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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장 ⑧

사라진 우리 쪽빛 되찾은 염색장 정관채

“전통 잇는다는 집념으로 버텨왔는데 이제는 자연 염색이 유행이네요”

  • 한경심│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사라진 우리 쪽빛 되찾은 염색장 정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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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우리 쪽빛 되찾은 염색장 정관채

7월이면 쪽이 무성하게 자란다. 이때부터 여름 내내 서둘러 쪽을 거둬들여야 한다. 일단 꽃이 피면 색소함유량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물에 담가 아래위를 뒤집어가며 이틀 정도 두면 이파리에서 녹색 물이 빠져나온다. 쪽대는 이때 건져내야 한다. 너무 오래두면 잡균이 번식하고 너무 일찍 건져내면 인디카인이 충분히 우러나지 못한다. 쪽대를 언제 건져내느냐가 중요한데 장인은 날씨와 쪽물의 색깔, 용기 재질 등을 고려해 ‘감’으로 결정한다. 일본에는 이를 판단하는 전문가가 따로 있을 정도라고 한다.

쪽대를 건져낸 다음에는 굴이나 조개껍데기를 구워 만든 석회가루를 넣고 저어줘야 한다. 작대기 끝에 작은 목침 모양의 나무가 달린 긴 고무래(곡식이나 재를 긁거나 흙을 고를 때 쓰는 농기구)로 항아리를 휘저어주면 쪽 추출액은 처음에는 쑥색을 내다가 거품이 점점 커지면서 노란색(연두색)으로 변하고 다시 적갈색, 보라색, 청록색, 그리고 마침내 쪽빛 특유의 남색으로 변한다. 이렇게 휘저어주는 당그래질(고무래질)은 석회와 쪽물이 잘 섞이게 하고 산소를 공급한다. 석회와 산소가 쪽 추출액과 반응해 화학 변화를 일으키는 이 30여 분 동안, 항아리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무쌍한 색의 향연은 보는 사람의 눈과 마음을 홀리고도 남는다.

“알칼리성 석회는 쪽 추출액에 들어 있는 색소 성분을 잡아주는 작용을 합니다. 이렇게 색소와 결합한 석회는 바닥에 가라앉게 돼요. 석회가 완전히 가라앉도록 기다려 제 얼굴이 비칠 정도로 맑아지면 웃물은 따라내고 가라앉은 색소를 취하죠.”

색소가 들어간 석회가루는 진흙 같아서 이 상태의 염료를 흔히 니람(泥藍)이라고 하지만 그는 ‘뻘’이라고 부른다. 이 뻘을 시루나 바구니 등에 올려놓고 물기를 빼면 탈수된 니람을 얻을 수 있다. 예전에는 이 니람을 항아리에 담아 보관하거나 젓갈 통에 담아 유통시켰다.

이렇게 염료를 얻는 과정은 쪽 수확부터 며칠 사이에 이루어진다. 수확 시기부터 일련의 과정은 힘들다고 미루거나 중간에 쉬어가며 할 수 없다. 쪽대를 벨 시기를 놓쳐서도 안 된다. 물에 담근 뒤에도 잘못 건사하거나 제대로 저어주지 않으면 색소를 얻는 데 실패할 수 있다. 한 과정이라도 때를 놓치면 실패로 돌아가니, 때를 잘 맞추는 게 관건이다. 그러다 보니 쪽을 수확하는 여름 내내 그는 더위 속에서 쪽밭과 마당의 항아리 사이를 오가며 일한다.



“염색은 볕 좋고 건조한 봄과 초가을이 최적기지만, 염료를 만드는 일은 한여름에만 할 수 있습니다. 새벽에 쪽을 베어 항아리를 채우고, 학교에서 돌아와 항아리를 열 개 정도 휘젓고 나면 나중에는 항아리 속에 제가 처박힐 정도로 지치죠.”

몸도 마음도 고된 탓일까. 그는 2001년 어느 더운 날 쪽을 베다가 왼손 무명지 윗마디가 잘려나가는 변을 당한다. 잘린 부분을 가지고 곧장 병원으로 달려가 미세접합수술을 받은 덕에 가까스로 붙일 수 있었는데, 수술이 끝나고 보니 멀쩡한 손톱이 뽑혀 있었다고 한다.

“의사선생님이 시퍼렇게 쪽물이 든 손톱을 보고 손톱이 썩은 줄 아신 거예요. 마취한 김에 손톱까지 뽑았다고 하더라고요.”

“대학 나와서 왜 이 고생을 하느냐고 말렸지만…”

사라진 우리 쪽빛 되찾은 염색장 정관채

전수관 사무실에서. 그는 쪽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해 대구가톨릭대 대학원 섬유디자인학과에 진학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이런 사고를 당한 것도 쪽 염료를 만드는 과정이 한여름 삼복더위에 몰려 있어집중력이 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제일 힘든 점은 수확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염려스러운 것은 수확하는 일입니다. 비가 많이 와서 쪽밭에 못 들어갈 때, 꽃이 막 피려고 하는데 수확을 끝내지 못했을 때, 더위에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했을 때 제일 곤란하지요.”

그의 공방이기도 한 천연 염색 전수관 앞과 그 인근에는 수확하는 데만 서른 명 정도의 일꾼이 필요한 쪽밭이 있다. 하지만 새벽부터 쪽밭에 나가 고된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어디 흔하랴. 더구나 삼복더위에 쪽 이파리를 물에 담가두면 그 냄새가 만만치 않다. 가만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삼복더위에 냄새 나고 힘든 노동을 하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사서 고생한다”며 혀를 찼다고 한다.

“쪽 농사를 하던 사람도 그만두는 마당에 대학까지 나오고 멀쩡한 직업까지 있는 사람이 왜 이런 고생을 하느냐는 거죠. 그러나 저는 쪽에 제 인생을 걸어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은행원이었다. 교사와 은행원이라는 안정되고 고상한 직업을 가진 젊은 부부가 쪽물에 매달리자 주변에서는 모두 말렸지만 그의 어머니 최정님 씨만은 늘 그를 지지하고 도와줬다. 그의 어머니는 염색에 필요한 잿물을 만들기 위해 콩대를 태운 재를 거두다가 세상을 떴다고 한다.

“어머니의 뜻을 받들기 위해서라도 쪽물 염색을 게을리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전통을 되살려야 한다, 돈도 안되는 이 일을 내가 아니면 누가 할까 하는 의무감이 더 강했습니다.”

대개 장인에게 일은 보람이자 즐거움이다. 그런 즐거움이 있기에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외곬으로 일에 매달릴 수 있다. 정관채도 때깔이 제대로 나온 작품을 얻으면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게 염색은 즐거움이기에 앞서 의무였다. 의무감으로 하는 일은 힘들고 한계에 부딪히기 쉽다. 다행히 그는 “농사든, 어떤 일이든 두렵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농사꾼이자 일꾼이기를 자처한다. 정관채는 염색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설명하는 키워드로 세 가지를 꼽았다. 미술학도와 농부, 그리고 샛골이다. 그는 “미술을 전공한 내가 샛골에서 나고 자란 것은 태생적으로 염색과 깊은 인연이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건 그에게 주어진 운명과도 같다. 하지만 농부가 되어서 다시는 이 땅에 쪽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은 그의 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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