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수출’에 열을 올리는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의 학교들이 외국의 영어연수생을 위해 만들어 놓은 제도 가운데 홈스테이(homestay)라는 것이 있다. 홈스테이는 간단히 말해 외국 학생들을 위한 현지 원어민 가정 하숙이다. 민박이라고 해도 좋다. 우리 나라의 하숙이나 민박과 다른 점이 있다면 첫째, 이 제도의 목적이 숙식 해결에만 한정되지 않으며 둘째, 관리 책임을 학교와 일부 전문업체가 진다는 것이다.
각국 영어학교가 판촉용으로 배포하는 화려한 전단에는 홈스테이 자랑이 꼭 들어 있다. 그 가운데 호주 아델레이드에 소재한 대학부설 영어학교 전단을 인용해 보자.
“홈스테이 프로그램은 아델레이드에서 공부하는 동안 호주 가정에 머무는 경험과 즐거움을 드립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든 가정은 높은 기준에 따라 엄선되기 때문에 고객인 학생들에게 질높은 숙식과 함께 일상 가정생활 속에서 영어 회화를 익힐 기회를 제공합니다.”
단란한 현지 원어민 가정에 머물면서 숙식을 해결하고 영어와 현지 문화도 익힐 수 있어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거둔다는 것이다. 그러니 단기 영어연수를 온 학생들에게 홈스테이는 큰 매력으로 와 닿지 않을 수 없다. 영어 사용 지역으로 나가는 한국 유학생의 70~80%가 영어 연수생이다. 조기유학과 성인 정규 유학의 경우도 처음 단계에서는 영어학교에서 얼마 동안 지내는 게 보통이다.
장밋빛 꿈은 사라지고
그럼 홈스테이는 과연 그렇게 장밋빛 ‘외국 경험’인가. 대부분 한국인이 외국에 나가 경험하는 삶 자체가 그런 것처럼, 여기에도 많은 허상이 존재한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서양인(특히 미국인)들은 부자여서 후하고 자상하고 친절하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이 해외여행 경험을 갖고 있는 요즘도 그런 생각은 거의 변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막상 현지에서 살게 되면 그런 ‘꿈’에서 깨어나게 되는데, 홈스테이도 마찬가지다.
많은 한국 학생들은 학교가 정해준 홈스테이 가정을 찾아가본 뒤 실망한다. 살면서 문화적으로 느끼는 일반적 불편 말고도 주인과 겪는 오해와 마찰, 영어 실력이 크게 늘 것이라는 기대가 깨지는 것 등으로 인해 오래 버티지 못하고 거처를 옮겨 다니기 시작한다. 결국 비슷한 처지의 한국 학생들끼리 방을 얻어 나가, 가급적 영어를 쓴다는 원래 계획과는 딴판인 해외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유학생들이 숙식문제로 겪는 어려움은 크게는 문화충격의 일부로 유학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렇지만 유학에 관련된 다른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에는 그 실상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해외에서 불행한 경험을 한 학생들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다 떠나오면 그만이며, 한국에는 전체 유학교육의 틀 안에서 이런 문제를 책임 있게 모니터하는 기구도 없기 때문이다. 더 크게 말해 한국의 신세대가 홈스테이로 외국인 가정에서 직접 살아본 경험과 그 결과는 유학이라는 좁은 주제를 넘어서서 ‘국제화’라는 한국의 국가정책 속에서 심각하게 평가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국제교육연구(international education research)의 일환으로, 호주에 와 있는 한국 유학생들의 홈스테이 실태를 살펴보고 다양한 사례를 모아왔다. 이들의 친척이나 대리인을 자청, 여러 학교의 홈스테이 담당자와 가정을 돌아보기도 했다. 다음 내용은 그런 현장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다.
‘인심’좋다는 호주의 경우
여기 내놓는 사례들은 대부분 좋지 않은 것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또 책임의 상당 부분이 학생에게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성공보다 실패의 예가 많은 것이 사실이며, 나쁜 사례들이 장래 해외 영어연수를 계획하는 학생들에게 좋은 가이드가 될 것으로 생각돼 글의 방향을 이렇게 정하였다. 필자가 알아본 바로는, 호주 사례는 다른 영미국가에 그대로 적용 가능하며, 그래도 ‘인심’은 호주가 미국 영국 캐나다보다 나은 편으로 알고 있다.
학교 등록과 함께 홈스테이를 신청한 학생은 현지 공항에 내려 미리 팩스로 받은 주소를 가지고 직접 찾아가거나 등록을 알선한 유학원, 학교, 알선업체에서 마중 나온 사람의 안내를 받아 정해진 가정을 찾아간다. 그런데 처음 찾아가 만나는 가정은 주거환경, 학교와의 거리, 가족상황, 출신 나라 등의 면에서 학생이 마음속에 그린 그림이나 홈스테이 본래 목적과는 빗나가 있는 경우가 많다.
여기 필자가 학생들을 도우면서 직접 경험한 두 사례를 들어보자.
대학 2학년 재학중 군대를 다녀와 1년 간 영어연수를 시작한 P씨. 대전 거주, 컴퓨터과학 전공. 학교가 정해준 가정은 시드니에서도 경치 좋고 부자들이 많이 산다는 프렌치 포레스트(French Forest) 지역. 그러나 기차가 없어 버스로 다녀야 하는데, 버스 연결이 좋지 않아 첫날 시내 학교까지 오는 데 2시간 반을 소모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버스를 바꿔 타지 않고 직행으로 오는 길이 있긴 했지만, 역시 1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그나마 밤 9시가 지나면 버스는 끊겼다.
필자가 학생을 대신해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대화를 해보려니까 다짜고짜 “Bull shit(닥쳐)!” 하고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외국학생을 직업적으로 많이 두어본 가정 가운데는 학생을 대신해서 찾아오거나 전화하는 현지 사람을 미워하는 경우가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을 자신이 알아서 관리해야 편할 텐데 간섭한다며 싫어하는 것이다. 그는 혼자 사는 남자 노인이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1학년생으로 여름방학에 2개월간 영어연수를 온 H양. 학교가 정해준 홈스테이 가정은 시드니 중심부에서 약 20km 서쪽의 덜위치힐 지역, 기차역에서 멀지 않으나 비교적 으슥한 아파트촌이었다(호주 아파트는 대개 3층, 근처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 집을 포함, 낡은 아파트 베란다에는 이불과 옷가지가 널려 있어 호주 수준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틀림없었다. 한국에서 온 16살짜리 여학생을 머물게 하기에는 아무래도 불안했다.
노크를 하고 혼자 산다는 주인 여자를 만나 대화를 하면서 아직 마음을 결정하지 못했다고 하니까, 화를 벌컥 내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돈도 받았는데 무슨 소리냐며 공식적으로 항의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학교에서 팩스가 왔는데, 필자가 그 여자 앞에서 난폭하게 굴어 그녀는 지금도 큰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 여주인은 그리스계인 것 같았다. 그 지역은 그리스계가 많이 사는 곳이다(호주에서는 인종차별금기 정책에 따라 언론 보도나 양식 작성에 있어 인종을 밝히는 일은 금기로 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라면 홈스테이 주인으로는 실격이다.
왜 이런 사례가 흔한 것일까? 각 학교는 1, 2명의 홈스테이 전담 직원을 두고 있다. 그는 홈스테이 희망 가정을 찾아 명단을 만들어놓고 신청자인 유학생의 요구 조건을 참작, 짝을 맺어준다. 대부분 신청자가 원하는 조건도 그렇지만, 학교가 정한 기준도 ‘통학 거리가 기차로 40분 이내여야 하고 홈스테이의 취지에 맞는 원어민 가정’이다. 학교는 신청한 학생에게 추천하는 가정의 가족 구성원과 그들의 취미, 애완동물 유무, 직업, 주소, 전화번호 등의 정보를 팩스로 보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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