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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쟁영웅 16인에 뽑힌 유일한 아시아계 고(故) 김영옥 대령

“망국의 한, 인종차별 딛고 전사(戰史)에 이름 남긴 인도주의자”

  • 한우성│재미언론인,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 저자 wshan@stanford.edu

미국 전쟁영웅 16인에 뽑힌 유일한 아시아계 고(故) 김영옥 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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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희생과 봉사

미국 전쟁영웅 16인에 뽑힌 유일한 아시아계 고(故) 김영옥 대령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전선을 시찰하는 미국 전쟁성부장관(가운데 양복 정장)을 맞아 의장대 사열을 인도하는 김영옥 당시 대위.

미국에서 ‘미국 최고 전쟁영웅’이란 호칭은 단순히 전쟁에서 가장 용감했거나 유능했던 군인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의미가 있다. 미국이 영국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독립국으로 태어나는 과정에서, 남북전쟁이라는 분단의 위기를 극복하고 통일국가로 살아남는 과정에서, 국가적 명운을 걸고 싸웠던 양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해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냉전을 승리로 이끌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시대를 여는 과정에서, 생명을 내놓고 사선을 넘나들며 현재의 미국이 있도록 희생과 공헌을 한 인물을 의미한다.

미국이 전쟁영웅을 소중히 여기는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 사람들이기 때문이며, 그들이 있음으로써 인권도 복지도 존재할 수 있음을 비싼 대가를 치르고 배웠기 때문이며, 오래도록 그것을 잊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들을 기억함으로써 전쟁을 기억하고 그 과정을 통해 왜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며, 나아가서는 어떻게 전쟁을 피할 수 있는지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는 전쟁이 강요될 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그들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번 발표에 곁들여진 설명은 ‘김영옥은 1919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한국계’라고 시작된다. 이 설명은 19년 전 한국인을 파렴치하게 묘사했던 미국 주류언론의 무책임한 보도와 교차되면서 격세지감을 갖게 한다.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1992년 4월29일 시작)으로 불리며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이 사건 당시 로스앤젤레스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주류언론은 한국인의 이미지를 왜곡하는 기사를 대량 생산했다. ‘한국인들은 지역 사회에 대한 공헌이나 국가를 위한 헌신에는 관심 없이 돈벌이에만 급급한 수전노다. 1달러짜리 오렌지주스 한 병을 훔쳐 달아나는 흑인 소녀의 등에 총을 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요지였다. 이 같은 보도는 당시 ‘로드니 킹(Rodney King) 사건’으로 폭발 직전이던 흑백갈등의 분출구로 재미 한인 사회를 속죄양으로 만드는 데 톡톡히 일조했다. 결국 재미동포 사회는 인명피해와 함께 3억달러의 재산피해를 보면서 폭동의 참담한 제물이 됐다.

일본계 미군부대에서 맹활약



‘로드니 킹’ 사건이란 1991년 로스앤젤레스 일원에서 교통법 위반으로 경찰에 체포된 흑인 청년 로드니 킹(당시 26세)이 백인 경찰들에 의해 무참히 구타당한 사건이다. 이 장면을 우연히 포착한 시민의 동영상이 미국 내외로 퍼지면서 세계적 뉴스가 됐다. 이 사건을 심리한 캘리포니아주 법원은 당시 현장에 있던 경찰관 4명 모두에 유죄 선고를 내리지 않음으로써 흑인사회의 분노를 폭발시켰고 이것은 곧 폭동으로 이어졌다. (미국 법체계에서 무죄 선고와 ‘유죄 선고를 내리지 않는 것’은 법리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이후 미국 연방법원은 이 사건을 재심해 가해 경찰관 2명을 징역형에 처했다.)

그러므로 ‘미국 역사상 최고의 전쟁영웅 16명 가운데 한 명인 김영옥 대령은 한국계’라는 설명은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 당시 범람했던 한국인에 대한 악의에 찬 왜곡 보도의 정반대편에서 한국인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두 가지 보도 모두에서 한국인 전체와 재미 한인의 이미지가 동일시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다면 김영옥 대령은 과연 누구인가. 그는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에서 불패신화를 남긴 전설적 전쟁영웅이자 위대한 인도주의자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재미동포 2세인 그는 미군 육군 장교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 일본계 미군부대인 100대대의 소대장·정보참모·작전참모 등을 맡으며 명성을 날렸다. 100대대는 1941년 12월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자 미국이 일본계 이민자의 충성심을 의심해 일본계 시민 12만 명을 격리 수용하고 2세들로 편성한 미군부대다. 유럽전선에서 용맹을 떨쳐 훗날 부대 규모와 전투기간을 기준으로 미군 역사상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부대가 됐다.

김영옥 대령은 1941년 징집돼 육군 사병으로 복무하던 중 미군 사상 최초로 아시아계 장교후보생으로 선발됐는데, 그가 1943년 2월 임관해 처음 배치된 곳이 바로 이 부대였다. 독립운동가 김순권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 음식은 먹지도 말고, 일본 아이들과는 놀지도 말라”는 철저한 반일교육을 받고 자라난 그가 이 부대에 배치된 것은 혼돈의 역사가 빚은 아이러니다.

김영옥 대령이 처음 이 부대로 가자 대대장은 “한국인과 일본인의 갈등을 잘 안다. 다른 부대로 보내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그들도 저도 미국 시민으로 같은 목적을 위해 싸웁니다. 이 부대에 남겠습니다”라고 답해 잔류한 이야기는 이제 유명한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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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성│재미언론인,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 저자 wshan@stanford.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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