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호

‘굿모닝!’ 한마디로 뜬 마케팅의 귀재

굿모닝증권 도기권 사장

  • 장인석 < CEO 전문리포터 >

    입력2005-04-11 14: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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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녁 6시면 ‘칼퇴근’하고 골프접대를 모르는 고지식한 CEO. 증권사 사장이면서도 주식투자에 문외한인 도기권 사장을 맞은 굿모닝증권은 지난 2년 반 동안 눈부시게 성장했다. 과연 비결이 무엇일까.
    굿모닝증권이 눈부신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1998년(98년 4월~99년 3월) 1904억원의 적자에 허덕였으나 불과 1년 만인 1999년에는 2104억원의 세후 순이익을 올려 업계를 경악케 한 바 있던 굿모닝증권은 증권가가 침체에 빠진 지난해에도 711억원의 세후 순이익을 올려 업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1999년 당시 3%에 불과했던 시장점유율은 5.6%로 높아졌으며, 금융상품 판매잔고도 3조원을 훨씬 넘어서 덩치는 중형사인데 실적은 대형사 못지않아 증권가의 ‘경계 대상 1호’로 급부상한 것. 또 2001년 4월 현재 영업용 순자본 비율은 622.2%, 유동비율은 138.9%로 업계 최고 수준이다.

    굿모닝증권의 진정한 강점은 실적에 나타난 표면적인 수치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투명한 지배구조와 차별화된 마케팅, 엄격한 리스크관리, 선진경영기법 도입 등으로 보수 일색이던 증권사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 당연히 외국투자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외국인 지분율이 60%를 넘어설 정도로 글로벌 증권사로 거듭나고 있는 점 역시 굿모닝증권의 미래가 밝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모든 변신이 불과 2년 반 만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굿모닝증권은 1998년 8월만 해도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경영개선계획서 제출을 요구받을 정도로 불량 증권사였다. 전신인 쌍용투자증권은 국내 재벌 서열 6위인 쌍용그룹의 주력계열사였으나 1997년 한보그룹과 기아그룹의 부도, IMF사태, 그리고 쌍용자동차의 부실누적으로 심각한 신용위기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1998년 9월18일 H&Q 아시아퍼시픽사에 쌍용그룹 보유지분 28.11%를 ‘선양도 후결제’ 방식으로 매각하면서 기사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 이후 롬바드(캘리포니아연기금 자금운용회사), GIC(싱가포르투자청), IFC(국제금융공사) 등 선진 외국금융기관들을 대주주로 영입함으로써 외국계증권사로 탈바꿈했다.

    1998년 12월 대주주인 외국금융기관들은 CEO로 도기권 시티뱅크 태국 소매금융부문 사장을 영입했다. 이 뉴스는 증권가는 물론 경제계에도 충격을 주었다. 도기권 사장은 국내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데다 증권업무라곤 해본 적도 없었다. 게다가 그는 한국의 전문경영인으로서는 너무 ‘어린’ 41세였다. 업계는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봤고, 일반주주들과 직원들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2년 반이 지난 지금 그는 그 모든 것을 일축하고 쓰러져가던 거목에 꽃을 피웠고, 싱싱한 향기마저 내뿜고 있다.



    “외국계 회사인 씨티은행에서만 14년을 근무하고 왔기 때문인지 몰라도 많은 점이 다르고 생소했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전직원이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었지요. 씨티은행은 전직원이 회사에 돈을 벌어준다는 목적 한 가지로 일치단결해서 노를 저어갑니다. 그런데 당시 쌍용투자증권 직원들은 저마다 다른 목적으로 노를 젓고 있었던 겁니다.”

    그의 2년 반은 바로 전직원들이 같은 방향으로 노를젓게 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어떤 방법을 썼는가.

    글로벌 감각을 지닌 리테일 전문가

    외국계 대주주들이 도기권 사장을 영입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당시 대주주들이 원했던 사장은 컨슈머 마케팅 또는 리테일(retail) 전문가이자 글로벌 비즈니스 감각을 갖춘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 두 가지를 겸비한 CEO를 국내기업에서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헤드헌터를 통해 도기권 사장의 정보를 입수한 대주주들은 그가 마음에 쏙 들었다. 그들에게 나이가 어리고, 증권사 경험이 없는 것은 하등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영업의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커질 리테일 전문가인데다 외국계회사에 꼭 필요한 글로벌 감각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당시 매각이 진행중이었는데 매각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이기도 했지만, 씨티은행에서 아주 만족하며 근무하고 있었거든요.”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듀크대 MBA를 취득한 도사장은 졸업 직후인 1985년 7월 씨티은행에 입사했다. 미국 본사와의 인터뷰 자리에서 취직이 된 그는 귀국해야 할 사정이 있어 한국행을 자원했다. MBA 자격증 덕택에 차장으로 입사한 그는 실력을 인정받아 6년 만에 마케팅, 소매금융 담당 이사로 승진했다. 1996년 씨티뱅크 태국 소매금융부문 사장으로 승진한 그는 그곳에서의 뛰어난 성과로 임기가 끝나면 유럽이나 남미 등 그가 원하는 곳에 부임할 기회를 보장받고 있었다.

    “직위가 로컬에서 인터내셔널 스태프로 승진하게 되면 뉴욕 본사의 지휘하에 세계를 무대로 근무하게 됩니다. 씨티은행은 전세계에 지점이 퍼져 있으니까 말하자면 경영의 용병이 되는 셈이죠. 태국에서 좋은 실적을 얻자 경영에 자신감이 생겼다고 할까요. 경영이란 문화나 환경이 달라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요.”

    도기권 사장이 관심이 없다고 하자 대주주들은 “어드바이스라도 해달라”며 계속 접촉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모두 쌍용투자증권의 대주주들이었고, 그들과의 만남은일종의 인터뷰였다.

    매각에 성공한 후에도 그를 영입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자 그는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같은 CEO라도 층층시하의 씨티은행보다는 혼자서 결정을 내리고 이끌어 가는 쌍용투자증권에서 꿈을 펼쳐보자는 의욕이 생겨났던 것이다.

    하지만 첫출발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재벌기업이 갖고 있던 보수성이 그의 개방과 혁신의 바람을 거세게 막았다. 회사를 위한다고 하는 일인데도 믿어주지 않고 등을 돌리는 직원들도 있었고, 심지어 회사를 떠나는 직원들도 꽤 있었다.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부하직원과 일하는 문제 때문에 불편한 적은 없었습니다. 씨티은행에서도 28세에 지점장이 된 이래 항상 저보다 나이 많은 부하직원과 일하는 게 습관이 돼서 서로 잘 대해주는 노하우가 몸에 밴 것 같아요. 하지만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는 건 잘못된 생각인 것 같습니다. 사실 외국 기준에서 보면 40대 CEO는 나이가 적은 게 아닙니다. 40대에게 기회를 잘 안 주는 우리 나라 기준으로 보면 적은 나이지만, 저도 인생의 굴곡을 겪을 만큼 겪었고, 40대면 하나의 회사를 관리할 수 있는 충분한 연륜을 쌓은 셈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군에서 제대하기 전까지는 공부와는 담을 쌓았던 인물이다. 대학 시절, 4학년 때 유학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 올A를 맞았어도 3학년까지의 성적이 형편없어 전학년 평점이 2.5밖에 안 될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그가 제대하고 학교를 찾아가자 송복 교수가 도사장의 손을 잡고 “기권아, 이젠 공부해야지” 하고 타일렀을까.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 왔으나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한동안 방황했던 게 학업을 게을리한 결정적 이유였다.

    그래서인가, 그에게서는 승승장구하는 해외파 출신 CEO라면 으레 풍기는 귀족적인 면모를 볼 수 없다. 오히려 우직하고 선 굵은 모습이 노가다를 연상케 한다. 수식어가 많지 않은 그의 화법은 솔직 담백해 오히려 설득력이 크다. 하지만 취미가 거의 없는 독실한 기독교신자인데다 6시면 ‘칼퇴근’해 집으로 곧장 들어가는 사람이라 재미가 없다. 또 술 담배를 일절 하지 않는데다 직원들과 어울려 놀기를 즐기지 않는 타입이라 친해지기도 쉽지 않다.

    “글쎄요, 같이 술 마시고 어울리다 보면 빨리 친해질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임기응변보다 한결같은 일관성으로 직원들을 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신뢰가 쌓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일 이외의 부분에 대해선 직원들에게 매우 관대하다. 직원을 평가할 때도 능력 외에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때문에 굿모닝증권 직원들에게는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면 반드시 그 대가는 온다”는 믿음이 생겼고, 그것이 직원들의 역량을 결집하는 밑받침이 됐다.

    그의 유연한 사고방식은 사명(社名)을 바꾸는 과정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전문가에게 의뢰한 결과 ‘그로웰’과 ‘메이저’ 두 이름이 최종 후보로 올라왔다. 하지만 그 이름은 ‘머리’로는 괜찮은데 왠지 불편했다.

    “마케팅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고객이 무얼 원하는지 끊임없이 물어보는 겁니다. 회사 입장에서 벗어나 고객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거죠. 예를 들어 증권사라면, 증권에 비전문적인 고객의 처지가돼야 하는데, 전문가 태도에서 탈피하지 못하다 보니 실패하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회의한 결과 ‘굿모닝’이란 단어가 나왔다. 도사장에게 이 이름은 뭔가 신선하고 ‘서비스적’으로 느껴졌다. 웰컴사의 박우덕 사장이 “도사장님, 저도 이 이름이 좋은데 밀어붙일 자신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는 이걸로 밀어붙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주주들과 직원들의 반대가 거셌다. 이유는 증권사 이름으로는 “좀 가볍다”는 것이었다. 그는 고객의 위치에서 생각할 것을 주장했다. 증권사로서는 좀 경망스러울지언정 고객에게는 편안하고 쉬워 보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보수적인 색채가 짙은 증권사의 이미지를 고객에게 좀더 가깝고 편안한 것으로 바꿀 기회라는 것이었다. 도사장은 굿모닝증권으로 사명을 바꾸고 대대적인 광고를 통해 ‘고객만족도’를 선포했다.

    굿모닝증권에서는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일을 열심히 했느냐”는 추상적인 질문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만족도가 어떻게 나왔느냐”고 묻는다. 예를 들어 기자들을 상대하는 홍보실의 업무평가는 리서치기관에 의뢰해 산출된 ‘기자만족도’를 본다. 직원들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인사부의 고과 역시 ‘대직원 만족도’로 평가된다. 도기권 사장이 취임하고 나서 이룬 성과는 모두 고객지상주의에서 비롯한 것이다.

    1999년 6월 기능 분리의 원칙에 따라 객장을 고객 입장에서 새롭게 단장한 것이 대표적인 예. 고객이 최고로 편리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레이아웃을 도입해 그때까지 천편일률적이었던 증권사 객장에 변화를 주었다. 고객들의 반응이 좋아지자 올 5월부터는 금융상품 전담직원석을 카운터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배치하고 그 옆에 고객전용상담실을 설치해 모든 고객을 VIP로 모시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직원 만족도 높아야 경쟁력 생겨

    현재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온라인 트레이딩 전문브랜드인 ‘굿아이(goodi)’는 인터넷의 수요급증을 내다보고 2001년 1월 출범했다. 이 굿아이는 출범 3개월만 에 계좌 수가 6만개에서 12만개로 증가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지난해 12월에는 업계 최초로 속도에 지장없이 많은 화면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버추얼 스크린 기능을 비롯, 고객의 행동을 미리 예측해 움직이는 인공지능형 시스템을 갖춘 ‘굿아이 넷 2001’을 출시, 온라인 부문 시장 점유율을 4% 이상 끌어오렸다.

    콜센터 개설도 눈여겨볼 부분. 전국 어디서나 단일번호로 트레이딩할 수 있는 통합 콜센터로 인해 고객들은 전화 한 통화로 모든 증권거래와 지점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콜센터는 현재 월 100만 콜을 24시간 365일 빠짐없이 접수 처리할 정도로 업계 최고의 만족도를 보이고 있다.

    도사장은 고객만족도란 외부고객에게 편의만 제공해서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내부고객, 즉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아야 고객만족도도 극대화한다는 것. 따라서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하는 프로그램도 고객만족도를 높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우선 직무수행을 위해 필요한 요소별로 직무가치를 측정해 각 직무를 등급화한 후 직무구조별로 기본급체계를 재구축했다. 이는 연공서열 위주의 보상체계에서 탈피해 직무가치 및 성과에 의한 보상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것. 리프레시 휴가제도를 도입해 직원들이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고, 체력단련휴가 및 연차휴가를 연속 5일 이상 의무 사용케 했다. 일부 부서의 경우 창의력 발휘를 위해 업무성격에 따라 평상시에도 정장 대신 캐주얼을 입게 하는 ‘드레스다운제’도 눈길을 끈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내 커뮤니케이션 활성화 방안은 젊은 사장의 개방적인 면모를 엿보게 한다. 사장이 직원들에게 회사의 1년 경영전략을 직접 설명하는 경영설명회를 정례화했고, 전국 지점을 지속적으로 방문,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있다. 최고경영진 회의를 비롯한 각종 주요 회의 내용을 전직원과 공유하며, 전자 메일을 통해 말단직원의 허심탄회한 의견을 들으려고 애쓰고 있다.

    이 정도로 하고 있으니 굿모닝증권 직원들의 사장 만족도는 어떨지 궁금하다.

    “하하, 글쎄요. B+는 되지 않을까요?”

    도사장은 세부적인 일도 일일이 챙기는 실무형 CEO로 알려져 있다. 대기업의 CEO라면 큰 방향만 정하고 세부적인 일은 아랫사람에게 맡기는 게 보통이다.

    “하하, 제가 무슨 철인입니까? 그 많은 일을 다 처리하게. 회사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만 하나부터 열까지 챙깁니다. 그 진행과정을 제가 완벽하게 알지 못하면 일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거든요. 그 외에는 저도 아랫사람들에게 맡깁니다. 얼마 전까지는 제가 관여하는 일이 많았던 편입니다. 그만큼 시스템이나 제도 등 틀을 새로 짜야 할 일이 많았거든요. 앞으로는 제가 직접 챙겨야 할 일이 많지 않을 겁니다.”

    그는 효율성에만 치중하다 보니 정서적으로 미진한 부분이 많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특히 과거 쌍용투자증권에서부터 몸담았던 직원들은 2년 반 사이에 급격히 바뀐 기업문화와 시스템에 적응하기 힘들었을 거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는 정서적으로도 직원들이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심리적인 경영에 더욱 치중할 것이고 그것이 지금 그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

    그는 대기업 사장치고는 유별난 점이 많다. 첫째는 6시면 ‘칼퇴근’ 하는 것이고, 둘째는 저녁모임은 가급적 갖지 않으며, 마지막으로는 골프를 치지 않는 것이다. 증권사 사장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증권투자를 한번도 안 했다는 사실이고 증권에 대해 문외한이라는 점이다.

    “저는 씨티은행 시절부터 야근을 하지 않고 집에 일 가져가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일이 많으면 새벽에 조금 일찍 나와 처리하면 되니까요. 하하, 우리 애들은 아빠가 매일 노는 사람인 줄 알아요.”

    그는 집에서 아이들과 노는 게 가장 좋다고 말한다. 고1 쌍둥이 딸과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집에서 밥도 해먹고, 마이티도 하면서 “잘 논다”고 담담히 말한다. 유학 가기 전 중매로 만나 두 번 보고 결혼한 그의 아내는 전업주부. 보수적임을 자인하는 그는 직장에서 남자 직원이 여자직원들에게 술 마시라고 강요하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그건 그런대로 괜찮지만 골프 안 치는 것은 서비스회사의 장으로서 결격사유가 아닐까?

    “사실 골프나 다른 취미생활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태국에서는 비즈니스 관계로 골프를 많이 쳤습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한국에서는 시간을 많이 빼앗기는 골프를 칠 여가가 없습니다. 비즈니스요? 사실 사장은 직접 골프 치면서 대접 많이 안 해도 됩니다. 그런 건 임원들이 해도 되니까요.”

    “나는 운좋은 사람”

    재테크에도 문외한이라는 그는 증권사 사장이 증권에 대해 몰라도 경영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 증권시장에 대한 전문지식은 이근모 전무에게 물어보면 된다며 자신의 할 일은 “어떤 방법으로 회사의 수익을 극대화할지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라며 웃는다.

    꿈이라면 먼 훗날 직원들이 “예전에 도기권 사장이 있었는데, 참 좋았었다”고 얘기해주는 것이라고 밝히는 도사장은 자신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씨티은행에서 14년간 근무하면서 13번이나 다른 일을 했다는 도사장은 그로 인해 일에 재미를 붙여 많은 경험을 쌓았고 또 그 덕에 ‘젊은’ 나이에 증권사 사장으로 변신했다. 그 변신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으니 그가 이를 ‘운’으로 돌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고민은 있다. 그것은 일이 지루해질 만하면 새로운 일이 생겨 다시금 도전의식에 불타는 직장생활을 연속적으로 해온 탓에 굿모닝증권 일이 지루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에게 지루해진다는 것은 회사의 업무가 안정권에 접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 좀 지루해지려고 해요, 하하.”







    CEO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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