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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선 KOTRA 북한실장의 대북 밀사 10년 X파일

YS의 오기, 김현철의 농단, 허수아비 협상팀, 배짱부리는 북한

  • 글: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대우 hoon@donga.com

홍지선 KOTRA 북한실장의 대북 밀사 10년 X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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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6월까지 북핵 위기로 미국과 북한 관계는 매우 험악했다. 이런 가운데도 김영삼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했다. 그해 7월8일 김일성(金日成)의 사망은 남북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미국과 북한 관계는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갈루치 차관보와 강석주(姜錫柱) 부부장간 회담이 10월 중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한국 정부가 김일성 빈소 조문을 금지함으로써 크게 소원해졌다. 김일성 사망을 계기로 미북 관계와 남북관계가 역전된 것이다. 한국 정부는 북한을 다시 회담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4자회담을 전제로 한 각종 지원책 등을 발표하였다.

1995년의 대북 쌀지원은 그해 3월7일 독일 베를린을 방문중이던 김영삼 대통령이, 동·서독이 통일 조약을 체결한 황태자궁에서 ‘서울과 베를린, 자유와 번영의 동반자’라는 제목으로 연설하며, “북한이 원하는 어떤 분야에서도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 곡물을 비롯해, 북한에 필요한 원료와 물자를 장기 저리로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말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김대통령의 이러한 제의는 그때까지 나온 것 중에서 가장 의미 있고 구체적인 것으로 해석됐으나 북한에서는 곧바로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일본에서 북한에 대해 식량을 지원하겠다는 움직임이 나오기 시작했다. 일본은 1992년 11월까지 북한과 수교 예비회담을 여덟 차례나 가졌으나 1993년 북한이 동해로 노동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모든 접촉을 중단시켰었다. 1995년 일본은 자민·사회·신당사키가케로 이뤄진 연립여당이 집권하고 있었다. 연립 3여당은 북한과의 수교 협상을 재개시켜야 한다며, 3월28일 와타나베 미치오(渡邊美智雄) 전부총리를 단장으로 한 대표단을 북한에 보냈다.

방북 사흘째인 3월30일 이들은 김용순(金容淳·68) 조선로동당 대남담당 비서 겸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아태) 위원장과 ‘조·일 협상 재개를 위한 합의서’에 서명했다. 와타나베 일행이 북한을 방문하기 전 일본에서는 ‘북한과 수교 회담을 재개하는 조건으로 일본쌀 100만t을 제공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일본은 재고미(在庫米)를 처리하며 북한을 회담으로 끌어내기 위한 포석으로 쌀지원을 검토한 것이다. 여기서 밀사 역할을 한 사람이 한국계 일본인 요시다 다케시(吉田 猛) 신일본산업 대표였다.

요시다는 조총련계로 그의 부친인 요시다 시즈오(吉田鎭雄·사망)는 만주에서 항일 투쟁을 함께한 인연으로 김일성과 아주 가까웠다. 신일본산업은 평양의 보통강호텔에 지사를 두고 북한과 무역했다. 요시다는 자민당의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간사장과 가까워, 가토 사무실에서 일하기도 했는데 요시다는 가토 간사장의 주선으로 연립3당 대표의 방북을 성사시켰다(요시다는 1998년 6월16일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소떼를 이끌고 북한을 방문하기 전에도 중요한 밀사 역할을 했다).



요시다가 밀사로 뛰는 것이 우리 정보 당국에 포착돼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다. YS가 승부사 기질이 강한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 즉각 김대통령은 “일본보다 먼저 우리가 북한에 쌀을 제공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러한 지시를 내릴 때는 사전에 ‘누가 북한과 접촉할 것인지’ ‘어떤 형식과 경로로 한국 정부의 쌀지원을 대행할 것인지’ 등의 각론이 정리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에 쌀을 지원하라는 지시만 내려왔다.

당시 북한 진출을 바라는 한국 대기업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이 한국 정부의 쌀지원 업무를 대행한다면, 이 회사는 대북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된다. 특히 적극적이었던 기업이 현대·대우·LG·고합 등인데 이 회사의 베이징(北京) 지사들은 앞다퉈 “우리가 한국 정부의 쌀지원을 대행한다”며 바람을 잡았다. 북한과 선을 가진 데이비드 장(張)이나 김양일(金洋一·61·미주 한인식료품상총연합회장)씨 같은 미국계 한국인들도 이 사업을 노리고 베이징에 자주 나타났다.

한국 회사보다 북한인 접촉이 자유로웠던 이들은 베이징에 나와 있는 북한의 대외경제추진위원회(대경추)와 국제무역촉진위원회(무촉) 주재원 등을 만나 청와대를 팔며 자신의 영향력을 자랑했다. 이들이 거론한 청와대는 구체적으로 말하면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金賢哲)씨 세력인데, 이들은 뭉뚱그려 청와대로 표현했다. 당시 베이징에서 대북 광고사업을 추진했던 한 사업가는 “베이징에는 청와대에서 조깅하고 칼국수를 먹었다는 사람이 즐비했다”고 말했다. 이들의 ‘펌프질’로 베이징에서는 한국이 북한에 아무 조건 없이 100만t의 쌀을 주려고 한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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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대우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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