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인물연구|세계2위 갑부 오라클社 래리 엘리슨 회장

빌 게이츠 위협하는 실리콘밸리의 사무라이

  • 박태견

빌 게이츠 위협하는 실리콘밸리의 사무라이

2/3
IT업계의 알려지지 않은 이면사를 쓴 데이비드 A. 캐플런의 ‘실리콘 밸리 스토리’에 따르면, 오늘날의 마이크로소프트를 가능케 한 초석인 컴퓨터 운용체계 MS-DOS는 개발자 빌 게이츠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종의 책략을 꾸민 기술 매수자 빌 게이츠의 ‘돈’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것도 CP/M이라는 개리 킬달의 최초 운용체계를 본떠 시애틀의 한 컴퓨터 가게가 약간 변형한 복사판을 빌 게이츠가 사들여 MS-DOS로 둔갑시킨 것이다.

오라클 성장의 어두운 이면도 마이크로소프트에 뒤지지 않는다. IBM이 연구 결과를 공유한다는 차원에서 순진하게 공개한 SQL(Structured English Query Language: 데이터 베이스 관리 시스템에 관한 기본 명령어)을 손쉽게 입수한 오라클은 그 아이디어를 감쪽같이 상업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오라클이라는 회사 이름도 엘리슨이 다른 회사에 근무할 때 동료들과 수행했던 한 프로젝트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이쯤 되면 실리콘밸리의 역사는 가히 ‘모방과 가로채기의 역사’라고 할 만하다는 게 캐플런의 주장이다.

그렇긴 해도 ‘산업스파이’라는 여론의 비난은 이제 세계 랭킹 1위 등극을 눈앞에 둔 오라클에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던 듯싶다. 이에 엘리슨은 얼마 전 그룹 이미지 개선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엘리슨은 지난 11월29일 조 록하트 전 백악관 대변인(41)을 고위급 홍보담당 임원으로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오라클이 몇 년 내로 e비즈니스업계의 최고 선두주자가 될 것이 분명하다”며 “록하트는 실리콘밸리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안목과 경륜으로 오라클의 새 시대를 뒷받침할 것”이라고 말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조지타운대 후배인 록하트 전 대변인은 96년 클린턴 재선팀의 선거본부 대변인을 지냈으며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정국이 한창이던 98년 10월 백악관 대변인이 돼 올 10월 말까지 활약했다. 그는 ABC CNN 등의 방송기자로 잔뼈가 굵었으며 80년 지미 카터, 84년 월터 먼데일, 88년 마이클 듀카키스 등 역대 민주당 대통령 후보들의 선거운동본부에서 일한 경력도 있다.

미국 내에서 가장 지명도가 높은 프로 대변인을 회사 대변인으로 영입, 회사와 자신의 이미지를 본격적으로 관리해 나가겠다는 게 엘리슨의 생각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겨룬 오랜 전쟁에서 승리를 자신한 엘리슨이 이제 수성(守城)에 들어간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는 어린아이들까지 알 정도지만, 오라클이란 이름은 아직 어른들에게도 그리 익숙하지 않다. 두 회사 모두 소프트웨어업체이긴 하나, 마이크로소프트가 개인 PC용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하는 반면, 오라클은 기업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사업 중심축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오라클은 현재 각 부문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데이터를 관리하는 사업, 즉 DBMS(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를 핵심사업으로 삼고 있다.

데이터베이스(DB)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모아둔 것을 말한다. 은행의 고객 자료나 백화점의 고객 명단, 도서관의 도서목록도 일종의 DB다. 그러나 DB는 원할 때 저장된 정보를 신속히 찾을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 DBMS가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요컨대 DBMS는 데이터베이스(DB)에 저장된 방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소프트웨어라 할 수 있다. DBMS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 정보 저장 창고들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는 심부름꾼 같은 프로그램이다.

현재 대부분의 기업들은 DBMS를 사용하고 있는데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각종 정보를 저장하고 공유할 필요가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이 빠른 속도로 발달하면서 DBMS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독점하다시피 한 컴퓨터 운영체계(OS)에 버금가는 중요 소프트웨어로 자리잡고 있다.

지금 전세계 DBMS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오라클사의 ‘오라클8i’이다. 세계 500대 기업의 절반 이상과 미중앙정보국(CIA) 등 세계 주요 공공기관이 오라클8i를 채택하고 있다. 국내시장도 마찬가지다. MS의 ‘SQL서버 2000’, IBM의 ‘DB2 유니버설 데이터베이스 버전(UDBv7)’ 등 경쟁제품이 없는 것은 아니나, 오라클의 독점적 아성을 위협하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인터넷 시대는 오라클의 시대

이와 같은 오라클의 경쟁력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시작된 ‘포스트-PC(PC 다음) 시대’에 대비한 엘리슨의 집요한 제품 개발 덕이다. MS가 PC를 기반으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윈도 운영체계를 만들었다면, 오라클은 일찌감치 인터넷 서버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는 포스트-PC 시대에 핵심기술로 부상할 데이터베이스 분야에 승부를 걸었다.

특히 최근 오라클의 가공할 상승세는 인터넷 전자상거래와 관계가 깊다. 전자상거래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오라클의 데이터베이스 사업도 확장일로를 걷고 있는 것이다.

전자상거래 중에서도 오라클이 강세를 보이는 분야는 기업간(B2B) 전자상거래. 기업 대 고객(B2C) 전자상거래는 수익성에 대한 의문으로 투자자가 줄고 있는 반면 B2B 사업은 2004년까지 1조4000억 달러의 방대한 시장이 형성되리라 예상되는 초고속 성장분야다. 오라클은 올 들어 산업별로 발표된 굵직굵직한 인터넷 공동구매 시장 설립에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로 참여했다.

지난 2월 오라클은 제너럴모터스,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 등이 연간 1600억 달러 상당의 부품 구매를 인터넷으로 해결하기 위해 설립한 자동차 공동구매 시장에 참여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이어 세브론이 주도하는 석유업계 B2B와 시어즈, 까르푸 등이 주축이 된 유통업계 B2B 시장에도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참여키로 했다. 전문가들은 오라클이 아리바, i2, 커머스원 등 전문업체를 누르고 B2B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기업간 거래에 필요한 방대한 데이터 처리 능력과 함께 기업의 일손을 덜어주는 통합 시스템 개발에서 앞서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모건스탠리, 리먼브라더스 등 월가의 투자자들이 최근 마이크로소프트 등 정보통신주의 급락을 보면서도 거의 유일하게 오라클의 장기적 성장 가능성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것도 바로 전자상거래의 높은 성장성 때문이다.

오라클의 엘리슨 회장은 ‘PC시대에서 인터넷시대로 전환’이라는 이 대목에 기초해 오래 전부터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이츠를 이길 거라고 장담해왔다.

“지금은 빌 게이츠의 PC시대가 아닌 정보화시대의 새벽이다. 정보화시대! 여기에 바로 우리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이것은 사업을 바꾸고 문화를 바꿀 것이다. 이것은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법을 바꾸고, 의사소통 방법과 놀고 일하는 방식도 바꿀 것이다.”

4년 전 엘리슨이 ‘포천’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 예언이다. 지금은 상식이 되다시피 한 이야기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빌 게이츠의 PC시대 종언’을 단언할 정도로 배짱 좋은 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특히 오라클 정도는 경쟁상대로 여기지도 않을 정도로 ‘잘 나가던’ 빌 게이츠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도발적 발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승리의 여신은 엘리슨에게 손짓을 하고 있다.

지난 11월13일부터 닷새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지구촌 최대의 정보기술(IT) 전시회인 ‘컴덱스2000/가을(Comdex 2000/Fall)’에서도 이 장면은 재연됐다. 게이츠는 강연에서 “무선인터넷과 각종 인터넷 기기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데스크톱 PC의 역할은 오히려 커질 것”이라고 역설한 반면, 엘리슨은 “이제는 PC에서 네트워크 컴퓨터로 전환하는 시대”라고 정면에서 게이츠에게 일침을 가했다.

엘리슨은 일주일에 50시간만 일한다는 독특한 철학을 갖고 있다. 대신 그는 50대 중반이라는 나이에도 틈이 날 때마다 4000만 달러짜리 초호화 자가용 비행기 걸프스트림V를 직접 몰거나, ‘사요나라’라고 이름붙인, 30m가 넘는 경주용 요트를 타고 폭풍우 치는 거친 바다에서 모험을 즐기는 만능 스포츠광으로 유명하다. 그러다 보니 부상도 잦아, 할리우드의 스턴트맨보다 더 자주 병원신세를 진다. 그는 서핑을 하다가 목이 부러지는가 하면, 오토바이 경주를 하다 팔이 부러지기도 했다.

2/3
박태견
목록 닫기

빌 게이츠 위협하는 실리콘밸리의 사무라이

댓글 창 닫기

2021/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