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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레이더|한화갑 vs 이인제·권노갑

‘동교동 분열’ 이후 민주당 권력지도

  • 천영식·문화일보 정치부 기자

‘동교동 분열’ 이후 민주당 권력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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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원과 한위원은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항상 “동교동계 갈등은 없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경선이 끝난 뒤 따로 만나 화합을 약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사석으로 돌아가면 서로에게 못마땅한 감정을 털어놓는다. 한위원이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을 쓰며 권위원의 경선개입을 비난하자 권위원은 “가만두지 않겠다”며 발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양쪽 진영에서는 제각기 양갑의 흥분을 뜯어말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위원 진영에서는 주로 문희상(文喜相)의원이, 권위원 진영에서는 이훈평(李訓平)의원이 그 일을 맡았다. 선거를 치르다 보니 과열된 측면도 있겠지만 한위원은 “동교동 식구로 도와주지는 못할지언정 득표를 방해하고 있다”고 못마땅해했으며 권위원은 “어떻게 나에게 저럴 수 있나”며 서운해했다는 얘기다.

두 사람의 충돌은 역할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킹메이커를 지향하고 당권장악에 1차적 목적을 둔 두 사람은 서로 경쟁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권위원은 “다음 정권 재창출 때까지 킹메이커는 내가 맡는다. 한위원은 앞으로 계속 정치를 할 사람 아닌가”며 한위원의 양보를 요구하지만 한위원도 갈 길이 멀고 바쁜 만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양갑과 한-이위원 대립 등 민주당의 세력재편에 대한 김대중대통령의 생각은 어떨까. 김대통령이 경선과정에 결과적으로 한위원의 1위 득표를 간접 지원했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정황 증거로 드러나 있다. “경선이 대권 당권과 관계없다”고 경선 가이드라인을 정했던 김대통령은 선거일 3일을 앞두고 민주당 당직자들을 모아놓고 다시 한 번 그 말을 강조했다. 이위원이 ‘충청도대통령론’을 내세우며 추격전을 전개, 1위를 할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할 때였다.

당시 김대통령의 발언은 “4인 연기명 투표 중 대권후보에게 1표는 찍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권노갑-이인제 연대 라인에 표를 찍는 쪽으로 흔들리던 다수의 당내 대의원들에게 ‘냉정’을 되찾게 하는 일종의 지침으로 작용했다. 물론 그렇다면 김대통령이 권-이위원 유착관계 자체는 왜 막지 않았느냐는 의문이 남게 된다. 이는 권위원의 위상과 연계돼 있는 문제다.



민주당 관계자는 “권위원은 이미 일정 정도 김대통령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대통령의 의중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겠지만 100% 김대통령의 지시대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또 김대통령이 권위원의 행동을 방조한 것은 노골적으로 이위원을 배제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였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중요한 것은 김대통령이 한위원에게 전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것을 꺼린다는 점이다. 김대통령은 한위원이 향후 동교동 결속에서 중요한 몫을 하기를 기대하지만 전적으로 무게가 실려 ‘오버’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우려한다는 설명이다. 이는 하부권력을 1인에게 집중시키지 않는 김대통령 특유의 인사스타일과 관련이 있다. 김대통령은 권위원을 지명직 최고위원에 임명함으로써 권위원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는 동시에 한위원을 견제하는, 일거양득의 카드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권위원의 활동공간이 조금은 넓어진다. 권위원은 경선 후 부쩍 서두르는 눈치다.

굳어진 ‘이인제 비토세력’

경선 후 양갑 대립을 우려하던 당내에서는 ‘한화갑연대’ 대(對) ‘권노갑연대’가 절묘한 황금분할을 이루고 있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람이 많다. 권노갑-이인제-박상천-정대철위원이 한축이고 한화갑-김중권-정동영-김근태위원이 또 다른 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박상천위원은 권위원 계보가 아니라며 불쾌해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힘의 균형 상태를 이루고 있는 듯해도 중장기적으로 한위원에게 힘이 쏠리는 대세를 막지는 못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당내에서는 권위원의 반대에도 한위원이 1위 당선에 성공했다는 점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양갑대결에서 한위원이 승리한 것을 의미한다. 양갑이 공개적으로 정면충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위원은 이미 정·관·재계에서 ‘당권을 장악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권위원은 힘의 한계를 절감할수록 이인제위원과 결속을 강화할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한화갑 대 권노갑’의 대립은 ‘한화갑 대 이인제’의 대립으로 동전의 양면같이 연결된다.

양갑의 갈등이 권력변화의 시발점이라면 이인제위원의 행보는 태풍의 핵과 같은 잠재력을 갖고 있다. 경선 후 당내에서는 이인제위원의 2위 당선이 실패냐 성공이냐는 논란이 제기됐다. 거의 빈털터리로 민주당에 입당, 경선에서 2위까지 한 것은 대성공이라는 분석이 있는 반면 ‘나가지 않는 편이 좋았다’는 혹평도 있다. 이위원이 경선에서 실패했다는 논리는 경선을 통해 이인제 비토세력이 확실히 자리잡게 됐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위원은 이번 경선에서 사실상 꺼낼 수 있는 카드를 대부분 내보였다. 이회창총재와 맞붙을 수 있는 민주당의 유일 후보는 이인제뿐이라는 ‘이인제 대세론’이 그것이다. 청와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위원은 대권론을 내세워 바람몰이를 시도했다.

물론 이위원측 일각에서는 일단 경선결과가 성공적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득표력을 조금 더 끌어올려 한위원과 격차를 줄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나쁜 결과는 아니라는 것이다. 경선 후 닥친 이위원의 모친상에 6000여 명의 조문객이 다녀간 것도 경선을 통해 당내에 자리잡은 ‘유력 대권주자 이인제’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하지만 44%의 득표율은 뒤집어 해석하면 나머지 56%의 대의원이 이위원의 대권주자 가능성에 회의적 시각을 표출한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이인제를 찍으면 안 된다’는 논의가 공개적으로 벌어지고 이들이 나름의 세를 형성한 것은 이위원에게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당내에서는 97년 대선 당시의 투표인수를 분석하는 사람이 많다. 충청에서 투표한 유권자는 충남북을 포함해 250만명에 불과한데 TK(대구-경북)지역에서는 290만명이 투표했다. 호남지역은 330만명인 데 비해 PK(부산-경남)지역에서는 430만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영남지역의 협조 없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상식적인’ 분석이 또다시 제기되는 이유는 영남에서 제기되는 ‘비(非)이인제’정서 때문이다. 이번 경선은 사실상 ‘이인제 비토세력’의 존재를 확인한 셈이라는 지적이다.

이위원을 반대하는 세력은 끊임없이 ‘제3후보’를 포함한 대안을 모색할 것이며 이위원의 입지를 어렵게 만들 것이란 분석이다. 이위원이 경선에 출마하지 않았다면 ‘이인제 불가론’이 공개점화되지도 않았으며 국민의 정부 개혁정책의 성공 여부에 따라 대선지형이 바뀔 여지가 남아 있었으나 경선참여로 이위원이 첨예한 논란의 대상이 돼버렸다는 평가다.

이위원의 경선출마가 성공인지 실패인지의 논란은 상대적으로 영남권 출신인 노무현해양수산부장관의 입지와 비교된다. 노장관은 이번 경선에 출마하지 않았지만 반사적 이익을 얻었다고 분석되고 있다. 이위원이 진흙탕 싸움을 통해 겨우 40%대의 지지를 끌어모으고 50% 이상의 대의원 표심을 잡지 못한 채 어려워하고 있는 반면 노장관은 입각으로 새로운 날개를 달았다. 노장관의 한 측근은 “입각하지 않았더라도 최고위원 경선은 나가지 않겠다는 방침을 확고히 세우고 있었다”며 “2002년까지 시간이 많은데 괜히 대권싸움에 끼어드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고 결과적으로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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