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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일기

투르니에, 책에서 만난 나의 스승

  • 이윤기 < 소설가·번역가 >

투르니에, 책에서 만난 나의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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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신 관심이 많았던 번역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묻자 자신이 플롱 출판사의 번역판 편집 책임자로 있을 때의 일화를 소개한다. 유명한 ‘007시리즈’를 그리 대단찮은 역자에게 맡겼더니 그 책은 엄청난 부수가 판매되었고, 반면에 특출한 문학적 창의성이 요구되는 카잔차키스의 시 번역은 매우 역량있는 역자에 의해 여러 해가 걸려 번역되었지만 그다지 많이 팔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편집 책임자의 직권으로 전자에게는 최소한의 번역료를, 후자에게는 노력에 값하는 후한 번역료를 지불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곧 탄식하듯이 말한다. ‘그런 편집자가 잘 있어야 말이지.’”

나는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을 세 권이나 우리말로 옮긴 역자이니, 우리나라에 투르니에 선생 같은 편집자가 있었다면 나 역시 썩 후한 번역료를 받을 수 있었을 터이다.

투르니에 선생이나 김화영 선생이나 번역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틈날 때마다 불거져 나온다. ‘짧은 글 긴 침묵’의 역자 후기에서도 김화영 선생은 1998년 투르니에 선생과 만났을 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김화영)는 대답 대신 “당신(투르니에)도 원래 번역자의 경험으로 시작한 작가가 아닙니까?”하고 웃으면서 반문해보았다. 그래서 자기는 번역자의 고통을 잘 안다고 말했다. 나는 문득 투르니에가 젊은 시절에 독일 작가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번역하고 나서 그 원작자를 만났던 이야기를 소개한 그의 저서 ‘성령의 바람’의 한 대목을 생각했다….

“내(레마르크) 책의 번역자와 내 나라 말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군요. 미국, 이탈리아, 러시아 등 다른 나라 번역자들은 독일어를 마치 고대 그리스어나 라틴어같이 죽은 언어처럼 말하더군요”하고 털어놓았다. 그는 번역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그러나 번역은 오로지 장차 자기 개인의 글을 쓰기 위한 연습으로만 생각하라고 충고했다.



“그렇지만 번역과 자기 글을 서로 혼동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가령 내 최근 소설을 옮겨놓은 당신의 번역을 - 물론 아주 훌륭하죠 - 읽어보고 두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첫째는 원서에 있는 몇몇 대목들이 번역서에 와서 없어져 버렸다는 점이에요.”

“두번째 놀라움은 뭐죠?”하고 매우 불안해진 내가 물었다.

“두번째 놀라움은 그와 반대로 원서에서는 찾을 수 없는 몇 페이지를 번역서에서 읽을 수 있었다는 점이었어요.”

나는 당시 스무 살이었고 시건방진 바보였으므로 레마르크의 문장을 별로 대단찮게 생각하고 있었다. 얼굴이 뻘개져서 말을 한참이나 더듬다가 나는 방자하게도 이렇게 말했다.

“두번째 것이 첫번째 것보다 나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그는 너그럽게도 그냥 미소만 지어 보였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번역자란 작가의 반쪽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장 겸손하게 수공업적인 반쪽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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