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호

“미국에 북한 공격시나리오는 없다”

한승주 전 외무장관

  • 황호택 < 동아일보 논설위원 > hthwang@donga.com

    입력2004-11-04 11:5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부시의 ‘악의 축’ 발언으로 불거진 북미 긴장 관계는, 북한 핵문제로 인해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던 1994년의 상황과 여러모로 유사하다. 당시 외무부장관으로 북미관계에 매달려온 한승주 고려대 교수는 현 상황에 대해 어떤 해법을 갖고 있을까.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발표한 연두교서를 통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강한 톤으로 공격한 후 남북한과 미국 간에는 숨가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북한이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미국의 전략과 배치되는 행동으로 계속 어깃장을 놓을 경우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평양 주재 서방 외교관들은 북한이 겉으로는 평온한 듯하면서도 제2의 아프가니스탄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빛이 역력하다고 전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김대중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어떤 식으로 대응할 것인가?

    지금의 상황은 북한 핵문제로 인해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던 1994년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한승주 고려대 정치학과 교수는 김영삼 정부 출범과 함께 외무부장관에 취임하자마자 북미관계에 매달려 1993∼94년의 긴박한 고비를 넘긴 경험이 있다. 한국에서 그만큼 북미관계에 정통한 사람도 드물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교수를 만나기 위해 찾은 고려대학교 교정은 입구부터 온통 공사판이었다. 제2경영관을 신축하고 옛날 운동장 자리의 지하에 주차장과 학생 복지시설을 짓는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영국 고성(古城) 모양의 인촌기념관은 학교의 맨 뒤쪽 옛 인촌 묘소에 있다. 인촌기념관 5층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원장실에서 한교수를 만나 남북한과 미국의 관계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들었다.

    한교수는 최근 미국 행정부 고위관리 그리고 한반도 전문가들과 폭넓은 접촉을 하고 돌아왔다.





    “테러집단 도와주지 말라는 경고”


    ―이름이 비슷한 한승수 전외교부장관이 퇴임식을 마치고 나서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했을 때는 그만한 근거를 갖고 있다”고 말했는데요. 한장관이 미국에서 콜린 파월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으로부터 북한의 미사일 수출에 대한 우려를 직접 전달받았다고 합니다.

    “한승수 전장관이 미국으로부터 전달받았다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북한의 대량살상 무기나 미사일 수출, 또는 미사일 기술 유출과 관련된 것인지 아니면 국민은 굶주리는데 대량살상 무기를 생산하는 비도덕적인 정책에 관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에 포함시킨 것이 무력행사를 하기 위한 명분 축적용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의 결의를 강하게 천명하면서 북한과 같이 대량살상 무기를 보유한 나라들이 테러집단을 도와주는 정책이나 행동을 취하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사전 경고를 한 것입니다.”

    ―경제가 어려운 북한으로서는 미사일 수출이 중요한 달러벌이 수단이 아니겠습니까? 북한은 10억달러를 보상하지 않으면 수출을 중단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습니다. 국제법상 북한의 미사일 판매를 규제할 근거가 있습니까.

    “월드트레이드센터와 펜타곤이 테러를 당한 9·11 사건 이전과 이후를 구분해야 합니다. 미국이 9·11 테러를 전쟁으로 규정하는 상황에서 적에게 도움이 되는 무기나 물자의 판매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요.

    실제로 북한에서 수출하는 미사일이 어디로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연초에 이란이 팔레스타인에 무기를 공급하는 배를 이스라엘 특공대가 중간에 나포할 때, 무기를 받는 상대가 누구냐가 중요한 기준이 됐을 것입니다.

    9·11 이후 미국 입장에서는 자기네들이 극도의 위험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위험이 다가온다고 판단하면 미사일 수출선을 나포한다든지, 미사일을 압류할 권리가 있다고 믿겠죠. 객관적으로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적어도 미국으로는 그런 입장을 취할 거라고 봅니다.”

    ―부시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위험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겠다”는 등 강한 표현을 많이 썼는데요. 미국 언론의 보도는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3개 국에 대해 당장 무력을 사용할 것 같지는 않다고 분석하던데요. 미국이 북한에 대해 어떤 상황에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상정해볼 수 있습니까. 또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된다고 보는지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이후에 이라크, 이란, 북한 등의 순서를 정해놓고 어느 단계에서 북한을 공격하겠다는 식으로 시나리오를 짜놓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서로 오판하거나 또는 잘못된 정책 등에 의해 긴장감이 높아져 사태 진전에 따라 무력 공격이 시작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 또는 미국에 협조하는 나라가 북한의 무기 수출선을 멈추게 하고 무기를 압류했을 때 북한이 대응을 하고 나오겠지요. 특히 한반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심각한 충돌로 발전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북한 정권도 미국의 결의가 꽤 강함을 감지했고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의 무력 행사가 아주 효과적임을 목격했을 것입니다. 그런 전제에서 북한 쪽에서도 조심스럽게 접근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거나 미국이 북한을 무력 공격할 가능성은 아주 낮다고 봅니다.”

    ―‘타임’지 최근호는 부시 대통령이 강하게 나오는 것은 미국 행정부에서 강경파와 온건파가 대립하다가 강경파가 국면을 주도하게 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했던데요. 부시 행정부에서 대북 강성 정책을 밀고 나가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개인을 지칭하지는 않겠습니다. 대개 알려지기로는 국무부 쪽 인사들은 비교적 덜 강경하고 국방부 쪽 인사들이 아주 강경하고, 백악관 쪽은 중간이지만 국방부 쪽에 조금 가깝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딕 체니 부통령도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합니다. 부시 대통령이 연두교서를 발표하고 나서 국방부뿐만 아니라 국무부, 중앙정보국(CIA)까지도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연두교서 자체가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미국의 기본적인 입장을 담고 있고, 북한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견해를 반영한 것이라고 봅니다.”

    ―부시 행정부는 1년 넘게 지켜봤지만 햇볕정책의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고 회의하는 시각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햇볕정책을 둘러싼 한미간 견해 차이를 조화시킬 길이 없겠습니까.

    “미국 행정부 사람들이 햇볕정책의 가시적인 성과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1년 동안 관찰한 소견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한국이 햇볕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실제로 부시 대통령은 연두교서 발표 후에도 미국은 햇볕정책을 지지한다고 천명했습니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도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와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보여줄 것입니다.

    햇볕정책과 관련해서는 한미간에 큰 견해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나 관계 개선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지를 놓고 한미간 간격이 있습니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미국이 적극 나서주기를 바라지만 미국 정부는 자기들이 알아서 결정하겠다고 하는 입장입니다. 햇볕정책에 관한 한 한미간에 큰 견해차이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북미 관계와 관련해서는 한국의 희망과 미국의 정책 사이에는 갭이 좀 있습니다.”

    미국은 인공위성 등 첨단장비를 통해 북한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전자정보의 귀를 통해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고 엿듣고 있다. 군사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 주요 지역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미국은 시간대 별로 체크하고 있다. 얼마 전 일본 자위대가 북한 공작선으로 추정되는 괴선박을 침몰시킨 것도 미국으로부터 사전 연락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미국은 공작선이 북한의 항구를 떠날 때부터 관찰하다가 일본 해역으로 들어가자 자위대에 정확하게 위치를 통보해준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부를 때는 그만한 근거를 확보했을 것이라는 한승수 전장관의 말은 미국의 정보수집 능력에 비추어 심상치 않게 들립니다. 그러나 핵에 관해서는 9·11 전후로 북한에서 새로운 진전이 있었던 것은 아니잖습니까.

    “저도 북한 핵에 관해서는 새로 들은 내용이 없습니다. 제가 추측하기로는 핵과 관련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미국은 소위 북한의 대량파괴 무기에 대해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입장이고 김대통령은 북한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토마스 허바드 주한 미국대사는 흥사단 통일포럼에서 실용적, 직설적으로 대화하는 것이 미국의 사고방식이며 여기에 북한의 체면을 살려주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허바드 대사가 김대통령의 논리를 반박했다고 할 수도 있는데….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체면을 살려주는 것이 실질적인 문제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 하는데 의문을 가졌다고 할 수 있지요. 김대통령은 그러나 그것이 중요하다는 거죠. 체면을 살려주면서 대량살상 무기와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는 것이 좋지 않겠냐 하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일 겁니다. 미국은 아까 얘기한 것처럼 지금까지 그런 노력을 했지만 얼마나 성과가 있었냐고 회의하는 것이지요.”

    ―미국이 ‘악의 축’에 이란과 이라크만 넣으면 ‘문명의 대결’ 즉 이슬람권과의 대결 인상을 줄 우려가 있어 북한을 끼워넣었다는 해석도 나옵니다만.

    “미국 리처드 홀브룩 전유엔대사는 연두교서가 나온 직후 CNN에 나와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축을 얘기하려면 최소한 세 나라는 있어야 되겠지요. 이라크는 우선 순위 1번이지만 이란도 좀 억울하다는 입장이지 않습니까?

    북한의 경우에 그럴 만한 근거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부시 대통령이 세 나라를 거론하면서 나라마다 포함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북한에 대해서는 인민을 굶주리게 하면서 대량살상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비난했지요. 이런 논리가 미국 내에서는 꽤 호응을 받았습니다. 북한 끼워넣기 주장도 일리는 있습니다. 세 나라 다 이슬람 국가인 것보다 최소한 하나는 아닌 것이 이슬람에 대한 전쟁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는 효과가 있겠죠.”

    ‘뉴욕타임스’는 2월1일자 ‘힘의 한계’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미국이 지나치게 나가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9 ·11사태가 부시에게 무한대의 ‘사냥 면허’를 준 것도 아니고 세 나라의 군사, 정치상황이 모두 다르므로 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무력을 마구잡이로 사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지타운 대학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아시아연구소장도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에 기고한 칼럼에서 아무런 사전 경고 없이 수십만 명을 죽일 수 있는 북한의 로켓 1만발에 서울이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짜증나고 고통스럽더라도 북한과의 협상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워싱턴 포스트’는 2월4일자 ‘맞다. 그들은 악이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부시대통령의 연두교서를 적극 지지했다. 그러나 이 신문은 이라크, 이란, 북한에 대해 각기 다른 접근법을 보여 주목된다.

    이라크에 대해서는 군사행동이 고려돼야 한다는 주장을 폈고 이란에 대해서는 신정(神政)일치주의자들이 위험하게 핵에 접근하고 있지만 대다수 국민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으므로 미국의 정책은 전자를 억제하고 후자를 고무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북한에 대해서는 2100만 백성을 비참한 상태에 몰아넣은 정권을 어떻게 용인해야 하느냐고 물으면서도, 남한의 민주정부가 북한과의 대화를 계속 시도할 만한 가치가 남아 있다고 평가했다.

    ―부시대통령의 강성 정책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대체로 어떻습니까. 미국 주요 언론의 반응도 조금씩 다르더군요.

    “뉴욕타임스의 사설은 연두교서를 비판하는 내용이었지만 워싱턴 포스트의 사설은 꽤 강하게 지지하는 쪽이었습니다. 워싱턴 정치권에서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은 별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9·11의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미국 행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대체로 국민의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강경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도 북한과 일단 대화를 해보자는 견해를 지지합니다. 남한이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통일문제 민간논의기구인 평화포럼을 이끄는 강원룡 이사장이 민족 생존권과 직결된 북미관계 악화 같은 현안에는 여야가 초당적으로 대처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원로들의 걱정과는 달리 여야가 서로 네 탓이라고 물고 늘어지기에 바쁜 인상을 주는데요.

    “한반도에서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명제, 남북한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된다는 목표에서 여야의 정책 차이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북한에 인도주의적인 도움을 주고, 북한을 바깥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서 출발한 포용정책 또는 햇볕정책을 놓고서도 여야가 같은 생각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런 긴박한 문제가 터졌을 때 서로 네 탓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상대방 흠집내기에 열중하는 것은 정치 발전에 역행하는 태도입니다.”

    ―최근 미국의 대북 강성 움직임 때문에 진보성향을 가진 여야 의원들이 미국대사관을 방문해 항의서한을 전달했습니다. 일부 시민단체에서도 반미라고까지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미국을 비판하고 있는데요. 지나친 대미 비판이 양국의 동맹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나옵니다. 김대통령도 이에 우려를 표명했는데요.

    “저는 이렇게 중요한 사안을 놓고 우려를 표현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방법론에서 데모하듯이 집단행동을 하고 감정적인 표현을 쓰는 것은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부시 대통령 연설에 대해 우려하는 점이 있다면 기자회견을 하거나 서한을 보내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1994년 6월은 정말 위험했다”


    한교수가 김영삼 정부 출범과 함께 외무부장관에 취임한 직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북미간 긴장이 점점 높아져 1994년 6월경에는 전쟁 위기로 치달으면서 미군 가족과 일반 미국인들까지 대피 훈련을 받고, CNN이 대규모 취재단을 파견하는 등 전쟁 직전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한교수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무부장관 2년 동안 다른 외교는 거의 돌볼 겨를이 없이 북미관계에 매달리다시피 했다.

    ―당시 긴박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비화가 많았을 것으로 짐작이 되는데요. 지금의 상황에서 교훈 삼을 만한 것은 없었습니까.

    “1994년 6월의 사태가 얼마나 전쟁에 가까웠냐 하는 것은 평가에 따라 다르겠습니다. 북한이 NPT에서 탈퇴한 것은 1993년 3월이지만 가장 위기상황이었던 것은 1994년 6월이었죠. 당시 UN 안보리 이사회에서 북한 제재 결의안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결의안이 통과되면 북한은 이것을 선전포고로 받아들이겠다고 나왔지요. 미국은 북한이 그렇게 얘기하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북한의 군사행동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쪽이 먼저 공격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기보다는 서로 점점 에스컬레이트되다 보면 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꽤 있었죠.

    북한은 UN에서 중국이 대북제재 결의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중국에게 북한이 대화에 응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중국이 거부권 행사를 안하겠다고 북한에 통보하는 것이라고 말했지요. 중국이 북한에 그런 말을 전달했다고 나중에 들었습니다. 며칠 후 북한이 지미 카터 전대통령을 초청해 다시 대화에 나오겠다고 하면서 일이 풀리기 시작해 결국 제네바 합의가 이루어진 거죠. 만약 그런 과정이 없었더라면 또 어떻게 됐을까? 상당히 위험한 시간이 있었다고 얘기할 수 있죠.”

    ―오늘에 참고될 만한 것은 없을까요.

    “상대방의 의도 또는 결의를 잘 이해하는 게 필요합니다. 어찌 보면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무엇이라고 불렀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북한에게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또 어떻게 하면 미국이 북한에 대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도록 할 것인지를 확실히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 정부도 의사소통의 통로가 있으면 북한에게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북한은 그래도 대화할 만한 상대라든지, 햇볕정책을 해야 평화가 유지된다든지, 이런 일반론만 되풀이해서는 안되고 북한이 대화에 나서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해 미국과 북한간 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1994년에는 그야말로 시한폭탄이 작동해 재깍재깍 가고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북한이 오판을 해 어떤 행동을 하지 않는 한 특별히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미국 지미 카터 전대통령이 방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고 돌아와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단계로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남겨놓고 김주석이 갑자기 사망해 무산됐는데 김영삼 전대통령도 무척 아쉬워했지요.

    “카터 전대통령이 평양에 가기 전에 서울에 들렀습니다. 그때 김대통령이 카터 전대통령에게 김주석을 만날 용의가 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 말을 카터가 북한에 가서 전하자 김주석이 받아들였습니다. 카터가 한국에 돌아와 김주석의 뜻을 전달했고, 김대통령이 받아들였습니다. 정상회담 날짜가 7월25일로 잡혀 준비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7월8일 김주석이 사망했습니다.

    당시 김주석도 핵문제로 인해 미국이나 남한과의 관계 개선을 마냥 지연시키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쪽에서도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해서 평화를 이루고 통일기반을 다지려는 뜻을 갖고 있어 포괄적 합의가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만약에 그 회담이 이루어졌었다면 핵무기뿐만 아니라 남북관계 전반에 꽤 큰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김영삼 대통령도 ‘아쉽다’는 표현을 썼죠.”

    신년 초에 한 유력 일간지는 10대 국가과제 중 두번째 과제로 예산의 1%를 대북지원에 쓰자고 제안해 주목을 받았다. 국가예산 1%면 약 1조1000억원에 해당한다. 최근 민간차원 대북지원 액수를 보면 2000년 420억원, 2001년 730억원이다. 기존에 지원한 액수보다 줄잡아 15배에서 30배를 증액하자는 주장이다.

    반면에 보수적인 쪽에서는 김대중 정부가 금강산 관광으로 현대아산을 골병들게 만들었고, 북한이 아무런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는데도 일방적으로 퍼주고 있다고 비판한다. 북한은 실제로 각종 지원을 받으며 매번 새로운 요구를 들고 나오면서도 이산가족 상봉을 중단시켰고, 국군포로 송환 등에 대해서는 종전 주장만 되풀이한다.

    ―평화를 위한 투자비용과 퍼주기라는 시각 사이에는 간격이 큰데요. 한교수의 입장은 어느 쪽입니까.

    “대북 관계에서 몇 가지 목적을 분명하게 설정해놓고 그것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 필요한지를 헤아려봐야 합니다. 첫째는 평화를 유지해야 합니다. 둘째는 분단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이산가족 등 인도주의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북한이 행동을 바르게 할 때는 그만한 보상을 주고 그렇지 못할 때는 손해가 따른다는 것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고 있는데 우리가 가만히 보고 있을 수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통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북한사회가 변화되고 바깥 세계로 문을 열고 나오도록 우리가 도와줘야 합니다. 이런 것을 하자면 어느 정도 투자가 필요합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돈으로 산다는 말을 합니다만 전쟁이 끝난 1953년부터 지금까지의 평화는 북한을 지원해줌으로써 얻은 평화라기보다는 전쟁 억지 요소에 의해 확보된 평화입니다. 그렇지만 여러가지 목표를 설정하고 거기에 우리가 자원을 써야 한다는 원칙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어떤 숫자를 정해놓고 1%니 0.5%니 하면서 그것을 조건 없이 준다는 것은 너무 도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돼 냉전체제가 끝날 때 북한이 얼마 못갈 것이라고 관측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인민의 배를 곯게 하면서도 어쨌거나 용하게 버티고 있는데요. 얼마 전에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이 DJ정권 때문에 북한의 붕괴가 지연되고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에 따른 흡수통일이 바람직한가요.

    “갑작스러운 붕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돼 독일이 통일되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별로 없었지요. 그런데 일이 한번 진전되기 시작하니까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상황을 놓고 볼 때 북한이 동독식으로 붕괴된다고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북한의 붕괴를 추구해야 되냐, 혹은 그것이 가능하냐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 문제에 관한 페리 보고서가 나오기 바로 전에 미국 외교팀하고 우리가 그러한 문제들을 검토했는데 모두 부정적인 대답이 나왔습니다. 북한의 조기 붕괴가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대답입니다. 그것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대답은 노(No)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효과가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대답입니다. 조기 붕괴가 바람직한 일이냐에 대해서도 역시 노였습니다.”

    ―중국이 군사 안보면이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북한에 대해서 큰형 노릇을 계속하고 있는데요. 미국이 북한을 어려움으로 몰고 가는 일이 생긴다면 중국은 어떻게 나오리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까.

    “경우에 따라 다를 겁니다. 북한이 그 나름대로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이 가는 방향에 역행하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이 그야말로 무조건적으로 북한을 공격했을 때 중국으로서는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북한이 공격받을 만한 행동을 했다고 할 때는 중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할 명분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미국에 의한 북한 공격의 상황이 생길 거라고 예상하지 않습니다.”

    한교수는 경기고, 서울대 외교학과를 마치고 미국 U.C. 버클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북한관계 연구업적을 많이 남긴 스칼라피노 교수가 그의 스승이다. 작년 연말 버클리대학 서울 동창회 송년회에서 한교수는 북미 남북한 관계 등을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확인도 부인도 않는다)에 빗댄 4자성어로 설명해 좌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저는 비지팅으로 버클리 대학에서 1년 동안 공부를 했습니다. 동창회에서 초청을 해 작년 송년회에 참석했다가 NCND 시리즈를 들었습니다. 아주 흥미롭더군요. 신동아 독자들을 위해 다시 소개해주면 어떻겠습니까?

    “영어 쓴다고 독자들이 좋아하지 않을텐데요?”

    ―신동아 독자들의 수준이 높습니다. 괜찮을 겁니다.

    “그러면 한번 해볼까요. 남북관계에서 북한의 대남정책이 NBNB입니다. Neither break through, nor break off. 특별히 획기적으로 진전시키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깨뜨리는 것도 아니지요. 경제협력도 좀 받아야 할 테니 갈라질 수는 없고 그렇다고 해서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만들지도 않는 겁니다. 북한의 대미정책은 BTNB입니다. Brave talk, no bite. 말로는 용감하게 대들어도 정작 물지는 않습니다.

    중국의 남북한 정책은 NFIH입니다. Never fear, I’m here. 내가 있으니 두려워 마라. 북한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남한에 대해서도 북한하고 잘 지내라고 타이르는 큰형(Big brother) 노릇을 하려고 합니다.

    일본은 YTWP입니다. You talk, we pay. 협상은 너희들이 하고 돈은 우리가 내겠다. 일본 사람들이 YTWP를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러시아는 물망초입니다. 사자성어로 하면 FGMN입니다. Forget me not. 나도 여기 있는데 나 무시하고 너희들끼리 하지 말아라. 푸틴이 방한해 한몫 끼겠다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대북정책은 FSMN입니다. Forsake me not. 날 버리지 말아라 하는 것입니다.

    옛날 서부활극 카우보이 영화에 ‘Have gun, will travel’이라는 게 있었어요. 무슨 뜻이냐 하면 총을 잘 쏘는 해결사죠. 귀찮게 구는 놈이 있으면 내가 달려가 총으로 해결해주겠다는 의미죠. 미국 정책이 지금 ‘Have gun, will travel’ 대신에 ‘Have gun, will talk’지요. 내가 총을 가졌는데 대화는 하겠다. 북한에서 봤을 때는 자존심을 버리고 대화에 나오라고 하는 거나 다름없지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방미활동을 도와준 것으로 신문에 보도됐더군요.

    그는 이 대목에서 뜸을 들이며 답변을 주저하다가 “어차피 미국 갈 일이 있었다”고 대답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안보보좌관은 내가 스탠포드대학에서 가르칠 때 같이 근무했습니다. 그 뒤로도 자주 만났어요. 그래서 워싱턴에 있다가 이총재 일행과 함께 만난 거죠.”

    야당 총재의 방미활동을 도와주는 일이 크게 이상할 것이 없는데도 그는 이 대목에서 무척 조심스러워 했다.

    ―한국에서 따라올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미국 전문가이다 보니 정치권에서도 도와달라는 요청이 많겠지요.

    “나는 누구든지 만나자고 하면 만납니다. 구체적으로 거명할 필요는 없겠지요. 정부에 조언도 하고, 한나라당 스터디그룹에도 나간 적이 있습니다. 민주당 조세형씨가 이끄는 모임에 나가 강연을 한 일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초당파입니다. 이 분들이 정치하느라 바쁘다보니 대외관계를 이해하는데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누구든 원하면 도와줍니다.”

    과거 야당 총재나 야당 대통령 후보가 미국을 방문하면 국무성 과장이나 잘해봐야 차관보 정도나 만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이번에 이회창 총재는 딕 체니 부통령, 콜린 파월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 핵심 고위직을 두루 면담했다. 조셉 바이든 상원 외교위원장, 데니스 해스터트 하원의장 등 미 의회의 여야 지도부도 만났다.

    ―미국에서 이렇게 예우를 해준 것은 야당의 집권 가능성을 높게 봐서 그런 건지, 아니면 현 정부에 대한 미국의 불만 때문에 그런 건지….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할 텐데요.

    “미국에서 꽤 신경 쓴 것 같아요. 미국 정부의 고위직들도 제1 야당이고 제1당의 총재를 한번 만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겠죠. 제가 알기로는 이번에 이총재가 미국의 행정부 관리들뿐만이 아니라 한반도 전문가 그룹 사이에서도 평이 좋았어요. 제가 편파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총재가 남북관계에 대해 전진적으로 말을 했거든요. 햇볕정책의 성과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포용정책 외에 대안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햇볕정책에 일부 비판적인 내용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호의적이었어요.

    그런데 한국의 일부 신문은 야당 총재가 외국에 나가 햇볕정책을 비난했다는 식으로 보도했지요. 민주당과 청와대는 그 보도를 받아 정치적으로 공격했습니다. 야당 총재가 국내에서건 국외에서건 햇볕정책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얘기했으니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좋을 텐데….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대안이 없다고 공격하고, 비판을 하면 비난한다고 공격하는 것은 별로 도움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전반적으로 미국이 지금 상황으로 봐서 국회의석의 과반수에 육박하는 야당총재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비중을 인정한 거라고 봐야지요. 대통령 선거라든가 다음 정부와 관련되는 점도 없지는 않겠지만….”

    ―영국 신문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회창 총재와 부시 행정부 양측은 북한에 대한 회의라는 측면에서 공통의 견해를 갖게 됐다고 보도했더군요. 일부 국내외 언론이 이렇게 보도하니까 민주당도 이총재가 미국에서 대북 강성 분위기를 부추기고 왔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총재는 헤리티지 재단과 미국 기업연구소(AEI)가 공동 주최한 연설회에서 ‘햇볕정책은 북한의 심각한 위법 행위와 도발을 억제한 측면이 있다. 대북정책에 포용정책 외에 대안은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한나라당이 만일 집권한다면 대북정책에 어떤 변화가 오리라고 판단하는지요.

    “저는 포용정책이라는 커다란 틀에는 변화가 없으리라고 봅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잘못된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북한이 싫어한다고 통일부장관을 바꾼다든지 적십자사 총재를 물러나게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남한의 인사권을 북한한테 주는 것 같은 인상입니다. 북한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다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상대방의 존경을 잃고 내부적으로도 장관이 북한의 눈치를 보며 소신껏 일을 하지 않게 된단 말이에요. 정부로서도 어려움이 있긴 하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이회창 총재는 학창시절부터 아는 관계였습니까.

    “학창시절에는 몰랐죠. 나하고는 차이가 많이 나니까. 내가 장관으로 있을 때 그 분이 국무총리를 했잖아요? 그 분이 법관 출신이다보니 원리원칙대로 하고 융통성 없다는 얘기들을 합니다만 나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으로 일을 처리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클린턴과는 무조건 다르게’


    제임스 호어 평양주재 영국 대리대사는 부시의 악의 축 발언 이후 평양이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내심으로는 단순한 경고 이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북한은 제2의 아프가니스탄이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부시 대통령의 방한 후 어떤 식으로든 입장 정리를 하겠지요.

    “북한으로서는 당연히 우려할 만한 상황일 겁니다. 좀전에 ‘브레이브 토크, 노 바이트’라는 말을 했지만 북한 나름대로 실사구시(實事求是)적으로 나올 겁니다. 미국의 의지와 정책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될 수 있으면 피해를 안 보려고 할 것입니다. 북한의 박길연 유엔대표부 대사가 전제조건이 없어야 미국과 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미국은 북미대화에 전제조건이 없다고 이미 얘기를 한 것 아닙니까? 미국이 그 얘기를 다시 한번 되풀이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요. 당장 북한이 대화하자고 호응해오기는 어렵겠지만 결국 북한도 대결 국면으로 달려가는 것보다는 대화로 가기를 원할 것입니다.”

    ―외교부장관이 최근에 경질됐습니다만 일부 언론에서 미국이 그렇게 연두교서에 강한 내용을 담을 것을 알면서 주미 한국 대사관은 뭐 했느냐 하고 질책했습니다. 한국 대사관이 노력하면 미국 대통령의 연두교서의 내용을 바꿀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대미외교에 문제는 없습니까.

    “미국 행정부 내에서도 연두교서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주 제한된 숫자입니다. 주미 대사관이 그 내용을 몰랐다는 것과 외교 역량과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고요. 설혹 사전에 내용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바꾸기는 꽤 어려웠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연두교서 내용은 국무부와 국방부 차원에서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결국 대통령 자신의 판단과 사고에 달려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대미외교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외교부장관이나 관계자들을 너무 자주 바꿉니다. 내가 장관으로 있을 때는 어느 때나 필요하면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교환할 수 있었습니다. 청와대 정종욱 외교안보수석도 카운터파트인 앤서니 레이크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지요. 그 외에 차관보나 차관은 아무때나 대화가 됐지요. 그 당시 미국대사로 있던 한승수씨도 워싱턴에서 활발히 접촉할 수 있는 입장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닌 것 같아요.

    사실 우리 정부의 잘못은 아닌데 부시 행정부가 클린턴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클린턴이 하던 것과는 무조건 다르게 하려고 합니다. ABC라는 표현이 있어요. Anything But Clinton. 클린턴이 하던 것은 뭐든지 아니라는 의미죠. 그게 한반도 정책에도 적용돼 그 여진이 우리 정부에 미치는 점도 있어요.”

    ―민주당 앨 고어 전부통령이 집권했더라면 김대중 정부가 지금보다 조금 편해질 수 있었나요.

    “당연히 그랬겠죠. 고어도 역시 클린턴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하겠지만 적어도 지금 부시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의 북한 인식과는 달랐을 것입니다. 최소한 악의 축이라는 연설은 안나왔겠죠.”

    ―외무부장관 재직시에 신외교 정책 5원칙을 만들어 추진하다가 북한핵이 돌출해 거기에 매달리느라고 제대로 못해 아쉬움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한국 외교가 어떻게 바뀌어야 된다고 봅니까.

    “우리가 남북관계에 너무 집착하는 바람에 예를 들면 외교부 북미국은 북미국이 아니라 북한국이나 다름없어졌어요. 과거에도 그랬지만 요즘에는 더 그래요. 우리가 남북관계에 대한 집념이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외교 5원칙은 첫째, 세계화입니다. 국제기구에 열심히 참여하는 노력을 해 우리가 안보리 이사국이 됐습니다. 둘째, 다변화입니다. 미국과 4강에서 벗어나 다른 지역에도 신경을 쓰자는 거지요. 셋째, 다원화입니다. 안보 문제에만 집중하지 말고 경제·문화·환경 등 여러가지를 고려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넷째, 지역 협력입니다. 동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협력이지요. 다섯째, 미래 지향입니다. 통일을 준비하고 통일 후에 대비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외교부 직원들의 사기가 많이 죽어 있습니다. 인사와 직제, 작업 환경에 불만이 많아 좋은 사람들이 자꾸 나가고, 있는 사람들도 의욕적으로 일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근에 개편된 직제도 잘 되지 않아 혼란이 가중됐습니다. 지난 5년 동안에 일본에서는 외교관 숫자가 50%가 늘어났다는데 우리는 줄었어요. 질적으로 양적으로 우리가 외교 쪽에 신경을 쓰는 게 필요합니다.”

    한교수는 어눌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말을 느리고 작게 하고 조금씩 더듬는다. 영어로 표현해놓고 마땅한 한국말을 찾지 못해 “그거 우리말로 뭐라고 해야 하지요”라고 묻기도 한다. “우리말보다 영어를 잘한다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 하자 “그건 제가 우리말을 잘못한다고 놀리는 의미”라고 받아넘겼다. 한때는 ‘뉴스위크’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썼다. 영어의 말하기와 쓰기는 완벽에 가깝다.

    ―영어를 잘하게 된 비결은 뭡니까. 미국에서 공부했다고 다 잘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지금처럼 대학입시 공부의 압력이 그렇게 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영어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반복해서 보는 것도 좋은 영어 학습법입니다. 대학 졸업하고 미국 가기 전에 KBS 국제방송국에서 영어방송을 했습니다. 방송하려면 읽는 것이 분명해야 되고 기사도 써야 하니까 빨리 쉽게 쓰는 훈련을 많이 했죠.”

    ―미국에서 학위를 한 저명한 학자 한 분은 지금도 매일 규칙적으로 영어 공부를 한다더군요. 외국어는 안 쓰면 녹이 슨다지요.

    “나도 그렇게까지 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도 여행갈 때는 영한사전을 갖고 다니지요.”

    ―노태우 대통령은 재임중에 미국을 일곱 차례나 방문했더군요. 어떤 분은 정상외교가 겉이 화려한데 비해 실속이 약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정상외교를 어떻게 활용하냐에 따라 다릅니다. 유럽에서는 한 달에 정상들의 이런저런 모임이 열 번 이상 있을 때도 있습니다. 서로 방문도 하고 회의도 하고 그렇지요. 우리는 한번 가게 되면 전세기 뜯어고치고 나갈 때 기자회견하고 들어와서 또 기자회견 합니다. 세일즈 외교니 안보외교니 이름을 만들어 붙이고 언론에서는 뭘 얻어왔냐고 따지기도 합니다. 유럽은 지리적으로 붙어 있지만 우리는 한번 나가려면 큰 맘 먹어야 하지요. 많이 나가면 이점이 있어요. 자주 나가지 못하니 큰 것을 만들어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깁니다. 정상회담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걸 준비하는 과정, 후속조치, 또 장관들이나 비서관들이 방문국 상대방을 만나게 됩니다. 정상회담을 자주 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봐서는 안된다는 거죠.”

    ―최성홍 외교부차관이 이번에 장관으로 바로 승진을 했습니다. 외무고시는 수석 합격했지만 미국관련 부서에서 일을 해본 경험이 없습니다. 부당하게 지역차별을 받아 과거 정권에서 미국 근무를 못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만, 경위야 어떻든 간에 대미외교가 중요한 시기에 미국 경험이 적은 분이 외교부장관을 맡아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내가 장관할 때 최장관이 구주(유럽)국장을 했어요. 사람이 원만하고 영어를 잘해요. 영어 잘한다고 다는 아니지만…. 문학에도 조예가 있고 예술적입니다. 사람이 만나면 서로 가늠을 해보지 않습니까? 아직 만나지 않았겠지만 파월 장관이 오면 서로 대화를 하게 될 겁니다. 몇마디 하면 벌써 알거든요. 제 판단으로는 이 분이 말 상대를 잘 하리라고 봅니다. 어떤 장관은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 부하직원이 써준 걸 계속 읽은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국무장관이 그 장관을 다시는 만나기 싫다고 하더래요. 그런 것을 보면 미국 경험이 있다거나 없다고 하는 것과 장관 직무수행과는 다른 거죠.”

    ―외교 마당에서도 사람에 대해 늘 저울질을 합니까.

    “정상간에도 그렇더군요. 정상회담을 할 때 보면 어느 나라건 정상이 된 사람들은 사람을 많이 다룬 경험이 있습니다. 만나서 얘기하면서 상대방을 저울질하는 거예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지식이라든지 판단력이라든지를 살펴 거기에 맞게 요리를 하죠. 그런 의미에서 최장관은 잘 적응하리라고 봅니다.”

    한교수의 부인은 이성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다. 한교수는 칼럼을 쓸 때 이교수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고 털어놓았다. 이교수가 칼럼 내용을 검토해주는 것은 물론 문장이나 단어 사용에서도 코멘트를 한다는 것이다. 신문사 용어로 말하면 이교수가 한교수의 데스크인 셈이다.

    “학자 집안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공부는 나보다도 열심히 합니다. 올해가 안식년인데도 매일 연구원에 나갑니다.”

    한교수의 집 전화와 핸드폰은 끝자리가 4199이다. 1960년 4월19일 서울대 문리대 동숭동 캠퍼스를 나온 학생들은 경무대(지금 청와대) 앞까지 몰려갔다. 총탄이 빗발처럼 날아오고 학생들은 붉은 꽃잎처럼 아스팔트 위에 떨어졌다. 그 역사의 현장에 외교학과 3학년생이던 한교수도 있었다.

    한교수와 이교수 모두 4·19 데모에 참가했지만 ‘사상계’라는 잡지에는 여대생 데모대에서 활약하던 이교수 사진만 실렸다. 4·19 정신으로 세무조사를 했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42년 전에 대학생활을 한 한교수 부부 세대에게 4 ·19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원체험 같은 것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