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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록, 그 진실과 왜곡 사이

역사성 대신 본성 사론(史論) 아닌 도덕론

이광수 ‘민족개조론’에 담긴 시선

  • 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역사성 대신 본성 사론(史論) 아닌 도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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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은 원래 그런 거다, 라고 시작하면 이미 답은 닫혀 있다. 남자는 원래 그래, 라든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지 뭐, 라는 식의 출발은 결론을 보지 않아도 안다는 말이다.
  • 그런 점에서 답이 닫혀 있다는 건 조금 슬픈 일이다.
  • 답이 나와 있는 것보다 답이 열려 있어야 흥미롭지 않을까.
역사성 대신 본성 사론(史論) 아닌 도덕론

일본의 식민지 논리를 철저히 내면화한 이광수. 1937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구속된 그는 재판 도중 ‘가야마 미쓰로’로 창씨개명한다.

‘신동아’ 9월호에서 다룬 주제는 동기(動機)의 오류, 그러니까 인과론의 일종이라고도 할 수 있는 동기의 문제였다. 다만 이 문제를 인간학적 차원에서 접근했다는 차이가 있다. 인간학이라고 하니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뭔가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과 무관한 ‘인간’이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거기서 역으로 역사적 사건의 원인을 설명해 들어가는 방식에서 나타나는 오류의 문제를 다룬 것이다.

다시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은 이런 생각 방식이 우리에게 익숙하고 또 쉽게 전이되고 내면화하기 때문이다. 그 얘기 먼저 하겠다.

원시 민족의 변천

역사학의 역사인 사학사(史學史)나 조선시대사 강의를 주로 맡았던 나는 한동안 기말고사 때 꼭 내는 시험문제가 있었다. 학기 초에 강의계획서를 설명하면서, 미리 기말고사 문제의 하나를 제시해 학기 중에 고민했다가 답안을 작성하라는 취지였다. 시험문제는 이랬다. 이광수(李光洙·1892~1950)의 ‘민족개조론’을 비판하라.

언뜻 보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도, 학생들의 답안은 심정적 비판 쪽에 가까웠지 논리적, 사실적이라고 보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대체로 80점은 넘는데, 95점 이상이 적었다고 해야겠다.

그러던 어느 날 분단시대론을 비롯해 근현대사 연구의 주춧돌을 놓으신 강만길 선생님을 모신 식사자리가 있었다. 얘기를 나누던 중 나는 기말고사 경험을 선생님께 털어놨다. 좋은 문제라는 데 동감하시면서, 그러면 다음에는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와 비교해 서술하라는 방식으로 바꾸면 어떻겠느냐고 조언하셨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접근 방법이었다. 역사학자이면서 해외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매진하다 감옥에서 일생을 마친 인물과 이광수를 비교하면 설득력 있는 답안이 가능할 듯도 싶었다.

그러나 나는 이를 시도해보지 못했다. 다만, 시도했더라도 인물 비교는 가능했겠지만 역시 이광수의 ‘민족개조론’ 자체를 비판한다는 목적을 십분 달성하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무엇보다 내가 이광수를 비판하기엔 약했던 것이다.

이광수는 파리 평화회의 이후 국제연맹이 조직된 시대를 ‘개조의 시대’라고 규정했다. 제국주의 세계의 개조, 생존경쟁 세계의 개조, 남존여비 세계의 개조. 이런 누구도 거부하기 힘든 근대 사상의 비전을 기조로 “이 시대사조는 우리 땅에도 들어와 각 방면으로 개조의 부르짖음이 들립니다. 그러나 오늘날 조선 사람으로서 시급히 하여야 할 것 개조는 실로 조선 민족의 개조외다”라고 선언했다.

원시시대의 민족 또는 아직 분명한 자각을 가지지 못한 민족의 역사는 자연현상의 변천의 기록과 같은 기록이로되 이미 고도의 문명을 가진 민족의 역사는 그의 목적의 변천의 기록이요, 그 목적을 위한 계획과 노력의 기록일 것이외다. 따라서 원시민족, 미개민족의 목적의 변천은 오직 자연한 변천, 우연한 변천이로되 고도의 문명을 가진 민족의 목적의 변천은 의식적 개조의 과정이외다.

그는 조선 민족이 변하지 않고 정체돼 있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과거에 숱하게 변하였으되, 그 변천은 자연적이고 우연한 변천이지 목적의식적이고 통일적인 계획을 가진 변천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곧 원시 민족의 그것이었지, 문명을 가진 민족의 변천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미숙한 어른의 붓끝

“서른 살을 기점으로 하여 어른다운 삶을 전개하는 마당에서 춘원은 아내 허영숙의 명령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형국이다. 아내 허영숙은 그러니까 고아 출신의 춘원에겐 제2의 고향이요 어머니의 젖무덤과도 같은 것이다. 도산(안창호)이 그에게 아버지라면, 허영숙은 그에게 어머니였다. 춘원은 이 시점에서 방랑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 방랑의 끝, 그것이 그에겐 귀국이었다. 춘원은 이 귀국을 하느님의 명령이라 주장하였다. 팔자로 정해진 것, 그것이 그의 강변이었다.”(김윤식, ‘이광수와 그의 시대2’, 솔, 2008, 28~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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