜껑 닫는 것을 잊고 비를 맞혔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험 많은 그는 이 된장을 버리지 않았다. 구더기를 깨끗이 걷어내 집에서 키우는 닭 모이로 주고 된장독에는 소금을 듬뿍 뿌려 놓았다. 며칠 뒤 윗부분을 조금 떠내니, 그런대로 먹을 만한 된장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전통 음식 가운데서 강원도와 함경도 해안지방 음식에 가장 능하다. 이주일씨가 태어난 곳은 강원도 고성군 통천면이다. 이곳은 육류는 귀하지만 채소와 생선이 많이 나는 곳이다. 당연히 반찬도 채소와 생선 위주였다. 강원도에서 나는 생선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명태다. 사실 명태는 어디 한 군데 버릴 데가 없는 생선이다. 살로는 국이나 찌개를 끓이고, 내장으로는 창란젓을, 대가리는 귀세미젓을, 알은 명란젓을 담가먹고, 눈알은 구워 술안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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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씨는 이 명태로 김치를 담가 먹는다. 어릴 때 고향 강원도 통천에서 배운 솜씨다. 김치를 담글 때 쓰는 명태는, 생태를 반쯤 건조시켜 꾸들꾸들해진 것이다. 김장김치를 담글 때 이 명태 속에 김장 양념을 채우고, 김장배추 사이에 한 마리씩 넣어, 김치처럼 익히면 된다. 이 북어김치는 4∼5월 무렵까지 푹 익혀 먹는다. 다른 생선은 금방 발효되는데 명태는 11∼12월경에 담아 5∼6개월 삭히더라도 형태가 그대로 남고, 살도 단단하게 보존된다. 4∼5월경 이 북어김치를 꺼내 김치와 같이 썰어 먹으면, 명태살은 쫄깃쫄깃 씹히고 배추는 시원해서 그 맛이 일품이다.

음식 솜씨 때문인지 그의 집에는 항상 식객들이 들끓는다. 이때 그가 대접하는 식단이 가마솥밥, 가마솥에서 푹 끓인 비지찌개, 북어김치, 동치미, 도루묵 구이, 함경도 가자미식해 등이다. 이렇게 발효음식과 곰팡이 다루기에 능한 그도 포기한 영역이 있다. 바로 술 담그기로 번번이 재료만 버리고 실패했다 한다. 누룩 곰팡이 다루기는 그만큼 어려운 경지인 모양이다.

일화가 하나 있다. 몇 해 전 미국의 한 상원의원이 한국을 찾아왔다. 민속촌과 여러 관광지를 둘러본 이 의원은,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조형물말고, 진짜 한국적인 것을 보여달라고 안내자에게 요구했다고 한다. 이 안내자는 그 의원을 이주일씨 농장으로 데리고 왔다. 이주일씨는 그의 보물인 된장, 고추장, 김장김칫독과 앞마당에서 말리던 황태를 보여주고, 이 재료로 토종 한국 음식을 만들어 대접했다. 무쇠솥과 부뚜막, 장독대의 재료로 만든 그 음식을 맛본 이 상원의원은 “이것이 진정 한국적인 것이다”라고 감동했다고 한다. 얼마 뒤 미국으로 돌아간 이 의원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그 맛을 잊지 못해 한국식당을 찾았는데 내용물은 비슷한데 그 맛이 안 나더라는 것이다.

이주일씨의 음식을 맛보면 누구나 감동하지만, 유달리 그의 입맛에 길든 이가 있다. 바로 일곱살 난 외손녀다. 할아버지가 만든 발효 음식을 먹고 자란 이 어린 외손녀는 또래가 좋아하는 피자나 콜라 같은 음식은 손도 대지 않는다. 어느 정도냐 하면 미국 가는 비행기 안에서 주는 기내식이 입에 맞지 않아, 김치와 된장국을 내놓으라고 억지를 부렸다는 것이다. 음식이 민족 문화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동아 2001년 1월 호

글·최영재 기자 사진·김용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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