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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인터뷰|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이회창 총재, ‘위험한 정치’그만두시오”

  • 안기석daum@donga.com 육성철sixman@donga.com

“이회창 총재, ‘위험한 정치’그만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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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시스템이 정지하게 된 핵심 원인은 결국 대통령이 제공한 것 아닙니까.

“글쎄요. 모시고 있는 대통령을 제가 뭐라고 평가할 수는 없죠. 다만 지금까지 당정을 운영해온 방식이 성공적이지 않은 것만은 사실입니다. 정부와 청와대와 당이 시스템을 갖춰서 대통령이 하시는 일을 전파시키고, 국민들이 불평이 있더라도 대통령이 애쓰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해야 하는데…. 시스템 작동이 안되는 거죠.”

─아무래도 연로한 것이 민심을 파악하는데 한계로 작용하겠죠.

“글쎄요. 대통령은 신문을 제일 꼼꼼하게 챙겨 읽습니다. 사실 신문에 안 나는 얘기는 별로 없잖아요. 그런데 좀 억울한 심정은 들 거라고 생각해요. 신문의 비판이 정당한 것도 있지만, 터무니 없는 것도 있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비판이 대통령에게 쏠리니까 ‘이럴 수 있느냐’는 심정이 종종 들 것이라고 봅니다.”

─그게 핵심인 것 같습니다. 옷로비 사건 때도 대통령이 ‘김태정 전검찰총장은 억울한데 언론들이 몰아치고 있다’고 생각해서 결국 그렇게 된 것 아닙니까.



“과연 김태정씨가 억울했느냐는 문제도 살펴봐야 합니다. 그 과정에 대통령을 보좌한 참모들은 과연 정직했느냐는 점도 반추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게 대통령 고집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위기는 어느 정권에서나 발생합니다. 그런데 서구나 미국의 경우를 보면 위기관리 시스템이 있어요. 우리는 그게 가장 취약해요. 위기가 발생하면 위기와 관련된 이해당사자는 다 배제하고 정말로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판단할 수 있는 태스크포스가 이것을 다루어야 하거든요.”

─김대중 대통령이 총재를 맡고 있는 민주당 시스템이 집권 2년이 지나도록 여당으로서 제대로 구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청와대나 대통령을 쳐다보고 불평할 일이 아니라, 몸을 던져 일하지 못한 당 책임자들이 반성해야죠.”

─최고위원제라는 것이 당 조직의 의사 결정 과정에 효율적으로 기여하기보다는 차기 대권주자들의 대기소로 역기능만 하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의미있다고 봅니다. 집권 여당이 대통령 임기 중반에 자유경선을 실시한 건 최초입니다. 대통령은 힘을 갖고 일하라고 말씀하셨지만 그게 잘 안됐어요. 1차적으로 최고위원 책임도 크다고 봅니다. 물론 최고위원이 12명이나 돼서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가 힘들었어요. 숫자가 많고 색깔도 서로 다르고….”

─청와대 사람들은 민심 이탈의 핵심을 경제가 나빠진 것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정 의원도 그렇게 보십니까.

“병합론으로 봅니다. 경제가 중요한 원인이지만, 위기의 본질은 경제보다 신뢰의 위기에 있다고 봅니다. 검찰을 안 믿고, 당을 안 믿고 정부를 안 믿어요. 심지어 대통령의 말도 안 믿는 지경이 된 거죠. 신뢰의 위기를 해소해야 민심이 재생된다고 봅니다.”

─민심의 이탈 배경에는 인사 문제도 있지 않습니까.

“물론이지요. 첫번째는 호남편중 인사고, 두번째는 인력배치의 문제입니다. 편중인사는 정부가 ‘시정하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바닥 현장에서는 비호남 출신들이 심각한 박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인력배치 문제는 당이나 정부에 책임과 권한이 주어졌으면 상황을 잘 조정해서 임무를 100% 완결해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하는 게 비일비재합니다. 인력배치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국민들은 각종 금융 비리사건의 배후에 동교동 핵심멤버들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불평과 불만이 고조되면 희생양을 요구하는 대중심리가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재벌의 비대해진 힘을 약화시키는 한편 새로운 경제의 활력소로 벤처기업이라는 물적 토대를 만들다가 현재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그 와중에 일반 국민들은 벤처기업에 주식투자만 하면 잘될 줄 알고 뛰어들었다가 쫄딱 망했습니다. 정부에서는 ‘너희가 알아서 한 걸 왜 우리보고 뭐라 하느냐’ 하지만, 과연 ‘정부에 책임이 없느냐’ 하는 것도 살펴봐야 할 것 아닙니까.

“사실 주식값이 올라가면 민심도 좋아지게 돼 있어요. 주식값이 떨어지니까 중산층 민심 이반이 일어났다고 봅니다. 오늘 아침 거래소 총액이 2500억달러인데 일본의 NTT 주가총액이 6500억달러이더라구요. 이건 뭔가 부자연스런 현상이거든요.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일본의 통신회사만도 못한 거예요. 핵심은 뭐냐 하면 신뢰의 문제예요. 신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구조조정입니다. 저는 그런 논리의 연장에서 정치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봐요. 국가개혁을 밀고가기 위해서는 소수여당 구조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회창총재 회의적이다”

─요즘은 기업이 잘못 되면 CEO의 책임이 90% 이상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이 이처럼 신뢰의 위기에 부딪힌 것은 대통령의 책임이 가장 큰 것 아닙니까.

“지금은 대통령이 말씀해도 실행이 안돼요. 인권법, 보안법은 대통령이 정기국회에서 개정하겠다고 말했어요.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돼 있구요. 그런데 여당이 아직 법안도 제출하지 못하고 있어요. 반부패기본법은 대통령 선거공약인데 아직까지 못했어요. 이게 문제라는 겁니다. 그런차원에서 대통령이 중간 결산할 때가 됐다는 겁니다. 최고위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역할을 못하면 다 사표내라 이겁니다. 전당대회를 통해 뽑혀서 대통령이 당의 중심에 서라고 했는데, 못 섰으면 최고위원들 다 사표내야죠. 저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의원은 인터뷰 진행 방향이 대통령과 민주당 내부 문제로 치우친 감이 있다고 느꼈는지 화제를 돌렸다. 정의원은 당내에서 ‘흑색선전 공작정치 근절 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청와대에서 발언 직후 권노갑 최고위원은 야당과의 싸움에서 최전선에 있는 ‘장수’가 갑자기 집안에서 칼을 빼든 것에 몹시 당혹해 했다. 그런데 최근 정의원은 대책위원장으로서 할 일이 생겼다. 한나라당 기획위원회에서 만든 대권 관련 문서가 언론에 폭로돼 파문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원은 이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타협의 역사는 없었어요. 앞으로 대선이 점점 가까워오는데 상생은 점점 더 어렵다고 봅니다. 이번에 한나라당 문건을 보면 기본적으로 네거티브로 점철돼 있잖아요.”

이 문제는 이미 언론에서 거론되고 있다. 이 기회에 여야 차기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사람들에 대해 정의원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정 의원은 이총재를 평소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앞으로 우리나라를 맡을 만한 역량이 있다고 봅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이총재가 YS한테 대들고 국무총리 사표낼 때 통쾌한 걸 느꼈어요. 감사원장 할 때도 기대를 많이 했어요. 이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울 수 있는 분이라고 보았어요. 하지만 야당 총재로서 정국을 이끄는 모습에 대해서는 대단히 비판적입니다. 이번 대선 관련 문건에도 보면 잘해보겠다는 부분은 이미지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네거티브예요. 대단히 위험해요. 정치사회적 불안을 야기해서라도 대선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겠다는 거잖아요. 위험천만하고 무모하잖아요. 이런 위험한 정치는 그만둬야 합니다. 우리도 야당했지만 그렇게까지는 안했어요. 이번 문건에는 구체적으로 실행한 흔적이 있어요. 한달 내내 장외집회 하고 지역 돌아다니는 것은 끊임없이 정치사회적 불안을 야기한 행동 아닙니까. 그런 점에서 대단히 회의적이에요.”

─한나라당 대선 문건 파문과 관련, 민주당이 ‘이회창 총재가 사전에 보고받았다’는 증거를 입수했다는 소문은 사실입니까.

“자세한 내용은 모릅니다. 그러나 당 공식기구의 문건에는 어떤 형태로든 총재의 생각이 반영됩니다. 우리도 야당 시절 참모로 일을 해봐서 잘 압니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대통령감으로서의 자질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대단한 정치적 역량, 파괴력, 돌파력, 뱃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장점이 많은 정치인입니다.”

─노무현 장관은 어떻습니까.

“걸어온 길이 바르잖아요. 타협을 뚫고 몸으로 부딪혀 깨지면서 살아오신 분입니다. 그런 정치인이 있으니 희망이 있는 것 아닙니까.”

“정상에서 물러나고 싶어”

이제 정의원 스스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을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정 의원은 의원회관에서 열리는 송영길 민주당 의원 후원회에 다녀오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약 30분후에 돌아온 정 의원의 표정은 달라져 있었다. 지금까지 인터뷰하는 동안 정의원은 몸살과 피로감에 못이겨 몇 번이나 하품을 했다. 얼굴 안색도 좋지 않았다. 그러나 송영길 후원회에서 ‘한 말씀’ 했는지 생기가 돌고 있었다. 정치인은 다 죽어갈 정도로 아파도 단상에만 오르면 기운이 펄펄 살아난다는 것을 입증이나 하는 것처럼….

─정의원이 이번에 ‘튀는’ 발언으로 정치권 안팎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한국적 정치풍토의 특성상 ‘저 사람과는 정치 같이 할 수 없겠구나’ 하는 의견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점이 부담스럽지는 않습니까.

“글쎄요. 제가 튀는 발언을 했나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버린다고 생각하니까 별 부담이 없어요. 지금껏 살아오면서 뭘 던졌을 때가 몇 번 있었어요. 연애하다가 ‘직장 또 구하면 되지’ 하고 그만둔 적도 있어요. MBC 다닐 때도 사표를 두세 번 냈어요.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한국정치에서 스스로 결단해서 물러가는 모습을 별로 보지 못했어요. 제 스스로 정상에 있을 때 물러가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요.”

─정상이 어디쯤입니까.

“제가 생각해서 더 추구해야 할 바가 없고, 이제는 정말 내리막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떠난다는 얘기를 그동안 많이 했어요. 전당대회 끝나고 나서도 무슨 ‘차차기’ 하는 질문이 나왔는데 그때도 나한테 정직하게 물었어요. 저는 거론되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하지만, 내 스스로 채워지지도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욕심으로 변하는 순간 불행이 옵니다. 제가 당장 할 일은 나를 채우는 노력이고, 그것이 제 개인을 위한 게 아니라 저를 뽑아준 사람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청와대 발언을 계기로 초·재선 의원들의 힘을 결집한 것처럼 느끼지 않습니까.

“서로 이심전심으로 이해와 신뢰의 폭이 넓어졌다고 볼 수 있겠죠.”

─앞으로 초재선 의원이나 정치그룹이 차기 대권후보 경선에서 출마하기를 요구한다면, 받아들이겠습니까.

“제 스스로 갖춰지지 않았다고 평가합니다. 주체적인 결단이 중요합니다. 누가 시킨다고 받아들이겠습니까. 그건 욕심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정치인에게는 기본적으로 권력의지가 있습니다. 그걸 부정하지는 않지만, 스스로에게 겸손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당에서도 그런 얘기를 합니다. ‘우리가 야당할 때를 생각해보라. 민심의 옷자락을 붙들기 위해 얼마나 안간힘을 썼느냐. 우리 여당 됐다고 민심을 외면하는 것은 오만한 태도다’ 항상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죠.”

“정치인은 핵심을 말해야”

─차세대 리더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비전과 통합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시점에서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무언가를 제시해야 합니다. 89년부터 3년간 미국에서 있었는데, 그때 미국은 적자와 패배의식에 빠져 있었어요.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고성장 저물가 저실업 디지털화 정보화를 통해 일어났어요. 그런데 한국을 보세요. 한보철강에 5조3천억을 넣었는데 연기도 나지 않고 5조가 사라졌어요. 경부고속철도에 20조원을 쏟아붇고 있는데 물류비용이 하나도 줄어들지 않는대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국가경쟁력이 생길 수 있겠어요.”

─정의원은 사학도인데 역대 왕들 중에서 리더십의 측면에서 누구를 가장 높이 평가하십니까.

“광해군입니다. 광해군 시대에는 우리나라에 말발굽 소리가 나지 않았어요. 광해군이 물러난 뒤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일어났어요. 광해군은 국제정세를 살피면서 이기는 쪽에 투항했어요. 후금과 명나라 사이에서 실리외교를 한 거죠. 지형적으로 볼 때 한국은 강대국 사이에서 외교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대학때 개화당을 연구했어요. 위로부터의 개혁이 실패한 경우죠. 그때 문을 열었으면 혼란은 있었겠지만, 식민지는 되지 않았을 거예요. 기로에 섰을 때는 리더십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 의원의 홈페이지는 파스텔조의 부드러운 그림으로 시작한다. 그 그림위로 “꿈꾸게 하는 사람, 꿈을 실현시키는 사람, 진실한 꿈을 파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라는 글씨가 은은하게 스쳐 지나간다.

─내년에 정의원이 팔 꿈은 무엇입니까.

“저는 전당대회에서도 ‘당이 재집권을 하는데 밀알이 되겠다’는 말을 했어요.”

1953년 전북 순창에서 태어난 정의원은 서울대 문리대에서 반유신투쟁을 하며 학창시절을 보내다가 졸업후에는 문화방송 기자와 앵커로 오랫동안 일했다. 이때 이미지가 대부분의 시청자들에게는 깊이 새겨져 있다. 그후 96년에 국민회의에 입당해 세 차례나 대변인을 지냈는데 성명을 발표하면 마치 앵커가 방송하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였다. 방송기자 출신이 말하는 정치에 대한 생각이 흥미로왔다.

“정치인은 핵심을 잘 찾아야 합니다. 기자들은 그런 데서 유리한 것 같아요. 저는 방송할 때 첫 문장, 첫 단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화자의 입장에 서지 말고 청자의 입장에 서야 하는데 정치도 그런 측면이 있어요. 유권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뭐냐를 찾아서 그것을 긁어줘야 합니다.”

신동아 2001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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