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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인 성공학|서부산업 회장 윤만희

‘닥터위콤’으로 세계 어학실습기 시장 평정

  • 곽희자 자유기고가

‘닥터위콤’으로 세계 어학실습기 시장 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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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산업은 20여종의 어학실습기를 생산한다. 어학실습실에 설치되는 주장치에서 좌석에 부착되는 녹음기, 헤드세트, 기타 주변장치에 이르는 모든 제품을 자체 생산해 납품한다.

윤만희 회장이 어학실습기 사업에 뛰어든 것은 24년 전인 1976년. 그 무렵 정부는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추진하면서 외국어 능력 습득에 지대한 관심과 비중을 두고 있었다. 당시 윤회장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하루는 사무실에 들른 친구가 ‘이젠 외국어를 잘해야 기를 펴는 시대니 어학실습 장비를 만들어 팔면 재미가 좋을 것 같다’고 해요. 다른 사업도 아니고, ‘외국어를 공부하는 데 필요한 교육기기’라는 소리를 들으니 돈 버는 것을 떠나 마음이 끌리더군요. 나 자신 많이 배우지 못해 한이 많았던 터였으니까. 그때부터 이곳저곳 돌아보기 시작했죠.”

‘전자(電子)’의 ‘전’자도 몰랐다는 그는 1년여 동안 세계 각국의 관련 전시회를 돌아다니며 연구를 계속했다. 당시의 어학실습기는 녹음기에 주장치와 통신을 연결한 시스템이었는데, 자기 음성을 동시 녹음해서 교재의 음성과 비교해 보는 기능이 일반 녹음기와 다른 점이었다.

어학실의 주장치 앞에 앉은 교사가 주변장치(카세트, 전축 등)를 통해 프로그램을 내보내는데, 시작하기 전에 카운터를 0으로 맞춰 놓고 숫자를 봐가면서 재생과 정지, 반복을 거듭했다. 교사가 한 번 읽어주고는 학생들로 하여금 따라 읽게 하거나 속도를 보통으로, 혹은 느리게 해서 들려주는 게 주된 기능이었다.



윤회장은 기능은 그대로 만들되 그 과정을 자동화하면 상품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디어를 들고 KAIST와 전자통신연구소를 찾아갔다. “이런 물건을 만들려는데 가능하겠느냐”고 물었더니 가능하다는 대답이 나왔다. 그래서 76년 서부산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7명의 연구인력을 고용, 본격적으로 제품 개발에 들어갔다.

3년 만인 79년, 첫 작품 ‘위콤’이 탄생했다. 디자인은 투박했지만 기능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들이 감탄했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들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위콤’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당시 정부예산회계법에는 학교에 장비를 납품하려면 납품 실적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었다. 서부산업에 이런 실적이 있을 리 없으니 가는 곳마다 문전박대를 당했다.

윤회장은 자동차에 ‘위콤’을 싣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꺼내놓고 기능 하나하나를 설명했다. 성능을 알리기 위해 무료로 장비를 설치해 주기도 했다. 이처럼 적극적인 홍보로 제품 인지도가 높아지자 80년에는 4억여원을 들여 경기도 곤지암에 560평의 대지를 마련하고 새마을공장을 지었다.

무리한 개발비 투자로 부도

지속적인 기술 개발에 힘입어 82년에는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중소기업 우량업체’로 지정되기도 했다. 85년에는 기존 어학실습기 기능에 8비트 컴퓨터와 카세트 기능을 결합한 신제품을 만들어냈다. 이 제품은 선택한 문장을 원하는 횟수만큼 자동으로 반복해 들려주도록 설계됐다.

그런가 하면 시작점과 끝점을 정해 구간 반복이 가능케 했으며, 학습자가 따라 읽어야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도록 함으로써 기계가 사람 역할을 대신하게 했다.

윤회장은 이 기술로 발명특허를 내고 이 기술을 적용한 신형 ‘위콤’과 ‘닥터 위콤’을 선보였다. 그러나 그 동안의 무리한 개발비 투자로 이듬해인 86년 첫 부도 위기를 맞게 된다.

그는 부도만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위콤’과 관련 자료를 들고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던 사공일씨 집으로 무작정 찾아갔다. 자정이 넘어 귀가한 사공수석을 붙들고 사정을 호소했지만, 그는 “중소기업 경영하는 게 어려운 줄은 잘 알지만, 돈 문제라면 은행으로 가야지 나한테 오면 어떡하느냐”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그는 매일같이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때마다 사공수석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일주일째 되던 날, 집 앞에서 사공수석을 기다리던 윤회장은 새벽 두 시가 되도록 그가 나타나지 않자 자신이 왔다 갔다는 흔적이라도 남겨두려고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뜻밖에 사공수석이 나타났다. 몸이 아파 일찍 귀가해 쉬고 있던 그는 윤회장을 보자 “밤늦게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냐”며 핀잔을 주고는 “밝은 날 사무실에서 얘기나 한번 들어보자”며 다음날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로 그날 결국 부도가 나고 말았다. 윤회장은 사방에서 돈을 빌려 우선 급한 어음부터 막아놓고 청와대로 전화를 걸었다. 청와대에선 벌써 윤회장에 대해 조사를 마친 상태였다. 청와대는 서부산업이 독자적인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인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부도처리를 취소함과 동시에 8억원의 신규 대출까지 주선해줬다.

하지만 이 돈으로 30억원대의 부도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86년 8월, 서부산업은 마침내 최종 부도를 맞고 말았다.

“사람들은 부도가 나면 죽는 줄로 아는데, 쥔 걸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칠 때가 힘들지, 모든 걸 놓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요.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속 편했을 때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맨손으로 서울에 올라왔을 때와 부도를 냈을 때였습니다. 반대로 가장 고통스러웠을 때는 그 동안 번 돈이 내 돈이라고 착각하고 그걸 안 빼앗기려고 허우적거릴 때였어요.”

부도를 낸 뒤로는 돈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돈이란 잠시 내가 관리하고 있는 것이지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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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희자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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