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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연구

‘고민하고’‘괴로워하는’ 리얼리스트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

  • 글:김중기 filmtong@imaeil.com

‘고민하고’‘괴로워하는’ 리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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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격 행보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창동 신임 문화관광부 장관.
  • 연극인·교사·소설가를 거쳐 마흔 나이에 영화 입문, 10여 년 만에 세계적 영화감독으로 우뚝 선 그의 알려지지 않은 삶과 일화들.
‘고민하고’‘괴로워하는’ 리얼리스트
지난 3월1일 이창동(李滄東·49) 문화관광부 장관이 대구로 가기 위해 공항에 들렀다. 대구지하철 방화참사 현장을 방문하고,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가는 길이었다. 이장관이 공항에 나타나자 그를 알아본 공항 의전담당 직원이 뛰어왔다. 그 직원은 평소 ‘장관의 행차’처럼 모든 편의를 제공할 태세였다. 그러나 이장관은 모든 것을 마다했다. 좌석도 일반석을 고집했고, 그냥 지나도 된다는 공항 직원의 말에도 굳이 검색대를 통과했다. ‘개인 자격’이라는 것이다. 이날 이장관은 수행원도 없었다. 천성적으로 권위적인 것을 싫어하는 그의 성정을 보여주는 일화다. 권위적인 것, 틀과 굴레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처마 밑 댓돌처럼 요지부동이다.

이장관은 취임 후 ‘파격 복장’ ‘파격 출근’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남들은 ‘파격’이라 했지만 그것이 가장 ‘이창동다운’ 모습이고, 솔직함이다. 한편에서는 해프닝으로 몰고 가는 움직임도 없지 않지만,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소신껏 추진하는 자신감의 발로이다.

덧붙이자면, 이장관은 이날 대구공항에 내려서는 흰 와이셔츠를 사기 위해 ‘동분서주’했다고 한다. 대통령으로부터 장관 임명장을 받는 자리에도 캐주얼풍 와이셔츠로 등장했던 그다. 옷가게에서 와이셔츠를 사서 갈아입고 나서야 그는 합동 분향소를 찾았다.

어느 완벽주의자의 초상

제법 오랜 친분을 이어온 기자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장관의 이미지는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이다. 한번은 기자가 “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박하사탕’을 가지고 칸국제영화제에 참가한 직후다. “행복해 본 적도, 행복의 개념도 모르는데 어떻게 행복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이 대답이었다.

소설가에서 영화감독으로 화려한 변신을 했고, 달착지근한 영화 일색인 가운데 걸출한 리얼리즘 영화로 작가주의 감독으로 ‘칭송’받고, 국제영화제에서도 호평을 받은 인물이 단 한번도 행복감을 느껴보지 못했다는 것이 의외였다. 지난해 ‘오아시스’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받고 난 후 똑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를 보면 늘 ‘박하사탕’의 김영호가 오버랩된다. 정말 천성적이다. 자기완벽을 추구하는 결벽증 때문일까.

이장관은 지난 대통령선거 때 TV 토론프로그램에 나와 ‘왜 노무현인가’를 역설해 많은 공감을 끌어냈다. 이날 그의 논리적인 지지발언은 많은 유권자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이날 저녁 이장관은 밤새 자책하며 잠을 설쳤다고 한다. ‘할 말을 제대로 못했고, 잘하지도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단다. 그도 모자라 뜬눈으로 밤을 샌 이튿날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났다. 이 정도면 ‘지독한’이란 수식어를 써도 무방한 완벽주의자 아닌가.

소설가에서 영화감독으로의 변신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만, 그가 연극에서 출발한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이장관은 어릴 때부터 연극 극장에서 살다시피했다. 맏형의 영향 때문이다. 맏형은 경주문화엑스포 행사기획 실장으로 있는 이필동(59)씨. 1967년 대구에 최초의 동인제 극단인 ‘인간 무대’를 창단해 40여 년간 연극만 파고든 원로 연극인이다. 현재도 원각사란 극단을 운영하고 있다.

이장관은 여덟 살 때부터 형의 연극을 보러 다녔다. 형이 극단을 창단해 본격적으로 연극을 시작할 때는 새벽같이 연극 포스터를 붙이고 다녔다. 당시는 통행금지가 있던 때다. 이필동씨는 “새벽 4시에 일어나려면 귀찮았을텐데 군소리 없이 풀통과 포스터를 들고 집을 나섰다”고 회상했다.

커서는 배우 대신 대타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한 연극인은 “완벽한 대사로, 미리 준비하고 무대에 오른 듯했다”고 그를 기억하고 있다. 늘 조용히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볼 뿐이던 그가 너무 완벽하게 연기를 해내는 통에 기성 연극인들이 머쓱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는 대학(경북대 국어교육학과) 시절 이미 10여 편의 연극에 출연하고, ‘수업’, ‘엘리베이터’ 등을 연출하기도 했다.

‘문학 청년’이던 그는 연극을 했다는 사실을 주위에 별로 알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긴 워낙 말수가 적고, 자신을 잘 드러내려 하지 않는 사람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래서 한번씩 사람들을 깜짝 놀래키기도 한다.

대학 은사인 이주형(59·경북대 국어교육학과) 교수도 그랬다. “강의실에서 1인극 ‘너도 먹고 물러가라’는 연극을 하는데, 얼마나 잘하는지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웬만하면 그런 학과 행사에 제작비 지원을 요청하거나, 적어도 소문이라도 낼 법하건만 그는 그렇게 하지를 않았다. 이교수는 “정말 생각이 깊고, 어른스러웠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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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중기 film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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