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박홍규의 색깔있는 문화이야기

삭막한 대한민국에 르네상스는 없다

삭막한 대한민국에 르네상스는 없다

3/10
최근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 1818~97)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가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1860년에 나온 책이니 한글판 출간은 약 140년이 늦은 셈이다. 그 책은 르네상스에 대한 고전적 연구임에 틀림없으며 번역할 가치 또한 충분하나, 저술 당시는커녕 140년이나 뒤처져 나오게 된 것은 여러가지로 문제가 많다. 그런데 번역서에는 그런 문제점을 전혀 지적하지 않으니 여기서 그 몇 가지를 검토하려 한다.

부르크하르트는 스승인 랑케를 비롯 당대 독일 사학자들이 정치사에 기운 것에 반해, 예술을 중시하는 새로운 역사학을 탐구했다. 심지어 정치, 국가, 전쟁이라는 현상마저도 예술적으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기묘’한 학자였다. 6개 부로 구성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제1부 ‘예술작품으로서의 국가’에서는 13~16세기 이탈리아 역사를 군주정과 공화정의 관점에서, 특히 전자에 중점을 두고 고찰하면서, 국가나 전쟁도 인간의 개성적 의식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설명한다. 제4부 ‘세계와 인간의 발견’에서는 자연과학과 자연미 등을 설명하며, 당시 지식인의 시야가 급격히 넓어진 까닭에 아메리카의 ‘발견’이나 단테와 같은 새로운 문학의 창조가 가능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제5부 ‘사회의 축제’에서는 사회적 조직, 제6부 ‘도덕과 종교’에선 미신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기독교 도덕이 발전했다고 주장하며 종교도 문화의 일부로 본다.

그는 르네상스를 해명하는 열쇠로 제2부 ‘개인의 발전’에서 중세의 익명성에 대해 르네상스의 ‘전인’과 명성의 이념을 대비시키고, 이어 제3부 ‘고대의 부흥’에서 휴머니스트에 대해 설명하며, 르네상스의 새로움을 개인주의에서 구하고 이를 고대 부흥과 연결시킨다. 그리고 책 전체를 통해 그는 르네상스의 천재들을 유럽 근대 최초의 지도자로 찬양하면서, 르네상스는 서양의 정신적 물질적 혁명의 결정적 시기로서 중세에 대립했으며, 근대를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역사서라기보다 문학서라는 느낌을 받기 쉽다. 예컨대 왜 중세가 없어지고 르네상스가 돌연히 나타났는가에 대한 설명도 없이 그냥 그렇게 주장한다. 게다가 아메리카 ‘침략’을 지식인 문제로 다루거나 전쟁을 개성의 충돌로 보는 등,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요소들을 갖고 있다. 부르크하르트 자신도 이 책을 에세이라 불렀다. 그러나 아무리 제멋대로 썼다 해도 기묘하다. 그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문제점만 검토해보자.

첫째, 르네상스를 근대사회가 낳은 근대문화의 효시로 본 점이다. 그 책을 쓴 1860년은 근대 자본주의 문화가 절정을 이룬 시기였다. 그러나 바로 1860년 이후 그때까지의 전통과 단절된 새로운 현대 도시 공업사회 - 그것을 산업자본주의, 독점자본주의, 제국주의 그 무엇으로 부르든 - 가 출현했다. 말하자면 그는 마지막 근대인으로서 르네상스를 자신이 속한 시대문화의 표상으로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1860년 이후 사람들에게 르네상스는 당연히 훨씬 중세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이후 르네상스를 중세와 연관짓는 연구가 활발하게 나타났다. 부르크하르트가 중세를 암흑의 시대로 본 점에 대해 반발한 중세사가들은 르네상스에서 나타나는 여러 현상이 이미 중세에 그 뿌리를 내린 것이라 주장했고, 그 결과 ‘12세기 르네상스’ 등의 책이 쏟아졌다. 그렇게 시작된 논쟁은 100년 이상 계속되고 있으나 아직 마땅한 결론은 나지 않고 있다.

3/10
목록 닫기

삭막한 대한민국에 르네상스는 없다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