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세대 복직 해인 1997년, 자택 서재에서 <김성남 기자>
직접적인 원인은 2000년 6월 연세대 교수 재임용 과정에서 동료 교수들로부터 ‘교수 자격이 없다’는 판정을 받은 데 있다. 마교수는 “배신감을 감당할 수 없다, 사람이 무섭다”며 일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유폐시켜버렸다.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
부슬비가 내리는 오후, 서울 이촌동 마광수 교수 집을 찾았다. 이미 전화로 여러 차례 인터뷰 요청을 했으나 거절당한 다음이었다. 전화통화에서 그는 그저 죽고 싶다고 했다.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할 상태가 아니라고 했다.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거나 정당성을 주장할 뜻도 없다고 했다. 목소리 또한 땅으로 꺼질 듯 힘이 없고 발음조차 분명치 않았다. 한마디로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한 듯했다.
귀찮은 전화임이 분명한데도 마교수는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그 ‘천진성’과 섬약함이 오히려 상대편을 안절부절못하게 했다.
마교수 집 벨을 눌렀다. 친척으로 보이는 여인이 문을 열었다. 경계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 뒤로 언뜻 마광수 교수의 모습이 보였다. 한눈에도 건강이 매우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전해드릴 물건이 있다”고 했지만 그 여인은 문을 닫아버렸다.
잠시 후 다시 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마교수였다. 저래도 살 수 있나 싶을 만큼 극단적으로 마른 모습이었다. 175㎝의 키가 훨씬 크게 느껴졌다. 걸음을 옮길 때면 허리가 휘청거릴 정도였다. 구부정한 어깨는 기아선상의 아프리카 소년을 연상케 했다.
준비해 간 음악CD를 내밀었다. 받아드는 손가락 또한 뼈만 앙상했다. 시간 좀 내달라는 말은 감히 꺼낼 수가 없었다. 마교수가 “고맙다”는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팔순 노모가 아들의 허리춤을 잡아당겼다.
“됐어요, 가세요. 지금 너무 아파 안돼요.”
찰칵, 문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문 안쪽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마교수가 “말 아직 안 끝났는데 왜 그러시냐”면서 다시 문을 열었다. 창백한 낯, 하얗게 센 머리, 멍한 회색빛 눈동자가 절로 애처로움을 자아냈다.
이어진 대화는 2분을 채 넘지 못했다. 마교수는 “물어 볼 것이 있으면 전화로 해달라”며 “어머니가 너무 걱정하셔서 들어가 봐야 한다”고 했다. 서있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몸조리 잘 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